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강해(14) 이사야에 나타난 선구자와 메시야의 출현(사40-1~11)_2022-07-17(주일)

by 갈렙 posted Jul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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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8rc90dfpiBE
날짜 2022-07-17
본문말씀 이사야 40:1~11(구약 101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이사야강해, 광야의 외치는 소리, 세례요한,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 주의 길, 예수님의 오실 길, 예수께서 여호와하나님이시다

2022-07-1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온라인예배

제목: 이사야강해(14) 이사야에 나타난 선구자와 메시야의 출현(사40-1~11)_2022-07-17(주일)

https://youtu.be/8rc90dfpiBE

 

1. 들어가며

  이사야를 대할 때마다 놀랍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첫째는 그 많은 분량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 때문에 그렇고, 둘째는 수 백 수천년을 꿰뚫어보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 때문에도 그렇다. 성경 66권중에 그 어떤 성경책에서 이보다도 강력한 하나님의 자기논증은 없다. 특별히 메시야를 위한 선구자 및 메시야의 출현에 관한 예언 속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층격적인 예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바벨론 대제국의 멸망과 그 뒤를 이을 새로운 바사제국과 고레스 왕에 대해 미리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저 놀랍고 또 놀랍다고 밖에 달리 표현하는 길이 없다. 그렇다. 오늘은 메시야의 출현에 앞선 선구자의 외침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게 될 메시야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

  이사야는 남유다제국의 10대왕인 웃시야와 11대왕 요담, 12대왕 아하스, 13대왕 히스기야의 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B.C.720~680년에 걸쳐서 곧 불어닥칠 남유다의 멸망과 회복에 대해서 긴박하면서도 강하게 예언한 궁중선지자다. 놀라게도 그의 예언은 그때로부터 약 100~150년 뒤에 있을 남유다의 멸망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 다음에 있을 남유다의 회복에 대해서 말하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적나나하게 예언하고 있으며, 그 뒤로 약 700년 뒤에 있을 메시야의 출현(초림)과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것까지를 마치 현장에서 보고 말하는 것같이 예언하고 있다. 그가 이런 것들을 다 예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단지 그가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가능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는 완전히 하나님께서 붙들린 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그것을 단지 있는 그대로 선포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이사야가 예언들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고 우기는 자가 있다. 도무지 미래에 일어날 예언을 지금 예언하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의 예언 중에서 40장부터 66장까지는 제2이사야 내지는 제3이사야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후대에 어떤 사람들이 짜집기한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런데 신약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도 이러한 예언들을 인용하시는데, 어찌 이사야의 예언을 후대사람이 추가로 짜집기 예언서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 하나님의 변증을 들어보라.

사46:9-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3. 이사야 40장에 나타난 메시야의 선구자는 누구이며, 그가 소개하는 메시야는 진정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실까?

  그렇다. 하나님은 미래의 일도 어젯밤의 일처럼 말씀하실 수가 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분이 계획하신 것은 다 시행될 것이다. 그분은 전지하시며 전능하신 만물의 창조주요 섭리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사야 40장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첫째,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남유다가 멸망을 받고 고역을 치르겠지만 그 고역이 끝나는 날에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줄 것이다(사40:1~2). 그랬다. 남유다는 자신의 범죄와 죄악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것은 군인이 자신의 복무연한을 채우는 것과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값이 지불되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유다는 바벨론제국에 끌려가서 70년의 복무기간을 다 채웠다(렘29:10, 단9:2). 그리고 나서야 그들은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 자신의 죄값을 치르지 않았는데 죄가 청산될 수는 없다. 죄는 반드시 그 벌을 받아야 없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도 우리가 지은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치름으로 용서된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둘째, 메시야의 출현은 단지 그분만의 오심이 아니라 온 육체가 메시야의 출현을 알고 믿고 영접해야 할 일이기에 먼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선구자로 보내주실 것이다(사40:3~5). 하나님은 항상 일하시기전에 먼저 예고하시는 분이시다(암3:7). 그리고 우리더러 준비케 하신다. 그런데 하물며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시는데 갑작스럽게 그것도 몇 사람만 알게금 보내주시겠는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인 세례요한을 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셨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는 세례요한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무리들도 그랬고, 군병들도, 세리들도 그렇게 했다. 심지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마저도 세례요한 앞으로 나아가 세례를 받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모든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지목하여 "이가 곧 그 메시야"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골방에 모여 몇 사람만 아는 그러한 메시야는 없으며, 그러한 재림예수도 없다. 속지 말라. 다 가짜다. 초림의 예수도 공개적으로 오셨듯이, 재림의 예수님도 하늘에서 공개적으로 오실 것이다.

  셋째, 그 선구자는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인데, 모든 사람들을 회개시켜 왕이 오심을 맞이하게 할 것이다(사40:3~5). 그래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나타나기 전에 유대광야에서 세례요한이 먼저 출현하였다. 그리고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다(마3:3, 막1:2~4, 눅3:3~6). 그런데 그의 외침은 무엇이었는가? 오직 한 가지였다.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마3:2). 그것이 바로 낮은 골짜기를 메꾸어 높이고, 높은 산과 언덕은 깎아내어 낮게 하는 것이며, 굽은 길을 곧게 펴고, 거친 길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그 길을 따라서 메시야가 오실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아직도 낮은 자존감이 있는가? 아니다. 이제는 끌어올리라. 당신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늘의 왕의 아들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교만한 자가 있는가? 자기를 낮추어 겸손해져야 한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에 비하면 우리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리고 삐뚫어지게 보는 우리의 눈도 교정하라. 그리고 거친 생각도 내려놓으라. 그분 앞에 폼잡으려하지 말라. 그분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오시는 메시야는 단지 뛰어난 능력자 정도가 아니라 그분은 곧 여호와이시요 하나님 자신일 것이다(사40:3,9). 그랬다. 초림하셨던 메시야를 수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선지자 내지는 선생님 정도로 알고 있는 자가 많았고 좀 더 나은 자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정도로만 알았다(마16:16). 하지만 사40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선구자가 천거할 메시야는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사야의 이 표현에 해석을 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읽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그분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실 분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그분은 아들로 태어나실 분이지만 아버지인 것임을 믿으라(사9:6, 요14:6~11).

  다섯째,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산에 높이 올라가 메시야가 오심을 미리 내다보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너희를 구원하러 오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사40:9). 그분은 소개하는 자는 그분이 누군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두려워 떨지 말고 담대히 외쳐야 한다. 이렇게  말이다. "너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보라!". 그런데 요즘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려고 하는지 모른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기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보라. 거기서 마리아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자기는 경배받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경배하는 피조물인데도 이 세상에 어리석은 자들이 그녀를 세미라미스를 숭배하듯 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마리아는 메시야를 낳도록 쓰임받은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눅1:38). 오직 영광과 찬송과 흠숭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님 한 분 뿐이시다.

  여섯째, 그 어떠한 세상의 제국이나 화려한 성읍이라도 그들의 영화는 풀의 꽃과 같으며, 그래서 금방 시들어버리고 마는 허무한 것이요 덧없는 것이다(사40:6~8). 그러므로 인간이 진짜 붙들어야 할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며, 반드시 성취되고야 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사40:8).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하고 있을 당시는 앗수르가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앗수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 바벨론제국과 바사제국,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제국들은 고대근동과 유럽을 제패한 실로 어마어마한 제국들이었다. 그런데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대제국들의 부귀 영화도 다 한 순간에 끝나고 말았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탐하려 하지 말라. 다윗과 솔로몬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이라도 한 순간에 끝장나고 말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와 높은 직책과 재물들은 다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말씀만을 붙들라. 그것만이 영원히 있을 것이니까.

  일곱째, 메시야로 오실 분은 왕중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으로써 강한 권세로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한 목자처럼 자애스러운 분이실 것이다(사40:10~11). 메시야로 오실 분은 단순한 왕이 아니시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철장으로서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슥14:9, 계17:14,19:16). 그분이 오시면 우리가 행한 대로 보상해주실 것이며, 우리의 억울함도 풀어주실 것이다. 그분은 절대권능을 가진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또한 아버지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린양을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기도 하다. 그분은 어린양을 팔로 안으시고 축복하시며, 젖먹이는 어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렇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장차 재림주로 오실 때에는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자 심판주로 오실 것이지만, 그분은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선한 목자로 항상 그곳에 계시는 분이시다(요10:11~15). 그분은 삯군이 아니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던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에게 존경을 표하라.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라(요10:27). 그러면 그곳에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영생을 얻으라(요10:28).

 

4. 나오며

  그렇다. 메시야를 소개하는 선구자가 있어야 했다.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출현은 골방이나 골목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단지 선지자나 선생님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예언한 메시야는 여호와였고 하나님 자신이었다. 또한 그분은 온 우주만물의 통치자이시며 선한 목자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자만이 이 세상의 바다를 건너서 천국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사야 40장을 통해 메시야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기워진 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투를 빈다.

 

2022년 07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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