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증인이라는 단체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찬양과 경배받으실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최상의 피조물이라고 시인하며, 그분은 이 땅에 육신을 입기 전 천사장 미가엘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분이 죽고 부활하실 때에는 육신은 버리고 다시 미가엘 천사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여호와만 하나님이요, 여호와께서 처음으로 미가엘천사장을 만드셨고 그가 모든 만물을 지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주장하다가 그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피조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상의 존재들이 그분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스데반이 죽을 때에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맡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부분을 첨삭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 나와있는대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으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분은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기 때문이요, 당신 자신을 구약의 여호와처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이신 것이다.
1. 들어가며
왜 천상의 존재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가?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라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그리고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에게도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성경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만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고 있는가?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한 분 여호와만 하나님이라고 하고 그분께만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그렇다면 성령께도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원받은 백성들과 천상의 천사들이 경배해야 할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를 정확히 살펴보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섬김으로 나아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천상에서 경배받으실 하나님은 두 분인가 세 분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상에서 경배받고 계시는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이시다(계5:13). 어쩌면 하나님이 두 분처럼 보인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이 함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며,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을 지칭한다는 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없다. 그러면 천국에 올라갔을 때 우리는 두 분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딤전5:15~16).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올라갔을 때에 보좌에 앉으신 이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분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서 있는 것은 대신 볼 수 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천국에서 지상의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는 분이다(계1:13). 그런데 그분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으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의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17b~18). 그렇다. 그분은 죽은 적이 있으신 분으로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왜냐하면 계22장에서는 분명하게 당신 자신을 "나 예수"라고 소개하셨기 때문이다(계22:16).
그렇다면 천상에 존재하던 존재들 곧 네 생물과 장로들과 천사들이 찬양드리고 경배했던 어린양은 실재하는 어린양인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5:6에서 어린양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 어린양은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을 가지고 계시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어린양이 실재하는 어린양이라면 그것을 괴물과 같은 어린양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은 그분의 어떠하심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들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7"이라는 숫자는 지상에서 완전수를 가리키며, "12"라는 숫자는 하늘에서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일곱뿔들과 일곱눈들을 가지셨다는 것은 그분이 비록 하늘에 계시기는 하지시만, 지상에서 활동하는 전지하신 분이자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뿔들"은 권세를 상징하고, "눈들"은 전지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일곱눈들에 대한 설명을 붙혀놓았다. 그것은 감찰하시는 하나님 곧 이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했다. 곧 어린양의 일곱눈들은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곧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은 예수님의 눈들인 것이다. 특별히 눈들이 일곱개라고 했으니, 이 눈들을 온 땅에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교회에서 보내라고 했던 편지에서 당신 자신을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다(계2:23). 고로 우리는 천상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있는 "어린양"은 실재하는 어린양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어린양으로서의 죽임당했던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이이 묘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천상의 존재들 곧 네 생물과 장로들과 천사들이 경배했던 "보좌에 앉으신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어린양"은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보좌에 앉으신 이"와 "예수님"이라고 할 것이지, 왜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이 아직도 어린양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다. 사실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취하고 있는 것을 사도요한은 환상으로 보았다. 아직도 아들로 이 땅에 오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 천상에서도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어린양이 일곱 두루마리를 취하여 떼었다고 하는 것은 그분이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그분이 주관하시는 분임을 뜻한다. 그분은 재림하실 때까지 천상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로 나타나셨으나, 아직도 아들은 천상에서 아들로서 해야 할 일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3. 예수님은 찬양받으실 한 분 하나님과는 다른 분이신가?
그러므로 천상의 존재들이 비록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다고 표현되고는 있지만 실은 그들이 지금 한 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볼 수 없으며, 그분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서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스데반의 순교현장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세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세시대의 신관에 따라 천국에서도 하나님은 세 분으로 존재하실 것이라고 믿는 자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그것은 왜곡된 신관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에 앉아계시고, 그분의 오른편에 예수님이 앉아계시고, 그분의 왼편에 성령님 혹은 비둘기가 앉아있는 것처럼 그려놓은 그림들은 잘못된 그림이다. 중세시대에는 하나님을 세 분처럼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엉터리 신관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하나님은 결코 세 분으로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데반의 순교현장이 우리에게 증언해준다.
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설교하다가 순교를 맞이한다. 그때 그는 돌에 맞아가면서 이미 열려진 채 있는 하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천상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으로부터 서 계신 앴는 것을 보았다(행7:56)" 그렇다. 그는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빛)을 보았고, 하나님의 우편으로부터 서 있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숨지기전 자신의 영혼을 주 예수님께 맡긴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제쳐놓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었으며, 그분은 "주"라고 불렀겠는가? 즉 스데반은 예수님을 구약의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던 "퀴리오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긴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신 하나님 곧 주 예수님이셨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서 두 분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그 위에 앉아계시는 한 분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보좌에 내려오시면 그분이 곧 예수님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그 영광 보좌를 떠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가 천국으로 가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래서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해같이 빛나네"라고 찬27장의 작사자를 글을 남긴 것이다.
4.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믿고 있는 여호와증인은 예수님을 과연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한 분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첫번째 부류는 오늘날의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으며,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다. 또한 두번째 부류는 여호와증인들이다. 이들도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만드신 최초의 피조물로서, 그것은 아마도 미가엘천사장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가엘천사장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을 창조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가엘천사장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예수님이요,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마친 후에는 육체는 없애버리고, 다시 미가엘천사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여호와증인들은 예수님을 천사로 보며, 천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천사로 본다. 하지만 천사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천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만든 피조물이며, 사람은 비록 죄인이 되긴 했지만 죄용서를 받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서 예정된 영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종과 자녀는 동일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씀을 육신이 되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게 하셨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요1:1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리고 장차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육신을 입어서 사람이 되신 것이 예수님인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만 존재하셨다.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다른 신은 없었다. 한 분 하나님께 어느날 모세가 물었다.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한 분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일러주셨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에는 모세시대에 비로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을 소급하여 창세기부터 "여호와"라고 썼을 뿐이다.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른 적이 없다.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을 뿐이다(출6:2~3).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가 지난 다음에는 그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출3:6).
그런데 그렇게 해서 모세에게 알려준 이름이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분의 이름을 글자로 쓰기는 했지만 부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꼭 불러야 할 때에는 여호와를 "아도나이(주님)"이라고 불렀다. 또한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는 사실 모음이 없는 자음만 있는 글자였다.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다가 A.D.1270년 스페인의 신부였던 레이문더스 라르티니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로 음가를 만들어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준 신명사문자에다가 "아도나이"의 모음을 합쳐보니, "여호와"라는 음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여호와가 통용되기 시작하였고, 14세이게 이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의 음가는 "여호와"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5. 예수님은 진정 누구신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진정 누구신가? 요3:16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딤전3:16에서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려지셨다고 말씀한다. 고로, 예수님은 아들이 육신을 입어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분은 구약시대에까지만 해도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던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셨다. 그분이 약속의 말씀에 따라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이사야선지자는 장차 메시야로서 오실 아들이자 아들은 다름이 아니라 "보혜사"요, "영존하는 아버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예언했다(사9:6). 또한 이사야선지자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했다(사41:4,44:6,48:12).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당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분은 예수님이시다(계1:17, 2:8, 22:13). 또한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당신자신을 진지한 자와 전능한 자라고 표현하신다(계2:23).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모든 천상의 존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있다(계5:11~14).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기에 칝히 자신을 낮추어 부르신 말이다. 그분은 자신을 그렇게 불렀어도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여호와증인은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참 잘 한 것이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신앙고백으로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세 개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아니다. 이 땅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비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셨지만, 천국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스스로 앉아계신다. 그리고 그 보좌에서 내려오실 때에라야 천상의 존재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보는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천국에 계시지만 오늘도 당신의 영인 일곱영을 보내시어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므로, 그분은 성령님이시다. 보혜사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신 보혜사 성령의 또 다른 자기자신이다.
2019년 3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