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강해(06)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6:12)_2019년도 9월 특별새벽집회 다섯째날(2019-09-06)

by 갈렙 posted Sep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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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Rynf_L20wy0
날짜 2019-09-06
본문말씀 마태복음 6:12(신약 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주기도문,주기도문강해,인간의필요를위한간구,죄용서를비는기도,죄용서의공식

 

20199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하늘과 땅을 위한 우리의 기도

 

[제목]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주기도문강해06)

[찬송]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말씀] 마태복음 6:12(신약 8)

2019.9.6()

1. 들어가며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꼭 용서받아야 할 죄들 사함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의 필요에 있어서 죄들 사함을 위한 기도를 절대 빠뜨리지 않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죄들에 관한 용서를 위한 기도를 빠뜨리지 않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죄들의 용서를 구할 때에 우리가 꼭 실천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죄사함을 비는 기도를 왜 빚진 것을 탕감받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인가? 그리고 사람이 예수님을 한 번 믿게 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에 대해서 이미 다 용서받았으므로 죄용서를 위해 비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오늘은 주기도문 가운데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간구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한 필요 가운데, “일용할 양식곧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할 것을 말씀하신 후에,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때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리말성경의 번역을 보면 이 문장에 있어서만큼은 의역을 시도했다. 왜냐하면 이 문장에는 ”(하마르티아,sin)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오페일레마,debt)이라는 단어만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헬라어 원문에 따라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죄지은) 자들을 탕감(용서)해 주었던 것처럼, [당신은] 우리의 빚들(죄들)[단번에] 탕감(용서)하여 주옵소서

3. 왜 예수께서는 죄들에 대한 용서를 빚들에 대한 탕감으로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왜 인간을 위한 두 번째 간구가 우리들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한 용서라고 알고 있는가? 그리고 한글번역본에서도 그렇게 번역해 놓았는가? 그것은 이 본문을 누가복음의 그것과 비교해보았을 때에 에 대한 의미가 곧 를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11:4). 이제 이 기도에 대한 누가복음의 것을 우리말로 직역해보자. “그리고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빚진 모든 자들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의 죄들을 우리에게 [단번에] 용서하여 주옵소서그렇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에 대한 탕감은 곧 죄에 대한 용서를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토라(율법)을 배우고 자랐는데, 그때 이미 면제년”(15:1~3)희년”(25:10)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죄용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두 가지 율법규정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유대인들은 면제년(7)이 되면, 아무런 조건이 없이 채권자는 자기의 이웃과 형제가 진 빚들을 전부 면제(탕감)해주어야 했다(15:1~3). 그리고 심지어 희년(50)이 되었을 때에는 팔렸던 사람이나 팔렸던 토지까지도 다 되돌려주어야 했다(25:10)(그러나 실제로 시행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대인이라면 이 토라를 안식일에 회당에서 낭독했고 또한 어려서부터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죄사함은 면제년과 희년에서 말하고 있는 탕감같은 것이라고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조건없는 죄들의 용서.

4. 자기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었던 12명의 제자들에게 인간의 필요에 관한 두 번째 간구를 통해, 자신이 지은 빚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하나의 조건이 달려있었다. 그것은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었던 같이라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가 만약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본문을 문장 그대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죄용서를 받는 것에 있어서 어떤 조건이 달려있다는 이 문장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러한가?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았는데, 무슨 죄용서를 위해 간구해야 하느냐면서 이 문장을 빼야 한다는 자들이 있었다(물론 이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리고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도 있었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용서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분명 우리도 역시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해주었던 것처럼,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간구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바꾸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빚진 자에 대한 탕감의 비유(18:23~35)”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하지만 갚을 것도 없었고 갚을 능력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엎드려 절하며 간청했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를 놓아 보내면서 그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 하나의 목을 잡고는 빚을 갚을 것을 독촉하였는데, 그도 엎드려 내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그를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본 동료들이 그 사실을 주인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이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 넘겼다는 것이 이 비유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을 다 용서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고 있다면, 장차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유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누가 하나님께 청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남들이 내게 지은 죄들을 용서하고 있는 자들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여 이미 다 용서받았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우리는 또한 죄를 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매일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회개를 하고 있는 자라도 지금 자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는 자라면, 그 사람은 배은망덕한 자로서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인간에 필요한 두 번째 간구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을까봐 주기도문 후에 부록으로 한 말씀을 더 하셨다. 그것이 바로 마6:14~15의 말씀이다.

6:14~15[직역] 왜냐하면 만일 너희가 그들의 잘못들을 사람들에게 용서한다면, 역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장차 용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사람들에게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들을 장차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지었던 죄를 용서받은 자라도 이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해주지 않는 삶을 그가 살고 있다면, 그는 종말의 심판대에 가서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지옥에 떨어질 큰 죄들을 용서받은 자답게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용서해줄 줄 알아야 한다. 즉 이미 용서받은 자로서의 실제가 없이 살아가는 자는 자신의 죄를 결국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사실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자들이다. 자신의 몰인정부터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간의 사이에 있는 죄에 대해 용서를 실천하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양식) 없으면 육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듯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해주지 않는 자는 장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오늘날에 예수를 믿고 있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저주와 질병, 환난과 자녀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가? 그것은 지금 자신의 지은 죄들이 용서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는 회개한다고 말하지만 용서받은 자로서 오히려 남들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의 필요를 위한 두 번째 간구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간구임에 틀림없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자는 긍휼없는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여기서도 지옥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죽어서도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6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