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16)] 왜 자기 혼을 부인하고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접촉해야 하는가?(골1:24~29)_2024-01-22(월)

by 갈렙 posted Ja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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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reXl6uoWcD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경륜(16)] 왜 자기 혼을 부인하고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접촉해야 하는가?(골1:24~29)_2024-01-22(월)

https://youtu.be/reXl6uoWcD0 [또는 https://tv.naver.com/v/46736944]

 

1. 들어가며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은 생명 분배와 땅의 분배다. 그중에 생명 분배의 과정은 3단계로 진행된다. 먼저는 영에게 생명이 분배되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혼에게 생명이 흘러가는 단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육체를 생명이 장악하는 단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 분배의 핵심은 역시 영 안에 생명이 공급되는 것이다. 이때 생명은 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영 안에 들어온 생명을 어떻게 혼 안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영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로 하여금 혼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하시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2가지 방법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예수 믿기 이전의 모든 인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자신을 자기 자신 곧 자아(self)가 주관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곧 자아는 혼(souls)이라는 것으로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혼의 생각으로 감정을 느끼며 의지로 결단하여 행동에 옮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혼이 중립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선조인 아담이 범죄한 이후 사람의 육체 속에는 귀신들이 들어 있어서, 귀신들이 자꾸 혼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의 노예가 되어 죄를 지으며 살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람은 자신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귀신에게 묶여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 선을 택하거나 악을 택할 수 있는 중립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 이전의 나의 주인은 분명 나 자신이었으나 나 자신은 결코 중립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양심도 여러 환경을 접하면서 무디어지고 말아서 죄를 죄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양심에 화인맞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혼은 이미 악하게 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창6:5), 이미 부패해졌으며(딤후3:8) 더러워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딛1:15). 그러므로 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다가 영의 양심이 합쳐진 것)도 역시 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만약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벌하는 자가 없다면 계속해서 더 죄를 범하고 살 것이다. 

 

3. 부패한 인간의 혼을 변화시켜 온전하게 하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부패한 인간의 혼을 원래 창조된 선하고 살아 있고 깨끗한 혼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개입을 하신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는 방식인 것이다. 이때 생명은 죽고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던 예수께서 우리의 영 속에 바람처럼 호흡처럼 들어오심으로 분배해 주신다. 그래서 드디어 혼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자신의 영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혼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2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의 이전의 혼(자아)을 부인해야 한다(마16:24). 이는 이전에 자신을 주장하던 혼이 자기 자신을 주장하도록 계속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이전의 자아를 죽음에 넘겨 더 이상 새 사람된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아무든지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16:24). 그렇다. 혼은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혼이 이미 마귀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혼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혼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마16:24, 갈2:20). 즉 혼을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사람을 죽음에 넘기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했던 말은 그에게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도 포함되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의 혼을 십자가로 가지고 가서 자신을 죽음에 넘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전의 혼(자아)은 반드시 죽음에 넘겨야 한다. 이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여기는(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마16:24). 여기서 주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자신의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따라가는 말씀을 오직 그분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으로만 인식하여,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로서 주님을 따라가는 방식이고 과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믿고 그분을 내 영에서 누리는 것이다. 

 

4.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혼에서 역사하게 할 수 있는가? 소극적으로는 혼을 부인하는 일이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는 그분이 내 혼에서 거처를 정하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영에 계신 그리스도를 혼으로 모셔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에 공급된 하나님의 생명이 혼으로 흘러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혼에 좌정하시게 된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놀라운 사실은 우리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실 때에 여호와께서 들어오시는 것도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영이 그대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면서 동시에 보혜사이신 성령이시다. 그리고 보혜사이신 성령께서도 그분이 단독적으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오시는 것이지 구약시대의 성령이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과정을 거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의 어떠하심을 나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는 3가지를 행하셨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가 부족할 때에는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부른 다음에 그분의 어떠하심을 선포함으로 내 문제에 그분이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이렇게 선포하라.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지혜이십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내게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면, "주 예수여, 주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환난 중에 피난처이십니다."라고 선포하라. 그러면 즉시 내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는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내 영 안에 내주해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 포의 알 약처럼 우리의 영 안에 대기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내 혼의 영역으로 내려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감찰하시고 나를 도와주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는 내 혼의 영역에서도 주님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주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참고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주님의 어떠하심에는 "생명, 지혜, 인내, 치료, 귀신 축사, 죽음의 효능, 부활의 능력, 초월의 능력, 왕적인 통치" 등이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성육신 하실 때에 그분의 육체 안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고 하나님의 지혜가 육체로 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을 죽음에 넘기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분의 삶이 곧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능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영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내 혼의 영역에 좌정하시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2024년 01월 22일(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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