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 위치한 다른 주변의 개척교회도 저희 교회보다 더 훌륭한 개척간증이 있겠지만 저희 교회가 먼저 글을 올리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이번주(07.07.26)부터 매주 c3tv(목회정보)에 연재되고 있는 동탄명성교회 개척교회
스토리를 여기에 함께 소개합니다. 자 그럼, 동탄명성교회가 그동안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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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한 곳으로 가십시오!
이번주부터 개척교회 이야기를 쓰게 될, 동탄신도시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는 정병진목사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지난 3월 4일 첫예배를 시작으로, 30평 아파트 거실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어제서야 비로소 중심상가에 있는 80평짜리 예배당으로 옮겨,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교회입니다. 참고로,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 소속된 장로교단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먼저, 개척교회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제가 개척을 결심할 때부터 그리고 그동안 약 4개월간의 개척교회생활을 해오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개척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조금씩 써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고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비록 제게 아름다운 어투와 기교한
말솜씨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 글 속에 숨겨져 있는 혼(魂)과 영(靈)을 만질 수만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도 어엿이 개척교회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장본인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제가 왜 개척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왜 그 많고 많은 지역 가운데 동탄신도시에 개척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할까 합니다.
1. 개척의 동기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입학을 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신대원에 입학은 하였지만 서로서로 저마다 서먹서먹하기
그지 없었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하나님의 부름받은 말씀사역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도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반장님을 찾아서 제안을
하였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이지만 찬양을 부르며 기도한 뒤 공부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 뒤 저는 아침마다 기타를 들고
강단에 섰으며 찬양을 인도하며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였는지 신대원 3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저는 3학년으로서 장신대 기숙사
750명의 사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는 신대원 3학년의 사생회장직, 그것이 제 개척의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때입니다. 50살이 넘으신 동료 어른들께서 어느날 저를 찾아오시더니, 저를 기숙사 사생회장으로 추천할테니 나가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평소 때
어른을 잘 따르던 저는 동료 어른들의 간곡히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내걸었던 제일 공약은 바로 ‘새벽기도의 생활화’였습니다.
그러니 새벽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생회원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앙이 있는 어른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사생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년간 기숙사에 거주하는 전도사님들의 영적건강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동료 어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재학중인 약 300여명의 전도사님들 가운데, 개척하여 성공할 수 있는 분들이 대여서명 있는데, 정병진 전도사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개척교회보다는 우선 교역자로서 실력과 훈련을 더 쌓아야 하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척교회보다도 부교역자
생활은 충분히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느날 저에게 개척의 일을 맡기실 때, 함께 동역할 부교역자들의 애환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함께 동역하는 부교역자의 진짜 고민을 모르고서 어찌 담임목사라 말할 수 있겠는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주어진 기회를 따라, 오직 저의 부친께서 물려주신 가훈을 마음에 새기며, 언제나 성실하게 그리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하나님과 사람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전도사시절 때부터 함께 했던 그 감격이 너무나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는 전화를 참 많이 받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따라,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들에게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 행복한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7년을 수일까지 여겼던 야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부교역자로서 1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2006년, 제 나이 41세 되어서야 저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교역자의 생활을 접고,
담임목사로서 아니 선배들이 그렇게 해보라고 권유한 개척교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6년 4개월을 섬기던 일산명성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2006년부터는 개척에 대한 준비를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동의였습니다. 아내는 한사코 개척보다는 기존교회 담임목사로의 부임을 권유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기존교회에 가서도 얼마든지 잘 섬길 수 있으니, 이왕이면 기존교회 담임목사로 갔으면 좋겠어요.” 여러 차례 담임목사의 자리가 났지만,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그 자리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의 아내는 “당신은 정말 개척이 맞는 것 같아요.” 아내의 이 한 마디는 결국 다시
개척의 꿈을 펼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아내는 그 뒤로 20여년동안 두드리지
않았던 피아노 건반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였고, 개척이후 약 4개월간 지금까지 반주자로서 그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2. 개척장소 결정하기
이 때, 한편으로 저의 마음 가운데에서는 사실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초 개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척할
지역에 상가가 나오지 않으니, 동탄신도시가 제가 개척할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작년 9월경부터 동탄신도시에
위치한 분양사무소를 찾아가 임대할 상가를 알아보았지만 분양도 아직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임대는 안 된다는 말만을 듣게 되었고 그 분양관계자로부터
굳이 그렇다고 동탄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입주지역을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왜 나는 오직 동탄만
고집해왔지?”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2001년 동탄에 신도시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저는 동탄을 찍고, 오직 동탄에 교회를 세울
일만을 생각하며 기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척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개척장소가 마땅지 않게 되었으니, 그럴만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쪽
저쪽 입주하고 있는 신도시를 찾아보니, 마침 일산의 풍동신도시에 상가들이 입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에는 성경의 원칙이 메아리쳐
도무지 제 마음을 떠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야, 성경을 보아라. 예루살렘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지만 개척교회는 예루살렘에 세워지지 않았고 전혀
다른 지역인 사마리아와 안디옥, 그리고 빌립보와 에베소와 고린도에 세워졌지 않았니?”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생각해 보아라. 풍동이 일산에서 좀
떨어진 지역이라 할지라도 혹시 교인 한 명이라도 이동하였다고 쳐보자, 그럼 담임목사님의 마음에 얼마나 누를 끼치겠니?”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을 내다보니 다른 지역에 대해 전혀 고려도 해보지 않는 제가 야속하기도 하였습니다. 뭔가를 빨리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대원 동기이지만 일산에서 개척한 동료목사님을 찾아가 뵈었습니다. 그랬더니, 동료목사님은 풍동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풍동신도시는 너무나 작은 지역이기에 더 이상 개척교회 할 자리가 없는 곳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물으셨습니다.
“지금까지 개척장소로서 어디를 두고 기도해 오셨나요?” 저는 그때 당연히 “동탄신도시지요.” “그럼, 동탄신도시로 가십시오. 지금까지 5년여동안
기도해온 자리를 환경이 잘 안 맞는다고 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기도한 곳으로 가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렇구나. 기도해 온 곳으로 가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지금까지 기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장소에 가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그리고 풍동에 가서 겪게 될 엄청난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해서 이길 것이며, 또한 개척에 대해
밀어주시고 지원해주신 담임목사님에게 어떤 면목으로 설 것인가?” 조용 조용히 이야기하신 것이었지만 동료목사님의 말씀은 저의 뇌리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교회개척은 기도한 곳으로 가야지, 쌩뚱맞은 곳으로 가면 안 되겠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도도 하지 않은
장소를 주실 수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완전히 저의 마음은 다시 동탄에 교회를 개척하리라는 마음으로 불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어떠한 무슨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난 이제 동탄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리라. 비록 상가가 없아도 난 좋다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곳이 나의 밥이 될 곳이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는 지역에 교회를 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상가가 완공되지 않고 아파트만
입주하고 있는 이곳 동탄신도시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곳 동탄을 기도하고 왔습니다. 이제는 다른 어떠한 부름이 있어도 저는 응하지 않을 것이며,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산지를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