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강해(105) 한 분 하나님의 벗(친구)이 되는 자가 받을 구약의 축복(창22:15~24)_2023-02-13(월)

by 갈렙 posted Feb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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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rV4DSx214P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05) 한 분 하나님의 벗(친구)이 되는 자가 받을 구약의 축복(창22:15~24)_2023-02-13(월)

https://youtu.be/rV4DSx214PM

 

1. 신약시대 한 분 하나님이셨던 우리 주 예수께서 당신의 친구들이 되는 자들에게 약속한 축복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하루 남겨두시고 제자들과 함께 가지셨던 성만찬의 자리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이제부터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켜 더이상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들려주신 모든 말씀들을 다 제자들에게 알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이다(요15:15). 그리고는 하나님의 벗이 되는 자들이 받을 축복을 6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로, 주요한 축복으로는 기도 응답의 축복성령 동행의 축복 그리고 죽은 후에 천국집 거주의 축복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보조적으로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의 축복열매 맺음의 축복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축복을 약속하셨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dongtanms.kr/72716을 참조). 

 

2.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이셨던 친구가 된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의 친구가 된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오직 한 사람만 나오기 때문이다(사41:8). 그는 친히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던 사람으로 그는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러한 삶을 먼저 살아본 사람이다. 아브라함에 관한 이러한 축복의 이야기는 창세기 18장부터 비로소 시작되며 22장에 가서 완성이 된다. 그러나 신약은 다르다. 신약시대에는 누구든지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이야말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 자신이요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축복을 주어지기 때문이다(요15:15, 17:20).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고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구약시대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던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은 무엇이었는가?

  구약의 말씀은 일종의 씨앗이요 그림자와 같다. 고로 열매와 실체는 바로 신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에 분명한 선이 잘 안 보인다면 신약을 통해서 거꾸로 적용해 보면 그것이 잘 보이게 된다. 고로 우리는 신약시대 스스로 계신 예수님(요13:19)으로부터 '친구'라고 일컬음을 받았던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의 친구라 일컬음을 받았던 아브라함이 장차 받게될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역시나 예수님의 친구된 제자들이 받을 축복을 아브라함이 먼저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약속받았다면, 아브라함은 아들로 오실 메시야를 약속받았다고 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 곧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러자 그는 한 분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조카 롯을 살려 달라는 기도였다. 그랬더니 창세기 19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기도한 대로 천사가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기도한 대로 천사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출한 것디다. 롯이 미적거리자 천사는 그의 손을 붙잡아 끌어서라도 그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준다. 그리고 창세기 21장에 가서는 블레셋 왕(그랄왕) 아비멜렉의 아내와 여종들의 태가 열리고 닫히는 것 역시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자들은 이렇듯 '기도 응답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 가면 드디어 '아들 탄생의 축복'도 받게 된다. 약속에 따라 이삭이 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어서 아브라함은 천국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마8:11).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키심과 보호하심, 열매 산출, 기쁨과 평강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서 복을 받게 된 것이다. 

 

4. 여호와께서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축복을 맹세하셨는가?

  그날 여호와의 천사는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하자 즉시 하늘에서부터 그의 이름을 다급히 불렀다. 이때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들려주시는 놀라운 맹세의 말씀을 듣게 된다(창22:16~18).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때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이전과는 좀 다른 종류의 말씀이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셨던 말씀들은 거의가 다 '약속'에 관한 말씀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맹세'란 어떤 약속을 할 때에 그것에 대한 최종 확정이라고 언급하였다(히6:13~16). 사실 사람이라 할지라도 맹세할 때에는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두고 맹세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맹세할 때에는 누구나 자기보다 강하거나 동등한 존재를 두고 맹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복을 주고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때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을 두고 맹세하셨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었다(창22:16). 여기에는 놀라운 한 분 하나님의 비밀을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시되, 자기 아들(성자)을 가리켜 맹세하지도 않았으며, 천지를 가리켜 맹세하지도 않으셨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맹세를 하셨기 때문이다(창22:16).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크거나 동등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한 분 곧 여호와로 일하신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일하고 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온전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에는 그렇게 표현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구약시대에는 아직 성자께서 밖으로 나와서 활동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에 관하여 보증하기 위한 맹세를 하실 때에, 다른 어떤 존재를 두고 맹세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두고서 맹세를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창22:16). 이는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분으로 존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5. 여호와의 사자는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을 특별히 강조해서 말했는가?

  그날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으로 제사드렸던 장소 곧 모리아의 한 산이었던 골고다 언덕 위의 하늘로부터 어떤 음성이 들렸다. 그것은 천사가 말하는 음성이었지만 사실은 여호와께서 그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크게는 2가지다. 하나는 '아브라함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맹세요 또 하나는 '아브라함의 씨'에 관한 하나님의 맹세이다(창22:17~18). 그중에서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너를 반드시 복 주고 반드시 복 주리라"는 맹세를 하셨다. 그러니 이후로 아브라함은 범사에(모든 일) 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창24:1). 기도만 하면 다 응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씨에 관한 맹세의 말씀을 축복으로 더 받았다. 그것은 3가지였다. 첫째, 아브라함의 씨가 반드시 번성케 될 것이고 또 반드시 번성케 될 것이라고 하는 맹세였다. 그것도 하늘의 별들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들과 같이 많이 주시겠다고 하셨다. 둘째, 아브라함의 씨가 인류의 대적들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셋째, 천하 만민(이 땅의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출22:17~18). 이러한 3가지 축복에 관한 맹세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 가겠다. 

 

2023년 02월 13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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