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11)] 그물 깁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 요한,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마4:21~22)_2023-07-20

by 갈렙 posted Jul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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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P5Nvdp-swlc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르심(11)] 그물 깁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도 요한,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마4:21~22)_2023-07-20

https://youtu.be/P5Nvdp-swlc [또는 https://tv.naver.com/v/38328998]

 

1. 사도 요한, 그는 누구인가?

 사도 요한 그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자로서 제자들 중에 3대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에 속하는 제자다. 그는 A.D5년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며(사도 바울도 요한과 나이가 같았을 것으로 추정됨), A.D.98년경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2제자들 중에 순교하지 않고 자연적인 수명을 채우고 주님 앞으로 간 유일한 제자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자신의 아버지 세베대와 자신의 형 야보고와 함께 물고기를 잡고 살았다. 그의 집안은 조금 부유하였고,  가버나움과 예루살렘 두 곳에 각각 집이 있었다. 그리고 고기잡이를 나갈 때에는 품꾼을 쓸 정도로 살았다. 자신의 어머니(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마리아)의 친동생이며, 자신의 외할머니는 제사장의 딸이었다. 그리하여 요한은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다. 어느 날 회개의 세례를 외치는 세례요한을 찾아갔다가 그의 제자가 되었고, 이어서 세례 요한의 소개로 다시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과 더불어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렸다(갈2:9). 요한복음은 요한 자신이 쓴 복음서인데, 그 책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며, 자신을 가리켜 그냥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언급했다(요13:23). 훗날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랑의 사도'라고 일컬었다. 

 

2. 사도 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사랑의 사도'라고 칭함을 받았는가?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성질이 불같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형이었던 야고보와 더불어 그 둘을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고 별명을 지어 주었다(막4:17). 어찌나 성질이 급했던지,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 가셨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그들을 멸하라고 청원하기도 했다(눅9:52~54). 그리고 이들은 야망도 대단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무엇인가를 하신다고 하자, 그만 자기들을 주의 나라에서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막10:35~37). 그러나 그때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말씀에 대뜸 응답한다는 것이,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기들은 어떤 고난도 달게 받고 어떤 죽음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말았다(막10:38). 그런데 예수께서 붙잡혀 가자 12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요한은 다시 주님께로 간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본 유일한 제자가 된다. 그러나 야고보는 자신이 한 약속을 주님께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야고보는 주님의 12제자들 중에가서 가장 먼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A.D.44년경), 사도 요한은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불같았던 그의 성품은 이내 온유와 겸손으로 바뀌어졌고, 늘그막에는 믿는 형제들로부터 '사랑의 사도'라 일컬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성품도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3. 사도 요한은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첫 네 명의 제자들(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형인 야고보와 함께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때는 그들이 자기의 아버지의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였다(마4:21~22).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그물을 깁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물을 깁다'라는 동사는 '카타르티죠'라는 동사인데, 이 동사의 뜻은 '준비하다. 채비하다'는 기본 뜻에서 '갖추다. 보충하다. 메꾸다' 더 나아가서는 '회복하다. 복구하다. 수선하다. 손질하다' 그리고 '완성하다'라는 뜻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사도들이 다 채우지 못했던 부족한 것을 메꾸면서 결국 사도들의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 

 

4. 사도 요한은 어떤 사역을 보충하며 완성하였는가?

  사도 요한은 크게 2가지 면에서 사도들의 사역과 성경 기록을 보충하면서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사도들의 사역을 보충하고 완성한다. 먼저는 베드로를 도와서 초대 교회의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파워 있는 설교를 통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언할 때 곁에서 기도로 그를 지원하였고, 사마리아에 가서 안수함으로 그들이 성령받게 하는 일로 사도 베드로를 돕는다. 그리고 둘째로, 사도 바울도 돕는데, 이는 바울이 개척하여 세웠던 에베소교회를 이어받아서 그곳에서 사역했기 때문이다. 사실 에베소교회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서, 3년 동안 지도자들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4차 전도여행 때 로마에 죄수로서 붙들려 갔다가, 5차 전도여행 때에 잠시 풀려남으로 서바나로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목회자로 파송한다. 하지만 디모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한다. 그러자 그 빈 자리에 요한이 들어간다. 그리하여 수십 년간 그곳에 머물면서 성도들을 돕는 사역을 한다.

  둘째, 요한은 성경을 보충하고 완성한다.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사역하고 있을 때, 그는 성도들로 예수님의 행적을 남겨 주기를 부탁받는다. 그리하여 A.D.90년경 복음서를 저술하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서다. 사도 요한은 기존의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중심으로 복음서를 기록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약 70%가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공관복음서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복음서로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요11:27)라고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다(요20:28). 그리하여 공관복음서를 보충하고 복음서 기록을 완성한다. 그런데 요한은 도미시안 황제가 통치하기 시작하자 갖은 핍박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모든 로마의 백성들은 다 로마 황제를 '주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경배하였지만,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직 예수님에게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주동자로 붙들려 기름 가마에 던져 넣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해를 입지 않게 되자, 결국 그를 밧모섬에 유배시킨다. 그리하여 A.D.95년경 밧모섬에서 환란과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요한계시록을 저술한다. 예수께서 오셔서 반드시 악한 무리는 심판하시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을 주실 것임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런데 그가 쓴 요한계시록은 사실 구약시대로부터 계시된 여러 가지 하늘의 계시들의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구약에 나오는 모든 계시들을 총동원하여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도 요한은 서신서를 보충하고 완성하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이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사랑의 실천을 보충하기 위해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를 기록한 것이다. 그 책들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으로 인하여 독생자를 통한 구원이 이뤄졌으니, 우리 성도들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당시 교회를 흔들고 있던 이단으로서 영지주의 내지는 가현설 이단을 반박하고자 서신서들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5. 사도 요한의 부르심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고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부르심을 한 마디로 '돕는 부르심'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개입함으로 인하여 부족한 것이 메꾸어졌고, 회복되었으며 보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완전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공관복음서만 있고 요한복음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소홀히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만 있고 요한이 쓴 서신서들이 없다면, 아가페의 희생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지주의 내지 가현설등 이단의 공격도 이겨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요한계시록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는데 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쓴 계시록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강한 지 약한 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의 재림의 때까지 우리가 과연 무슨 일을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누군가를 도와서 그 사역이 구멍난 것을 메꾸고 약해진 것은 회복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여, 사역과 계시를 더욱 더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3년 07월 20일(목)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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