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46) 다툼과 논쟁의 불씨를 베드로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행11:1~18)_2022-09-27(화)

by 갈렙 posted Sep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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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KGpiNfylwH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46) 다툼과 논쟁의 불씨를 베드로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행11:1~18)_2022-09-27(화)

https://youtu.be/KGpiNfylwHA  [혹은 https://tv.naver.com/v/29486615 ]

 

1.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받아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과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문제삼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가운데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서,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간 것과 거기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베드로가 랍비들의 교훈을 어긴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유대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2. 베드로는 새로 부딪힌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느 정도 예상한 것 같다. 이는 그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스스로 그들에게 설명한 사실을 통해 확인이 된다(행11:4). 왜냐하면 베드로도 욥바에서 보자기 환상을 보기 전까지는 할례자들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역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율법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음식법을 지키켜 살았던 것이다. 보자기 환상을 보기전까지 베드로는 자기 입에 어떠한 부정한 짐승의 고기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행11:8). 이렇다는 것은 그가 이방인과의 접촉을 꺼려왔고 더욱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생각은 결코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심으로,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것은 베드로 자신이 이제는 더이상 이방인들도 부정하다거나 혹은 불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2가지 방식으로 할례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자초지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과 함께 있었던 여섯 명을 증인들로 그들에게 내세운 것이다. 

 

3. 베드로는 자신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던 것을 어떻게 설명했는가?

  베드로는 자신이 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그가 욥바에서 맨 처음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환상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짐승도 이제는 더이상 더럽지 않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곧이어 이방인이었던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때도 성령께서 자신에게 지시하기를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나섰고 그들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순절날 자기들에게도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성령의 은사를 주셨던 것처럼, 고넬료 가정에도 역시 동일하게 성령이 쇄도하였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방언을 말하였고 방언찬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4.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자녀들)이 되는 것은 무엇에 달려있는가?

  베드로의 이러한 증거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 베드로를 비롯한 120명의 유대인들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제일 처음으로 성령을 받고, 이어서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은 다 자기들이 할례를 받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모여있던 자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 동일하게 성령을 받은 것이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조건 곧 할례를 받거나, 유대인이 되거나 하는 조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것을 통해 일어나는 것임을 확인해준 것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려면 그때에는 아브라함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 이후에는 달라진 것이다. 무거운 멍에와 같은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율법의 저주로부터 인간을 속량하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생명을 해방하여 나눠주셨던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성령을 통해 생명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고로, 오순절 성령강림 시대 이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실상 회개와 믿음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다툼이나 논쟁의 불씨가 있을 때에 지도자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가?

   사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대표는 베드로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복음전파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행한 일에 대해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사도들이 아니라 평신도들 중에 어떤 할례파들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을 방문하고 그들과 식사를 했다는 것을 두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 베드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는 사실 예루살렘교회의 대표로서 그들을 책망하고 징계를 해야 마땅했다. 만약 그때가 베드로가 변화받기 전이었다면 베드로는 그들에게 화를 버럭 내거나 윽박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졌다. 이는 베드로가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문제에 대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설득하기로 선택했다. 사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이니, 대표자의 권위로 그들을 눌러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감히 사도에게 대항하느냐고 그들을 엄히 꾸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방인과 친교하거나 식사하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의하여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증인 6명을 동참케 하였기에, 베드로의 증거가 사실인 것을 보증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주는 회개를 주셨다고 인정하였다. 참으로 좋은 결말을 맺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베드로의 지혜로운 대처는 결국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에게도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물꼬를 확실히 열어준 계기가 된 것이다. 

 

 

2022년 09월 2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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