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93)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기도의 특징(창18:22~33)_2021-05-09(주일)

by 갈렙 posted May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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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6ySQ-GNyd_Q
날짜 2021-05-09
본문말씀 창세기 18:22~33(구약 2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중보기도,아브라함의중보기도,조카롯을위한기도,아브라함의중보기도의5가지특징,의인10명,소돔과고모라성의멸망원인,심판중에혜베푸신이유

창세기 18장에 보면, 인간 앞에 나타난 하나님께 사람이 드린 최초의 기도가 나온다. 그때에는 이 땅에 있는 아브라함이 사람으로 자기 앞에 오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드리는 중보기도였다. 그런데 이때 드린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응답이 곧바로 떨어지게 했다. 대체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길래 즉시 응답되는 기도가 될 수 있었을까? 오늘은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기도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1. 들어가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장래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그분이 아브라함의 장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꺼내신 것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해주신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한 어떤 뜻과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알아차린 아브라함은 즉시 자기 앞에 서계신 한 분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즉각즉각 응답을 얻아낸다. 대체 아브라함은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이렇게 즉석에서 응답받을 수 있었는가? 그의 중보기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기도를 해야 할 사람들인데 우리도 어떻게 하면 즉각즉각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2. 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아브라함에게 꺼내셨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음식을 공궤받으신 적은 창세기 18장에서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나타나시어 아브라함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드셨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내 사래가 있는지를 물어보고는 반드시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오게 될 텐데, 그때에는 그의 아내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떠나려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 천사와 함께 한 하나님을 배웅하러 나갔다. 그러자 길을 가다가 멈추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장래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를 불러내신 이유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에 대해 예고해주셨다. 그성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기에 가서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지금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했을까?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시는가?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은 금방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요, 거기에 있는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거기에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롯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의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떠났다. 그러자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만 서 계셨다. 

 

3. 오늘날 우리의 중보기도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때다 싶어 즉시 중보기도를 시작한다. 사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대놓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이러한 기회는 사람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늘에서 듣고 계신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람의 몸을 입고 와서 아브라함의 바로 눈 앞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때를 이때다 싶어 아브라함은 즉시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작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를 살펴보니, 응답받는 기도란 대체 어떤 기도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문제는 과연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람이 서 있을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대체 어떤 상태가 되었길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보면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하나의 비밀이 있다.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어떤 경우에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서 기도드릴 수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상달될 수 있게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지금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사실 2가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브라함이 비로소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창세기 12~16장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았던 74세부터 99세때까지 그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아갔다. 그래서 창세기 18장에 와서는 이제 아브라함도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러자 전능하신 분에게 간구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누가 과연 하나님 앞에 서서 응답되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어 못하실 것이 없다는 것을 믿는 순간에서부터다. 둘째, 아브라함이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를 하던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첫번째 실수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날못했는지를 잘 몰랐다. 그러니 두번째 실수로 이어졌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상태이니만큼 아내의 말을 들어 첩을 들여서 자식을 낳는 것을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말았다. 이어 13년이 지난 후에야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주지시키고 그에게 회개하라고 하였다. 이전에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뜻에서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날 즉시 모든 남자들을 다 데려다가 할례를 행했다. 그럼, 이 할례는 무슨 의미인가? 사도바울은 이것을 영적으로 "세례"라고 해석했다. 자신의 죄를 씻어내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날 아브라함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회개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중보기도에 대한 응답이 어떤 것은 잘 되지만 어떤 것은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보기도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회개하고 있는 자인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회개하지도 않은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지도 아니하신다. 이 두 가지 사항을 명심한다면 우리의 중보기도는 오늘부터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4. 아브라함 하나님께 드린 중보기도는 5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드린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드린 최초의 기도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다. 그런데 이 기도를 보면 아브라함의 기도가 왜 즉시 응답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이유를 정리하면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떻게 칭했는가? 하나는 "아도나이"라고 칭하였다(창18:30). 이는 그가 하나님을 모든 역사의 주인으로 고백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음사항이 더 중요한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세상(온 땅)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이다(창18:25).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온 세상의 재판장이자 심판자로 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기의 부족의 신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한 분 하나님을 모든 신들 위에 있는 신이요, 모든 역사를 주관하는 분으로서, 온 땅을 통치하는 신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당신을 온 땅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하나님은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드리는 기도였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알고 그것을 꺼내어 말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공의로운 분께서 의인과 악인을 같이 죽이려 하심은 부당한 것이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취급하심도 부당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온 땅을 심판하실 분이 공의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창18:23~25)"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관심을 갖지 아니할 수 없었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분이 재판을 불의하게 행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과 겸손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분의 모든 것은 공의로워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 롯의 구출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겸매우 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청구할 것은 청구하기는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며 부질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기도의 두번째 간구에서는 "보소서,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아도나이에게 아뢰나이다(창18:27)"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었고, "아도나이여,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노하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했던 것이다(창18:30,32). 그리고 "내가 감히 주께 아뢸 수 없는데도 아뢰오니 나의 청을 들어달라"고도 하였다(창18:31).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께서 한 번 훅 불어버리면 날아가서 없어질 먼지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끈질기게 매달리어 간구하는 모습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하나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한 번 기도로 끝내는 그러한 기도가 아니었다. 어찌하든지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또 구하고 또 구하는 그러한 기도였던 것이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그 성을 멸할 것인지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보시고는 그렇다고 한다면 그 성을 멸하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조금씩 조금씩 더 숫자를 줄이는 기도를 계속해 나간다. 어찌하든지 소돔성의 멸망을 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성 안에는 자신의 조카 롯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면 그 성을 파멸에서 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소돔성에는 롯의 식구가 최소한 8명 이상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돔 성 안에는 롯과 그의 아내, 결혼한 두 명이상의 딸들과 사위들, 그리고 결혼하지 아니한 두 명의 처녀딸들이 있었다(창19:12~14,16).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성이 멸망당하지 않기 위한 의인의 숫자를 의인 50명에서 45명으로, 40명에서 30명으로, 30명에서 20명에서 결국 10명까지 낮추는 기도를 계속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소돔성이 멸망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 의인의 숫자를 10명까지 줄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성 안에는 의인 10명이 없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대범한 사람이었는지를 직감하게 된다. 그는 매우 겸손했지만 또한 매우 대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자들이 큰 일을 한다. 

  다섯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형제와 이웃사랑의 마음이 빼곡히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자기나 자기가족을 위한 기도가 아닌,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즉 자신의 형제와 이웃을 살려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였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 자기를 위한 기도는 어찌 보면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남을 위한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가 이처럼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이타적인 삶을 살려고 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그는 자기가족을 위한 기도보다 자신의 조카 롯을 구출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먼저 드렸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서 드린 이러한 최초의 기도는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으며 남을 위한 중보기도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중보자로 오셔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중보자적인 입장에서 드린 아브라함의 기도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뻐받으셨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데 어떻게 드려야 할 지 잘 모르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한 분들에게 정말 추천할 일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사례를 한 번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도드릴 때에 과연 우리는 아떠한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정말 주님께서 바로 내 눈 앞에서 내 기도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드리는지 잘 모르겠다.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정말 바른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얼마나 신뢰하고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회개를 한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하고 있으며, 얼마나 끈질지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보다는 얼마나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피고 회개하면서 기도한다면 우리도 즉각즉각 응답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21년 05월 0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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