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51) 왜 야고보 사도는 순교했는데 베드로 사도는 죽지 않고 살아났을까?(행12:1~19)_2022-10-07(금)

by 갈렙 posted Oct 07,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ee6uwh7I2g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1) 왜 야고보 사도는 순교했는데 베드로 사도는 죽지 않고 살아났을까?(행12:1~19)_2022-10-07(금)

https://youtu.be/ee6uwh7I2gQ  [혹은 https://tv.naver.com/v/29743355 ]

 

1. 안디옥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있을 때에 예루살렘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안디옥에 바나바와 사울로 인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2차 박해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번에는 종교적인 박해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가 서로 결탁된 박해였다. 다시 말해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 A.D.37~44.재위)이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도들 중에 야고보를 칼로 죽였던 것이다. 그때 헤롯 왕은 야고보만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무리들의 대표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순교를 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들 중에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아 차린 헤롯은,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마저 체포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마침 무교절이 시작되었던 시기라, 그때는 죽이지 못하고 무교절이 끝나는 날에 처형하려고 그를 감옥에 가두워 놓는다. 

 

2. 베드로를 처형하기 하루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하던 전날 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두 군사들 틈에 두 쇠사슬로 묶인 채 잠들어 있던 베드로에게 주께서 보낸 천사가 찾아간 것이다. 그러자 쇠사슬들이 베드로의 손에서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베드로가 신발끈을 묶고 겉옷을 두르고 천사를 따라 나섰을 때에, 쇠창살 문은 저절로 열렸고 군사들 앞으로 지나갔으나 병사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첫째와 둘째 파수를 통과하여 도시 안으로 연결된 쇠문 앞에 도착했을 때에 또다시 쇠문이 또한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천사는 떠나갔고, 쇠문을 나온 뒤에 베드로는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어 헤롯 왕과 유대인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출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곧바로 기도하고 있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의 집으로 간다. 

 

3. 베드로를 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어떤 반응이었는가?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당도하여 문을 두드렸을 때에 '로데'라고 하는 여자 아이가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나 기뻐한 나머지 문도 열어주지 않은채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네가 미쳤구나" 이는 베드로가 올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가 확신있게 말하자, 그들은 "그러면 그의 천사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문을 열어주게 되는데 거기에는 베드로가 와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놀라게 된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조용하라고 한 뒤,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야고보(예수님의 친동생)과 형제들에게 알려주라고 전하고는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딴 장소로 이동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여자 아이로부터 베드로의 탈옥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들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처음에 베드로와 탈옥해서 와 있다고 하는 여자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렸다. 아니 사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함께 모여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는가? 그런데 정작 베드로와 감옥에서 빠져나와 거기에 있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우리도 우리가 기도해놓고도 기도한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의 연약함에 용서를 빈다. 그리하여 이제는 사도들마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동안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일곱 집사들(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음)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도들마저 헤롯 왕의 핍박을 피해 흩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순교자 야고보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각기 자신의 사명의 땅을 향하여 이동하게 된다. 

 

4. 베드로에게 왜 주님이 보낸 천사가 나타난 것인가?

  당시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이 과연 있었을까? 베드로는 두 명의 군사들 사이에서 손에 서로 쇠사슬로 묶힌 채 있었다. 그리고 쇠창살 밖에는 두 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첫째 파수가 지키고 있었고 그 밖에는 또한 둘째 파수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곳을 뚫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애시당초 불가능했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방법 곧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2가지 종류의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요청만 하는 기도의 경우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이 없을 때에 하는 기도다. 그러나 또 하나는 하나님께 요청하고 우리가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 기도가 있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데 지혜를 달라고 하는 경우다. 이때에는 공부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지혜를 달라고 공부할 때에 비로소 지혜가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베드로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베드로를 구출해 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더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직접 부리는 천사를 파송하셨다. 천사는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는 인간의 물리적인 법칙까지 초월하면서 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는 그의 쇠사슬을 풀 수 있었고 쇠창살문과 쇠문을 열어젖혔으며, 군사들의 눈을 보지 못하도록 혹은 그들로 하여금 잠들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도들의 대표자가 아닌가? 그에게는 앞으로 더 할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를 구출해내신 것이다. 

 

5. 왜 당시 야고보 사도는 순교를 당했지만 베드로 사도는 죽지 않고 구출받게 되었는가?

  왜 당시 동일한 주님의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순교를 했지만 베드로는 구출을 받았는가?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너무 차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두 사람의 갈 길이 달랐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야고보의 순교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지만 베드로의 경우는 교회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의 경우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기도할 틈도 없었지만, 베드로는 옥에 갇힌 후 그가 죽기전까지 얼마동안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교회의 기도로 인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두 사람이 가야할 길이자 그들의 사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선교에는 사실 순교의 제물이 먼저 드려진다. 그래야 악한 자(사탄마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빼내어 건져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들 중에 야고보가 먼저 순교의 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전부 흩어져서 이방인 선교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야고보의 사명은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었고, 베드로는 더 많이 이방인 선교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낱 참새가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되지 않는데, 어찌 사도의 죽음이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발생할 수 있겠는가? 야고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따라 주님나라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 먼저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셋째, 자기들이 했던 말들 속에서도 약간의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실 성질이 급했고 욕심이 많은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처음 주님께서 그들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줄 정도였다(막3:17). 그런데 주님께서 공생애를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자기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되는 일은 아버지께서 행하실이라고 하시면서, 그것보다도 먼저 주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여기서 '잔'과 '세례'는 고난의 잔이자 죽음의 세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순간에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동생 요한은 끝까지 주님을 지켰지만 형 야고보는 도망치고 만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죽음의 세례를 먼저 받은 것이며, 요한은 이미 바쳐진 자이므로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었다(마26:33). 그리고 자신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마26:35). 그러므로 그는 언제든지 주님과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날도 감옥 안에서도 쿨쿨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도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우리도 주님 나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다가, 밤에 잠자듯이 주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자. 죽음의 순간도 우리가 주님께 기도한대로 되어질 것이니 말이다. 

 

 

2022년 10월 07일(금)

정병진목사

 


Articles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