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는 단지 하나님의 필요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인간의 필요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필요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셨다. 3대3의 비율로 기도를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사람을 위한 제일 처음 필요는 육체의 생존을 위한 양식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개인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특별히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는데, 이것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2019년 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늘과 땅을 위한 우리의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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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주기도문강해 05) |
[찬송] 찬370장 주 안에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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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태복음 6:11(신약 8면) |
2019.9.5(목) |
1. 들어가며
우리는 어제까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필요”에 관한 3가지 기도(기원)에 대해 배웠다(마6:9~10). 오늘부터 3일 동안은 “인간의 필요”에 관한 3가지 기도(기원)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마6:11~13). 사실 예수님은 사람이시면서 하나님이셨던 분이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너무나 잘 아시고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을 위한 필요만 기도하지 않고 우리 인간의 필요를 위한 기도도 하라고 하셨다. 역시 예수께서 가르쳐준 기도는 균형잡힌 기도에 틀림없다.
2. 하늘과 땅의 필요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필요가 무엇이며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기도의 대상에 대한 호칭에서도 이미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늘들 안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라는 표현이다. “하늘들 안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며, “우리의”는 우리 인간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하늘의 필요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경륜)이자, 우주적인 것에 관한 기원이었다. 그러나 오늘부터 우리는 땅의 필요에 관해 배우게 될 것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기도는 “떡(제4기원)”과 “용서(제5기원)”와 “보호(제6기원)”에 관한 기도인데, 그것을 풀어보면, 그것은 “육체”에 관한 기도요, “마음”에 관한 기도이며, “영”(사탄마귀)에 관한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들은 영혼육을 가진 사람이기에 자신의 “육체”가 굶주리게 되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고, 자신의 “마음”이 상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뒤틀리게 되어 있으며, “영적인 외부적인 요소”를 제어하지 못할 때에는 저주 가운데 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기에 사람의 3가지 구성요소로서, 육체와 마음과 영에 관한 문제를 놓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한편, 하늘의 필요가 2인칭단수대명사인 “당신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관한 것이었다면, 땅의 필요는 1인칭복수대명사인 “우리의” “양식과 용서와 보호”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오늘은 사람이 갖는 제일 처음의 문제로서, 육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제일 첫 번째 기도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필요한 제일 첫 번째 기도제목은 육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양식(떡, 빵)”에 관한 문제다. 인간은 육체를 가졌기에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빵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그런데 이 본문도 우리말성경으로 보면 중요한 수식어가 하나 빠져 있다. 그것은 “양식” 앞에 1인칭복수대명사로서 “우리의”라는 수식어가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양식은 “나의 양식”이 아니며 “우리의 양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의 제4기원은 “우리의 양식을 우리에게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는 시간은 “오늘”이며, 그리고 그 양식도 풍성한 양식이나 쌓아놓을 양식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인 것이다. 고로 헬라어원문에 따라 제4기원을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일용할 우리의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단번에] 주옵소서”다.
4. “일용할 양식”이란 대체 어떤 양식을 가리키는가?
“일용할”(개역개정) 또는 “필요한”(새번역)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오스(epiousios)”는 사실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신약전체에서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서 각각 한 번씩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의 어떤 그리스 문헌에서도 이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어의 어원을 통해 이 단어의 의미를 찾아볼 수밖에 있다. 먼저, “에피우시오스”는 전치사 “에피(epi)”에다가 “우시오스(ousios)”가 합쳐진 단어다. 그래서 만약 이 단어가 “에피”에다가 “이에나이(ienai, 오다,가다)”라는 단어와 합쳐진 경우라면, 이 단어의 뜻은 “오고 있는 날을 위한” 곧 “내일을 위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한편 이것이 “에피(epi)”와 “에이나이(einai, 있다.존재하다)”와 합쳐진 경우라면, 이 단어의 뜻은 “존재를 위한”, “필요한”, “생존을 위한”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에 따르며, 전자의 해석은 좀 어색하다. 왜냐하면 그 양식을 “오늘”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내일을 위한 양식을 “오늘”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아마도 “오늘을 위한”이거나 “생존을 위한” 혹은 “필요한”의 뜻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인간의 필요는 딱 3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의 처음에 육체를 위한 필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가장 효과적인 번역으로는 “생존에 필요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제일 좋은 번역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양식”에 대하여 나를 위한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식(먹을 것)을 구하되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양식(먹을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양식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출16장에서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주실 때에, 그날그날에 필요한 양식만 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양식도 한 사람이 한 가족을 위해 새벽에 나가서 거둬들이라고 했다는 것과 매우 관련이 있는 것이다(출16:16,21). 다시 말해, 양식은 개인이 아닌 “우리의 양식”으로서 최소 가족을 위한 양식이었지, 결코 개인의 배부름을 위한 양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달라고 할 시기가 “먼 미래”가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신 것은 필요한 양식을 구하되 그것을 먼 미래를 위해 쌓아놓아 그것을 축적하는 용도로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5. 주기도의 네 번째 기도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네 번째 기도제목 곧 “[당신은] 생존에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단번에] 주옵소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비밀들은 이런 것이다.
첫째, 우리는 주기도를 매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도제목들은 몰라도, 오늘 우리가 배우는 네 번째 기도에서는 “오늘”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생존을 위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어제의 양식”을 오늘 달라고 기도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출16장의 만나를 보면, 해가 내리쬐면 그날 내린 만나는 그 시간에 녹아서 없어졌다). 둘째, 이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자신을 삶을 위탁하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4기원은 먼 미래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의 기도는 생존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정도여야지 결코 비축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축적해놓기 위해 과도한 양식을 구하는 것에서 결국 싸움이 발생하게 되고 좀 더 크게 되면 국가와 민족의 전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에 필요한 양식을 얻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그리고 오직 나의 생존만을 위해 양식을 구하거나 나의 안녕을 위해 그것을 쌓아두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만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양식(떡)”이란 사람의 생존을 위한 일상적인 음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지 그것을 펑펑 쓰고 즐기기 위한 잔치 곧 고기와 포도주와 같은 것을 구하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넷째, 사람이 자신의 육체의 보존을 위해 양식을 달라는 기도드리는 일을 결코 죄악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기도를 하게 하신 것은 인간의 육체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육체의 생존을 위한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더불어 이 기도가 오직 육체의 양식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단정해서도 아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육체에게는 떡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마4:4).
6.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가 생존을 위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되, 육체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 비는 기도를 꼭 매일 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육체의 양식을 위해 비는 기도를 두고 너무 세상적이라고 치부하지도 말라. 육체가 강건할 때에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병기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식을 구하되 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축적하기 위한 과도한 욕심으로 구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리기를 바란다. 잘못되면 그것이 사회와 국가까지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필요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오늘도 양식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답게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19년 9월 5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