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도 실재하셨을까?(벧전1:20~21)_2018-03-11

by 갈렙 posted Mar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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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9cTakADCe4
날짜 2018-03-11
본문말씀 베드로전서 1:20~21(신약 37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그리스도의 선재성, 아들의 선재성, 구약시대의 성령과 오순절이후의 성령,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들, 삼위하나님의 실재성, 한 분 하나님

1. 들어가며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었을까?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었다고 믿는 분들은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관한 성경구절을 언급하면서,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실재하고 있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 존재하고 있었으면서 또한 활동하고 있었다고 보는 견해를 가리킨다.

 어떤 분들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면서 괜한 것을 건드리지 말라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길 수가 있다. 그것에 대한 극단은 이단에 빠지는 것이다. 이단들은 우리와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예배드리고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공부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이상하게 믿는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이만희를 "이기는 자"라고 하여 재림예수 내지는 보혜사성령으로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와 같은 이단에서는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않으면,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아들 하나님이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이단의 가르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다. 또한 이제 성령하나님시대가 되었으니, 성령을 알아야 한다면서 성령은사집회에 기웃거리다가 보면, 그만 귀신을 성령으로 알고 따라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성경에 나온 인물들이 믿고 따라갔던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견해를 보면, 성경에서 많이 빗나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구약시대에도 아들 하나님 내지는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것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2. 구약시대에 아들 하나님 내지는 그리스도가 존재했었고 또한 활동하고 있었는가?

  구약시대에 과연 아들 하나님 내지는 그리스도 존재하고 있었고 또한 활동하고 있었을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고 한다. 어디에 그러한 말씀이 성경의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이곳저곳에 있는 성경구절들을 언급하면서, 구약시대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경을 잘못 인용하고 있거나 잘못 해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면서 그렇게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한 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보내어 일하고 계셨던 것이다). 구약성경이 공히 증거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다.

  만약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한 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이 있다고 믿는 자가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우상숭배자라고 불리웠을 것이고 돌로 쳐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이셨고 다른 신이 없었다고 계속해서 증언하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고, 시가서와 예언서 모두가 다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 구절만을 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너는 나(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들(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 "나는 하나님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사43:10~11)",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펼쳤고(사44:24)",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31:15)",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2천년전에, 한 분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또 다른 한 분이 계셨다(요13:3). 그분은 바로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에서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따로 나와서 존재하거나 또는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가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니다. 동정녀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실 때에 아버지에게서 나오시어 사람이 되신 것이다(요16:28, 요1:14).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아들로 활동하신 하나님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왜 구약시대에도 하늘에 이미 아들 혹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고 활동하고 있었다고 믿는 것인가?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공인이후 초기교회가 그렇게 결의하고 신조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A.D.325년 니케아에서 결정한 니케아신조가 있었고, 그 다음으로는 A.D.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가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A.D.480년 칼케톤신조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조들이 여러가지 문제있는 조항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였고 그래서 결정한 사항이니만큼 자신은 비록 그 문구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수용해버리는 목회자들로 인하여, 그 신조들이 그만 성경처럼 여겨져버린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알았으면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그것은 이렇게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표시를 할 수 있었을텐데,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 그냥 그대로 넘어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령께서 어디로부터 나오셨는가에 대해서 초기교회회의 결정한 사항을 보자. 동방교회는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분"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서방교회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 분"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잘못된 정의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이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오셔서 활동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은 이미 창조사역에 동참하고 있었고(창1:2, 시104:30), 특정한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예언케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지도력을 발휘하게도 하시고, 지혜도 주시고 있었다. 그런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성령님을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분 내지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 분이라고 정의함으로,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안 계시거나 활동하지 않으신 것처럼 묘사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들이 만들어낸 얄팍한 교리일 뿐이다. 여러분은 아는가? 아들이 없는데 아버지라고 불리울 수 있는지 말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은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품 속에는 이미 독생하신 아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직 밖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과 구상 속에 이미 만세전부터 아들 혹은 그리스도가 있었던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동정녀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었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도 아버지로부터 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다(그것은 오순절이후에 오신 성령에 대한 정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성경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때에는 그것이 가장 성경에 가까운 것이라고 정의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부족한 정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하나님의 인격(본질)에 대해서 정의하려면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어 천지창조 때부터 활동하시고 특정한 사람들 위에 오셔서 특정한 사역을 하게 하신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한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는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되(요15:26) 아들에 의해서 보내어진 분으로서(요15:26,16:7), 이미 구약에 약속된 예언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욜2:28~29, 요7:37~39), 모든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어 일하심을 믿습니다(겔36:26~27, 요14:16~17)...." 그리고 계속해서 중생케하시고, 인치시고 보증하시고, 보혜사로서 기도를 도와주시고, 은사를 주시는 성령에 대한 정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성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수천년이 지났으니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3. 구약성경에는 과연 그리스도 내지는 아들에 대한 성경구절이 있을까?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가 활동했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리고 구약성경에는 그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줄만한 성경구절들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성경구절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해석을 잘못한 것 때문에 그리고 미래에 되어질 일을 당시 실재로 여긴 착오 때문에 그렇게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구약성경 가운데 그리스도 혹은 아들은 따로 존재하면서 활동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간상 모두 다 찾아볼 수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시되는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와 있었을 때, 르비빔의 쪼개진 반석에서 생수를 마셨는데, 바로 그 쪼개진 바위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주장이다(출17:6). 그러나 이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비유와 상징을 그만 실재로 해석하는 착오에 해당한다. 사도바울은 고전10장에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했다(고전10:4). 그리고 그들이 신령한 음료를 마실 수 있었던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언급했다(고전10:4). 그러나 그것은 장차 자신을 희생하시어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나 상징일 뿐이지 그 반석 자체가 그리스도는 아니다. 만약 그 바위가 그리스도였다면 큰 일이다. 아마도 그 바위는 우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르비딤의 "쪼개진 바위"는 구약성경 특히 모세오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나 상징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출12장에는 "유월절양"이 나온다(출12:21~22). 이 양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피흘려 죽으실 죄없은 예수님에 대한 예표다(고전5:7, 요1:29). 그리고 민21장에는 "장대위에 달린 놋뱀"이 나온다(민21:9). 이 놋뱀은 우리 죄를 위하여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셨지만 실제는 죄가 없으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가리킨다(요3:14, 롬8:3).

  둘째, 창세기 1:26~27과 11:7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라는 1인칭복수형태가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활동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도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일 뿐 그것이 구약시대에도 아들 하나님이 있었다거나 성령 하나님이 따로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자 그 구절을 보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시거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11:7)" 여기에는 분명 "우리"는 1인칭복수대명사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누군가 이야기한 것은 맞지만 진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자기(단수)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며(창1:27), 그 하나님은 다름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창2:7). 그렇다면, "우리"라는 1인칭복수대명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유대랍비들에게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생기기 전까지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경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대랍비들은 단 한 사람도 그것을 삼위일체 하나님 내지는 세 분 하나님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에 유명한 유대랍비였던 필로라는 학자는 "우리"라는 명칭은 하나님과 그 주변에 있는 천사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먼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아서 하나님 보좌 가까이 있던 천사들과 의논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명칭을 쓴 것은 하나님과 천사가 어떤 공통분모를 같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천사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먼저 지음받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두번째 피조물인 셈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 곁에서 먼저 지음받은 천사들이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모습들이 종종 나온다. 이사야6장에 보면,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온다(사6:1~3). 그리고 에스겔서를 보면, 요한계시록4장에도 등장하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곁에 있는 장면이 나오며(겔1:5,10),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룹천사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도 나온다(겔10:1~22). 한편, 창18~19장에 보면, 아브라함 앞에 세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창18:2), 그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이었음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 그중에 한 사람(모양을 그렇게 취하셨음)은 여호와라고 분명하게 나오고(창18:10,16~17,22), 나머지 두 사람은 두 천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창19:2). 그러니까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장막에 남아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고 있었고, 나머지 두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려고 갔던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홀로 하나님만 계셨으며,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한 천사들과 의논하시기도 하시고, 그들을 시켜 어떤 일을 수행하게도 하신 것이다.

  셋째, 다니엘3장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자기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유대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가운데 던져넣었는데, 거기에는 신들의 아들같은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다(단3:25). 하지만 이방제국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왕이 보았던 "신들의 아들"과 같은 사람이 누군지 곧바로 나온다. 몇구절 뒤를 보자. 그것은 "그(하나님)의 천사"라고 언급하고 있다(단3:28).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출현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어떤 일을 수행하게 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넷째, 잠언8장에 보면, 지혜로 존재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있다(잠8:22~23). 그 구절을 직접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잠8:22~23)",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의 곁에서 창조자(장인)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의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8:29~30)". 혹 이 구절들만 따로 떼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분 곧 지혜라고 명명되어지는 어떤 인격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성의 일부인 지혜를 잠언서 기자가 인격화시켜서 말하는 것일 뿐, 지혜가 하나님 자신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잠언서에는 이러한 지혜가 아들이나 그리스도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을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지성의 일부인 지혜를 사용하여 천지만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시110:1에 나오는 여호와 옆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있는 다윗의 주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주장이다(시110:1). 그 말씀을 인용해보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그런데 이 시편의 제목에 보면 "다윗의 시"라고 나와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에게 "내가 네 원수들(마귀과 귀신들)로 네 발판이 되게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윗이 보고 기록해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구약시대라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밖에 나와계신 그리스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인용하고 있는 성구이기에,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활동하고 있었다는 가장 큰 증거라고 주장한다(마22:41~45). 하지만 이것도 오해의 하나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다윗이 본 것은 그때 일어난 일을 본 것이 아니라, 훗날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오시어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시는 것을 환상으로 미리 내다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때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이다. 다윗시대에 예수께서 승천하시지 않은 것이다. 아직 메시야가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장래 되어일 일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먼저 보여준 것에 해당한다. 이것은 마치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미래에 되어질 일을 환상으로 보고 기록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시간을 만드신 분으로 시간밖에 계시는 분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으로 볼 수도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직 되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천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다윗으로 하여금 보게해준 것이 이 사건인 것이다.

 

4. 나오며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구상속에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와 귀신들을 처리할 계획을 세우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장차 오시게 될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하여 예표가 나오고, 직접적인 예언들이 쏟아지는 시기였던 것이지 결코 그리스도가 출현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생각 속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마귀를 멸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와 예언의 말씀은 있었지만 오신 그리스도는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과 구상속에 그리스도가 있었으니 그리스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는 아직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 그리스도가 있었으나 구약시대에는 아직 출현하지 아니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한 분 하나님과 오실 그리스도(메시야)를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생은 유일한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그렇다. 오순절이후라고 할지라도 한 분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동일하다. 이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통하여, 구약시대에 그리스도가 정말 실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더 살펴볼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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