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금식,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58:3~12)_2021-09-26(주일)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Sep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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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3g2D9TxHU4
날짜 2021-09-26
본문말씀 이사야 58:3~12(구약 1039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금식,굶식,금식의정의,금식을해야할때,금식할때주의할사항,금식하는자가받는복,구약의금식,신약의금식

 

금식은 어떻게 할 때 굶식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는 것인가? 신약과 교회시대에도 꼭 금식을 해야 하는가? 금식은 어떤 경우에 행해야 하는 경건활동이며, 금식을 하게 된다면 그사람에게는 어떤 놀라운 결과가 주어지게 되는가? 그래서 오늘은 금식의 정의와 금식할 때 주의할 사항, 금식할 시기와 목적 그리고 금식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결과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2021-09-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온전한 금식,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58:3~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3g2D9TxHU4

 

1. 들어가며

  금식은 꼭 해야 하는가? 보통 사람들에게 금식은 잘 시도하지 않는 경건의 방법에 속한다. 그만큼 금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약에서 금식은 외식하는 자들을 대표하는 경건방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식은 그렇게 자주 찾는 경건의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금식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금식하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마4:2). 그리고 안나 선지자도 성전에서 과부가 되고 84세 된 후에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언급하고 있다(눅2:37). 그리고 안디옥 교회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고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그때에 금식하고 기도하여 보냈다고 나온다(행13:2). 그러므로 금식은 잘못된 경건행위이니만큼 무조건 금하고, 밥을 잘 먹고 힘을 내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살다보면 꼭 금식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에게 금식이란 대체 어떤 것이고, 금식할 때에 주의할 사항과 금식의 목적 및 그 놀라운 결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금식이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금식이란 무엇인가?

  금식이란 나 자신이 인생의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하루 세 끼 평생 먹고 있는 자신의 행위를 멈추고 겸허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자신을 낮추면서 오직 주님을 향하여서는 손을 드는 것이다. 늘상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식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금식은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멈추고 그것을 거스리는 것으로 자신의 영이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식할 때에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얼굴만을 간절히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금식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관철시키기 위해서나 혹은 하나님께 떼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밥을 굶어가면서 하나님께 데모하는 것이 금식인 것이 아니다. 

 

3. 금식할 때에 주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금식할 때에는 자신을 겸허히 낮추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식할 때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라고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사58:3~5). 

  첫째, 금식할 때에는 세상 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 그리고 세상에서 누리며 즐기던 행위들을 멈추어야 한다(사58:3). 그리고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금식하면서 세상일 할 것 다하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금식하는 것은 금식이 아닌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사58:3)"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면서 왜 주님이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알아주지 않는냐고 따졌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너희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혹시나 손해보지 않을까 하여 그날에는 더욱 종들을 혹사시키 않았느냐?" 그렇다. 세상적인 욕심을 다 챙겨가면서 금식하는 것은 금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때에는 되도록이면 핸드폰도 끄고 TV도 끄고 세상 것을 얻기 위한 욕심들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둘째, 금식할 때에는 되도록 말을 적게 해야 한다(사58:4). 생각나는 모든 말들을 다 하면서 금식하지는 말라.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그때에는 다 말하지 말라. 침묵하고 주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 누가 이러쿵저렁쿵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논쟁하려고 하지 말라. 그때에는 내 생각 자체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사58:4)" 그렇다. 금식하면서도 논쟁하고 있고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면 그는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

  셋째, 자기가 경건한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경건을 흉내내는 것으로써 금식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사58:5). 금식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금식을 할 때에 "나도 금식하고 있어요" 라고 나팔불기 위해 금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금식이 될 수 없다. 고로 형식적으로 흉내를 내고 있는 금식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사58:5)"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외식적인 행위들로서 금식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신약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살펴 보라. 거기에 보면, 세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겸손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 쳐다보지도 못한 해 다만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리는 달랐다. 외식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렇다. 세리는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하나님께 자랑하러 나온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은 저 세리와도 같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화요일과 목요일)에 꼭 금식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소득의 십일조도 꼬박꼬박 드린다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고 계셔서 보고하러 온 것인가? 그는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금식도 하고 의도 행하였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에 금식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마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4. 사람은 언제 금식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금식해야 하는가? 어느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5)" 그렇다. 누구나 언젠가는 금식할 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것이 마치 혼인 잔치날과 같은 것이니 그때에는 금식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찾아오게 되면, 제자들도 다 금식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러면 사람은 언제 금식하는 것이 좋은가? 성경과 실제의 삶을 통틀어 볼 때 금식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경우에 행하는 것이다. 

  첫째, 금식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고 풀어헤치고 나올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에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영적으로 강한 결박 상태에 놓여 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끊을 수 없을 때에 행하는 것이다. 그때에 자신의 육신의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것이 금식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의 유일한 해결자가 믿는 것이 금식이다. 그런 다음 그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는 최소 다음과 같은 4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귀신이 자신과 가문과 국가를 꽉 묵고 있어, 영적인 쇠사슬(속박)로부터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다. 특히 자신의 가문이 자기 부모 때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집안이었거나 혹은 조상 1~4대 안에 무당이 있을 때에는 더욱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귀신들이 자기 속에 어마어마하게 들어와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높은 귀신들도 들어와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이 러한 경우에는 금식하며 회개해야 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평생을 죽도록 수고했으나 물질은 들어오지 않고 늘 새어나가고 계속해서 허덕임만 있을 때에는 금식을 하는 것이 좋다. 가난의 영이 이미 들어와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음행에 짓눌려 음행의 생활을 그칠 수 없거나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에도 금식해야 한다. 죄들 중에 가장 무서운 죄요 끈질긴 죄가 음행죄이기 때문이다. 음행의 영은 쉽게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음행의 죄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귀신들이 장난치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기도원으로 들어가 작정하고 기도를 하라. 일주일 가지고 안 되면, 2~3주동안 금식하며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어느 순간이 되면 비로소 음행의 영들이 떠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넷째로, 위의 같은 경우는 아니더라도 어떤 욕망이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세상을 따라고 있을 때에도 금식할 필요가 있다. 마약중독, 알콜중독, 스포츠중독, 끝없는 거짓말과 수다 등도 금식해야 할 죄목에 해당한다. 

  둘째,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에도 금식하는 것이 좋다.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앞두고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신 경우다(마4:2). 그렇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대의 기도는 역시 금식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지 아니하신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금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경우 에스더 왕비가 자신의 민족을 하만의 흉계로부터 건져내기 위해서 규례를 어기고 와 앞에 나아가려 할 때에, 에스더는 자신을 위해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에4:16). 한 민족의 생사가 걸린 중차대한 일이 자기 눈 앞에 놓여 있었으니 말이다. 

  셋째, 자신과 가문과 민족의 범한 큰 죄를 회개할 때에도 금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과 가문과 민족이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든지 혹은 너무나 큰 죄를 하나님 앞에 지었을 때에는 금식하며 회개해야 한다. 특히 개인의 죄보다도 민족이 지은 죄들, 곧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큰 죄들을 회개할 때에는 반드시 금식하며 회개하는 것이 매우 좋다. 대표적인 예로서는 느헤미야와 다니엘의 기도다. 포로귀환자들이 돌아가서 제2의 성전을 세웠지만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민족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한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금식을 하게 된다(느1:3~5). 그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이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했으며 자기의 아버지의 가문이 범죄한 죄를 같이 회개했다. 그리고 다니엘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가운데 언제 귀환이 있을 것인지를 놓고 기도하다가 그때가 아주 가까이 옴을 직감하고는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슨 채 기도하였다. 그도 역시 자기 민족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규례를 얻기고 주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알았기 때문이다(단9:3~6,11,16). 그리고 황폐한 그 성소에 다시 빛을 비추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5. 금식하는 목적 8가지는 무엇인가?

  왜 성도는 금식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이 금식하는 목적 8가지를 이렇게 말씀해주셨다(사58:6~7). 첫째, 흉악(혹은 악인)의 결박을 풀어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둘째, 멍에의 묶음의 줄들을 끌러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셋째, 압제당하는(학대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넷째, 모든 멍에의 막대를 끊어버리기(깨뜨리기) 위함 것이라고 하셨다. 다섯째, 배고픈 자에게 자기의 빵을 나눠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여섯째, 집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일곱째, 벗은 자를 덮어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여덟째, 자기의 살붙이(골육이나 친족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것을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금식이 아니라면 굳이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금식하는 것도 결대 해서는 안 될 일들이다. 

 

6. 금식하게 되면 얻게 되는 놀라운 열매 6~7가지는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금식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금식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결과를 6~7가지를 말씀해주셨다(사58:8~12). 

  첫째, 자기 속에 있는 빛이 새벽처럼 터져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사58:8a). 이 자기 속에 갇혀 있던 빛이 결박이 풀려버리니까 터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고로 이때 결박의 쇠사슬이 풀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치유가 급속히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다(사58:8b). 금식을 온전히 하면 병든 자의 회복이 매우 빨라진다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자기와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하셨다(사58:8c). 이는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그때부터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고 계산된다는 뜻이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이 그 사람을 호위할 것이라고 하셨다(사58:8d).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의 뒤를 늘 호위하면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뜻이다. 다섯째, 금식하면서 기도한 것을 꼭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겠다고 하셨다(사58:9). 이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그 사람을 주님께서도 외면하지 아니 하시고 주께서 그 사람과 함께하고 있음과 그 사람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주신다는 뜻이다. 여섯째, 영육이 문을 댄 동산처럼 생명이 넘칠 것이라고 하셨다(사58:11). 늘 고갈되고 힘들었던 영혼이 만족함을 입게 될 것이며, 자기의 뼈가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오래 황폐된 곳과 역대 기초가 무너진 곳을 쌓게 된다고 하셨다(사58:12).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당신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사람, 당신은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에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자는 무엇이든지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되는 것이다. 

 

7. 나오며

  금식은 습관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물론 사명자는 금식을 자주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금식을 습관처럼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 그것이 자신의 외적의 의가 되어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그러면 한 마디로 외식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식은 꼭 필요할 때에 해야 하는 것이 좋다. 자기 힘으로서는 끊어낼 수 없는 어떤 영적인 결박으로부터 자신이 해방받기를 원할 때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 금식하는 것이 좋으며, 너무나 큰 죄를 개인이나 가문이나 민족이 지었을 때에도 금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것은 금식이라는 것은 악의 영들의 견고한 진에 폭탄을 터뜨려 그 결박을 풀어헤치는 놀라운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금식이 자기 자신를 모두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얼굴만을 구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금식하고 나서 음식을 다시 먹을 때에 하루를 금식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보양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보양식은 한 두끼 정도는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찹쌀 죽을 먹는 것이다. 또한 금식을 작정한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무리하게 날짜를 잡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 금식부터 시작해 보고, 점차 3일 금식, 7일 금식, 21일 금식, 40일 금식 등으로 늘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온전한 시간을 채우는 금식을 하지 못할 바에는 처음부터 날짜를 짧게 잡고 시작하라. 다 감당할 수도 없는 날짜의 금식을 작정했다가 그만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쓸모없는 굶식만 될 뿐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비밀무기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09월 26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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