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는 왜 돌아가신 예수님을 장사하러 왔을까?(요19:38~42)_2018-06-17

by 갈렙 posted Jun 17,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LM2Z5GHCe9w
날짜 2018-06-17
본문말씀 요한복음 19:38~42(신약 18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니고데모의 방문, 니고데모의 변호, 예수님의 장례, 몰략과 침향,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공회원

사람은 저마다 신앙의 표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또 어떤 사람은 저렇게 표현한다. 그중에서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공회원이었으나 예수님의 제자였던 두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그중에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다. 둘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믿는 제자였으나 자신의 믿음을 숨기며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달랐다.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몰랐으나 밤중에 주님을 찾아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는 달라졌다. 예수님이 이 땅에 빛을 비추기 위해 오신 참 빛이요 그것이 생명의 빛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할 수 있는 한 예수님을 변호하거나 두둔하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해를 가져올 것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던 날, 주님께서 자신에게 들려준 말씀을 니고데모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고, 예수께서 죽자 장사하기 위해서 무덤에 찾아간다. 그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 때문에 그날 무덤에 장사하러 간 것인가? 오늘은 니고데모와 아울러 아리마대 요셉의 신앙을 비교해보면서 나의 신앙양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니고데모는 왜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무덤으로 왔을까? 자기가 마음 속으로 좋게 생각하고 있던 분이었으니까 장례나마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니고데모가 그날 무덤으로 온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 발각된다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존귀히 여기고, 그분을 따르는 자라고 자신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면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산헤드린공회에서 파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는 패거리로 몰려 동료 공회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장사하러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니고데모가 왜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내러 왔는지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놀라운 니고데모의 신앙이 들어있다.

 

2.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게 되었을까?

  니고데모가 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러 오던 날은 캄캄한 밤이었다(요3:1). 그때 그는 자원하여 스스로 주님께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산헤드린공회를 대표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기 위해 예수님께 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 혼줄이 났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조차 이해 못하는 사람으로 책망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당시 자신처럼 많이 배우고 율법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는데, 인류의 속죄를 위해 메시야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됨으로 성취된다는 것까지 들었다(요3:14).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신적 지혜에 따라 자신이 속해있는 산헤드린공회가 어떤 종교단체인지까지 들었다(요3:11). 자기들은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활동하였던 세례요한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 줄 알면서도 그분의 외침을 경청하지 않았다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알았으면서도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여 예수님을 싫어하고 배척하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실제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때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계속해서 어둠 가운데서 지낼 것인가 아니면 빛으로 나아올 것인가를 말이다(요3:19~21). 니고데모는 그날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온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이후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소문으로 들어왔거나 경험했던 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분에 대한 판단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이 정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만 한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메시야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3.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이후 장례는 어떻게 치러졌는가?

  그러나 세상은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기가 속한 산헤드린공회는 예수님을 매우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자 그를 죽여 없애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날 빛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기에 예수님을 배척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산헤드린공회와 백성들의 외침은 예수님을 정말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산헤드린공회는 불법도 서슴없이 행하였다. 재판하는 날에는 절대 형집행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규정까지도 다 무시하였다. 속전속결로 예수님을 처리한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외로히 그리고 백성들의 버림 속에서 아사셀염소처럼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니고데모의 마음 속에는 그분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민21장에 나오는 놋뱀처럼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그제야 확실할 수 있었다. 자신의 기대와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소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알려진 사람이라,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의 시체를 처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 중 한 사람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예수님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골고다 언덕에 위치한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된다. 그 장소에 니고데모도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몰약과 침향(알로에) 섞은 것을 가지고 말이다(요19:39).

 

4. 예수님을 전혀 다르게 섬긴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

  예수님의 생애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장례 또한 구약성경에 나온 예언에 따라 진행되었다. 사53장에 보면, 고난받고 죽임당하실 메시야는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사53:9).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시신은 부자의 묘실에 안치되었다. 왜냐하면 산헤드린공회의 한 명이었던 아리마대사람 요셉이 부자였고, 그가 새로 골고다 언덕에 새로 파놓은 가족묘실에 예수님을 안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리마대 요셉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12제자들이나 70명의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었던 두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도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였다. 성경기자는 아리마대요셉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존경받는 산헤드린공회원이었다(막15:43).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막15:43). 그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눅23:50).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다(눅24:51). 그는 부자였다(마27:57). 그리고 그는 예수의 제자였다(마27:57). 그랬다. 그는 예수님의 숨겨진 제자였던 것이다.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미리 공개되어버렸다면 아마도 빌라도가 그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존경받는 산헤드린공회원이었기에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부자였기에 골고다언덕에 자신의 새 무덤까지 준비해 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평소 때에는 잘 모르나,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에는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아리마대요셉이 그랬다. 그는 예수께서 돌아가기시 전까지는 자신의 마음을 숨겼다. 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시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 실천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부자의 묘실에 묻히실 것이라는 예언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다르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전혀 몰랐던 인물이었으나, 밤중에 주님을 찾아가 정탐하다가 그만 이 땅에 온 빛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때에 마음을 바꾸었다. 예수께서 메시야이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예수께서 사람들에 의해 모함당할 때 변호사를 자처했다(요7:49~51). 그래서 그는 일찍이 산헤드린공회에서는 예수님을 두둔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만약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더라면 아마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그의 예언을 완성하셨음을 알고는 온전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다(요19:39~41). 그래서 산헤드린공회의 두 사람이 그날 예수님의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5. 나오며

  모든 사람은 다 언제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 그랬고, 니고데모가 그랬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고, 니고데모는 3년반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을 보호하고 두둔하기 위하여 준비된 일꾼이었다. 둘은 꼭 그렇게 쓰임받았다. 그렇다. 사람 중에는 자신을 공개하지 않고 어느 때에 나타남으로 쓰임받을 사람도 있고, 자신을 공개함으로 주님께 쓰임받을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쓰시는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었기에 자신에게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당당하게 일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이런 사람도 필요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쓰임받을 것인가?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주님을 섬기는 자인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자로 쓰임받을 사람인가? 아니면 숨어있다가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 주님께 쓰임받을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은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대로 감당하면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6월 17일
정병진목사 

 


Articles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