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계14:9~13)_2019-06-23(주일)

by 갈렙 posted Jun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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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kLJaZOGtNjI
날짜 2019-06-23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4:9~13(신약 41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구원관,구원의2가지요소,믿음과회개,인내하는믿음,끊임없는회개,요한계시록의구원관

1. 들어가며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공관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누가복음)를 연구하는 학자들, 또 하나는 바울서신(로마서~디도서)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요한신학(요한복음,요한일이삼서,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 요한의 신학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요 전능자요 창조주로서 묘사한다. 그래서 요한신학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을 연구하는 기독론을 일컬어 "고(高)기독론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은 계시(묵시)의 완성의 책이요, 예언의 완성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일들의 결론이 궁금하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에게 가서 물어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원론도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구원론이 있고, 바울이 말하는 구원론이 있으며, 요한사도가 말하는 구원론이 있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의 구원론은 하나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때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론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 것일까?

 

2.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구원론은 어떤 것인가?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구원론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학자마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단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성도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소아시아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이기는 자가 계속해서 나온다(계2:7,11,17,26, 3:5,12,21). 뿐만 아니라,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을 일컬어 "이기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2:11, 15:2, 17:14, 21:7).

계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3.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성도들은 대체 누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구원받는 자가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계12:11에 나와 있는데, 그는 하늘에서 쫓겨난 자 사탄마귀다. 그는 큰 용으로서, 옛뱀이라고도 하고 마귀라도고 하며, 사탄이라고 하는 자다. 그가 하늘에서 쫓겨나서 이 지구로 왔다. 그는 일차적으로 이 지구 위에 쫓겨났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불법을 저질러 지금은 음부로 쫓겨난 상태에 있다. 하지만 그가 음부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그는 자신의 부하들(귀신들)을 지구와 연결된 음부의 문을 통해 올려보내 그의 일을 지금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의 그를 따르는 귀신들을 이기는 것이 곧 우리가 이기는 것이요 구원받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볼 때, 어떻게 하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고로,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살펴본다면, 우리도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구원받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어떻게 되어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계12:11에 나오는데,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믿는 이들 자신이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냄으로 이기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계12:11).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구원자이며, 주 하나님이심을 끝까지 지켜낸 것이다. 이것을 반대로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어떤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을 자신의 구주와 하나나님으로 섬겼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렇게 하다가 사탄이 음부에서 보낸 짐승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탄마귀는 우리 믿는 이들의 목숨만을 앗아갈 수 있을 뿐, 우리의 영혼은 결코 노략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12:11에 보니,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로서 사탄마귀를 이겼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짐승의 이름의 표도 받지 아니하는 자들이 살아서 이기는 자들이 되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언급한다(계14:12, 21:7).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런데 이러한 구원관은 사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구원관과 똑같다. 예수께서도 육체를 입고 계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지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14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과연 우리가 우리가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지금 시대야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을 일도 없고 죽임당할 위험성이 없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불법이 되거나 그것을 이유로 우리를 죽이려 할 때 과연 우리는 흔들림없이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가끔씩 그러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둘째는, 어린양의 피에 자신의 죄를 씻어냄으로 이기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계21:11). 이는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예수님의 피로 씻어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두번째 요소다.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렇게도 많이 회개를 촉구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교회 가운데, 칭찬을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교회들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으며 회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회개없이는 결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없이는 지은 죄를 용서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회개없이는 결코 죽는 날 흰옷을 입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마지막 관문이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로 그의 죄가 씻겨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피가 효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예수님의 피는 항상 준비되어있고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도 남음이 있는데 문제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으니 자신이 지은 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죄는 회개할 때에 용서되는 것이지 가만히 놔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죄는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죄를 그냥 놔두었다가 그만 죽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는 죄 때문에 천국에 못들어갈 수도 있다.

 

5. 이기는 자가 되었을 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인가?

  사람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놓았을까? 그것의 단적인 예로서, 소아시아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 중에서 "이기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구원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에베소교회의 경우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것"(계2:7)이다. 이는 결국 그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천국에 생명나무가 생명강 좌우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서머나교회의 경우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는 둘째사망 곧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사망 곧 불못에 떨어지는 사망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구원관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버가모교회의 경우는 "감추었던 만나"를 먹게 되고, "흰 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감추었던 만나"를 먹게 된다는 더이상 이 세상이나 지옥의 음식이 아니라 하늘양식을 먹게 된다는 것이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흰 돌"을 받게 된다는 것은 그가 심판날에 무죄선고를 받는다는 뜻이다. 무죄선고를 받으니 그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두아디라교회의 경우는 철장권세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과 새벽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먼저 철장권세로 만국을 다스릴 자가 된다는 말은 그가 예수재림 이전에 먼저 부활후 승천하여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일에 동참하였다가 주님의 재림 때에 주님의 뒤를 따라 대열에 합류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아마겟돈세력을 처단하는 일에 동참한다는 것이니, 이이도 천국에 먼저 들어가서 천국에서 왕노릇하고 재림 때에 왕의 권세를 행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에게 "새벽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에게 별과 같은 영광이 주어진다는 뜻이니, 그가 천국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천국의 어떤 누림에 동참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섯째, 사데교회의 경우에는 흰옷을 입는다는 것과, 생명책에서 자신이 이름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첫째,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죄사함을 완전히 받아 천국의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뜻이니 그는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요, 둘째,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으니 역시 그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여섯째,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된다고 했다. 이는 천국에 반드시 들어간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라오디게아교회의 경우는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보좌에서 앉아 심판하고 다스리는데, 이 두 가지 일들을 맡겨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경우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등의 어떤 누림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이기는 자가 되면, 지금 죽어서는 곧바로 부활체를 입고 흰옷을 입어서 천국에 들어가 천년동안 왕노릇하다가, 주님의 재림시에는 주님의 뒤를 따라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그후에는 천국에 들어가서 각종 누림에 참여하게 되고, 천국에서 왕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이 땅에서 이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천국에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는 공간적인 장소다. 천국은 결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장소에 들어간느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죽어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을 받아야 진짜 구원을 받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딤후4:18). 그런데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사탄마귀를 이기는 자가 들어간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사탄마귀의 그 어떤 공격이나 기만에도 속지 아니한 채, 오직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을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야 하며, 예수님 이외에 그 어떤 대상에게도 예수님에게 바쳐야할 경배와 그리고 기도를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죄된 본성과 악한 마귀의 공격의 유혹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즉 요한계시록의 구원관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과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어떠한 상황이나 순간에도 믿음을 지켜내고,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회개를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19년 6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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