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38)(최종회) 제사장의 성의제작 및 성막봉헌(출39:1~40:38)_2019-06-05(수)

by 갈렙 posted Jun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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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06-05
본문말씀 출애굽기 39:1~40:38(구약142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제사장의역할,성막건축,여호와의구름,여호와의영광,성막봉헌식,구름기둥과불기둥의 인도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켰는가?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 불쌍이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에서 약속한 것을 이루실 때가 와서 그래서였을까? 그것도 맞다. 하지만 출애굽기 책만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것은 다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자신의 거처를 갖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곧 성막을 건축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이라 할지라고 죄인을 구원하여 그들이 자신과 함께 거하기를 기뻐하신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건축하라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성막은 일차적으로 죄인이 죄를 용서받는 장소이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책의 약 절반이 성막의 규례와 건축에 관한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 오늘은 출애굽강해 마지막 시간으로서 지난 출애굽의 모든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보고 성막이 어떻게 완공되었으며 그후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들어가며

   오늘은 출애굽기강해 마지막 시간이다. 출애굽기서는 크게 2부분 내지는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2개 부분으로 나눈다면, 그것은 첫째로,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해서 시내산에 도착하고 율법과 재판법을 받기까지의 과정(출1~24장)과 둘째로, 성막 건축규례 및 성막건축과정(출25~40장)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만약 이를 3개 부분으로 나눈다면, 첫째 부분을 다시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하는 부분(출1장~18장)과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재판법을 받기까지의 과정(출19~24장)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그것 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출39~40장)은 성막건축규례의 명령에 따라 실제로 성막을 제작하게 되는데, 성막기구를 제작하는 과정(출36~38장)에 이어서, 제사장의 성의제작 과정(출39장)과 성막조립하고 봉헌하는 과정에 관한 말씀(출40장)이다. 그래서 오늘은 출애굽의 전체적인 여정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 탈출시켰는지 그리고 왜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셨는지를 살펴보고, 성막건축에 있어서 제사장의 역할과 성막봉헌과 여호와의 임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켰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을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왕 바로에게 보내어, 왜 이스라엘민족이 3일길쯤 광야로 가야 하는지를 말하게 했다. 그것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기(혹은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했다(출3:18). 그리고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출7:16). 그런데 이러한 2가지 사항은 반드시 어떤 전재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막건축"이다. 다시 말해, 성막이 있어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도 있으며, 성막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나서 섬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서는 약 절반가량이 성막법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그것도 성막규례에 관해 적어도 3번 이상씩 반복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성막법을 출25장부터 40장에 걸쳐 이렇게 수차례 반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같은 잔소리꾼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중요하지 않는 것을 그분은 계속 말씀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것은 아예 머리속에 새겨버릴 수 있도록 또 말씀하고 또 말씀해주신다. 그러므로 출39~40장에 가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약 20번에 걸쳐 행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가 없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준대로 성막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출애굽기서에 성막법을 거의 절반가량 기록하게 하고, 계속해서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꼭 그렇게 했는지를 확인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것은 출애굽의 목적을 이스라엘 민족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며, 성막건축이야말로 출애굽의 매우 중요한 목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모세오경을 지나 여호수아서에 가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킨 궁극적인 목적이 나온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인데, 그것은 가나안 일곱족속의 땅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출애굽기서에 나온 말씀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킨 이유는 성막을 짓게 하기 위함이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제사드리게 하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섬기게 함이었던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건축과 오늘날 성도들의 교회생활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일차적인 목적은 어디에 두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성막을 건축하는 데에 있었다. 성막이 건축되어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릴 수도 있고, 성막이 건축되어야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전10장에 나오는 바울의 해석법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것이 곧 교회생활을 예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막의 건축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며, 교회건축이라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성막의 거의 모든 기구들이 다 장차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성막문이 동쪽에 있는 이유는 메시야가 유다지파에서 올 것임을 말해준다. 성막문이 20규빗으로 동쪽포장의 2/5를 차지할만큼 큰 것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러 나오라는 것을 의미하며, 번제단에서 죽임당한 속죄의 어린양은 인류를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물두멍은 세례받으신 예수님을, 성소의 금등배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떡상은 생명의 양식이자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분향단은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둘째휘장은 십자가 사건 때에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는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의의 옷이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동시에 성막은 성도의 교회생활의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모든 성도들은 번제단에서 인류의 속죄양(유월절)이 되신 예수님을 믿어 죄용서를 받는다. 그리고 물두멍(홍해)에 가서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되, 날마다 금등대(구름기둥과 불기둥)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그리고 매주일 떡상(만나와 생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분향단에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한다. 그러다가 육체를 벗게 되면 둘째휘장(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 곧 천국에 들어간다. 고로 우리는 성막의 건축이 교회의 건축에 대한 일종의 예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출애굽의 일차적인 목적이 성막건축 곧 교회를 건축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4. 성막을 통해서 살펴본 성도들의 교회생활의 2가지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왜 성막을 건축하라고 했을까? 그것은 2가지였다. 첫번째 목적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곧 오늘날 성도들의 교회생활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하고서 죄사함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고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회개여야 한다. 회개함이 없는 교회생활은 결국에 실패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 두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곧 오늘날 성도들의 교회생활의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4~5장에 가보면, 예배가 무엇이며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데, 천상에서 예배란 신적 대상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인데, 성도들은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높일 수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할 수가 있다. 이것이 출애굽기서의 핵심진리다.

 

5. 성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은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하며, 무엇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가?

  실제 성막건축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막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성막에서 섬기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이 없아면 성막은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막건축에 있어서 가장 큰 메시지는 성막에서 봉사할 제사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그에게 몸을 물로 씻기고, 옷을 입히고, 관유를 뿌려야 한다(출40:12~16).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제사장의 의복에는 성막에 사용되지 않는 다른 한 가지의 실이 들어간다. 그것은 금실이다. 다른 실들 곧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은  성막의 휘장이나 제사장의 의복에 동시에 들어간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금실로 에옷을 짜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출39:5,8).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금색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순종이라는 요소가 전혀 가미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하고 빛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천으로 만든 것 중에 제사장복만은 금실을 넣어 옷을 만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제사장은 비록 사람에서 부름받아 취임한 것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신성을 말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즉 제사장은 비록 사람 가운데 선택받은 자이지만 하나님의 직무를 대신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제사장은 늘 마음에 성도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에봇의 어깨끈에 홍마노를 양쪽에 하나씩 달아놓는데 거기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을 나왔고, 이어서 제사장의 판결흉패에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신하는 12보석을 깍아 물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을 대신할만한 위엄이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12지파로 대별되는 성도들을 어깨위에 두고 가슴에 품은 채 사역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싶다. 교회의 섬기는 자들은 항상 성도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어깨 위에 두고), 그를 보석처럼(판결흉패가 갖가지 보석으로 12개다)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오늘날 교회는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그리고 이미 만든 성막의 기구들을 모세는 이제 백성들에게 가져오게 한 다음, 정확히 지정된 자리에 놓게 한다. 그런데 그래서 성막의 기구들이 정확한 위치에 놓여지자, 모세는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라고 말이다(출40:16,19,21,23,25,27,29,32). 이는 오늘날 교회를 세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워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것은 교회를 세울 때에 사람이 자기의 교회를 세워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언급한다. 교회는 목사의 교회도 아니요, 교회를 건축한 장로의 교회도 아니기 때문이니,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값을 주고 산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마16:18, 고전6:19~20). 고로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조성되어야 하며, 끝까지 주님의 말씀으로 세워져야 한다.

 

7. 성막은 언제 건축이 완성되었는가?

  이제 성막의 모든 기구를 제 자리에 놓게 되자, 성막건축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날은 언제였는지 아는가? 그 날은 정확히 출애굽후 1월 1일날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꼭 그날에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40:2,17). 그렇다. 성막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이후 약1년이 지난 시점에 완성되었고 그 날로 새로운 1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처럼 성도에 있어서 교회생활은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그날은 영적인 사람이자 하늘의 사람으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8. 성막이 건축되자 나타난 거룩한 현상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성막건축이 완성되자 갑자기 성막 위에 구름이 뒤덮였다(출40:34~35).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살아오던 모세도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나님의 위엄이 성막 위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부터 성막은 위임식을 받은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만 출입하는 영역이 되었다. 제사장들은 성소까지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겼고,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가되 1년에 한 번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겼다. 성막은 이제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된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공간이 된 것이다. 그렇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인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이동용 텐트였던 성막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에는 성전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어서 인격적인 성전인 예수님의 몸이 곧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이 전인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신다.

 

9. 교회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성막건축이 끝나고 구름 곧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된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는 것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이었지만 실은 밤에 그것은 불기둥으로 변했다.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은 3가지를 알게 되었으니, 첫째,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과 함께 하고 있다는 표시로 알았다는 것이다. 즉 이때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둘째,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 민족을 지켜주실 것을 믿었다. 이때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 이때부터 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의 이동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는 구름기둥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방편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서 떠올라 이동하면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성막을 걷어 구름기둥을 따라 이동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동시에 자기들의 텐트를 걷어 함께 이동하였다. 그리고 구름기둥이 멈추는 곳에 그들은 성막을 치고 자기들의 텐트를 쳤다.

  그렇다면, 이때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기둥을 따라갔다는 것을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 아래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지만, 그 대답이 민수기 9장에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간 것을 두고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명령(입)에 따라 안내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따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는 무엇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말씀이 가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야 하는 것이고, 말씀이 서라고 한다면 서는 것이 교회여야 한다. 말씀을 벗어나면 안 된다. 말씀의 인도를 받을 때 교회는 가장 안전하며 확실하게 천국까지 이동해 갈 수 있는 것이다.

 

10. 나오며

  출애굽기의 시작은 애굽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민족이 받았던 고통과 학대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끝에 가서는 이스라엘은 민족인 이미 자유민이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성막을 건축하는 것으로 끝난다. 왜 사람들은 이 세상 임금인 마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그 밑에 있으면 평생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먼저 지옥에 떨어지든지 아니면 마귀가 지옥으로 떨어질 때 자기도 같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지배아래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도 빨리 애굽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약속에 땅에 이르기 전에 잠시 머물러 있어야 하는 장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 땅의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나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성도들은 일단 성막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성막은 성도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 어떤 이는 천국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지옥에도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출애굽했으면 성막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들어가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되었으면 교회생활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교회생활을 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기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야같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비로소 천국백성이 될 자인지 아닌지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교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회개하여 죄용서를 받고 있는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 이것이 출애굽의 일차적인 목표라는 것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랬으면 교회안에 머물라. 그래서 주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자. 건투를 빈다.

 

2019년 6월 5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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