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며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계1:1~6)_2019-12-01(주일)

by 갈렙 posted Dec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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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74WbjKy5QA4
날짜 2019-12-01
본문말씀 요한계시록 1:1~6(신약 39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요한계시록은어떤책,요한계시록의성격,요한계시록의내용,편지,예언서,계시서(묵시서),하나님,신론,삼위일체론,구원론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유일한 계시서(묵시서)다. 그런데 이 책은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사도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보낸 서간집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예언과 상징들로 구성되어있기에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것을 이단들이 주로 사용해왔다. 심지어 종교개혁자 루터도 이 책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 책을 덮어도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제대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기만 한다고 한다면 엄청난 영적인 유익이 들어있다. 오늘은 그 서두의 말씀이다.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대체 어떤 책인가?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가? 그런데 선뜻 이 책을 읽기에는 조금 망설임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 책을 해석하다가 그만 이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이단이 어떻게 나오는지는 나중에 좀 더 공부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이단들이 많이 사용하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아예 손을 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영적인 유익들이 너무나 크고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 분이신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관계도 소상하게 알 수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지 그분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시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은 무슨 책인지, 그 성격에 관하여 한 번 살펴보고, 요한계시록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책인지 그 서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을 조금 살펴보고자 한다. 이 메시지를 듣는 여러분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2.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요한계시록은 어떤 유형의 책인가? 그것은 3가지다. 하나는 편지요 또 하나는 예언서이며, 마지막 하나는 계시서(묵시서)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편지로서 일곱교회에 부쳐진 것이며, 예언을 말하고 있고, 상징과 환상을 통해서 하늘의 계시를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책이 왜 이 3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요한계시록은 편지라는 것이다(계1:4). 이 책은 편지다. 편지는 발신인과 수신인이 있고 그리고 편지의 내용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발신인은 누구인가? 그는 사도요한이다(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노니...(계1:4). 그렇다. 이 편지의 발신인은 사도요한이다. 그렇다면, 수신인은 누군가? 그것은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계12:4,19~20, 2:1,8,12,,183:1,7,14))"였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였다. 그렇다면 무슨 내용을 쓴 것인가? 그것은 딱 3가지다(계1:19). 사도요한이 "그날 본 것들"(계1장)과 "그때 있는 일들"(2~3장)과 "장차 될 일들(원문:이 일들 후에 당번에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들)(4~22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편지를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신인들이 지금 처해 있는 문제들을 잘 이겨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로마황제치하에서 우상숭배의 종용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고난받고 죽음의 현장으로 몰리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쓴 것이다. 결국 로마황제를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믿는 성도들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언젠가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어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실 것이고, 믿는 성도들을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편지이지만 위로와 소망의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라는 것이다(계1:3). 이 책은 예언의 책이다. 예언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미래에 되어질 일 자체를 기록하려고 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되기는 했지만 어떠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짐승(사탄의 화신)과 거짓선지자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의 책을 대하면서, 3차세계대전이 언제 일어나는지, 베리칩이 언제 모든 사람에게 박는지, 제3의 성전은 언제 세워지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한다면, 그는 시한부종말론자가 되든지 사탄의 미혹에 빠져 날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신약 이후에 "예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예언자는 딱 2가지를 선포했다. 하나는 "오실 메시야"가 누구며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선포했으며, 또 하나는 한 분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고, 불의를 행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회개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로서 마지막 주자는 세례요한이었다. 예수께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마11:1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오셔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이후에 예언자는 2가지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는 이미 오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선포해야 한다. 물론 거기에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은 죄들을 회개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주님을 맞이해서 안 되고 그런 상태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계21:8, 21:27, 22:15). 그러므로 미래에 되어일 일들이란 대부분 이미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겪어야 할 일들이 어떤 것이며, 회개하는 것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은 계시서(묵시서)라는 것이다(계1:1). 그렇다. 요한계시록은 계시(묵시)가 기록된 책이다. 특히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서 준 계시를 기록한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미지와 환상과 숫자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은 문자 그대로 풀 수가 없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이기에 상징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적으로 구약의 계시(묵시)의 책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꿈과 환상을 보았던 창세기의 요셉과 다니엘을 잘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았던 자들의 기록들을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니엘서, 에스겔서, 이사야서, 스가랴서는 필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에 쓰여진 계시들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계시는 어떻게 사도요한에게 주어졌는가? 우선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도요한에게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도록 말이다(계1:1).

 

3. 요한계시록에는 무엇이 쓰여져 있는가?

  요한계시록에는 크게 5가지 주제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에서 중요한 것은 앞의 두 가지와 마지막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요(계1:4~8), 둘째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계2~3장). 그리고 부수적으로 2가지가 나오는데, 셋째로 사람이 어떻게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이기는지가 기록되어 있으며(계6장,7장,12장,13장,14장,15장), 넷째로 이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끝날 것인지(계6~20장)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로,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계4~5장, 21~22장)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시간 관계상 첫번째 주제인 하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조금만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요한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문안을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한다(계1:4~5a).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면서 그분이 곧 오신다는 것을 말한다(계1:5b~7). 그러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다. 그런데 그것은 주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계1:8)". 계1:8에 보니,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이 누군지를 선언하고 계신다. 그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분에 대한 수식어가 있다. 그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며 전능자"라는 것이다. 나중에 배우겠지만, 하나님은 한 분으로서 "보좌에 [스스로] 앉아계신 이"이다(계4:2). 그분은 또한 "주님이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주님이요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요20:28에 보면, 예수님에 대한 도마의 신앙고백과 같은 표현이다. 고로 "주님이요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이제도 계시도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에게 쓸 수 있는 호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편지의 서두에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따로 각각 따로 계시는 세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주 하나님"으로 소개하신 분은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인 소개라고만 보면 된다. 즉 아버지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주 하나님의 소개 안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러나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아들도 계시고 성령도 계신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시는 분"이라는 표현은 성령님에게 촛점을 맞춘 표현일 것이고, "전에도 계셨던 이"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촛점을 맞춘 것이며, "장차 오실 이"는 예수님에게 촛점을 맞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도 계시는 이"를 두고 예수님이나 아버지께서 포함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전에도 계셨던 이"에게 아들과 성령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한 마디로 그분은 "보좌에 앉아계신 이(계21:5)"이다. 그분은 자신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이다(계21:5).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하나님께서 세 분으로 존재하실 것이라고 하는 상상을 버려야 한다. 또한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3개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함께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 천국에는 보좌가 한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계22;1,3)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보좌 위에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계3:21, 7:17, 20:11). 한 분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나타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성령은 항상 영으로 계셨다. 계5:6에 보면, 성령님은 "일곱 영들"이자(계1:4,4:5),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슥4:10에 보면, 성령님은 "여호와의 일곱눈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성령님은 여호와와 예수님의 영이요 눈인 것이다. 한편 아버지와 성령님와 예수님 중에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와 성령님은 항상 영으로만 존재하셨기에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님만이 한 때 인성을 지니셨고 자신의 몸을 부활체로서 하늘로 그대로 가져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면 우리 눈으로 직접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4. 나오며

  요한계시록은 호기심으로 읽을 책이 아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요,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알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혹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다보면 그는 틀림없이 임박한 종말론에 빠질 위험성이 커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다(행1:7). 우리는 모른다(마24:36). 우리는 다만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 회개하며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면 밖으로는 계속해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안으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면 되는 것이다. 자꾸 미래에 관심을 쏟게 되면 환난전휴거론같은 터무니없는 종말론에 쉽게 빠지고 말 것이다. 환난전휴거는 1550년대에 천주교에서 처음으로 교리화시켜 세상에 내놓은 미혹 중의 미혹에 해당한다(정말 그러한지는 시간이 지나보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환난전에 휴거된다는 말이 없다. 환란을 통과해야 하기에 환난을 이겨내라고 권면할 뿐이다. 이것은 마24장에서 예수께서도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이다(마24:29). "그날 환난 후에" 공중에 주님이 오신다고 했다. 그날 한 번 우주적인 공중휴거(둘째부활)가 있을 것이고, 그날에 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이다(이러한 내용은 본 교회 홈페이지에는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고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이단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구원얻는지를 알아야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볼 때에는, 반드시 이 두 관점을 가지고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2월 0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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