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인들의 애굽체류기간은 400년인가 430년인가 자손4대인가(창15:13~16)_2018-08-19

by 갈렙 posted Aug 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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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uAb8ULy3V5k
날짜 2018-08-19
본문말씀 시편 33:8~12(구약 82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애굽체류기간, 400년인간 430년인가, 자손 4대는 얼마 기간인가, 유다지파 4대 후손(헤스론 람 암미나답 나손),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B.C.1446년, B.C.1876년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야곱의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간 해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온 해는 또한 언제였을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때가 언제 있었는지를 가늠해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 곧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민족이 되어 탈출하기까지 히브리인들은 과연 몇 년을 애굽에서 살다가 탈출한 것일까? 성경의 기록을 보면, 400년인 것 같기도 하고, 430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창15:13에 의하면, 애굽체류기간은 아브라함의 자손 4대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어 보면 4대가 더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실제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얼마동안 체류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떻게 성취되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다보면, 어딘가에서 무엇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본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애굽체류기간이다. 출애굽했던 히브리인들은 과연 애굽에서 얼마동안 체류해 있었을까? 출애굽기 12장을 읽어보면, 히브리인들의 애굽체류기간은 430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 곧 창15:13에 기록에 의하면, 애굽체류기간이 400년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것도 자손 4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날짜를 혹시 계산하실 때에 잠깐 실수하신 것은 아닐른지... 아니면 처음 성경기록자는 제대로 기록했는데 베껴쓴 사람이 잘못 배껴쓴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이 많은 모세가 잘못 기록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얼마나 체류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4대"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한 분이며, 하신 약속을 어떻게 성취해가시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애굽은 무엇을 상징하여, 애굽의 바로왕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인가?

  성경의 기록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어도 사실은 영적인 책이다.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장차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어,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기록한 것이 성경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약성경은 매우 중요한 구약의 확증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을 통해서 구약에 있었던 사건의 의미가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민21장에 기록된 놋뱀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출애굽2세대들이 만나에 싫증난 나머지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들에게 보내 물려 죽게 한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달려와 제발 기도하여 뱀들이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대 위에 높이 불뱀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뱀에게 물린 자가 있다면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 물린 자들마다 놋뱀을 쳐다 보았던 사람은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요한복음 3장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뱀과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가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니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장대위에 높인 달린 뱀은 자기에게는 죄가 없으나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를 전가받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는 그 옛날 놋뱀을 쳐다본 자가 뱀의 독에서 해독될 수 있었듯이 누구든지 죄의 독으로부터 해독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 들어간 것과 다시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도 동일하게 적용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가서 살게 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간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들어와 사는 것을 상징하며(요일5:19), 그곳에서 애굽왕 바로를 섬기고 산 것은 이 세상임금인 마귀를 섬기고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요12:31~32). 그렇다면,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살았는가? 비록 종살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 불편함이 없이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애굽에 들여보낸 이유는 애굽에서 영영토록 살게 하려는 데에 있지 않았다. 잠시 기근을 피해 들어가서 살다가, 반드시 그곳을 빠져나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들여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애굽은 한 마디로 무엇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출1:7에 의하면, "풍요로움"과 "번성"의 장소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1:7)"고 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있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나라를 준비하기 위하여 임시로 주어진 기간인 것이지, 이 세상의 풍요로움에 푹 빠져 영영토록 이 세상에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세상은 번성의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천국은 영체와 부활체만 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번성의 축복은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 오직 물질세계이자 육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삶에서만 사람이 번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되, 이 세상에 있는 풍요로움 속에서 번성의 축복을 해야 할 장소인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얼마동안 체류한 뒤에 나왔을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얼마동안 살다가 탈출하여 거기를 빠져 나왔을까? 출12:40~11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때은 이스라엘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끝나던 해였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출12:40~41). 다시 말해, 야곱이 자신의 아들과 손자와 증존자까지 이끌고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만에 탈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왕상6:1의 기록을 통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해가 솔로몬통치 4년이 되는 해의 2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왕상6;1). 그해는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B.C.966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연도에 관한 놀라운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480년"이 되던 해에 성전을 지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480년이 되던 해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 오르난의 타작마장에 다윗이 정한 곳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연도는 B.C.966에다가 480년을 합친 B.C.144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은 언제 애굽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출12:40~41에 의하면, 애굽땅에 거주한지 430년이 되는 해가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간 해는 B.C.1876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야곱의 나이는 130세였으며(창47:9),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다가 그의 나이 147세(B.C.1859년)에 애굽땅에 죽게 된다(창49:33).

 

4.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틀렸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하신 말씀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부터 살펴보자.

창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우리가 이 말씀을 정확히 살펴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히브리인들의 실제 애굽체류기간은 430년이었다. 그렇다면, 400년은 무엇인가? 창15:13을 보니, 그것은 이방인들(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히는 기간이다. 그렇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들어갔다가 17년을 더 살고 죽었는데, 그후 13년이 흐른 다음에, 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처음에는 강도가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셈의 자손인 힉소스인들의 통치(애굽13~17왕조)가 끝나고, 함의 자손(제18왕조)이 다시 이집트땅을 다시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 고역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에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체류했던 기간은 정확히 430년이었다. 그런데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았고 147세에 .애굽에서 죽었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의 나이 90세에 태어났다. 그런데 요셉이 17세의 소년으로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 야곱의 나이는 107세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죽을 때의 요셉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리고 요셉은 110세에 죽었으니, 야곱이 죽고 나서 약 53년을 더 애굽에서 산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의 사람들의 나이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얼마를 살았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다만, 계보만 남아 있을 뿐이다.

  먼저, 애굽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의 자손 4대가 누구였는지부터 살펴보자. 애굽땅은 야곱이 들어갔다. 그때 야곱은 자신의 12아들들과 손자와 증존자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창46장 12절에 보면, 야곱은 넷째아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들어갔고, 유다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였던 베레스와 세라를 데리고 들어갔으며, 베레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증손자인 헤스론과 하물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이는 야곱이 자신의 자손4대를 데리고 애굽에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족보는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이다. 그런데 이후의 사람의 족보가 역대기에 나오고(대상2:9~10), 마태복음 1장의 왕의 족보에도 나온다. 이 족보에 의하면 헤스론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를 낳았고, 그의 둘째아들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을 나손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대상2:9~10). 그리고 나손은 살마(살몬)을 낳았는데, 살몬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탐할 때 보낸 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우선 헤스론 이후의 족보를 좀 더 보자.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이 그 족보다. 그런데 헤스론이 3명의 아들을 낳은 것까지는 분명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야곱의 증손자 헤스론이 고손자 람(누가복음 족보에는 '아니')을 낳은 것을 기록한 족보가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다의 계보가 헤스론에서 첫째아들이 아니라 둘째아들인 람으로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람이 암미나답을 직접 낳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여러분은 혹시 람의 아들인 암미나답이 누군였는지를 알고 있는가? 암미나답(혹은 아미나답)은 아론의 부인인 엘리세바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출6:23). 다시 말해, 암미나답은 아들인 나손을 낳았고, 딸인 엘리세바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암미나답은 딸인 엘리세바를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시집보내었다. 이때 엘리세바는 아론에게 시집가서, 4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은 바로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다(출6:23).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론과 모세는 출애굽을 이끈 세대가 아닌가? 그리고 모세가 출애굽1세대들 중에 광야의 행진순서를 기록했을 때, 유다지파의 족장으로 기록한 사람이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는 것이다(민2:3). 그러니까, 암미나답이나 나손은 출애굽하고 있는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가나안땅에서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 - 유다 - 헤스론까지며, 헤스론이 애굽땅에서 람을 낳았으리라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암미나답과 나손은 출애굽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야곱이 헤스론까지는 자신이 직접 대리고 들어갔는데, 람까지가 430년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는지 말이다. 람이 분명 암미나답을 낳았다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암미나답은 람의 직접적인 아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엄청 많은 세대가 거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족보에는 그것이 생략되어 있다.

  왜, 성경의 기록은 람의 아들들 중에서 몇 세대를 생략한 채 기록하고 있는는 것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마태복음 1장의 메시야의 족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에는 여러 명의 왕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왕과 여호아하스왕의 아들 여호야긴(엘리야김)왕이 족보에서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마1:11).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메시야의 족보에 그 이름이 생략된 자들은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람의 아들들의 수 댓수가 아마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들이 생략되어 있고, 성경의 기록에는 람의 아들은 곧 암미나답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애굽에 체류하고 있다가 나온 세대는 딱 4대만 가리키지 않다는 것이 어느정도 확실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야곱의 후손이 4대만에 애굽에서 탈출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것은 번역상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원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에 가나안 땅에 돌아온다는 말씀이 아니라, "네번째의 세대" 때에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온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4번째 세대에 출애굽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람과 암미나답 사이에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들어있음을 추측해 본다. 그래야 사실 43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이 전혀 문제가 없이 해석될 수가 있다.

 

5. 나오며

  성경의 기록은 사람이 썼지만 사람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들어쓰셔서 기록게 한 성령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책들은 성령의 책이자 하나님의 책인 것을 항상 염두해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굽체류기간에 있을지도 모를 야곱의 후손들도 이 원칙은 동일하다. 딱 4대가 아니라 네번째의 세대가 흘러간 다음에 출애굽한다는 것이 성경의 원뜻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낳게 하기 위해 준비된 유다지파의 족보에는 천국에 못 들어간 자의 이름이 생략된체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족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도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에 대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라도 꼭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원히 잊혀버리는 사람의 이름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우리의 이름의 하늘의 생명책에 남아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반드시 구원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충성하여 하늘에서 상급을 많이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8년 8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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