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75) 아덴 사람들은 트인 자들이었지만 왜 소수만 믿었을까?(행17:16~34)_2022-11-25(금)

by 갈렙 posted Nov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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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75) 아덴 사람들은 트인 자들이었지만 왜 소수만 믿었을까?(행17:16~34)_2022-11-25(금)

https://youtu.be/OSrpjgk2s9I  [또는] https://tv.naver.com/v/31249902

 

1. 바울이 베뢰아 다음으로 전도하러 간 도시는 어디였는가?

  바울이 베뢰아 다음으로 전도하러 간 도시는 '아덴(아테네)'이었다. 아덴은 고대 그리스의 수도이자 아가야 주에 속한 아주 큰 도시로서, 거기에는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었고,아고라(저자) 광장도 있었으며, 아레오바고(시민 공개법정)도 있었다. 바울은 당시의 최고의 학문과 철학의 도시였던 아테네에 전도하러 간 것이다. 

 

2. 바울이 아덴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바울이 아덴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갖가지 우상들이었다. 사실 당시 아덴에는 300개의 공식화된 우상이 있었고, 3만 개의 신상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우선 회당부터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바울은 유대인들과 경건한 개종 이방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저잣거리(장터)에도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바울은 거기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했다.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그때 복음을 들었던 자들 중에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도 있었다. 바울은 이들에게도 예수님과 부활 복음을 전한 것이다. 

 

3.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바울은 어떤 사람으로 보였는가?

  그리스의 아덴의 철학자들은 바울이 새로운 신을 전하는 사람 쯤으로 알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바울이 전하는 말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방신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그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보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4. 아레오바고의 연설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바울이 그날 아레오바고에서 했던 연설은 너무나 잘한 연설이다. 한 마디로 명설교였다. 오늘날에 와서 그것을 분석해 보더라도 바울의 설교는 탁월한 설교였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바울의 설교가 아레오바고에 모였던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은 바울이 하는 말을 듣고 그를 조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지 몇몇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가 있었고, '다마리'라고 이름하는 어떤 여인이 있었으며, 다른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5. 바울의 위대한 설교에 비해 왜 회심자는 적었는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지만 바울의 설교는 사실 명설교였다. 하지만 바울의 설교가 명설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덴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바울의 명설교를 듣고도 아덴에서는 회심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 아덴 사람들의 지적인 우월감과 교만 때문이다. 아덴 사람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세상 최고의 학문을 다 섭렵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들은 자기들이 적어도 300~400년 동안 철학을 비롯한 학문만을 연구해 왔기에,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학문을 다 통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참된 복음을 들으면서도 바울이 전하는 말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둘째, 아덴 사람들이 다신론적 신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시 아덴 사람들은 무수한 종류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으며, 또한 아덴의 도시 안에는 수많은 신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떤 한 신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 아래에 여러 신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들은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또 새로운 어떤 신을 찾아냈구나 하는 정도로 이야기가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은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보내 주신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다신론적인 신관을 가진 그들에게 홀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확실한 복음을 들려주었지만 그들 중에 믿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와 그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와 종교관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대상자의 마음이 지적인 우월 의식과 더불어 교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복음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신론적인 종교관을 가진 자에게는 강력한 능력의 복음이라도 그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2022년 11월 2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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