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Swciijc0pI
날짜 2019-09-08
본문말씀 마태복음 18:21~35(신약 30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회개,죄용서,빚진자,탕감,주기도문,용서의대상,회개하는자,회개하지않는자,평안의원칙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죄를 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할 때 내 죄가 용서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요일1:9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순간에 그것이 이루어지는가? 그런데 그때 자신의 죄가 용서되고 있는지 아니 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비유의 말씀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죄용서에 관한 놀라운 비밀을 이제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장차 주님 앞에 나가 심판을 받게 된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져 있지만 그후에 심판이 있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히9:27). 또한 주기도문에 의하면, 우리가 장차 심판 앞에 섰을 때에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으려면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죄지은 자 모두를 다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혹 그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우리에게 용서를 요구하면 그 때에 용서해주어야 하는 것이지, 그가 회개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를 용서해주어야 한다 말인가? 그래서고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라면 누구든지다 용서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회개하는 자만 용서해주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주기도문에 나타난 놀라운 죄용서의 법칙은 무엇인가?

  주기도문에 보면 인간을 위한 3가지 간구 가운데 두번째 간구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빚진 자들을 탕감했던 것처럼, [당신은]우리의 빚들을 탕감해주소서(마6:13)(원문직역)" 그러나 이 본문은 의역되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대부분 번역하 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의 평행본문에 따르면, 마태복음에서 언급되고 있는 "빚(오페일레마타)"은 분명 "죄(하마르티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장차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우리의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조건으로서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성경주석가들이 이 말씀을 다르게 번역하거나 해석하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었으니 우리도 남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본문은 그러한 말씀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의 죄들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본문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 말씀을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죄를 짓게 되더라도 회개하면 다 용서되는 줄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죄용서의 대원칙은 맞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에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여 죄용서를 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주기도문에 나오는,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번째 기도이기 때문이다(마6:12).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여서 그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 혹 말씀을 바꾸거나 곡해할까봐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 이어서 "왜냐하면"이라는 이유접속사로서 부가적인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바로 마6:14~15의 말씀이다.

마6:14-15 [왜냐하면] [만약]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역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장차]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그런데] [만약]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장차]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렇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빌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회개를 했어도 누가 끝내 죄용서를 받지 못하는가?

  그럼, 어떤 사람이 죄용서를 받지 못받는가? 먼저, 어떤 자의 회개기도가 상달되는지부터 살펴보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첫째, 요일1:9에 말씀에 의하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형제는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 의하면, 사람이 자신이 죄를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주기도 가운데, 자신의 죄용서에 관한 청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리고 당신은]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죄지은) 자들에게 탕감했던(용서했던) 것처럼, 우리의 빚진 것들(죄들)을 탕감해(용서해주) 주옵소서(마6:12,직역) "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둘째, 하나님으로부터 언젠가 심판을 받게 될 날이 올텐데, 그날에 자신이 지은 죄들을 다 용서받으려면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고 있을 때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다 알기 쉽게 표현한 예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마18장에 나오는 "일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다. 여기에 보면, 일만 달란트(6천만 데나리온=약30조원) 빚진 자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 그런데 그가 주인에게 잡혀왔다. 주인은 그에게 빚을 갚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갚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자식들과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갚으라고 했다. 그러자 종은 엎드려 절하면서 "당신은 내게 오래 참아주소서. 제가 모든 것들을 장차 갚을 것입니다."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를 놓아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주었다(정확히는 '내버려두었다'이다). 그런데 그 종이 밖에 나간 후에 자기에 백 데나리온(노동자의 100일치 삯=약500만원) 빚진 동관을 찾아내었다. 그리고는 그를 붙잡은 후에 목을 잡아 질식시키면서 빚을 갚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동관도 자신과 똑같이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동관에게 허락하지 않고, 그가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던져넣었다. 그런데 그가 행한 일을 그의 동료종들이 보았다. 그리고 그의 주인에게 알렸다. 그러자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를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악한 종아, 네가 간청했기에, 너에게 모든 빚을 내버려두었거늘, 나도 역시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역시 너도 네게 동료종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않느냐"하고는 크게 분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상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내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큰 죄를 지은 자인데, 갚을 수 없는 은혜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라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의 당연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주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다. 고로 우리가 비록 이러한 상태에서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아무리 빌어도 사실 그는 자신의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물론 우리가 회개할 때 내가 지었던 죄가 용서되고 있는지 아니 되는지는 눈으로 볼 수 없기에,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들이 용서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작은 죄를 지은 자들을 용서해주고 있을 때다. 그럴 때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지은 죄들이 그 순간 용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주기도의 간청에도 조건이 붙어있지 않으나, 죄용서를 비는 간청기도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지은 죄들이 용서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과연 내가 지은 죄들을 용서되고 있는 것일까?

 

4. 주님께서는 누구의 죄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는가?

  주님께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베드로가 주님께,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장차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입니까?" 그때 주님께서는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오히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해주기 위해 예수께서 들려주신 비유가 바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다. 고로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죄용서를 받은 자가 되었으며, 또한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게 죄지은 자들을 내가 용서하는 것이다.

 

5. 성경에 나타나 있는 죄용서의 대상에 관한 2가지 예는 무엇인가?

  그런데 우리게 범죄한 자라도 그가 우리를 찾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자일 수도 있고, 끝까지 용서를 빌지 않는 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 누구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둘 다 인가? 아니면 죄용서를 비는 그 사람인가?

  첫째 원칙은, 내게 죄를 범하는 자를 다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마18:21~22). 그 자가 내게 와서 죄용서를 빌든 빌지 않든 상관이 없다.

  둘째 원칙은, 내게 와서 죄용서를 비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용서해주어야 한다(눅17:3~4). 우리는 이미 일만 달란트를 빚을 탕감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에 조금 더 자세히 나와 있다.

눅17:3~4[직역]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고 있어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를 엄히 꾸짖어라. 그리고 만약 그가 회개하거든 그를 단번에 용서하라. 그리고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그가 네게 죄를 짓고 그리고 그가 일곱번 네게 돌이킨다면 그리고 내가 회개합니라라고 말하고 있다면 너는 그를 장차 용서해줄 것이다(용서해주어야 한다).

  셋째 원칙은, 혹 내게 나아와 자신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그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예는 예수님도 그렇게 실천했고,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스데반도 그렇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그때 십자가 앞에 있는 군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단번에 용서하여 주옵소서. 왜나하면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행하는지 알지 못한 채 있기 때문입니다(눅23:34, 직역)" 그리고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자신을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향하여,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두지 마옵소서" 기도했다.

  그렇다면, 왜 내게 죄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라도 우리는 그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위의 경우처럼, 주님께서 그렇게 실천하였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파송할 때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과 그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면서 전파하며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그리고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10:7,11~13)"

  그렇다. 만약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의 죄들을 용서해줄 때에, 그가 만약 회개를 한다면 그의 죄들이 용서되겠지만 만약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죄들의 용서를 빈 기도가 내게 돌아와 내가 지은 죄들을 용서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 돌아오는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용서하는 기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축복하는 말도 마찬가지요, 저주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언어를 상대방에서 사용하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대로 사실은 내가 받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말해왔는가? 오늘부터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기도를 점검해볼 줄 알아야 한다.

 

6. 나오며

  나에게 죄를 지은 자들은 누구라도 다 용서해주어야 하는가? 그렇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가 죄용서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죄를 용서받는 데에 영향을 미칠 것이요, 그가 죄용서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언 그 간구가 오히려 내게로 돌아와 내가 지은 죄들을 용서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용서의 비밀"이다. 그렇다. 무조건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회개한다고 해서 다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나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고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면서 늘 회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죄는 오늘도 용서되고 있지 않을 확률이 많다. 그는 지금 소용없는 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 회개기도를 해보자. 그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사항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9월 8일(주일)

정병진목사

 

 

 

 


  1. 흰 말과 그 위에 탄 자는 과연 적그리스도인가?(계6:1~8)_2019-11-17(주일)

    1. 들어가며 주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 오실 것만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논조가 아닌 것도 같다. 너무 빨리 오신다고 하면 조급함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고, ...
    Date2019.11.19 By갈렙 Views239
    Read More
  2. 천국에서 제사장과 왕으로 참여한다는 뜻은 무엇인가?(계5:6~11)_2019-11-10(주일)

    1. 들어가며 천국에 들어가면 성도들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직책을 수행하는가? 천국에 들어간 후에 성도의 상태에 관해, 이 세상에서의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천국타령이냐고 하면서 그냥 지나쳐 버려도 상관없는가? 아니면 천국에서 성도...
    Date2019.11.10 By갈렙 Views193
    Read More
  3. 이 마지막 시대에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계3:7~13)_2019-10-27(주일)

    이 시대의 마지막은 환난의 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마지막 추수기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려면 핍박받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는 서머나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열린 문으로 복음을 전파...
    Date2019.10.27 By갈렙 Views315
    Read More
  4.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결코 먹지 말아야 하는가?(시106:28~29)_2019-10-20(주일)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어도 되는가 먹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음식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실제로 내 육신과 영혼 그리고 우리의 주변사람과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또한 믿음이 약한 형...
    Date2019.10.20 By갈렙 Views327
    Read More
  5. 연옥이 진짜 존재할까?(벧전3:18~20)_2019-10-13(주일)

    1. 들어가며 오늘날 천주교(로마카톨릭)과 개신교(개혁교회)는 많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예를 들어, 천주교와 개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같고, 사도신경도 신앙고백으로 같이 고백한다. 그런데 판이하게 다른 것도 있다. 그중에서 ...
    Date2019.10.13 By갈렙 Views896
    Read More
  6. 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해서는 아니 되는가?(마16:16과28:19)_2019-10-06(주일)

    개신교인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면 아니 되는가? 어떤 분은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이 만든 것으로서, "마귀를 섬기는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이것을 신앙고백하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로마카톨릭의 음흉한 교리가 숨겨져 있기...
    Date2019.10.06 By갈렙 Views460
    Read More
  7. 예수님은 지혜문학의 지혜이며 헬라철학의 로고스인가?(요1:1~14)_2019-09-29(주일)

    1. 들어가며 예수님은 구약의 지혜문학에 나오는 선재한 "지혜"인가? 아니면 헬라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로고스(말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정확히 말하면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옳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구약의 ...
    Date2019.09.29 By갈렙 Views394
    Read More
  8. 개인구원예정론과 불특정다수구원예정론,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롬9:14~29)_2019-09-22(주일)

    1. 들어가며 성경에는 과연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계획하셨다는 말씀이 존재하는가? 그러한 사례가 한 번이라고 나오는가? 어떤 분들은 그러한 사례가 성경에 나온다고 말한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서와 야곱"의 경우...
    Date2019.09.22 By갈렙 Views251
    Read More
  9. 명절에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우상숭배가 되는가?(출23:14~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오늘날에 들어와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우상숭배행위라는 것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추도예배는 제사를 대신하는 행위요, 장례예배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라고 명하시지도 않았으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근본사상과 배치되는 행위일 뿐 ...
    Date2019.09.15 By갈렙 Views305
    Read More
  10. 주기도문강해[부록] 나에게 죄지은 자들은 누구라도 다 용서해 주어야 하는가?(마18:21~35)_2019-09-08(주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죄를 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할 때 내 죄가 용서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요일1:9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순간에 그것이 이...
    Date2019.09.08 By갈렙 Views283
    Read More
  11. 하나님의 예정과 사람이 만든 예정론의 차이(02)(마22:1~14)_2019-09-01(주일)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은 구원과 우리가 들었고 또한 알고 있는 구원론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성경적인 견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맞겠지만 어떤 것은 틀린 것도 있...
    Date2019.09.01 By갈렙 Views218
    Read More
  12. 하나님의 예정과 사람이 만든 예정론의 차이(엡1:3~14)_2019-08-25(주일)

    1. 들어가며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전지전능한 분이시다. 즉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못하실 것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만세전에 우주의 모든 전개 과정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실행하셨을까? 그럴 리가 없다. 심지어 하나...
    Date2019.08.25 By갈렙 Views205
    Read More
  13. 장례가 나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눅9:57~62)_2019-08-18(주일)

    자기의 가족이나 교회의 식구들 가운데 장례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우상숭배행위라고 알게 되었으니, 아예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단절해 버리는 것만이 상책인가?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가, 혹시 장례가 났을 때에 장례예배를 드릴 것인...
    Date2019.08.18 By갈렙 Views558
    Read More
  14. 한 번 얻은 구원은 정말 영원한 구원인가?(히5:9)_2019-08-11(주일)

    1. 들어가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정말 말도 많고 탈고 많은 영원한 주제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반드시 풀고 지나가야 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일평생 신앙생활한 것이 헛될 수도 있으며, 그날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
    Date2019.08.11 By갈렙 Views403
    Read More
  15.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2)(마24:3~31)_2019-08-04(주일)

    주님의 재림의 날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우리가 그 날짜와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그날에 가까울수록 주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가 실현될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징조에 더욱 더 주의를 기울...
    Date2019.08.04 By갈렙 Views413
    Read More
  16.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1)(마24:2~31)_2019-07-28(주일)

    2020년 6월에는 로마카톨릭을 중심으로 세계종교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종교통합선언을 한다고 한다. 또한 전 세계가 지금 과거의 냉전주의 시대처럼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다시 편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
    Date2019.07.28 By갈렙 Views364
    Read More
  17. 진정한 회개를 했던 신약의 사람들(마26:69~75)_2019-07-21(주일)

    1. 들어가며 진실로 회개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것을 체험하는 것일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죄에 대한 고백을 들으셨는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하늘 어디선가 "네 ...
    Date2019.07.14 By갈렙 Views281
    Read More
  18. 귀신이 사람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경로는 무엇인가?(골3:5~6)_2019-06-30(주일)

    귀신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 사람에게나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다 합법적으로 들어간다. 즉 사람이 죄를 짓게 해서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우상숭배죄와 같은 죄를 지은 조상이 있다면 그것을 빌미로 해서 그 집안의 손자에게까지 들어간다. ...
    Date2019.07.01 By갈렙 Views514
    Read More
  19.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계14:9~13)_2019-06-23(주일)

    1. 들어가며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공관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누가복음)를 연구하는 학자들, 또 하나는 바울서신(로마서~디도서)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요한신학(요한복음,요한일이삼서,요한계...
    Date2019.06.23 By갈렙 Views250
    Read More
  20.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요1:1~18)_2019-06-16(주일)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구약예언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야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Date2019.06.16 By갈렙 Views35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23 Next
/ 23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