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강해(06) 왜 보아스는 손해 날 것을 스스로 선택했는가?(룻4:1~12)_2021-11-14(주일)

by 동탄명성교회 posted Nov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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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N16RviI1Lw
날짜 2021-11-14
본문말씀 룻기 4:1~12(구약 40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현숙한여인,보아스의결단,아무개,기업무를자일순위,고엘,헤쎄드(인자,은혜,선대,안내),형사취수제도,기업

1. 들어가며

   룻기서에 보면 설명이 잘 안되는 부분들이 더러 있다. 그중에 룻기서 4장에 나오는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서 제1순위자가 처음에는 나오미의 기업을 물러준다고 말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에 처음에는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지 않겠다고 바꾼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하면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 사람의 기업을 손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기 때문에 나오미의 밭을 사지 않겠다고 한 것은 보아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닐 것이다. 제1순위자가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일이었다면 역시 보아스에게도 아마 똑같이 손해가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보아스는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겠다고 나선 것인가?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보아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가 훗날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는지까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고엘제도와 형사취수제도(계대결혼제도,수혼제도)는 의무였는가?

  룻기서에서 기업 무를 자였던 보아스와 룻의 결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고엘'제도와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형사취수제도(=계대결혼제도, 수혼제도)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룻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엘제도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고엘제도란 형제가 가난해져서 기업을 팔았을 때, 그에게 가까운 형제가 그 판 것을 도로 사서 돌려주는 제도를 가리킨다(레25:25). 이때 '기업을 사서 도로 주는 자'를 '고엘(구속자=기업 무를 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엘의 우선 순위는 그의 형제다. 그리고 만약 기업을 물러줄 형제가 없다면 그의 삼촌이나 그의 삼촌의 아들 순이다(레25:48~49). 그런데 이때 조건이 하나 있다. 기업 무를 자가 무를 힘(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사 줄 능력이 없으면 기업을 물러주고 싶어도 그렇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형사취수제도'를 알아 보자. 형사취수제도라는 말은 형이 죽었을 때에 그의 동생이 과부가 된 형수를 취하여 자식을 낳아 주는 제도를 가리킨다(신25:5~10, 마22:24). 이때 동생은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서 형의 아들이 되게 하여 기업을 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부터는 자신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법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여자가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녀없이 홀로 불쌍하게 사는 미망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압 여인이었으나 유다 지파 베들레헴 사람으로서 엘리멜렉의 장자 말론의 아내가 되었으나 과부가 되었던 룻의 경우는 고엘제도와 수혼제도도 같이 필요한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3. 나오미의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왜 기업을 산다고 했다가 사지 않겠다고 번복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나오미가 전남편인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들인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팔려고 내놓았을 때, 왜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로서 제1순위자였던 아무개는 처음에는 그 기업을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가 왜 포기하고 말았는가? 그는 포기할 때에 자기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일이기 때문에 안 하겠다고 말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이 손해를 보는 고엘이 되지 않겠다고 한 것인가?

  먼저, 그가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했던 이유부터 알아보자. 그는 나오미의 죽은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족이 처음에는 밭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오미는 나이가 많은 과부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재혼을 해도 결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룻1:11~13). 그러므로 자기가 나오미가 내어 놓은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사서 그녀에게 준다고 할지라도 어차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그녀의 모든 기업은 당연히 자신의 차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얼른 그 기업을 물러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보아스가 말했다. 나오미로부터 기업을 살 때에는 룻도 같이 사서 룻과 결혼하고 그 낳은 자식을 말론의 아들로 입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나오미의 기업의 제1순위자는 금방 마음이 변해 버렸다. 왜냐하면 나오미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룻과 결혼해야 하며, 그녀가 자기의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자기의 자식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사 준 기업도 말론의 아들의 몫이 되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1순위자는 금방 그 밭을 사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가 버린 것이었다. 

 

4.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나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아스는 왜 나오미가 내놓은 기업을 사겠다고 한 것인가?

  그렇다면, 나오미의 기업의 제1순위자 다음 순번이었던 보아스는 왜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기업을 되사주기로 결정하고 동시에 룻과 결혼할 것도 결정한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는 비록 자신은 나이가 많았지만 현숙한 아내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고엘이 될 수 있는 친족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로는 제1순위자인 아무개와 보아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의 밭을 살 수 있고 룻을 아내로 취할 수 있는 고엘으로서 자격을 갖춘 자는 두 사람 뿐이었다. 왜냐하면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아직 결혼하지 못한 미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혼해서 아내가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과부를 취하여 두 번째 부인으로 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과 결혼할 수 있는 총각이어야 하고, 기업을 사 줄 만한 부자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1순위자는 자신은 고엘이 되지 않겠다고 도망치듯 가 버렸다. 그 이유는 룻을 자신의 아내로 취하고 싶은 생각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땅만 차지할 욕심이 있었을 뿐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스는 달랐다. 자기의 밭에 보리 이삭을 주우러 왔던 룻과 이미 안면이 있었고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어 그녀에게 대해 아주 좋은 감정과 평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자신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달라고 청혼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눈이 볼 때, 그녀에 대한 그의 평가는 한마디로 '현숙한 여인'이었다(룻3:11). 그럼, 그녀가 현숙한 여인이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솔로몬이 썼던 잠언 31장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적어도 3가지 조건을 가진 자여야 한다. 첫째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잠31:13~16). 둘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야 한다(잠31:29~30). 셋째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라야 한다(잠31:31). 그런데 룻은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업에 손해를 보더라도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어 했던 것이다. 

  둘째, 그에게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곧 히브리어로 '헤쎄드'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율법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자와 버려진 자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보아스에게는 그러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신24:19~21). 그러므로 이삭을 주우러 나온 그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환들에게 곡식을 줍고 있는 룻을 위해 이삭을 조금 떨어뜨려 놓으라고도 했었고, 룻에게는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했으며, 식사할 때에는 볶은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룻2장).

신24:19-21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5. 나오며

  그렇다. 룻은 자신의 재산에 손해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룻이 현숙한 여인이었기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픈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누구의 아들이 되든 아내를 얻기 위한 마음에 기꺼이 댓가를 지불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심성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불쌍히 여기는 헤쎄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기꺼이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의 기업을 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부였던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인간의 기업 무를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정확히 예표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남편을 잃어버려 과부가 되어 있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기꺼이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분명히 손해가 날 것이 분명한 일이긴 하였지만 그분이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버려진 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내면에서는 가난하고 잃어버린 것이 많아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 대하여 헤쎄드의 마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영원히 버림받은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헤쎄드의 마음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평생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일평생 고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드리워진 과부의 운명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2021년 11월 14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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