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이야기(28)
2008년 5월 20일(화)
제목 : 담임목사의 역할
어제(2008.5.19/월)는 모처럼 장신대 신대원 동기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12만에 처음으로 본 얼굴들이다. 처음엔 얼굴이 예전과는 약간씩 다르게 보인 듯 했으나, 이내 그 얼굴이 신대원 시절의 얼굴로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단지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다는 점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건축학번이라 일컫던 장신대 신대원 89기 동기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하지만 세어보니 대략 20가정 정도뿐. 약 300명 가까운 동기들인데, 다들 바쁜 모양이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서도 못 오신 분들도 있는 것 많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동기모임은 서울 근교인 인천에서 모였다. 인천 동구에 위치한 인천서부교회. 듣자하니, 맨 처음에 생겨난 인천제일교회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하여 8개나 개척을 했다는데, 그 중에서 4번째 개척한 교회가 바로 인천서부교회란다. 처음에는 인천제4교회라 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름을 바꾸게 되어 ‘인천서부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따져보니, 그 교회는 수 십 년된 교회였다. 역시 견실함이 돋보이는 교회였다.
교회에 도착해보니, 그곳 시무장로님들께서 주차장까지 마중 나와 우리들을 반겨주셨다. 그리고 곧이어 부목사님과 전도사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또한 부목사님과 전도사님은 하루 종일 교회승합차를 몰고 이리저리 우리들을 픽업해주셨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날이 월요일이 아니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쉬어야 할 월요일임에 불구하고 쉬지도 못한 채, 담임목사님의 일을 뒷바라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게도 보이면서도 또 한 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행하던 부목사가 아니었던가? 아마추어 전도사 시절 경력까지 합친다면, 나도 17년이란 세월을 부교역자 생활을 그렇게 해왔었다. 나 또한 어떻게 그러한 생활을 해 왔던지...
하지만 부교역자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가 섬기던 교회에 대해, 한 번도 그 교회를 담임목사님의 교회요, 그 교회의 일은 곧 담임목사님의 일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교역자 생활을 해 왔지만, 그 일에 대해 결코 힘들다거나 고달픈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또한 일이 힘들 때면, 나도 언젠가는 담임목사가 되어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때가 올 것이라 여겼기에, 또한 그것이 주님을 믿는 부교역자의 생활태도라 여겼기에 힘들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제 나는 타교회의 담임목사의 자격으로서, 인천서부교회의 부교역자로부터 섬김을 받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죄송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래서 그분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오늘 참 수고 많았습니다. 많이 힘들죠? 하지만 나도 이 일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도 언젠가는 누군가로부터 또한 섬김을 받을 날이 올 테니, 너무 섭섭하게는 생각하지 마세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1.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일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때가 있다. 실수가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어떤 한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부주의로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그 문제가 자신 때문만은 아니었었노라고 변명하려 한다. 그리고는 어찌하든지 자기는 그 문제와 덜 관련되어 있다고 변명하면서, 들여놓았던 발마저 빼내려고 한다. 나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 누구 누구 때문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인간의 습성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는 부교역자생활 17년을 통해 부교역자생활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오직 나 때문만은 아니라고,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에게위로의 말을 늘 하곤 했다. 그런데 엊그제 이와 비슷한 일이 교회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제는 책임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할 나 자신인데도, 아직까지 부교역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았나를 생각하게 해 준 사건이었다.
나는 지난 주일날, 담임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고 담임목회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예배를 마친뒤, 나는 예배당 뒤편에 가서 찾아온 성도와 새가족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지난 주일은 여느 주일과는 달리, 아이들을 포함해서 새 가족이 무려 24명이나 온 보기 드문 주일이었다. 보통은 15명 정도가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동탄명성교회 식구 중에서도 결석자가 24명이나 되었으니, 우리 식구가 빠진 만큼 다른 식구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당은 그리 ‘훵’ 하지는 않았다.
예배를 마친 대부분의 새가족들은 예배를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이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개척교회의 설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통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행여나 목사님에게 붙잡히기라도하면 무슨 일이라고 생길까봐 부랴부랴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고, 타 교회를 방문한 것이 미안해서 그렇게 일찍 빠져나간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렇게 하나님께 생각한다. “하나님, 이렇게라도 개척교회를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 사람치고 개척교회를 잘 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나마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어찌 고맙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이것이 개척교회의 현실이다.
인사를 마치고 교회 뒤쪽에 마련된 식당에 가 보니, 그날 처음으로 방문한 새가족 중 우리 교회의 성도를 따라 따라온 몇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계전도의 장점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나도 그들을 만나 같이 식사하면서, 칭찬과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나오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역시 성도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전도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무렵이 되었다. 그때 교회의 한 집사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목사님, 혹시 오늘 2부예배 피아노반주자를 목사님께서 바꾸셨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예 사실은 예배시간 도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반주자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래요. 반주자요? 그래, 반주자...” 그리고 생각해보니 오늘 2부예배 반주자가 새로 바뀐 사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교회에 도착한 기존 반주가가 영문도 모른 채, 반주자가 피아노석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교회를 빠져나간 일이 생각이 났다. “아뿔싸, 이거 큰 일 났구나!. 오늘 반주자가 교체된다는 사실을 기존 반주자는 모르고 있었구나! 이거 큰 일 났네.”
나는 사실 반주자가 그날 당연히 바뀌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정황이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반주자가 그날 바뀌는 것으로 서로간에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니 새로운 반주자에게도 왜 그 자리에 앉았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기존의 반주자가 왔을 때에는 나는 당황스러워 얼버무려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때 기존 반주자가 이렇게 물었다. “오늘부터 반주자가 바뀌는 것인가요?”라고 물어왔을 때, “응... 너의 어머니에게 듣지 않았었니?”라고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이든지 반주자 문제가 상당히 큰 문제가 된다. 없으면 없는 데로 또한 많으면 많은 데로 문제가 늘 발생하는 파트가 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 대해, 한 편으로는 이제 반주자가 여럿이 생기다 보니 나타난 문제려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였다. 어찌나 그 문제로 고민했던지 그 다음날 저녁에 만난 옆학원 부원장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피곤하셨나봐요? 얼굴이 반쪽이 되셨어요.”
2. 담임목사로서의 나의 실수
우리는 지난 주일(2008.5.11) 주일낮2부찬양대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임시찬양대원 모임을 가졌었다. 그리고 6월 첫 주부터 찬양대를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새로 부임하신 부목사님께서는 지휘를 맡아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반주자가 찬양대 연습시간에도 참석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 때문에, 나는 찬양대장과 상의를 했다. 그래서 지난주간에 잠정적으로 결정하기를, 기존의 반주자는 연습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뿐더러 또한 원래 전공이 바이올린이기 때문에,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새로 들어오신 분 중에서 반주자를 따로 세우기로 말이다.
그런데 반주자의 교체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찬양대의 새 반주자는 이번주부터 당연히 반주자로서 서야 할 것으로 알고 교회에 출석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주부터 찬양대의 연습을 한다고 이야기해 두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언제 반주자가 교체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상태였었다.
하지만 앞으로 반주자를 바꾸기로 약속한 상태였으니, 나는 응당 새로운 반주자가 와서 반주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고, 또한 반주자가 예배시작 전에 이미 나와 성도석에 앉아 있기에, 반주자 문제가 이미 다 이야기 된 상황이구나 하고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예배 뒷정리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으며, 나는 과연 담임목사로서 또한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가?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는 담임목사로서 아래와 같은 2가지 측면에서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반주자가 바뀌는 문제에 대해, 나는 기존의 반주자에게는 그와 같은 사실을 단 한 번도 물어보거나 또한 반주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었다 라는 점이다.
둘째, 새로운 반주자에게 오늘부터 반주자가 바뀌기로 된 것인지, 한 번 더 물어봤어야 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고, 당시 정황만을 보고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것 것이다. 사실 누가 이 문제에 있어서 최고결정권자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이전에는 내가 담임목사가 아니었기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결정하거나 명령할 권한이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담임목사이다보니 내가 결정을 내려야 했고, 조종을 해 주었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그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즉 나는 모든 교회 문제의 최고결정권자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다하지 못한 것이다.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서, 기존 반주자의 어머니로 통화가 할 수가 있었다. 일은 잘 해결되었다.
나는 이제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제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이든, 최종적으로는 내가 결정해야 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담임목사의 직책인 것이다. 이전까지도 해도 다 담임목사님께서 결정한 일을 추진하는 것이 내 몫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담임목사로서 결정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담임목사로서 그 직무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한채, 부목사인지 담임목사인지도 모른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담임목사의 몫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고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나의 실수로 인해, 성도에게 잘못된 상황을 만들어 주어서도 안 될 것이며, 다른 사람의 실수로 말미암아 잘못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제는 앙 편의 중재자로서 그 해결점을 찾아줘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사실 나는 담임목사라는 직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사실 성도수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담임목사라는 직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목사님과 심방전도사님 그리고 여러 직분자를 가진 교회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담임목사가 얼마나 중요한 직책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얼마나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며, 그 결정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체험하게 계기가 되었다. 여러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기존 반주자에게는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어엿비 여기시고 다 해결해 주셨다. 주일밤 12시가 되기도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담임목사직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더 많겠지만, 이 일로 인하여 나는 나대로 담임목사직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모든 일을 더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함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나는 어리석고 부족한 종입니다. 담임목사로서 그 직책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살아왔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잠시동안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하늘의 지혜를 더하시어, 사람의 속사정을 헤아리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더욱 충만히 부어주시고, 내가 하는 말에 더 이상 실수가 없게 하시며, 언제라도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앞으로 저를 좀 더 굳건히 붙잡아 주시고 참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동탄신도시에서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