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은 후에 꼭 해야할 3가지 것들(눅17:16~19, 계2:21~23, 갈5:19~21)

by 갈렙 posted Feb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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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youtu.be/Qzt_SIEB2C8
날짜 2015-02-15
본문말씀 눅17:16~19, 계2:21~23, 갈5:19~21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감사하라, 회개하라, 성품을 바꾸어가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예배를 잘 드려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주변에 불신자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을 전도해야 하는 일에 치중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이것들 중에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반드시 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종국에 가서 얻게 될 구원과 관계된 것이라면 더욱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아마도 이러한 항목들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원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한 자에게는 결코 천국을 기업으로 물려주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해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인간이 구원받는 과정이다. 인간의 구원은 대체로 3단계로 이루어진다. 애굽에서의 탈출, 광야생활, 가나안땅의 정복과정.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우리가 구원을 얻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애굽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얻는 이신칭의의 과정과 똑같다는 것이. 그리고 둘째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으며 만나와 생수를 먹고 살아야 하는 광야생활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교회생활과 똑같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종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과정은 곧 성도가 자신의 육체를 벗고 천국에 입성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다 하더라도 안도의 한숨을 쉬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광야의 시험을 통과해야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광야로 나온 우리들은 무엇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는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 들어오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이 세상의 어떤 능력자라 할지라도 죄와 죽음과 사탄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하신 행하신 초자연적인 역사를 믿고 반응함으로서 그분이 입혀주는 의의 옷을 입게 된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이신칭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는 항상 우리를 구원의 여정으로 초청해주시고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배려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어떤 조건을 보고 구원의 여정으로 초청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놓으신 하나님께 항 감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눅17장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의 경우를 보라. 10명의 문둥병자가 다 나음을 받았지만 그중에 단 한 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예수께 와서 엎드리어 사례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이러한 비유를 들려주셨을까? 그것은 구원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히스기야왕의 경우를 보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역대기서의 기자는 히스기야가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32:24~26). 성도들이여, 우리가 애굽을 탈출한 것에 대한 감사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자. 마음으로, 찬양으로, 물질로, 헌신으로 감사하는 삶을 잊지 말자.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라. 당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과연 누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했던가? 그들은 한 사람도 감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광야생활이 좋지 않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감사치도 않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던 출애굽1세대들을 가나안땅에 불러들이지 아니했다.

  둘째,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광야로 나왔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광야로 나왔다 하더라도 불평의 요소가 하나도 없는 천국생활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광야에는 언제나 불편함과 위험의 요소가 기다리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에는 자기의 맘 내키는대로 텐트를 치지 못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자리를 옮겨 멈추어야 그곳에 장막을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때에 마실 물도 없어서 고생해야 했으며, 고기를 먹지 못해 힘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광야에서는 언제나 동서남북이 열려 있으니 적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 들어올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육신의 불편함과 사방에 있는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생활을 시작했다 해서 육신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며, 또 다른 종류의 사탄마귀와 귀신들의 공격이 중단된 것도 아님을 알라. 지금도 사탄은 호시탐탐 믿는 자들을 노리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사탄도 공격기술을 바꾸어 서 육신의 약함을 틈타 죄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전략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러므로 광야로 나온 성도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회개생활이다. 적의 모든 공격과 유혹을 다 이겨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언제라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다(요일1:9). 잘못한 일이 있는가?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라.

  셋째, 우리는 또한 우리의 성품을 바꾸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해서 그냥 자동적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의 나쁜 품성을 그대로 둔다면 사탄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를 계속해서 넘어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 해야 할 세번째의 일은 우리의 나쁜 품성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사실 사람에게는 2가지 성품이 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선한 성품이 있고 또 하나는 사탄의 성품이 있다. 사탄의 성품은 창조시에 인간에게 들어왔었을 수도 있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 내면 속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창조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창1:26~2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인간을 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는 창조주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가 하나님 곁에 있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물인 천사들이었다(시103:20~22, 욥38:7).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형상과 천사의 형상을 더한 것일 수도 있다(메튜헨리주석참조). 다시 말해 만약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만의 성품으로 지어졌다면 인간은 악한 성품을 물려받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피조된 성품으로서 천사의 성품은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천사들 중의 우두머리의 하나였던 루시엘의 경우를 보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나쁜 성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스스로 교만해졌고 강포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성품은 어떠한가? 특히 우리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구원으로 초청받은 인간은 어찌하든지 사탄의 성품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여정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품성을 죽음에 넘기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품성을 우리 가운데 채워나가는 것이 필요하. 사도바울은 말한다. 사탄의 성품에 따라 움직이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새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옷입으라고 말이다. 사실 성품은 타고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바꾸어나갈 수 있다. 선천적인 성품이지만 후천적으로 바꾸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약 먼저 믿은 우리가 사탄의 성품을 내보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꾸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사탄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좋지 않은 성품 때문에 갓 믿은 형제들이 교회를 떠나갈 수도 있다. 특히 불신가족을 구원하는 데에 있어서 성품의 변화는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도들이여, 그러니 이제는 우리 자신의 심보를 좀 바꾸어보자. 그래야 우리의 구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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