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복음(20) 천국에 관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마13:31~33)_2022-03-13(주일)

by 갈렙 posted Mar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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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CCM50V1AP0 [혹은 https://tv.naver.com/v/25680430 ]
날짜 2022-03-13
본문말씀 마태복음 13:31~33(신약 2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천국비유,비유와알레고리,은유와풍유,겨자씨비유,누룩비유

천국에 관한 7가지 비유들 가운데, 딱 2가지는 오늘날까지 두 가지 성경해석이 존재한다. 그러한 비유에는 '겨자씨 비유'이며, '누룩'의 비유가 있다. 이 둘은 천국와 확장성과 확장되어가는 능력을 말씀하신 것인데, 어떤 분들은 이것이 가라지를 포함하는 부정적인 천국의 확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교회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과연 어떤 해석이 맞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은 비유에 관하여 어떤 성경해석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 비유에 대한 주님의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천국비유들 가운데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비유들이 더러 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름하여,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다. 이 두 비유는사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비유를 듣는 대상을 따라 똑같은 주제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겨자씨 비유를 들려주신 후에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같은 종류의 다른 비유를 말씀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른('알로스')'이라는 표현은 "같은 종류의 다른"이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 두 비유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다른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비유들이 오늘날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되고 있다. 들어보면 어느 한 가지만 맞고 어느 한 가지는 틀리다고 말하기도 사실 곤란하다.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만 옳은 해석이라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것이 이 비유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이 비유들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중에 무엇이 더 바른 해석인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비유해석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면어 이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풀어가고자 한다. 이 말씀에 놀라은 지혜의 영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이 놀라운 비유에 따른 성령의 역사하심이 늘 함께 하기를 빈다.

 

2.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어떤 비유인가?

  겨자 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어떤 비유인가? 이 두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이다. 이중에서 '겨자씨 비유'는 아주 작은 것인데 이것이 큰 것으로 성장한다는 비유이다. 그리고 '누룩의 비유'는 처음에는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지만 나중이 되면 그것이 골고루 퍼져나가 모든 것을 다 점령한다는 비유다. 그렇다면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자. 

마13:31~33 [같은 종류의] 다른 비유를 그분이 그들에게 내어놓으셨다. 말씀하고 있기를, 하늘들의 왕국(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남성)이 자기의 밭 안에 그것을 취한 후에 뿌렸던, 겨자의 씨앗 하나와 같다. 32 이는 모든 씨들보다 가장 작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라났을 때에는 채소들보다 더 커진다. 그래서 나무가 된다. 그 결과 하늘의 새들이 올 정도이며 그리고 그것(나무)의 가지들 안에 [계속] 둥지를 틀 정도이다. 33 [같은 종류의] 다른 비유로 그분이 그들에게 발언하셨다. 하늘들의 왕국(천국)은 마치 어떤 여자가 그것을 취한 후에 가루의 세 말들(사톤들) 안으로 숨겨 두었던 누룩과 같다. 그것이 전부 발효되었던(부풀어지게 되었던) 때까지. 

 

3. 이 두 비유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무엇인가?

  이 두 비유에 대해서는 상반된 해석이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하나는 둘 다 천국의 확장성과 천국이 퍼저나가는 능력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해석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비유는 천국에 대한 잘못된 확장이라는 것이다. 겨자씨는 천국에 대한 잘못된 외연 확장의 비유이고, 누룩은 천국에 대한 잘못된 내면 확장의 비유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겨자는 일년생 풀인데 그것이 절대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새들이 와서 그 나무의 가지들에게 깃들인다고 하는데,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에서 '새들'은 '악한 자' 곧 사탄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룩도 마찬가지로 누룩의 대부분은 다 부정적인 것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의 제물에 누룩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의 예수께서도 누룩을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나 '사두개인들의 누룩'으로 말씀하시면, 제자들이 그들의 잘못된 교훈들(가르침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해석이 타당한 해석이 될 수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 비유하셨을 때에는 과연 이러한 두 가지를 다 포함한 것으로 비유하시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 비유가 2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는 비유였다면 틀림없이 설명을 해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으셨다. 그냥 들으면 그냥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비유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주님은 과연 어떤 의도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인가?

 

4. 비유들을 해석하기 위한 2가지 성경해석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왜냐하면 천국을 사모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비유는 꿀송이와 같은 말씀이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을 듣지 않으려고 귀까지 틀어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참으로 심오한 것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는 딱 2가지 종류로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의 하나는 그냥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이고, 또 하나는 알레고리 비유 곧 풍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비유인가 아니면 풍유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서 7가지 천국의 비유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2가지는 알레고리 비유(풍유)말씀이다. 그리고 나머지 5가지는 그저 단순한 비유다. 그러면 비유란 무엇을 가리키고, 풍유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리고 이 둘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 비유들 중에서 그냥 단순한 '비유'는 무엇이고, '풍유'는 무엇인가? 먼저, 비유('파라볼레')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비유란 원래 어떤 것을 다른 것에 곁에 갖다 놓음으로써 비교하는 방법인데, 이는 심오한 사상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실례로 쉽고 그리고 명쾌하게 설명하기 위한 수사학적인 기법을 가리킨다. 그런데 알레고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비유이기는 비유이기지만 한 번 더 꽈버린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비유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옆에 있는 다른 일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설명한다면, 알레고리 비유(풍유)는 그 실체의 그림자를 다른 일상적인 소재를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즉 알레고리 비유는 어떤 것을 빗대어서 실체를 설명하는 측면에서는 비유와 같지만, 그것의 실체가 아닌 그림자를 다른 대상을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화자(비유를 들려주는 자)가 말해주지 않는한 절대 알 수 없는 비유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놓았다고 치자. 그리고 그가 묻는다. "이 그림은 과연 무엇을 보고 그린 그림일까요" 그랬을 때,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어떤 이는 그냥 '동그라미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원뿔'이라고 대답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원기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은 '태양'이다, 그것은 '축구공'이다, 그것은 '둥그런 접시'다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질문을 던진 자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풍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알레고리 비유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만약 말하는 자의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더욱어 그 해석은 많아질 수밖에 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알레고리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해설을 해 주셨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7가지 비유들 가운데 해설이 있는 비유가 바로 풍유였떤 것이다. 그리고 해설이 없는 비유는 그냥 단순한 비유였던 것이다. 고로. 제자들을 따로 불러 비유를 설명해주셨던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리고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가 바로 풍유의 비유였던 것이다. 

 

5. 왜 비유풀이와 짝풀이로만 성경을 해석하는 신천O의 해석법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이 비유와 알레고리 비유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호리는 이단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천O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모든 성경말씀을 다 비유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비유풀이와 짝풀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신천O는 그들의 교주인 이만O의 의도에 따라 모든 성경말씀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뭐를 말해도 그 끝은 이만O를 향하게 된다. 어떤 성경을 해석하든지 신천O의 교주인 이만O를 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까지 신천O 교주 이만O를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그런데 찬찬히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경해석법을 보라. 그것이 바로 알레고리 성경해석 방법인 것이다. 곧 그들의 말로 '짝풀이'식 성경해석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말씀은 이긴 자요 보혜사로 온 이요 재림주가 이만O라고 하는 것으로 향한다. 그러므로 이만O가 자신을 재림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다들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것을 그렇게 믿도록 빠지게 하기기 위해 그들은 모든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푼다. 사실 알레고리 성경해석 방법은 기독교 초기 교부였던 오리겐(A.D.185~254)이 사용하던 방법이였다. 하지만 결국 이 방법은 이단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교회는 이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단 하나 허용되는 성경해석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다. 이것은 구약의 성경말씀은 신약의 예수님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알레고리 성경해석법의 위험성을 없애고,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기에, 사도 바울도 이 해석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전10장을 읽어보라). 사실 예수께서도 구약성경이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요5:39), 구약성경인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글이 다 자기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4). 그러므로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가능한 방법이지만, 그것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각각의 낱말에 교주가 원하는 말씀으로 짝을 맞추어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성경해석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결국 이것을 말하는 화자의 의도대로 성경이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거짓의 영이 들어간 이단 교주가 이 방법을 사용하면 많은 선량한 성도들이 미혹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해석 방법은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신천O가 얼마나 교묘하게 이 방법으로 기존의 선량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맨 아래의 부록의 메시지를 참고하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6. 주님은 원래 어떤 의도로 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인가?

  그러하면, 예수께서는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과연 그냥 단순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인가? 아니면 예수께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풍유로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 이상에서 우리가 알게 된 성경해석 방법에 따르면 이 비유들은 단순한 비유에 해당한다. 이것은 풍유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비유인 것이다. 만약 이 비유들이 풍유였다면 주님께서는 이 비유들도 제자들에게 따로 설명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비유들은 설명이 하나도 없다. 고로 고로 이 비유는 단순한 비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그냥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비유인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꽈서 들어야 비로소 들리는 그러한 말씀이 아닌 것이다. 고로 이 비유는 천국의 확장성과 확장되어가는 능력을 말씀하신 것이지, 이것은 천국의 부정적인 확장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천국의 확장성과 확장되어가는 능력을 말씀하시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오늘 '비유'에 관한 해석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천국을 말씀하실 때에는 주로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유들 중에는 알레고리 비유들이 가끔씩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 그러한 비유들은 다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레고리 천국 비유 말씀을 예수께서 들려주신 설명 이외의 다른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성경에는 짝이 있다고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성경말씀을 가져다가 끼워맞춰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단 교주의 교묘한 사상을 주입 받아서 결국 이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해석할 때에는 예수께서 들려주신 해석 이외에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그렇게 하려는 단체가 있다면 그곳은 십중팔구는 이단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두 가지 천국의 비유 말씀 곧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결코 그림자를 비유로 언급한 알레고리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이것은 그냥 이해되는 바로 그것을 붙잡으면 된다. 이 비유들은 천국의 확장성과 점령 능력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천국말씀이 처음에 사람들에게 잘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천국 말씀에는 확장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어느 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는 다이나마이트처럼 그들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게 된 자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나 좋은 진주 장사의 비유이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게 될 것이다. 천국은 그 정도로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전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는 자는 깨닫고 점차로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혹시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신도 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2022년 03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부록] 신천O에서는 "선한 사마리인의 비유(눅10:25~37)"를 어떻게 알레고리로 풀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사용하여 알레고리적으로 풀어보겠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죄인인 인간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맞아서 거반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려간다"는 말은 범죄나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품을, "여리고"는 세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 죽어가는 사람 곧 죽지는 않았으나 가만히 두면 곧 죽을 사람은 "상한 갈대"이자 "꺼져가는 등불"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사람을 본 "제사장"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요, "레위인"은 종교지도자들을 돕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둘은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여행하는 중에 있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겼다. 여기서 "여행 중에 있는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사마리인처럼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배척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셔서 다시 하늘로 가시는 여행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의 상처에 부었던 "기름과 포도주"는 성령(생명)과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를 돌보아주기 위해 데려간 "주막"은 교회요, "주막주인"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 달라고 준 "두 데나리온"은 예수께서 2천년 뒤에 다시 재림하시겠다는 뜻이요, 부비가 더 들면 그때 갚아준다고 한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죄인을 양육하고 봉사하고 섬긴 것에 대하여 그날에 보상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단순한 비유 말씀인 것이지 알레고리적인 비유는 아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모형론적으로 푼다면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비유를 들려주신 주님의 원뜻은 누가 진정한 이웃인지 물어보는 율법사에게 이웃이 진정 누군지를 가르쳐주는 비유인 것이다. 즉 이 본문은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 자가 진정한 이웃이다. 너도 이와같이 행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신천지에서는 어떻게 알레고리 방식으로 풀고 있는가? 이런 식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오늘날의 기존 교회 성도들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내려간다"는 뜻은 기존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신앙생활은 계속해서 내려가는 신앙생활일 뿐이다. 그러면 강도와 같은 사탄마귀를 만날 수밖에 없다.또한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은기존교회에서는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도 기존교회의 목자들인 "제사장들"이나 그 목자를 돕는 전도사님들인 "레위인"은 본 체 만 체 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마리아인"은 지금은 비록기존교회로부터 배척을 받으며,이단삼단 하면서 사이비 이단 교주라고 비난하는 신천지의 약속된 목자(이만희)를 가리킨다. 그가 와서 비로소 강도 만난 자를치료해주기 시작한다. 그때 사용한 것이 바로 "기름과 포도주"다. 그런데 기름과 포도주는 잔치할 때에 고기를 잡고(눅15장의 둘째 아들의 비유)포도주(요2장의 가나혼인잔치)를 즐기는 것이니, 신천지에 와서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날마다 천국잔치가 열리는 것과 같다. 또한 그 잔치가 열리는 장소로서 "주막"은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을 가리키고, "주막주인"은 신천지 각 지파의 지파장과 사명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 데나리온"은 초림의 예수께서 떠나가셨다가 다시 오실 이천년의 시간이 다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때 주막주인에게 사마리아인이 보상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예수께 영으로 오셔서 이만희의 육체와 합일되고, 이만희가 인치는 자로서 신천지 성도들을 인치면 그들은 제사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는 세상의 열방사람들이 재물을 싸들고 와서 신천지 성도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하심을 들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완전한 영적인 해석이다.
  그러면 이 해석을 듣는 사람들은 이렇게 심오하고 깊이 있는 영적인 해석이 어디 있느냐면서 신천지만이 천국잔치를 열어 알려주는 유일한 단체요 거기에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 푸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이단교주가 자신의 사상을 주입하고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푼다면 그것을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온 비유라도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해석해주지 않는 비유는 알레고리적으로 풀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단이 속임수로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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