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9) 천국인데 왜 생명강과 생명나무가 필요한가?(계22:1~5)_2022-04-20(수)
https://youtu.be/KrqTlp7_Vi8 [혹은 https://tv.naver.com/v/26371212 ]
1.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모습인가?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은 장 광 고가 각각 12,000스타디온(약24,000km)이나 되는 정방형의 거대한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의 한복판에는 높은 산(시온산)이 있고 이 산 꼭대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놓여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오는데, 그 물은 큰 강을 이루어 동서남북으로 흘러 내려간다. 그리고 생명강의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성안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성안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 성은 햇빛이나 등불이 필요가 없다.
2. 천국의 생명강과 생명나무는 어떻게 생겼는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발원하여 흘러 내려가는 강줄기는 추측컨대 여러 개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강줄기가 몇 개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분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그 숫자는 가장 작게 보면 에덴동산처럼 4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많게는 24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총 2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천국은 이 강줄기를 중심으로 집이 지어진다. 이 강줄기에서 다시 지류로 물이 나뉘어 흘러가는데, 천국의 건축 천사들은 성도들의 집에 이 지류의 물을 끌어들이는 공사를 한 후에 집을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집에는 이 생명강의 작은 물줄기가 들어간다. 한편 생명강의 큰 줄기에는 생명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는 생명강의 좌우에 있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한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원 생명나무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나머지는 생명강의 큰 물줄기를 따라 강 좌우편에 놓여 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이 생명나무가 열매(과일)를 맺는데, 달마다 열매를 맺어서 일 년에 12번이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달마다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열매를 따먹게 되더라도 곧 다시 그곳에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떡과 물고기를 나눠줘도 예수님의 바구니 안에 또 떡과 물고기가 생겨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3. 천국의 생명강과 생명나무의 환상은 어디에서 이미 주어진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생명나무와 생명강의 모습은 사실 에스겔 선지자가 B.C.593~571년경에 환상으로 보았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강줄기가 있고 강 좌우편에 달마다 열매를 맺는 각종 과실나무가 있는 것은 거의 똑같다(겔47장). 그때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으로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성전이 보였고,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 손에 척량 줄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천 척(약532m)을 재어 보니 물이 발목에 찼고, 다시 천 척을 재어 보니 물은 무릎에 차올랐으며, 다시 천 척을 재어 보니 이번에는 허리에 차올랐다. 그리고 다시 천 척을 재어 보니 강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이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강 좌우편에는 나무들이 심히 많이 있었다. 또한 물에는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생물들이 살고 있었고 고기도 심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일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잎들은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열매는 음식이 되었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약 재료가 되고 있었다.
4. 왜 천국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생명강과 생명나무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아니할 수 없다. 왜 천국에 생명강이 필요하며 생명나무가 필요한가를 말이다. 사실 천국에는 영생을 얻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기에 물이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천국에서 역시 각 집마다 생명수가 들어가고 있으며, 생명나무에 열매들이 있어 그것을 따먹도록 되어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에덴동산과 그 이치가 비슷하다고 하겠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어서 그 열매를 먹도록 하셨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도 사람들이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의 물(생명수)을 두신 것이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서도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각 집집마다 생명의 물이 들어가도록 만드셨으며, 생명나무에 달마다 다른 종류의 과일이 맺히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생명의 물이나 생명나무의 열매는 다 생명이신 예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의 물이나 생명의 과일은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나눠주는 통로들인 셈이다. 그렇다. 아무리 천국이라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영생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음식과 음료로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다.
5. 천국의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그렇다면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사도 요한은 그것이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서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천국에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나 사망, 울부짖음이나 우는 것이 있지 아니하며, 무엇보다도 아픈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21:4). 한 마디로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더 이상 저주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마귀와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생명나무 잎사귀가 약 치료제로 쓰인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2가지 목적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픈 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나는 것은 다 천국의 치유 천사들이 다 이 천국의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만든 약을 가져와서 치료해 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성밖에 거주하는 자들을 치료하려고 그러한 것 같다. 성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픈 것이 있지 않지만 성밖은 좀 다르다. 우선 거기에는 생명강도 없으며, 생명나무의 실과도 없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칠 수도 있다. 부활체는 피도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1:24~26의 말씀을 통하여, 만국이 새 예루살렘 성밖에 거주하고 있음을 배웠다. 그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이름이 지워져 성밖으로 쫓겨난 자들이 거기에 거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는 성 바깥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고, 둘째는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셋째는 바깥 끝의 아래의 낭떨어지의 불못에 거주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바로 옆의 성 바깥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기 때문에 다치는 일이 별로 없겠지만,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사는 자들은 형벌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아마 다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때에 천사들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서 생명나무 잎사귀를 쓰는 것 같다. 그러므로 성 바깥의 더 어두운 곳에 있는 자들이 다칠 때에 그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생명나무의 잎사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맞는 이이야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땅의 왕들'이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밖으로 나가서 왕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계21:24,26, 2:26~27). 이들이 성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는 성밖에 위치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성밖에 남겨지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꼭 회개하고 또 충성하여서 죽은 후에는 반드시 성안에 들어가서 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4월 20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