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새벽기도회][앵콜방송] 성령의 은사(03) 방언을 말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고전14:2~4)_2023-09-28(목)

by 갈렙 posted Sep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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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8(목) 온라인새벽기도회

제목: [앵콜방송] 성령의 은사(03) 방언을 말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고전14: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dg9IquMWjg

 

  방언을 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어떤 이는 기도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귀신을 쫓아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유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방언이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 뜻은 대체 무엇인가? 왜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기자신을 건축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면 방언의 놀랍고도 신비한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1. 들어가며

  예수믿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주일성수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만이 필요한 것이었다면 성령께서는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의 성령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에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3년반 동안이나 들어서 배웠던 말씀으로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가 대체 무엇이며, 그중에서도 방언의 은사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수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그것을 강조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세상과 그리고 그 대상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째, 이 세상은 이미 마귀의 소유가 되어서 마귀의 손아귀 아래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요일5:19). 그러므로 마귀의 손아귀에서 무엇인가를 빼내려면 최소한 마귀보다는 능력이 커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이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한 것이다. 둘째, 이 세상으로부터 사람을 구출해오려면 최소한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와 그의 천사들(귀신들)보다는 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어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고로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사로 무장한 후에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강퍅한 세상사람들의 마음이 문이 열려지게 하려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어떻게 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며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이것은 정의하기가 쉽다는 이야기이지, 실제가 쉽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성령세례 받기를 사모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맨 처음으로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는 120명의 성도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했다(행1:14). 그랬더니 정말 10일 후에 그들 위에 성령세례가 부어졌다.  

 

4. 성령세례받은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최초의 성령세례 사건에서는 "방언"의 은사가 선물로 주어졌다(행2:4). 그리고 고넬료 가정에도 방언의 은사가 주어졌으며,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했을 때에는 그들에게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베풀어졌다. 그렇다면, 성령세례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에는, 방언과 예언의 은사 외에도 7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일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 분별함의 은사, 각종 방언말함의 은사, 방언들 통역함의 은사"가 그것이다. 물론 로마서 12장이나 에베소서 4장에 보면, 일반적인 은사나 직임으로서의 은사가 더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들 중에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단연 으뜸인 것은 역시 고전12장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특별 은사들인 것이다. 

 

5. 방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오늘날까지 방언의 은사는 상당한 논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방언의 은사를 "외국어"로 보는 입장과 더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로 보는 입장이 서로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언의 은사를 외국어로 보는 이들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때 그들이 말한 것은 외국어였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예루살렘 안에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15개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저마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언어로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행2:6,8). 나름대로 설득력은 있지만, 그것은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들었는지, 그날에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외국어로 말하게 하셨는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문맥을 통하여 살펴보면, 그날 120명 성도들은 질적으로 다른('헤테로스) 언어들로 말했으며, 또한 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이 그들이 술취한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고(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술취했다고 말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4장이 바울이 말했던 방언과 똑같은 단어("글로싸")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고로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가 방언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와 관련하여 방언에 대한 의미는 이전에 전했던 말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https://youtu.be/jnYuRgy27mg). 

  그렇다면, 바울 자신도 말했고, 에베소교회의 성도들도 말했던 방언 곧 "글로싸"라는 대체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힌다. 그것에 대한 설명은 2가지다. 첫째, 방언이란 말하는 은사로서,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말이며, 이것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14:2). 그리고 이것은 자신이 영으로 하나님과 비밀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고전14:2). 그리고 둘째, 방언이란 거듭난 사람이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고전14:14). 그렇지만 그 방언을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에는 열매 맺을 수 없다고 하였다. 고로 우리는 방언이란 "거듭난 사람이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고 기도하는 영의 언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6. 방언의 은사는 어떻게 표현되고 표출되는가?

  그렇다면, 방언은 어떻게 표출되는 은사인가? 그것은 총 3가지로 표현된다. 첫째, 방언은 말하는 것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고전14:2).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성령세례를 받는 장면이 4번에 걸쳐 나오는데, 그중에서 3번은 분명하게 그들이 방언을 말했다고 언급하고 있다(행2:4, 10:46, 19:6). 그리고 그때 주어진 방언의 은사는 "방언을 말하는(발설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고로 우리는 방언의 은사가 "말하는 은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방언의 은사는 기도하는 것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고전14:14). 즉 방언은 기도하라고 주시는 은사라는 것이다. 즉 방언은 기도의 한 방편으로서 활용되는 은사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이지만 이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기도할 때에는 방언으로만 기도하지 말고, 반드시 마음으로도 기도하라고 권면하였다(고전14:14~15). 셋째, 방언의 은사는 찬양으로도 표현된다. 그렇다. 방언을 많이 말하게 되면 아름다운 천사의 음률같은 찬양으로도 발설된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음률은 정말 멋있는 것이 방언찬양인 것이다. 

 

7. 방언은사의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사도바울은  고린도전14장에서 성령의 9가지 은사 가운데 신령한(영적인) 은사들 3가지를 언급한다. 그것은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 그리고 더불어 "방언통역"의 은사다. 그중에서도 "방언"의 은사는 자기의 덕을 세우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하였고, 예언의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정의하였다(고전14:4).

  그렇다면, 방언이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이 말은 "자기자신을 건축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방언이 사람의 덕망을 좋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짓고 건축하고 세우는데 유익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세운다"는 헬라어 단어는 어떤 뜻인가? 헬라어 단어로 "세운다"는 단어는 "오이코도메오"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짓다. 세우다. 건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파생되어서 2가지 의미가 더 쓰인다. 하나는 "다시 짓다. 다시 세우다. 다시 건축하다"는 뜻이다. 즉 "재건하다"는 뜻이 2차적인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으니 그것은 "복구하다. 복원하다"라는 뜻이 더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세운다"는 말은 위의 3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방언이 자기 자신을 건축한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 아무 것도 없는 자에게 자기 자신을 건축하게 한다는 뜻이요, 둘째로 잘못 지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허물고 다시 지을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며, 셋째로 이미 자기자신이 무너져 있는 자는 복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영을 건축하여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게 만들어주는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고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오직 방언의 은사만이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며, 이미 허물어져 있는 자신의 영을 다시 복구하게 만들어주고, 잘못 지어진 것은 다시 짓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8. 방언의 은사는 실제적으로 자기자신을 건축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방언의 은사는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방언을 말하는 당사자는 상당히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방언을 말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정작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의 은사로서 말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방언통역을 40년 이상 20만명 이상에게 하였던 방언통역자에 의하면(이런 분은 우리 나라에 몇 명 없다), 방언할 때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나온다. 요약하면, 방언의 약 10~20% 정도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며, 방언의 80~90%정도는 하나님과의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비밀로 대화를 한다는데, 그것은 최소한 그것이 매우 가치가 있고 소중하고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대화하는데 하찮은 것을 가지고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실제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먼저, 방언하는 자가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방언할 때 그것이 기도인 것은 자신의 영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기자신의 미래를 위한 소망의 기도인 것을 알 수 있다. 목회자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을 천국에 잘 데려가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한다. 또한 쓰임 받되 오랫 동안 쓰임받게 해 달라는 기도도 있다. 그리고 중학생의 방언기도를 들어보면, 자기의 부모님이 꼭 예수믿고 천국가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 방언의 대부분은 사실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영에게 무엇을 말씀하신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되어질 일들 곧 나의 바람직한 것들 곧 사명같은 것을 미리 알려주거나 또한 그 일을 위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너는 결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급하게 서두르지도 말라. 무엇을 안다고 교만하지도 말라.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감사하라. 영적으로 깨어있는 종들과 함께 하라. 잘못된 것을 분별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하라." 그래서 주님과의 대화는 상당 부분이 책망과 권면과 위로의 말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가끔씩은 조건적인 약속의 말씀도 주신다. "네가 교만하지 않고 충성한다면, 얼마 후에는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안겨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도 붙여줄 것이다. 아니 구하지 않는 것까지도 줄 것이다" 등등이다. 그리고 장로들에게는 "주의 종을 대적하지 말라.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일반 성도들에게서는 누구를 미워하거나 비난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듯 방언통역을 해보면,  자신의 영혼이 미래에 되어질 아름다운 모습을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직한 모습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조건적인 축복의 말씀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자기 자신을 건축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자기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미리 기도로 아뢰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미리 대화로 듣기 때문이다. 

 

9. 부가적으로 방언을 많이 했을 때 어떤 유익을 받는가?

   방언을 하게 되면 부가적인 유익도 더러 있다. 이것은 방언을 주신 원래의 목적은 아니나, 참고할 만하다. 첫째, 방언을 하게 되면 자신은 이미 1차적으로 구원받은 자요 또한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유익하다. 둘째,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은사가 추가로 더해지기  때문에 유익하다. 방언을 말하는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구하면 주시는 은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언'의 은사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한 방언을 알아듣는 은사다. 그리고 남이 하는 방언의 은사를 알아듣는 은사가 있으니, 그것을 '방언통역'의 은사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방언의 은사는 성령세례의 가장 기본적인 은사이면서 다른 은사의 문을 여는 은사이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는 계속해서 다른 은사들을 더 받게 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먼저 방언을 하고 나서 치유의 은사와 기적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빌립집사는 방언을 하고 나서 귀신쫓는 은사와 병고침을 은사를 받았다. 그래서 그것을 사용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방언을 하고 나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았고, 영분별의 은사도 받았으며, 기적과 치유의 은사도 받았으니, 자기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귀신들린 사람이나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사람이 나았다. 셋째, 뿐만 아니라 방언을 하게 되면 기도를 더 잘 할 수 있고 더 충분히 할 수가 있어 유익하다. 왜냐하면 모국어로 기도하다가도 기도거리가 다 떨어지면 더 이상 기도할 수가 없는데, 그때에 방언으로 연이어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방언의 내용을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귀신도 방언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귀신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방언이므로 유익하다. 왜냐하면 그 때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귀신들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10. 방언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방언은 만능인가? 아니다. 방언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방언를 아무리 말해도 내게 소용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가 있다. 첫째, 방언을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만약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자신이 지은 죄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영적인 진보도 이룰 수 없고, 속에 들어온 귀신도 쫓아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둘째, 방언을 아무리 말한다고 해도 스스로 하나님께 찬양과 시간과 물질로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적을 것이며,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상급도 작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 아무리 방언으로 많이 기도해도, 옛사람의 성품을 가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지 않는다면, 더러운 자신의 성품을 절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한다거나 방언을 많이 말한다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자랑하는 자랑거리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 겸손해야 한다. 

 

11. 나오며

  그렇다. 방언은 자기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며 이미 허물어진 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매우 유익한 은사다. 그러므로 성령세례가 나타났던 곳에 대부분 다 방언의 은사가 꼭 나타났다. 방언의 은사가 있어야 자기를 먼저 건축하여 자신의 영혼도 지켜내고 남의 영혼도 구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외국어라고 말하거나 헛소리라고 말하거나 귀신의 장난이라고 말하는 자는 이러한 혜택들을 결코 누릴 수가 없을 것이다(물론 자기자신의 자유의지의 선택사항이지만...). 사실 방언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기초를 든든히 세우며 무너진 것을 수축하고 다시 시작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인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내 영이 주님과 비밀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께 자신의 소원을 미리 아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금해서는 아니 된다(고전14:39). 물론 방언을 말하는 것만이 만능이 아니며, 방언이 천국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도 아니다. 다만 방언이 자기 자신을 건축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은사이니만큼 교회 안에서 질서를 따라 방언을 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하여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 놀라운 영적인 진보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2023년 09월 28일(목)

정보배목사

[크기변환]2023-09-28 성령의 은사(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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