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치유 5단계] 성령세례와 방언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방언 시작하기(행11:1~17)_2023-09-14(목)

by 갈렙 posted Sep 14,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TG7OkXvThPc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축사치유 5단계] 성령세례와 방언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방언 시작하기(행11:1~17)_2023-09-14(목)

https://youtu.be/TG7OkXvThPc [또는 https://tv.naver.com/v/40877111]

 

1. 쫓아낸 귀신을 못 들어오게 하고 나았던 병을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한 번 쫓아낸 귀신을 다시는 못 들어오게 하고 나았던 병을 다시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것에 주의하면 된다. 첫째, 회개하면서 십자가를 세우고 자기의 몸에 보혈을 붓고 바른다둘째,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한다셋째, 불세례를 전이하는 사역자의 안수로 불세례를 받는다. 그러면 귀신이 다시 들어오기가 어렵고 병도 재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인데 굳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다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기 마음속으로 모셔들이는 것을 가리킨다(요1:12, 롬10:9~10).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성령께서 자기의 마음 가운데 좌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시간차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령의 내주와 더불어 동시에 성령세례를 같이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 나온 사도행전의 사례를 보면,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세례가 각각 따로 있던 사례들이 나온다. 그것은 사마리아교회(행8:4~17)의 경우와 에베소교회(행19:1~7)의 경우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가 같이 일어났던 것은 예루살렘교회(행2:1~4)와 이방인 고넬료 가정(행10:44~46)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능력을 받아서 남들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려 할 때에도 역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한 후에 성령세례를 받은 자라야 성령의 권세와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도행전에 기록된 말씀에 따르면, 초기 교회 성도들은 예수믿는 것 이외에 성령세례를 같이 받아서 능력을 행사하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행1:8). 

 

3. 자기 자신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나 자신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사실 자기 자신이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인하려면 가장 먼저는 성령세례가 어떤 것인지 그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성령세례'는 고넬료 가정이 받은 것이라고 나오고(행11:15~17),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나온다(행11:15, 1:4~5, 2:32,38).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성령세례'에 관한 정의다. 곧 '성령세례'란 성령이 믿는 이들 위에 부어지심으로 성령받은 자들이 성령에 의해 장악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행10:44~46, 2:33). 사실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귀신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성령세례를 받게 된다면 그는 이제 성령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주도적이거나 귀신 주도적이었던 자기 자신의 삶이 이제는 성령 주도적인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 결과를 통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데, 사도행전을 살펴보니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가장 먼저는 방언을 말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방언'('글로싸')이라는 것은 외국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전혀 생소한 말로서, 영이 살아나서 말하는 딴 언어이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로,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방언 이외에 다른 은사들과 능력들까지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교회는 방언을 말하였는데, 그것도 은사 방언으로서 대인 방언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치유 은사로 인해 기적도 나타났다(행3:6). 즉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던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말했던 '대인 방언'이라는 것은 방언을 하는 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자기 나라의 언어로 듣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서도 역시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으니, 고넬료 가정에서는 방언 찬양의 은사를 받았고(행10:46), 에베소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바 있다(행19:6). 

 

4. 성령세례는 어떻게 해야 받는가?

  그렇다면 초기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았던 것인가? 그것은 총 3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오로지 성령세례 받기를 사모하고 기도했기 때문이다(행1:14). 이것은 예루살렘교회의 경우인데 그때 그들은 회개도 같이 했다(행2:38). 고로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가장 먼저는 회개해야 하고, 이어서는 회개하면서 간절히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성령세례받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고, 그분의 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 베드로가 가서 복음을 전해 줄 때에 일어났다. 그래서 물세례도 받지 않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먼저 받음으로 하나님께 인쳐진 자가 된 것이다. 셋째, 예수님만 믿고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을 경우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가서 안수하면 그렇게 된다. 사마리아교회와 에베소교회가 바로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사마리아교회는 빌립이 가서 복음을 전했으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들인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그들을 위해 성령받기를 기도하면서 안수를 했더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행8:12~17). 그리고 에베소교회는 아볼로에 의해 복음을 받았으니 성도들은 요한의 물세례만 받고 있었다. 그러자 사도인 바울이 가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준 후에,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행19:1~7).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아직 성령세례도 받지 않은 자라면 자기 자신에게서 귀신을 쉽게 쫓아낼 수가 없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귀신이 잘 나가는 것이다. 

 

5.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고 병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왜 필요한가?

  방언을 말했다는 것은 단지 성령의 기초 은사를 받았다는 기쁨 정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주어지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자임을 알려 준다.

  그러면 왜 방언으로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방금 언급했듯이 그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표적이자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그냥 따라오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방언('글로싸')이란 사실 외국어가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전혀 딴 언어다(행2:4). 사도행전 2장에 예루살렘교회는 성령세례를 받고 딴('헤테로스', different) 방언('글로싸')을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그들이 말했던 방언은 '대인 방언'이라는 방언이었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듣는 이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언어로 듣는 방언인 것이다. 그러나 방언에는 '대인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방언'도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만 알아들으시는 방언이다. 그런데 모든 방언은 기본적으로 대신 방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대물 방언'도 있으니 이것은 방언을 말하는 자가 동물과 방언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대국 방언'이라는 방언도 있다. 이것은 방언하는 자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둘째로, 방언은 모든 은사를 열어 주는 은사가 되기 때문이다. 즉 방언의 은사는 시작의 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시작으로 사람은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 분별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셋째로, 방언은 자신의 영을 건축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고전14:4). 즉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자신의 영이 강건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영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영권이 올라간다. 넷째로, 방언은 사람만이 아니라 귀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귀신도 사실 방언을 싫어하고, 영권이 강한 자가 방언을 하면 방언을 매우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언하는 자가 영권이 강해서 대적 방언(=전투 방언, 능력 방언)을 할 수 있다면, 귀신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나님께 드리며, 곧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방언이 영의 언어로, 영의 대화이자(고전14:2), 영의 기도이며(고전14:14), 영의 찬송이자(고전14:15)(방언 찬양), 영의 축복기도이기 때문이다(고전14:16).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게 되면 성령과 내 영이 하나가 된 바로 그 영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됨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된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방언으로 기도해서 자신의 영권을 늘려 나가야 한다. 특히 대적 방언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2023년 09월 14(목)
정보배목사


Articles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