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진목사의 창세기강해시리즈(1-26강) 한꺼번에 보기

by 관리자 posted Dec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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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
본문말씀 창1-50장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창세기강해
  
▒ 본문말씀 ▒
:: 창1:1-2(구약1면) ::

창세기강해(1) 하나님의 창조와 회복
오늘 전할 내용은 창세기 1장 1절의 내용입니다.
창1장1절은 첫째, 창조의 시점과 둘째, 창조의 주체와 셋째, 창조의 대상과 넷째, 창조의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원인이자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시는 때가 바로 시간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도와 목적에 따라 창조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그 창조사역이 끝날 시점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 창조사역의 목적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 즉 그것들 중 식물에게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창세기 강해 첫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지 깊이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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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4.15(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2) 하나님의 창조와 혼돈의 지구(창1:1-2)
 본문말씀: 창1:1-2(구약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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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1:1-2(구약 1면) ::

창세기 강해 두번째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고 질서정연하게 창조한 지구가 왜 혼돈하며 공허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하늘에서 있었던 대반역의 사건을 다룬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시작에 하늘들과 땅과 물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선가 보이지 않는 영적세력인 천사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날에 여섯쨋날 해질무렵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유형의 것들과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을 창조하신 후 유형과 무형이 하나로 합혀진 새로운 피조물인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사실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제목설과 종속절 그리고 간격설(회복설)이 그것인데, 이번 설교에는 제목설의 한계와 더불어 간격설의 실제성에 대해 많이 살피게 될 것이다.
사실 창1장에서는 천사의 창조가 나오지 않지만 골1:16이나 시148편과 욥38:4-7에 보면, 적어도 넷째날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천사들이 창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천사의 창조가 첫째날이전 혹은 첫째날에서 둘째날 사이에 창조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혼돈의 지구가 된 원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맨 마지막날 창조된 사람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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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4.22(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3)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창1:3-2:3)
 본문말씀: 창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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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1:3-2:3 ::

  창세기1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1:1)와 파괴(1:2)와 회복과 사람의 창조(1:3-31)를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강해(1)과 (2)번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파괴를 살펴보았고, 오늘 이 시간은 하나님의 회복과 사람의 창조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창조의 으뜸은 단언코 사람의 창조다. 사실 창1장1절 이외에 창조물은 오직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창1장3절이하에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다 만들어진 것이지 결코 창조되지 않았다. 빛과 해와 달과 별들과 식물과 동물들은 다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직 사람만이 창조와 만듦이라는 두 과정을 거쳐 태어난 존재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 다고 생각하는가? 다 뜻과 계획과 의도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피조된 생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종류의 생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다음에야 비로소 안식하셨다. 사람을 짓지 아니했다면 아마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창조는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특히 사람의 창조시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회의가 있었다(창1:26-27). 그리고 다른 모든 창조물은 자기의 모양과 형상을 지녔지만 사람은 사람의 모양과 형상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모양(외부)과 형상(내면)대로 창조되고 지어졌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을까? 성경은 2가지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 그 비밀을 들어보자.  


 날      짜: 2009.4.29(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4) 생명나무와 돕는 베필(창2:4-25)
 본문말씀: 창2:4-25(구약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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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2:4-25(구약2면) ::

  하나님께서는 창1장으로서 창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왜 창2장을 더 기록하게 했을까? 창2장은 얼핏보면 창1장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주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창1장은 엘로힘(하나님)이 주어이지만, 창2:4부터는 여호와 엘로힘으로 바뀐다. 둘째, 인간창조의 과정이 보다 자세히 나오며 셋째, 에덴동산과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통한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이 나오며, 넷째,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어떻게 해서 여자가 창조되었는지 보다 더 자세하게 나온다. 왜 하나님은 사람의 창조의 과정과 생명나무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나오는 하와의 창조과정을 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하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기도 전에 만세전에 비밀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러한 경륜을 창2장에서 다루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2장은 하나님의 만세전에 계획을 어떻게 성취해 나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기록하셨던 것이다.
  이제 창2장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과 계획을 살펴보기로 하자.


 날      짜: 2009.5.6(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5)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1)(창3:1-24)
 본문말씀: 창3:1-24(구약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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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3:1-24(구약 3면) ::

  오늘은 창세기 3장 강해 시간으로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첫번째 시간으로 인간의 타락에 관한 부분을 다루게 될 것이다. 타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으며,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이어서 인간 타락의 결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첫째,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적인 원인으로 뱀의 유혹을 둘 수 있고, 또 하나는 내적인 원인으로 여자가 머리를 주의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타락의 과정을 살펴 보자. 아담의 책임과 하와의 책임이 있다. 아담은 동산을 지키지 못했다. 어찌 뱀이 말을 하는데, 그것을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책임을 소홀히 한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뱀이 하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또한 하와는 어떠한가? 하와는 영을 사용하지 않고 혼을 사용한 다음, 육체를 이용하여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이제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이 큰 붉은 용이 되기 시작한 시점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고 뱀은 어떻게 사람을 유혹하여 넘어뜨렸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해서 사탄의 포로가 되어버렸는지, 어떻게 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죽음이 사람에게 이르렀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날      짜: 2009.5.13(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6)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2)(창3:9-24)
 본문말씀: 창3:9-24(구약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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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3:9-24(구약 4면) ::

  이 시간은 지난주에 이어 인간의 타락의 결과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뱀의 유혹을 받은 여자가 머리를 주의하지 않으므로 발생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만회의 기회를 여자에게 주었으니, 여자는 잉태와 해산의 수고를 통해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해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인 사탄을 멸하고, 구원은 받게 하셨다(창3:15).
  그렇지만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뱀에게는 곧바로 저주의 심판을 선고하셨으니, 배로 기어다니게 했으며, 평생토록 흙만 먹고 살도록 제한하셨으며, 여자와 원수가 되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는 평생토록 수고해야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도록 하셨으며, 결국 육신이 죽게 되어 땅의 티끌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이 때 땅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풍성한 소출을 내지 아니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야 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께서 회생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여자와 말미암은 죄가 여자로 말미암아 처리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도 기회를 주어질 때에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뱀처럼 곧바로 저주가 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의 삶은 어떠한가 생각해 보라.


 날      짜: 2009.5.20(수)
 설  교 자: 정병진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7) 사람의 두번째 타락(창4:1-15)
 본문말씀: 창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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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4:1-15 ::

  오늘날 많은 타종교나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향해 "예수만 길이라고 주장하는 당신들은 독선적이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신들은 타종교에는 절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데,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판단인지 모르십니까?"라고 말한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오늘 말씀은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이 왜 문제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실제적인 답을 제시해준다. 얼핏 보기에는 타종교도 동시에 인정하자는 것이 더 좋게 보일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리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하나가 맞은 것이라면 나머지 한 가지는 분명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가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다. 그의 직업이 땅을 경작하는 일이었기에, 그 땅의 소산인 나무의 열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인의 행위를 살펴보라. 그는 인륜도적적으로 절대 나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드린 제사는 하나님에 의해 거절당하고 말았다.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형인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셨을까? 오늘 설교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가진 자들에게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리고 예수밖에도 구원의 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사람의 두번째 타락은 사람이 자신의 관념으로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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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5.27수)
 설  교 자: 정병진
 제      목: 창세기강해(8) 인간의 세번째 타락(1)
 본문말씀: 칭6:1-8(구약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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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칭6:1-8(구약 7면) ::

  - 설교시작 후 처음 5분정도 짤림(테이프불량으로)-

  사람의 첫번째타락은 아담의 타락을 가리키며, 두번째 타락은 가인의 타락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개입하신 인간의 세번째타락은 누구의 타락을 가리키는가?
첫번째와 두번째의 타락이 개인의 타락이었다고 한다면, 세번째와 앞으로 배우게 될 네번째 타락은 집단의 타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차타락에서 회복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여자의 후손이 와야 했으며, 둘째는 피흘려 죽을 제물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2차타락에서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2차타락은 사람이 종교를 만들어내므로,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진 것이므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필요하며(에노스), 둘째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에녹).

  노아시대의 인류의 타락은 과연 어떤 타락이었을까?
  3차타락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간의 비정상적인 결혼이며, 이로인해, 사람도 육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인류는 정말 타락했다. 영적인 존재였던 인간이 완전히 육체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타락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첫째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으며, 둘째는 홍수를 내려 지면에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 창6:2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지체높은 집안의 아들들일까, 천사들일까? 경건한 셋의 후손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본문에 나오는 '네피림'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용사'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제 하나님께서 인류를 홍수를 통해 멸할 수 밖에 없던 그 이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 본문말씀 ▒
:: 창7:1-24(구약 8면) ::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은 총 4차례에 걸쳐 타락한다. 1차타락은 창3장의 아담의 타락을 가리키며, 2차타락은 창4장의 가인의 타락을 가리키고, 3차타락은 창6장의 노아시대 사람들의 타락을 가리키며, 4차타락은 창11장의 바벨탑의 사람들의 타락을 가리킨다.
  1-2차 타락이 개인의 타락이라면, 3-4차 타락은 집단적인 타락을 가리킨다.
  영적인 측면에서 타락을 본다면, 1차타락은 사탄의 직접적인 관여에 의한 타락이며, 2차타락은 간접적인 관여의 타락이며, 3차타락은 사탄의 졸개들인 악한 영들의 관여에 의한 타락이며, 4차타락은 하나님의 원수로 변한 전 인류의 타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들 중에서 3차타락에 해당되는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타락을 살펴볼 것인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노아가 어떻게 되어 2가지 차원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와 노아가 그의 세대로부터의 구원받을 수 있었던 2가지 이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한편, 노아시대가 물로 인해 인류가 심판을 받은 시기라고 한다면, 지금시대는 대재앙으로 인해 인류가 심판을 받을 시기를 눈 앞에 두고 살고 있다 하겠다.
  당신은 하나님의 대심판가운데서도 구원받은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장차 온 세상을 시험할, 우리에게 임할 진짜 대환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았는가? 여기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이제 말세지말을 당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다림의 아우성을 직접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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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6.10(수)
 제      목: 창세기강해(10) 인간의 네번째타락-니므롯과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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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11:1-9(구약13면) ::

  창세기 1장부터 11장을 살펴보면, 인간은 총 4차례에 걸쳐 타락하여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다. 창3장의 아담의 타락, 창4장의 가인의 타락, 창6장의 노아시대의 세대의 타락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인 창11장의 니므롯과 그의 사람들의 타락이 그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창조된 사람(아담)에게서 자신의 기대를 버리시고, 부르심을 통한 새로운 역사를 써가신다. 이 두 가지 사건의 분수령이 곧 창11장의 바벨탑사건인 것이다.
  바벨탑사건은 노아홍수가 일어난지 약 100년이 흐른 다음에 일어났다. 노아는 홍수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는데, 둘째아들 함은 구스를 낳았고, 구스는 막내아들로 니므롯을 낳았는데, 이 니므롯에 의해 시날평지에 바벨탑이 세워진다. 그는 특이한 사냥꾼으로서 첫 용사였다. 그는 용맹하여 수많은 땅을 부속시켜 성읍을 건축해 갔는데, 첫번째 건축한 성읍이 바로 바벨성이었던 것이다.
  과연 바벨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셔여야 했을까?


 날      짜: 2009.06.17
 제      목: 창세기강해(11) 부름받은 자를 통한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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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12:1~9(구약 14면) ::

  창세기의 분수령은 창세기 12장이다. 창조한 혈통으로서 아담의 창조와 그의 후손들이 이야기가 나오는 창1-11장이 그 전반부에 해당되며,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에 이르는 4명의 족장들의 이야기 즉 부름받은 자들의 이야기가 창12장에 나오기 때문에, 창12장은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단락인 셈이다.
  그리고 창12장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첫번째로 중요한 질문으로서,
  첫째,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불러내야 했을까?
  둘째,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을까?
  셋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가?
  넷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기타의 질문으로서
  첫째, 아브라함은 과연 몇 번째 아들인가?
  둘째, 아브라함은 과연 갈대아우르에서 부름받았나 아니면 하란에서 부름받았나?
  셋째, 아브라함의 본토는 어디였나?
  넷째, 아브라함은 데라가 몇 살 때에 난 아들인가?
  다섯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일과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일 중에서 아브라함은 과연 어떤 것을 더 쉬웠을까?

  오늘 설교는 위와 같은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쉽고 감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대하시고 경청해보십시오.

 


 날      짜: 2009.6.24(수)
 제      목: 창세기강해(12) 아브라함의 믿음과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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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17:15-22(구약 20면) ::

  많은 그리스도인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높힌다.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브라함은 약했고 넘어졌고 실수를 연발했다. 만약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는 자기 부인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 그는 어떤 실수를 범했을까?
  첫째, 그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도착한 후에도 그의 조카 롯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러자 약속의 땅이 기근이 찾아왔고,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둘째, 애굽에 내려가서는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기 부인을 동생이라 속이고, 자기 부인을 애굽왕 바로에게 주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자기 부인마저 팔어넘치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집에 재앙을 내려 그 원인이 아브라함의 부인 사래를 취한 것에서 연유됨을 알게 하셨고, 결국 모든 사실을 안 바로는 사래를 고이 보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은금패물과 양과소 그리고 노비까지 주어보냈다.
  셋째, 시간이 흘러도 자식이 없음을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은 먼저는 자기의 집의 종인 다메섹 엘리에설을 양자로 삼으려했다. 그래도 안 되니 이번에는 사내의 첩인 애굽여인 하갈을 취해 자식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나타난 결과는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자식을 낳았지만 무려 13년동안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가 어떤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온전히 깨달아 소유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는 우리가 실수하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실수를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실수가 있는지 이 메시지를 통해 확인해 보자.


 날      짜: 2009.07.01(수)
 제      목: 창세기강해(13) 여종의 자녀와 자유자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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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21:1~21(구약26면) ::

  오늘 메시지는 아주 특별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하느냐에 따라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의 기업을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암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스마엘과 이삭, 둘 다 아브라함의 아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 창세기 16장부터 25장까지 아브라함은 단 한 번도 애굽사람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더러 "아들아"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더군다가 하나님께서도 그 여종의 아들을 단 한 번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아들이었지만 아들이라고 불리움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그는 성경에서 계속 여종의 아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다만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임에는 분명하므로, 성경을 기록한 모세는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이라는 말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종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 여주인인 사래가 난 아들 이삭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고대 근동에서 정부인이 아들을 얻지 못하면 첩을 들여 아들을 낳았지만 첩의 자식도 아들이므로 보통 아들로 취급했다. 하지만 심지어 사래도 이스라엘을 여종의 아들이라고 했지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기업을 잇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에서 이것은 두 비유라고 말한다. 종의 자녀와 자유자의 자녀의 차이를 이스마엘과 이삭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가진 종의 사람인가 아니면 아들의 영을 받은 아들의 사람인가? 이제부터 진짜 영적세계로 들어가보자. 당신도 놀라고 나도 놀랄만한 영적 비밀을 풀어보자.
 


 날      짜: 2009.7.8(수)
 제      목: 창세기강해(14) 하나님의 유일한 벗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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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22:1-19(구약 28면) ::

  아브라함이 갖고 있었던 믿음은 크게 2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가 부르심받은 직후에 가졌던 믿음과 그의 노년에 갖게 되었던 믿음이 또 한 가지다.
  그가 부르심을 받은 75세 때에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었다. 그리고 훗날 이삭을 제물로 바치던 노년의 시기에는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되어서 그러한 믿음은 소유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그동안 약 40~50년간의 수많은 실패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점점 깨닫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100세에 낳은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달라하시면 또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서 실패한다. 받는 것까지는 성공하지만 다시 돌려드리는 데에는 인색한 것이다. 당신은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도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는 할 줄 알았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브엘세바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그곳에서 아식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끝까지 남들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귀뜸도 해주지 않았다. 
  이삭은 당시 몇 살이었을까? 어떤 주석 책에 보면, 16~17세정도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 의하면 당시 이삭의 나이는 25세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율법의 해설서인 미드라쉬에 의하면 당시 이삭은 당시 37세였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3일길을 걸어가되, 번제에 사용할 나무장작을 등짐에 지고 걸어갈 수 있는 나이였음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결박하여 자신을 제물로 삼으려할 때, 이삭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조용히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순종하여 받드셨다.
  결국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순종과 이삭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은 감동하셨다. 당신이 해야 할 일에대해 이처럼 절대적으로 따라 행하는 아브라함을 보고서, 하나님도 그 자리에(모리아산에 성전을 세울 자리) 자기의 독생자를 바칠 각오를 다시금 굳게 결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친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사41:8, 약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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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7.15(수)
 제      목: 창세기강해(15) 아브라함의 늙은 종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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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24:1-27(구약 30면) ::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직한 늙은 종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을 때 양자 삼으려 했던 다메섹 엘리에셀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이야기와 족장들의 이야기 가운데 왜 늙은 종의 이야기가 이렇게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되, 엄청난 양을 할애하여 이 늙은 종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을까요?
  늙은 종의 이야기는 오늘날 사명을 맡은 자가 어떻게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도는 어떻게 해야 응답이 즉시 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렇습니다.
  첫째, 왜 아브라함은 늙은 종더러 자기가 거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며느리를 택하지 말고 자기의 고향과 친족에게로 가서 며느리를 구해오라고 시켰을까요? 그리고 혹시 처자가 오지 않으려해도 자기의 아들 이삭을 그리고 데려가지 말라고 요구했을까요?
  둘째, 늙은 종은 대체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그 기도가 즉시 응답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 4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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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7.22(수)
 제      목: 창세기강해(16) 야곱의 벧엘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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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28:1-22(구약 40면) ::

  성경에서 하나님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나오는 표현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다.
  이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과 성령하나님을 예표한다. 금속으로 치자면, 금과 은과 보석들이다.
  그렇다면 첫째, 아브라함이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불러내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요,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이삭이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그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한없이 복주시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최종적 시험이 모리아산의 시험이었지만 그것이 이삭에게는 첫번째 시험이었다. 하지만 이삭은 이 시험을 통과하므로 평생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으니, 농사를 지어도 100배의 소출을 얻을 수 이었고, 파면 우물이었다. 그리고 기도하니 아내의 태를 열어 자식을 주시되 쌍둥이를 주셨다.
   이제 마지막으로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경험할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일 확률이 가장 크다. 야곱의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따라 복을 주시되, 인간적인 모든 것이 없어지기까지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야곱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방법이 설령 좋지않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과 일치될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되기는 하나, 거기에는 결국 고통을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되, 우리의 실수까지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벧엘에서 무엇을 체험했을까요?
  그는 3가지 것을 체험했다. 이때 야곱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보았다.
  첫째,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신 것은 그가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 그와 함께하셨다는 것이다.
  둘째, 야곱은 벧엘에서 그분의 하나님에서 자신의 하나님으로 바뀌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야곱의 하나님은 할아버지의 하나님이요 아버지의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그날 야곱은 비로소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셋째, 야곱은 벧엘에서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에서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즉 야곱은 하나님께서는 브엘세바에 계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벧엘체험을 통해 항상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 본문말씀 ▒

:: 창27-50장 ::


 날      짜: 2009.7.29(수)
 제      목: 창세기강해(17) 장자권의 축복(창25:19-34, 창2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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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 창세기 25:19-34(구약 35면), 27:1-45(구약 37면)

  오늘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야곱이 어떻게 되어서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축복이 뭐길래 야곱은 저주를 받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자기 아버지를 속이려했을까?
  야곱은 분명 이삭의 차자로 태어났다. 비록 몇 분 차이는 아니었겠지만 분명 그는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어머니 리브가였다.
  리브가는 그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자기 남편이 장남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버릴까봐 늘 감시하고 있었었듯하다. 어느날 이삭이 장자 에세에게 축복하려고 먼저 별미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다가 염소새끼로 별미를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드리도록 했고, 형이 털사람인 고로, 양의 털옷을 입혀 보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쌍둥이 동생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해 주었다. 이 사건이 바로 야곱이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는 바로 그 장면이다.
  야곱은 사실 힘이 그의 형에 비해 약했다. 하지만 욕심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힘이 부족하여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날 정도였다. 그러니 어찌하든지 그는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기를 사모하고 있었다. 기회 좋은 날, 야곱은 팥죽을 쑤어 쉽게 장자권을 사버렸다. 에서는 그가 한 일이 과연 어떤 것인지도 모른채 그냥 장자권을 팔아 넘겨버렸다. 이후에 에서는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야곱을 두둔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거룩하고 영적인 것에 열망을 가지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해 준 것이 아니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알도록 하는 데에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영적인 축복에 대한 갈망이 야곱과 같은가? 아니면 에서처럼 별 상관없는 사람인가?

  그리고 둘째로 오늘 설교는 장자의 명분 즉 장자가 갖게 되는 4가지 놀라운 특권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참으로 놀라운 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들어보자.


 날      짜: 2009.8.5(수)
 제      목: 창세기강해(18) 야곱의 타향살이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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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30:25-43(구약 44면) ::

  이제 야곱은 정든 고향과 아비집을 떠나 수천리길 떨어져 있는 밧단아람의 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난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형 에서의 노를 피해 도망갔건만 결국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무려 20년을 지내게 됩니다.

  야곱은 이 20년의 피난살이를 통해 무엇을 잃었으며 또한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가 잃은 것은 20년의 청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첫째, 그는 대가족을 얻었습니다. 부인 2명(레아와 라헬)과 여종 2명(빌하와 실바)과 그리고 11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디나)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야곱은 처가살이를 무려 14년이나 했으며,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견뎌내야 했으며, 눈붙힐 겨를도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얻는 자손번성의 축복은 여기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한 명이 선택되면 나머지 한 명을 버림받은 것이었는데, 야곱의 아들부터는 모두가 다 혈통계승자로서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얻은 것이어서 그랬는지 하나님은 야곱의 12명의 아들을 모두가 다 부모의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격있는 자들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족장들이 되었습니다. 
  둘째, 부와 재산을 얻었습니다. 그가 들어가서 처가살이를 했던 외삼촌 라반의 집도 거부가 되었으며, 야곱도 6년간의 품삯을 받을 수 있어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무엇 때문에 가는 곳마다 부가 따라다녔으며 자손번성의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첫째, 야곱은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누가 보아도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도합 20년의 처가살이였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둘째,  그에겐 벧엘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항상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모와 함께 브엘세바에 있을 때에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지 못했지만, 집을 떠나올 때 벧엘에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장자의 계승자임을 인침받았고 그리고 덤으로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외삼촌라반을 집을 찾아갈 때에도 너무나 쉽게 찾아갈 수 있었으며, 처가살이하는동안 외삼촌의 가산을 부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자기의 품삯을 정할 때에는 단풍나무, 신풍나무, 버드나무를 흔들어도 자기가 원하는 양이 탄생하여 거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을 야곱은 이루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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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 8.19 (수)
 제      목: 창세기강해(19) 생명을 건 야곱의 기도(창3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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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32:3~32(구약 48면) ::

  야곱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꾀도 잘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넘쳤다. 하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형 에서가 걸린다. 왜냐하면 형의 장자권을 빼았아 도망왔으며, 나올 때에는 형의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채고 도망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곱은 먼저 정탐꾼을 보내 에서의 형편을 살핀다. 그랬더니 에서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400명의 군사를 보내어 죽이려고 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는다.
  그러니 야곱은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자기 식솔과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누어 분리시킨다.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는 도망가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 놓아도 안심이 안 된다. 그래서는 그는 이번에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옛 약속을 꺼내서 말이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자, 야곱은 선물공궤작전을 철저히 수립한다. 그래서 마음에 안심이 되지 않자, 야곱은 모든 가족들을 다 강을 건너보낸다음 혼자 남아 밤새도록 기도한다.
  이 얍복나루에서의 야곱의 기도, 당신은 이 목숨을 내건 야곱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야곱의 기도는 첫째, 2가지 면에서 응답받는 기도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모본을 보여주고 있으며  둘째,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사람이 문제에 집착하면, 돕기 위해 준비해놓으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가 없다.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결국 헛된 일로 마무리 된다.
  자, 이제 당신도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설교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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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8.26(수)
 제      목: 창세기강해(20)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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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35:1-15(구약 53면) ::

  야곱은 순종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당면한 형에서와의 만남의 문제를 해결받게 되자 금새 변하여 자기 생각대로 행했습니다.  얍복강 근처인 숙곳에 자기 집을 짓고 우깃간을 짓고 거기서 살려고 했던 것입다. 그렇지만 그는 가나안 땅에서 살아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에 따라 요단강 건너편에 세겜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하나님의 말씀 즉 자기고향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어기고 세겜에 머물렀을 때에 그는 2두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않게 된다면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 아니 목숨까지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야곱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벧엘로 올라갔고 올라가기 전에 그가 행한 3가지 행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벧엘에서 리브가의 유모를 잃고, 벧엘을 지나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곱은 예전의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으면서 부탁하기를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고 했지만 그는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고,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말로 고쳐불렀습니다.
  야곱은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그가 한 일은 무엇이며, 그가 자기의 막내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지은 것은 어떤 뜻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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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09.02(수)
 설  교 자: 정병진 목사
 제      목: 창세기강해(21) 야곱의 눈물(창37:1-36)
 본문말씀: 창세기 37:1-36 (구약 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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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37:1-36 (구약 56면) ::

 


 날      짜: 2009.9.9(수)
 제      목: 창세기강해(22) 요셉의 고난과 역경(창3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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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39:1~23(구약 60면) ::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오버랩되면서 나온다. 왜 그러는 것일까?

1)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은 각각 무엇을 예표하는 인물들인가?
  우리는 창세기에서 족장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의 활동을 집약적으로 말해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삼으신 장면이요, 야곱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12아들은 성령강림후 많아지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교회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들의 족장들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아들 이삭은 '순종'을, 손자 야곱은 '변화'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요셉의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하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곱의 이야기가 성령을 통한 성도들의 변화를 그리고 요셉이야기는 변화를 통한 성숙의 한 샘플(실례)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사실 창37장의 요셉의 이야기는 곧 야곱의 연장선상의 이야기이며,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곧 야곱의 후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곱은 변화되어 과정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요셉은 변화되어 성숙한 한 사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37장 2절은 요셉의 이야기가 야곱의 내력 즉 야곱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2)왜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야 했을까?
  얼핏 보기에는 '형들의 시기'와 아버지 '야곱의 편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형들이 동생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이유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한 번 생각해보라. 동생이 자기 일들을 아버지게 고자질한다고 해서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형이 있겠는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요셉의 꿈 때문이었다. 요셉은 2차례 계시적인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형들을 자극했다. 결국 형들은 그가 아버지의 곁을  떠나 멀리 있음을 알고 그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맏형 르우벤과 4째형 유다가 아니었다면 그때 요셉은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은 꿈 때문이다. 
  구약에서 꿈은 상서로운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섭리였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이다. 요셉이 나중에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그의 형들을 맞이하게 될 때, 요셉은자기를 애굽에 판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45:5-8).
  다시 말해,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지게 하는 환경이 필요했다. 기근도 없고, 땅 전쟁도 없는 평안한 환경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형들의 시기를 통해 애굽에 요셉을 팔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의 70명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건너가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요셉의 보호아래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센땅에서 수백년을 지내며 목축업을 하면서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창15장의 횃불언약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다(창15:12-21).

3)왜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눈물을 흘렸을까?
  사실 야곱은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죽었을 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셉이 동물에 찢겨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몇 날동안을 그렇게 슬피 울었다. 그 이유는 라헬도 죽고 없는데 그녀가 낳은 맏아들인 요셉마저 없어졌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
  창37장에 들어와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라는 점이다(창37:3). 그리고 그가 약 100km나 떨어져 양떼를 치고 있는 요셉의 형들이 있는 곳에 홀로 요셉을 보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는 곧 요셉의 형들이 그렇게 시기하고 죽이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야곱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사실 여기서 야곱은 이제 자기자신에 대해, 얍복강의 기도를 통해 이름이 바껴지면서 모든 것을 버려버린 사람이 되었다고고 생각하고 있었을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타지에 홀로 요셉을 보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에 아들 요셉이 죽은 것인가? 자기가 요셉을 그곳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 요셉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으로 또한 야곱은 슬피 울지는 않았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으로서는 야곱이 슬피 운 이유가 외부에서의 요인보다도 야곱자신의 내면의 요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가 97세 무렵에 얍복강의 기도를 통해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지지만, 108세(요셉의 나이 17세)가 되도록 아직까지 변화되지 못한 성품이 그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요셉의 죽음을 통해 그는 비로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사실 자기 자신의 못남 때문에 슬피운 것이다.
  우리도 오늘 108세가 되어서도 변화되지 못한 자신을 뒤돌아보며 슬피 울 수 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이삭처럼 처음부터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기꺼이 드리고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살아보자.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기본적이자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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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짜: 2009.09.16(수)
 제      목: 창세기강해(23) 요셉과 형들의 재회(창4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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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45:1~28(구약 72면) ::

  요셉은 17세에 형들에 의해 애굽나라에 노예가 팔려가 13년만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또한 기근이 임하기까지 80년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형들이 가나안땅에서 곡식을 사려고 자기 앞으로 와서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꿈을 꾸고 난 지 21년만의 일이었다.
  요셉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총리가 되어서 가나안의 형들을 응징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사람을 보내 불러들여 그의 꿈이 먼저 성취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형들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형들이 오자, 요셉은 형들의 상태가 어떠한 상태인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첫째, 자기의 친동생 베냐민은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 형들에 의해 왕따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어했다.
  둘째, 형들이 얼마나 많이 변했으며, 자기의 부친과 가족은 살아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앞으로 남은 6년기근을 피해 곡식이 가득한 애굽으로 들어와 살기를 바랬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두 차례에 걸쳐 시험했다.
  첫째, 형들의 첫번째 방문 때에는 형들을 정탐꾼들로 몰아세워 그들의 가정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난날에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회개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둘째, 형들의 두번째 방문 때에는 베냐민을 도둑으로 몰아세워 형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친동생 베냐민을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확인했다.
  이 두 가지 시험에 형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다.
  그러자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밝혔으며, 앞으로 남은 기근을 피해 가나안에 있는 자기 아버지의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모셔와서 목축하기에 좋은 땅 고센 땅에서 살도록 했다.
  우리가 요셉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요셉은 신중한 사람이었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요셉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형제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형들을 용서하는 사람이었다.
  셋째, 요셉은 그동안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했다.

  오늘날 성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한다. 그때 어떻게 해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고백하고 묵묵히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이다.

  이제 그 다이나믹한 형들과의 재회과정을 들어보자.

 


 날      짜: 2009.09.23(수)
 제      목: 창세기강해(24) 야곱의 유언과 죽음(1)(창49: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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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49:1~33(구약 78면) ::

창세기 강해, 24번째 시간.
오늘은 야곱이 12명의 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축복하고 유언하는 장면이다.
그 중에서 첫째아들부터 넷째아들까지만 다룰 것이다.
특히 첫째아들 르우벤은 정말 복있는 자로 태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장자의 축복들이 하루 아침에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가 아비의 침상을 더렵혔기 때문이다. 그는 아비의 후처와 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3가지 축복을 몽땅 잃었다.
첫째, 그는 땅을 두 배로 받는 복을 잃었다.
그 복은 열한번째 동생인 요셉의 자손에게도 돌아갔으니,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그 복을 받았다.
둘째, 그는 축복의 권리를 가진 제사장직분을 잃어버렸다. 고대에 모든 가장은 맏아들로 이어졌다. 그리고 축복권도 그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이 축복권은 셋째동생인 레위에게 돌아갔다.
셋째, 그는 왕직을 잃어버렸다. 고대의 부족국가에서의 대표가장은 왕과 같은 존재였고 나중에 이 부족국가가 왕정제도로 발전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도 왕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왕의 권리는 유다지파에게로 넘어갔다.
르우벤, 위풍이 탁월했던 인물, 하지만 그는 한 순간의 쾌락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신약성경에 보더라도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누누히 말하고 있지 않는가? 자기 육체를 함부로 죄짓는 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음행의 죄는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음행의 죄는 범죄자 자신이 회개할 경우 용서는 되지만 천국에서 기업은 상실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장자 르우벤의 이야기다.

이어서 오늘 설교는 항상 서로 붙어다녔던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의 저주와 그들의 뒤바뀐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넷째 유다에 관한 축복의 이유 등을 살피게 될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해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축복들을 절대 놓치지 않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날      짜: 2009.9.30(수)
 제      목: 창세기강해(25) 야곱의 유언과 죽음(2)(창49: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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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49:13~33(구약 9면) ::

오늘은 창세기 강해 25번째 시간으로서, 야곱이 낳은 12명의 아들의 축복과 유언에 관한 말씀이다.

레아가 낳은 첫번째 네 명의 아들들인 르우벤, 시므온과 레위, 유다에 관한 것은 지난주간에 강해했었다.
오늘은 레아가 또 낳은 두 명의 아들들인 스불론과 잇사갈부터 시작하여, 실바가 낳은 단과 갓, 빌하가 낳은 아셀과 납달리,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에 관한 다룰 것이다.
이 8명의 아들들 중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단과 요셉 그리고 베냐민이다.
첫째, 단은 장차 적그리스도가 나올 지파라 해석할만큼의 뱀에 관한 예언이 주로 되어 있다
. 하지만 야곱은 단의 장래를 위해 기도했다. 비록 독사의 길을 걸어간다해도 결코 구원에서 제외되는 지파가 되지 않기를 말이다. 그렇다면 왜 단의 독사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지파가 우상숭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둘째, 요셉은 땅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음행의 죄를 멀리하고, 원수들을 보복하지 않고 용서했기 때문이다.
셋째,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고 했다. 그는 매우 호전적인 인물로서, 전쟁에 능한 지파가 되었다. 그래서 최초로 왕을 배출해 냈는데 그가 바로 '사울'왕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산물이며,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죄인이 망하게 되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욘3:10).


 날      짜: 2009.10.07(수)
 제      목: 창세기강해(26)최종회 나그네길 인생여정과 소망(창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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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
:: 창세기 50:1~26 ::

  창세기의 역사를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뭐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잃어버린 땅과 그 땅의 회복을 위한 소망을 가진 자들의 나그네길 인생여정"이라고나 할까?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의 생명을 나눠주어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표현하라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질 수 있는 축복의 자리가 바로 '에덴동산'이었다.
  그래서 그 동산은 모든 것이 천국의 예표들로 가득차 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하는 4강은 어떠한가? 바울의 묵시록에 의하면, 4개의 강은 저마다의 별명이 있었다. 기손강은 꿀의 강, 기혼강은 감람유(기름)의 강, 힛데겔은 포도주의 강, 유브라데강은 우유(젖)의 강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약속한 땅은 바로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도 그 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셨고, 포도원과 감람나무가 자라는 땅(신6:10-11)'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역사는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류가 피의 희생제사를 통해 다시 그 땅의 돌아가되, 그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나그네 인생사인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공생애기간동안 설교하신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창세기의 8명(아담과 하와,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롯) 의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가진 자들의 나그네길 인생여정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이 한편의 설교는 창세기의 역사이자 우리의 신앙의 대행진을 요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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