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용서, 과연 죄를 지을 자유에 대한 선언인가?(요8:1~11)_2020-05-10(주일)

by 갈렙 posted May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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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EhaRYWjomnM
날짜 2020-05-10
본문말씀 요한복음 8:1~11(신약 15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죄용서,죄지을자유,과거의죄,미래의죄,가서다시는죄를짓지말라,예정론,성도의견인,율법의징계,회개안됨,간음여인,38년된중풍병자,히브리서의경고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언제였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우리는 지난 주일낮예배를 통하여 그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심판의 하나님에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정죄의 하나님에서 해방의 하나님으로, 징계의 하나님에서 용서의 하나님으로 바뀌었음을 들었다. 이는 곧 구약적인 경륜이 신약적인 경륜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뀌었음을 배웠다. 그렇다면, 이제 무슨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께 나아와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받게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죄용서가 과연 우리가 미래에 죄를 지어도 좋다는 자유에 대한 선언인지를 살펴보고자한다. 오늘 우리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 존재인지를 적나나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2. 예수님의 죄용서에 대한 선언은 과연 미래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선언인가?

  예수께서 오심으로 사실 엄청난 변화가 생겨난다.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요, 정죄의 시대에서 용서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율법은 크게 2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을 통하여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지 의인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도덕법인 "십계명"법은 자신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해주는 율법의 근간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이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율법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며 장차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예표하고 있는 또 다른 법도 역시 율법의 하나인 것이다. 특히 이것들은 의식법으로 주어진 것들로서 곧 안식일법을 포함한 절기법, 정결법과 음식법과 제사법들이다. 이러한 의식법들은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안식일"은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죄짐을 짊어지고 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법이다(마10:28~30). 그리고 유월절에 희생당하는 "어린양"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실 속죄양이 누구며 어떻께 죽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법이다(고전5:7). 그런데 바로 그분 곧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서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이 성취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 이루셨다"(요19:30)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받게 될 온갖 종류의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셨다. 다시 말해, 신22:22~23에 의거하여 예수께서는 저주의 나무(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고 거기서 숨을 거두셨다(갈3:13).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있으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혜택을 다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바로 그 목적을 드러내셔야 했다. 그중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사건이다. 그 여인은 이른 아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손에 질질 끌려왔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세워놓고, 율법에는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레20:10, 신22:22),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참 난감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만약 그녀를 돌로 치라고 한다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준수자가 되지만,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역과는 상충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그녀를 살려주라고 명령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사람이라고 매도되어, 그가 메시야가 아니라고 비난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러자 예수께서는 허리를 굽혀 땅을 글자를 쓰시더니 일어나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씩 뒷걸음치더니 다 도망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죄를 짓기 마련인데, 양심의 가책을 받은 그들이 더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했다. "여인아, 너를 정죄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리고 그 여인 대답하였다.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도 "나도 너를 유죄판결하지 않는다. 너는 가서 지금으로부터 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요8:11)"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날, 예수께서 그녀를 유죄판결하지 아니하고 죄를 용서해준 것은 과연 앞으로도 어떤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용의 말씀인가? 아니면 과거의 죄값은 예수께서 담당할 것이니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도록 하라는 당부인가? 그렇다. 예수께서 그날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은 그녀가 지었던 과거의 죄들에 대한 용서인 것이었지, 앞으로 마음껏 죄를 지으라는 허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에 대한 값을 예수께서 대신 담당하심으로 용서해시겠다는 말씀인 것이지, 앞으로 죄를 얼마든지 지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여인에 과거에 지었던 죄 때문에 그순간에 돌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녀는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품으신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고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와 달리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곧 대신 죄값을 감당할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죄용서를 구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이제 자신은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죄를 지어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미래에 죄를 지을 죄들에 대한 용서까지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2가지 교리는 무엇인가?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위와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고 과거의 죄를 용서받은 자에게 교회가 너무나 쉽게 사죄권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과거와 현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은 것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지은 자범죄들을 회개할 때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한 번 믿은 것으로 인하여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함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계속해서 갖도록 만들어주는 잘못된 교리가 2가지가 있으니, 그것의 하나는 개인구원예정론이요, 또 하나는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다. 먼저, 개인구원예정론부터 살펴보자. 사실 개인구원예정론은 중세를 열었던 신학자 어거스틴이 최초로 만들었고, 종교개혁자 칼빈이 완성한 바 있는 교리다. 그러나 성경에는 개인에 대한 구원을 만세전에 예정해놓았다는 말씀은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다고 정해놓은는 사역적인 예정은 더러 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에 대한 만세전 구원예정은 결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불특정다수를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이 개인구원예정론을 완성함에 따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칼빈의 교리는 세뇌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죄를 지어도 자신을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두번째로, "성도의 견인교리"가 성도들의 구원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예수님을 믿은 자는 결코 구원에서 탈락되지 않으며 어떠한 시험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교리를 맹신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사람의 구원은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구원은 죽는 그날에 완성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죽는 그날에,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감으로(요14:16), 그가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고전9:27). 그날에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일지라도 그날 지워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계3:5). 다시 말해, 한 번 예수님을 믿어 중생한 자는 결코 죽는 그날까지 성령께서 떠나가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그날에 용서받지 못한 채 멸망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히10:26~29).

 

4.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경고하시는 2가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믿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남겨두신 2가지 경고장치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징계다. 하나님께서 죄를 짓는 자들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나, 십계명법을 그대로 남겨두시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징계에는 질병과 가난, 저주와 고통, 귀신들림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두아디라교회의 성도들이 거짓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 음행을 저지르게 되고 예수 믿으니까 괜찮고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 우상숭배행위를 자행하자, 주님은 그 교회를 엄히 책망하신다. 만약 그녀가 만약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고,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도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겠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녀의 자식들을 살해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하셨다(계2:20~23). 사실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죄를 짓는다고 해서 즉시즉시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을 징계들을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감당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지어놓고도 그것이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죄인 줄로 모르고 죄를 짓는 성도들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도 죄인들이 돌이켜 회개하여 구원받으라고 하시는 안타까움의 마지막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징계가 쏟아지면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된 중풍병자가 나은 후 그를 만나 주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이 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5:14)"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내가 너를 치료해준다마는 다시 네가 죄를 짓게 된다면 더 심한 것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치료불가능한 38년이나 된 중풍병자를 말씀 한 마디로 치료해주셨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병에서 낫게 되었으니 앞으로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더이상 죄짓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더 심한 것을 허락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고로, 신약의 징계는 회개해야 할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있거나 회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자를 위한 최후의 경고장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구원받은 자도 탈락할 수 있다는 여러가지의 경고의 말씀들이다. 다시 말해, 믿는 자라도 계속 죄짓고 회개하지 않을 시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영영 안 주시겠다고 예고하심으로 분명하게 그들이 회개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구원탈락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히브리서, 야보고서, 유다서와 공관복음서와 요한계시록 등에 집중되어 있는데, 예수께서도 무리들에게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에 던져져 살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마7:19), 주의 이름으로 귀신축사를 하고, 예언하고, 능력을 행했어도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7:22~23).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도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못보고도 떨어져나간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히6:4~6). 그런 자는 버림을 당하여 불살라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접했더라도 고의로 계속해서 죄를 범했을 때에는 그를 위하는 속죄제사가 없을 것이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남아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히10:26~27).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고(계2:5), 생명책에서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계3:5). 고로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할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누구은지 어떤 죄든지 다 용서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오늘날의 성도들은 이미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여 인류의 모든 저주와 질병과 고통까지도 다 담당해버린 이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해도 징계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다가 죽는 날에 성령께서 나를 떠나가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죽는 날에 버림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죄했을 때에 내게서 징계가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할 사람이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사생자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신약성경이 얼마나 경고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죄에 더럽혀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혹시 실수해서 넘어졌다고 하면 즉시즉시 일어나 회개를 통해 그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죽는 날에 그만 멸망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중생을 얻어 구원받은 자는 이 세상 끝날까지 성령은 떠나가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다(요14:16). 그러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는 날 버림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서, 날마다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앞으로 자유롭게 죄를 지으라고 허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 행하다가 큰 코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 05월 1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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