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5)]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려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고후12:7~10)_2023-09-06(수)

by 갈렙 posted Sep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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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1R5ld5OOs0s

2023-09-06(수) 9월 특별새벽집회 셋째날

제목: [하나님의 은혜(5)]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려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고후12: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R5ld5OOs0s [또는 https://tv.naver.com/v/40839913]

 

1. 들어가며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은 것을 두고 과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주 특별한 말씀이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든지 무한정으로 다 퍼주는 것을 지칭하는 것일까? 조건없이 거저 주어진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은혜가 은혜가 된다는 개념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결국에 우리를 저 천국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고, 천국에서 상을 받게 해 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내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은혜가 마지막에 가서도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은혜가 은혜로 끝나기 위하여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그에게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사탄의 사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어로 '앙겔로스 사타나'라는 것으로서 그 뜻은 '사탄의 천사'를 가리킨다. 곧 사탄이 쓰는 귀신을 가리킨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사도 바울에게 귀신이 들어가서 역사하도록 허용하셨다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허용하셨던 '사탄의 천사'인 귀신은 바울에게 어떻게 역사하였고 또한 그에게서 어떤 결과를 낳게 했을까? 사탄의 천사인 귀신이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을 때, 바울은 병이 들었고 그래서 약해졌다. 바울은 사탄의 사자인 귀신의 공격을 받아서 자신에게 허약함들(아스테네이아)이 발생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도 약함이 한 가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허약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의 허약함들 안에서"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사용했다. 이중에서 '허약함'이라는 단어는 약함, 허약함, 병약함이라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는 '질병'이라고 해석되는 단어이다. 고로 그는 귀신의 공격을 받아서 여러 가지 육체적인 질병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3. 바울에게 허락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어느 날 바울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터 어떤 신령한 은사를 받게 된다. 그때는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아마 고향에 가 있으면서 기도할 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그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보았고 주님으로부터 계시들을 받았다(고후12:1). 그중에는 그가 입신하여 셋째 하늘에 다녀온 것도 있고, 이 땅에 내려보낼 영혼이 자라고 있는 낙원에도 다녀온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사도 바울이 본 계시들은 실로 엄청난 것들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그의 몸에 사탄의 사자인 귀신의 침투를 허용하셨다. 그러자 바울에게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어떤 질병이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갈라디아서에 기록해 놓았다. 그가 갈라디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갈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곳에서 그 병을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이 대우했었다고 말했다(갈4:14). 그래서 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애쓰는 바울에게 자신의 눈이라도 떼어서 주고 싶어했다고 말했다(갈4:15). 이는 그의 허약함에는 눈병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속에 있는 영들은 오직 눈병을 일으키는 귀신만 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영들은 더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남과 논쟁할 때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자만의 영'도 있었을 것이고,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우쭐대고자 하는 '교만의 영'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가지던 있던 '혈기 분노의 영'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그의 초기 사역에는 그 영이 아직 그에게서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2차 전도여행을 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피차 싸우는 것을 보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그 몸에 남겨두시어(혹은 들어가도록 허락하시어) 그를 적절하게 통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귀신의 공격을 받아 자신에게서 나타난 허약함과 질병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바울은 그것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 준다는 것을 알았다(고후12:7). 그러자 바울은 그것들이 자기에게서 떠나가도록 세 번이나 힘써 간구했다. 그것을 거둬가 달라고 한 것이다. 귀신과 질병을 거둬가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환상도 보았고  또한 계시도 받았으며, 더불어 거의 모든 성령의 은사를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직접 본인이 그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주님께 처리를 부탁하신 것일까? 그것은 그가 가진 약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많은 은사들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갖지 않은 한 가지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영 분별의 은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귀신을 보는 은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와 바울에게 공통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능력 행함의 은사가 강했다. 그래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성전 미문의 장애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씀을 전하는 파워가 대단히 강했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한 번에 3천 명, 5천 명이 회심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귀신을 쫓는 은사도 강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이러한 은사가 있었겠지만 그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었고, 장차 되어질 일을 알고 기도하면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영 분별의 은사가 없었다. 오히려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였던 실라는 선지자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 분별의 은사도 가지고 있어서 그를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빌립보 성에서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실라의 도움을 받아 그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그 귀신을 쫓아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바울이 귀신을 보는 은사가 있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귀신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예수님께 사탄의 사자를 쫓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5. 주님께서는 왜 바울의 기도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대답하셨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한 것이니 그 문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주어졌던 능력은 약할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채워져서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고후12:9). 이는 바울에게 모든 은사와 능력들이 공급되었을 때에 그가 걸어갈 길이 주님의 눈에 선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은사와 능력을 허락했던 루시엘이 그만 스스로 교만해져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귀신을 보는 은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주지도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가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그가 우쭐대려고 할 때마다 귀신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약한 눈을 비롯하여 온 몸의 어딘가가 아파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지 않고 질병을 계속 허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바울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울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다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이 똑똑하고 잘나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마귀에게 실컷 쓰임받다가 버림받아서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바울을 극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질병을 고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교만함을 회개했으며,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모든 것이 은혜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은혜가 되어서 은혜로운 결말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설령 자신이 아무리 주님께 아뢰어 문제 해결을 구했지만 그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 것도 내게 가장 적합한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그때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서 귀신을 볼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셨다든지 아니면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버리시고 그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다면 그는 틀림없이 마귀처럼 스스로 교만해져서 타락으로 빠져들어 갔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은혜의 마지막 관문은 내가 그렇게 간구를 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은 것도 나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있어야만 그것이 나 자신이 타락하는 것을 막아 주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님의 온전한 사역자로 세워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 나아가서 내가 가진 은사와 능력은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아무리 귀하고 위대한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때그때마다 주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이 없을 때에 자기에게 나타나게 될 부끄러움이나 연약함 그리고 질병일지라도 그것을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고 사역자가 되었으며, 은사를 받았으니 주님의 일을 하면서 받는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 그리고 핍박과 조롱까지도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은혜의 모든 관문을 잘 통과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정 나에게 공급되는 것만이 꼭 은혜인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교만해지다가 죄를 짓게 되어 그만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적절하게 통제해 주시는 것도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다가올 수 있어야 정말 은혜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주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도 주셨고, 직분도 주셨으며, 은사와 능력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 때문에 고난과 역경, 핍박과 조롱을 조금 당하는 것을 가지고서, 주님께 항변하고 대들고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면 그것은 은혜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안 들어주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야, 내가 받은 은혜가 영원히 나에게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때로는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이 응답을 받은 이후, 더 이상 자신에게서 귀신을 떠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질병을 고쳐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질병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의사 누가를 붙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눈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함 가운데 신약성경 13권을 저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은혜였기 때문이다. 

 

 

2023년 09월 06일(수)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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