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약시대에도 실재하셨을까?(2)(신약성경을 중심으로)(요17:5~8)_2018-03-18

by 갈렙 posted Mar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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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7s_5QgEZBFQ
날짜 2018-03-18
본문말씀 요한복음 17:5~8(신약 17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그리스도의 선재성, 아들의 선재성,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한 분 하나님, 천국에서 하나님은 몇 분이신가, 지혜와 말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시고 계신가?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홀로 게신 한 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사44:6,24). 그리고 구약시대에 신적인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사43:10). 그렇다면 구약시대 과연 그리스도께서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곤란하고 없었다고 말하기도 곤란하기는 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존재에 있어서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아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그리스도의 직책을 수행할 것을 예언하고 있던 시대에 속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오실 그리스도(메시야)가 있었다고 말해야지, 이미 출현해있는 그리스도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늘에서는 그리스도가 계시는가?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다른 제2의 위격을 지닌 아들이 계시는가? 아니 계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다른 분이 계신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보좌에 아들이신 예수께서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들로서 그 직무를 어느정도까지는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다. 이때가 되면, 재림하신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사탄마귀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친히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회개하고 끝까지 믿음을 붙잡는 자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를 위해 아들과 그리스도로 사역하고 계신 한 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을까? 그리스도 곧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이미 구약시대에 실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그리스도는 앞으로 보내주실 미래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가문에서 육신을 입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할 인물로 묘사되어 있기에, 구약시대에 그리스도가 있었다고 표현하기는 조금 난감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미 구약시대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구원의 역사를 세워놓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이미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구약시대 혹은 그 이전의 시대에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밖으로 나타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서 예수께서는 이미 선재하고 있기는 하셨지만, 구약시대에 하나님 이외에 다른 인격적 존재로서 존재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에도 실재하고 있었는지에 관하여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다시 살펴볼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선재성,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주장하는 분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상태에서 따로 인격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미 그리스도이신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인간의 창조를 의논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창1:26). 그러나 창1;26의 기록은 반드시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본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과 그 옆에 있는 천사들에 관한 언급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거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고루 발견된다. 더욱이 창1:26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그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는 문장으로 보지 않으며, 하나님과 그 옆에 있는 천사들이라고 본다. 만약 구약시대에도 세 분 하나님이 계셨다고 한다면, 그것을 믿지 않았던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마8:11). 과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한 분이지만 인격적으로 세 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을까? 그러면 이삭이 믿었는가 야곱이 믿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모세가 믿었으며 다윗이 믿었는가? 아니면 다니엘이 믿었는가? 아니었다. 구약시대 구원받은 인물들은 다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믿었으며, 자기들을 죄로부터 구출해줄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간 것이다.

 

3.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을까? 확실한 것은 천국에서 항상 하나님은 한 분으로 존재하셨다는 것이다. 다만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들로도 동시에 존재하셨고, 아들로 오신 하나님은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는 다시 하나님의 영역으로 돌아가셨다(요16:28).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항상 하나님께서는 한 분으로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바른 정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실제로 삼신론자들일 가능성이 높음)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삼위일체방식이 맞다고 고집한다. 만세전부터 하나님은 삼위일체방식(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존재하심)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도 하늘에서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틀린 말인 것이기는 하지만,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거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하늘의 광경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밧모섬에 사도요한은 하나의 큰 음성을 듣게 된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으며,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았고 눈 같았으며, 그분의 눈은 불꽃같았다. 그리고 그분의 발은 풀무풀에 단련된 빛난 주석같았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이 누군지를 가르쳐주었기에 사도요한은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기를 소개할 때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곧 살아 있는 자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계1:17~18)."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 계신 그분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때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신 그분은 자신을 2가지로 소개했다. 하나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1:17)"고 소개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한 바로 그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자신을 소개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또한 그분은 자신을 "전에는 죽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자로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분은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계4:9).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인자인 예수님이시므로(계1:5), 우리는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그분을 예수님이자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분은 일곱교회들에게 써보낼 말씀을 요한에게 들려주셨다(계2~3장). 그런데 그때 그분은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곧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곧 예수님이 원래 보혜사이시지만(요일2:2, 헬라어원문참조), 자기자신을 또다른 보혜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신 분이므로,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인 것이다(요15:26,16:7).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이땅에 보내심을 받아 활동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는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여호와의 눈들(슥4:10)"이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이자 "이 땅에 보내어 이 땅을 두루 감찰하고 계시는 어린양의 눈들"이라고 언급한다(계4:5, 5:6, 2:23). 그리고 하늘에 있는 피조물들인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를 찬송할 때에, 그들은 보좌에 앉아계신 이를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 이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계4:8)"이라고 찬양을 드린다. 이전에도 계신 분이 지금 하늘의 피조물 앞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계시며, 장차 재림하실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드린 신앙고백의 내용과 동일하게 일치한다(요20:28). 그렇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공식명칭은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인 것이다(계1:8, 4:8).

 

4. 보좌에 앉아계신 이는 누구시며 하나님의 보좌는 누구의 보좌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좌에는 누가 앉아계시는가? 그분은 이 세상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3:20, 7:15~17). 그분은 장차 재림하여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계20:11). 그렇다. 하나님의 보좌에는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가 앉아계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분을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분이 보좌에서 내려오게 되면, 그분은 예수님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그 보좌(단수)를 일컬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부른다(여기서 '보좌'는 단수)(계22:1,3). 만약 하나님의 보좌가 따로 있고 어린양의 보좌가 따로 있다면 그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들"이라고 했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오직 단 한 개의 보좌만을 언급할 뿐이다.

 

5. 하늘에 계신 어린양의 모습은 인류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어린양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일곱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과 어린양이 각각 다른 존재인 것을 말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체와 상징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이 어린양으로 하신 역할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 잘못된 판단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수두룩한데, "어린양"도 상징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예수님(계1:13)은 실제이다. 하지만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상징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인간의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어린 양"은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에 해당한다. 다음을 보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6)" 그렇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게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실제라면 예수님인 괴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예수님은 괴물이 아니다. 이것은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과 세상을 완전히 감찰하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인 것이다(계1:14, 2:18, 23).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분이 바로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런데 그분이 한 때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하나님은 피흘릴 수 없으므로, 피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셨다, 딤전3:16),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그분의 역할에 대한 가장 적합한 묘사로서, 일찍 죽임을 당한 흠없는 어린양(요1:29)이 나온 것이다. 이는 그분이 우리의 유월절의 어린양이라는 표현과 같다(고전5:7). 그러므로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하여 어린양으로서 오셔서 그 역할을 감당하신 것을 일컫는 상징적인 표현에 해당한다. 그렇다. 어떻게 장차 되어질 이 우주와 세상의 역사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가 펼쳐보이겠는가? 오직 하나님 자신이 펼쳐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구속을 위해 어린양이 되신 그분께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책을 취하여 펼쳐보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존재하기 전에 보좌에 앉아계셨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구약시대에 다니엘이 보았고, 이사야가 보았으며, 에스겔이나 스가랴가 보았던 바로 그 하나님이신 것이다.

 

6. 만세전부터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따로 있어 그분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가?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말씀들 중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히1:2) 혹은 그리스도를 통하여(골1:15~17) 혹은 말씀으로(요1:1~3)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한글성경만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헬라어의 전치사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자,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시며, 말씀이었던 그분을 통한 창조에 대해서 원문성경(괄호)은 어떻게 나와 있는지를 살펴보자.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통하여)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골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통하여) 그를 위하여(안으로)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하나님에게서부터)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정관사없음)이시니라 2 그(말씀)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하나님에게서부터)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통하여)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렇다. 아들이나 그리스도 혹은 말씀은 다 동일한 표현들에 해당한다. 다만 아들이나 그리스도는 인격적인 표현의 범주 안에 속한다면, 말씀은 비인격적인 범주 안에 속한다(그렇지만 성경번역자들은 다 인격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도구가 지혜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도 똑같은 표현에 해당한다.

잠8:12,17-23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지혜)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지혜)가 세움을 받았나니
시136: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04: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그렇다. 잠언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지성과 전능성을 지혜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지혜는 만물이 있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신약시대에는 만물이 있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나왔고 이 말씀에 의하여 천지만물이 창조되었으니 이 말씀이 없이는 하나도 창조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므로, 그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 예수님이기에, 또한 예수님은 아들이나 그리스도라 불렸기에, 모든 만물은 다 아들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은 바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분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내보내시어 그 지혜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에 대한 다른 묘사이며, 지혜나 말씀을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들과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혹은 성령과 상의하여 만물을 지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직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혼자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끼어들지 못한다.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시136:4-5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렇다. 만물이 있기전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계셨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지혜로 내보내어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 지혜를 인격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특별히 아들이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신 것은 이 땅에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창조주요 전능자로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 말씀이자 지혜는 하나님으로보터 나왔으니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표현들이다(그러나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는 아들의 인격을 따로 가지셨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아직 인격이 아니었던 말씀과 지혜(하나님의 전지성)가 신약시대에는 육신이 되어 인격체로 나타나셨다. 그분이 바로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동정녀마리아에게 태어나심으로 인격을 입으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지혜이시다. 그러므로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보면,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기묘자인 모사(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다(사9:6). 그러므로 아들이 선재하셨는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아직 그것이 인격적으로 따로 밖에 나타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인격적으로 아들이신 신분으로 아버지와 함께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이루신 일들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7.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만세전에 아버지와 다른 영광을 가지고 따로 계셨는가?

  그렇다면,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아들이신 예수님의 기도에 나오는 표현 즉 아들이 아버지와는 다른 또 다른 영광을 가지고 계셨다는 표현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헬라어를 좀 더 정확하지 못하게 번역한 데서 오는 이해의 불충분이며, 이미 예수께서는 만세전부터 이 세상에 오시도록 계획된 독생하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에 해당한다.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직역: 아버지여, 지금 당신은 나를 단번에 영광스럽게 하소옵서. 세상이 있기 전에 당신 곁에서 계속해 있도록. 당신자신 곁에서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그 영광으로)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직역: 아버지여, 나는 당신이 이미 내게 주신 채 있는 있는 것을 원하나이다. 나 있는 곳에 그들도 역시 나와 함께 있기를, 세상의 기초 전에 당신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나의 그 영광을 그들이 계속해서 바라보도록)

  그렇다. 아들은 만세전부터 이미 홀로 한 분이신 생각과 계획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서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약시대까지는 아직 아들이 밖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동정녀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시면서 아들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다시 하나님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천국에 가면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볼 때에는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아버지의 생각과 계획 속에 인류를 위한 속죄사역을 완성하시고 영광의 자리에 오른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창세전에(세상이 있기 전에) 영광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도하신다. 그리고 그 영광이 무엇인지가 이제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만세전에 아직 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고자 계획하셨다. 그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동정녀 마리아를 태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이 세상에 보면 그분은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30세가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획이 성취될 수 있기를 아버지께 기도하셨던 것이다.

 

8. 나오며

  사실 '아버지'라는 신분은 사실 '아들'이 이 땅에 출현하므로 생겨난 신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홀로 한 분이신 생각과 계획 속에,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에게는 이미 아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서부터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를 향하여 간다"고 말씀하셨다(요16:28)" 이는 구약시대에 아들이 밖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 뿐 이미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그대로 말해준다. 그러므로 아들은 선재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된다. 또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는 아들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만세전에 작정하셨던 그리스도로서의 직책을 수행하실 것도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대로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아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어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30살이 되자(제사장의 직무의 규정에 따라), 그리스도로서의 직책을 3년반동안 수행하셨다. 그러나 그때에는 예수께서도 인성을 취하셨기에 우리들처럼 시공간이라는 제한 속에서 사셔야 했다.

  하지만 인류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하나님으로서 무소부재하신 분이 되셨고,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분이 되셨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당신을 대신하여 당신의 영을 보내주셨다. 그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시다. 그 영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영이었기에 "아버지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승천하신 아들이 보내주시는 영이기도 하기에 "아들의 영"이자,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증거하시는 영이시므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영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고 부른다. 이는 일곱이란 숫자가 이 세상에서의 완전수에 해당하므로, 이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다. 특히 일곱영이라고 함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염두해 둔 표현이라고 하겠다. 또한 천국에서는 예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보좌에 내려와서는 아들로서 일들을 아직도 감당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 어린양의 모습도 일곱뿔들을 가지고 계시고 일곱 눈들을 가지고 계신다. 어린양의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 곧 성령이므로, 예수께서 비록 천상에 계시기만 오직 관심은 이 땅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 역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계심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오셨고, 또한 보혜사 성령까지 보내주셨다. 그러나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아직도 아들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아들이 해야 할 일이 2가지였고 한 가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일의 하나는 인류구속사역이요, 또하나는 하나님의 대적하는 마귀와 그의 귀신들을 처단하는 일이다. 인류구속사역은 이미 2천년전에 골고다언덕에서 이루셨지만, 마귀와 귀신들에 대한 박멸은 재림하심으로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보좌에 앉아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들로서 아직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중보자로서 일하고 계시고, 멜기세덱의 만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서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천국에 우리 성도들이 들어갈 집(처소)을 예비하고 계시며, 장차 재림하시어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멸하실 심판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리고는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불못에 멸하심으로 아들로서 그분의 두번째 사역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아들로서의 역할을 그치게 된다(고전15:24~28). 그러면 그때부터는 더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로서 해야할 사역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은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또한 이루신 하나님을 우리는 영원히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만세전부터 아버지의 품속(계획,생각)에 있었다가 나타나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 영원히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 아멘. 아멘. 아멘.

 

[추신] 사실 이 말씀을 믿는 이들이 다 이해하기까지는 몇 년이 혹 몇 십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쓰여 있는대로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저 역시 성경에 있는 대로 전하는 것이 곧 목회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3월 18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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