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율법관(23)]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번제단과 물두멍의 용도는 어떤 것인가?(출38:1~8)_2023-03-08(금)

by 갈렙 posted Mar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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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ljYA2uBmaR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23)]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번제단과 물두멍의 용도는 어떤 것인가?(출38:1~8)_2023-03-08(금)  https://youtu.be/ljYA2uBmaRQ

 

1. 들어가며

  성막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해 주는 일종의 약도와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사역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 주는 설계도와 같다. 사실 성막은 다른 어떤 의식법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그 비결은 그분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는 것만큼 주님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65세가 되면 나라로부터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지 알아야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더라도 나라에서 어떤 혜택을 주는지 알아야 그 혜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그분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이 아주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못 누리고 사는 자들이 아주 많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 중에서 의식법으로서,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인 성막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막 뜰에 있는 2가지 성막 기구들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이 그리스도의 어떤 모형이요 그림자인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막 뜰에서 만날 수 있는 2가지 성막 기구들은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성막(미쉬칸=처소)'이란 작게는 성막 뜰 안에 있는 텐트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나 넓게는 포장(울타리)으로 둘러싼 땅 전체를 가리킨다. 고로 성막을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성막은 성막 뜰 안에 있는 텐트의 지성소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막의 혜택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막은 크게는 성막의 포장(울타리)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성막 뜰 안에는 어떤 기구들이 있는가? 거기에는 딱 2가지 기구들만 있다. 하나는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번제단(혹은 '제단')'이 있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물두멍이 있다. 그러니까 번제단과 물두멍은 성막문과 성소 사이에 위치한 2가지 기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인데, 이들은 번제단에서 제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물두멍에서 더러워진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 

 

3. 번제단의 크기와 재료 그리고 그것의 용도는 무엇인가?

  성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번제단'이다. 주로 이곳에서 번제를 드린다고 하여 '번제단'이라고 부른다(출27:1). 그러나 이것을 줄여서 제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성막에서 제단은 번제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막 뜰에 번제단이 있고 또 하나 성소의 '분향단'도 있기 때문이다(출30:1,6). 둘 다 불로 무엇인가를 태운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하나님께서 번제단을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다시 말하자면, 번제단의 크기와 재료는 대체 무엇인가?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외형을 만든 후에 놋을 입힌 불을 태우는 기구다. 그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규빗(2.28m) 5규빗(2.28m) 3규빗(1.36m)이다. 이 번제단은 정방형의 모양으로서, 이 제단의 중간 쯤에는 안에 놋으로 그물망을 만들어 고리를 달아 놓았다. 그리고 번제단이라도 이동해서 다시 설치해야 하는 성물이므로, 이동하기 편리하도록 꾈 채도 놋으로 만들라고 했다(출27:1~7). 좀 더 번제단의 크기를 설명한다면, 이 번제단의 가로 세로의 크기는 사람의 키보다 좀 더 크며, 높이는 성인의 가슴 부분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라면 번제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쳐다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둘러 싸라고 하셨다. 사실 성막 뜰에서 사용되는 성막 기구들은 다 조각목과 놋으로 만든 것들이다. 왜냐하면 번제단은 조각목과 놋으로 만들지만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소와 지성소의 기구들은 조각목으로 외형을 만든 후 금으로 싼 것들이다. 

  그러면, 둘째, 번제단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된다. 그렇다면 제사는 어떻게 드리는가? 제사는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제물을 잡을 때에 그 제물의 피를 제사장들이 양푼에 담아서 번제단의 뿔들에 바른다(레4:25,30). 그리고 또 하나는 제물의 고기를 각각 각을 뜨고 씻어서 번제단 위에서 불태우는 것이다(레1:7~8,12,17, 3:5, 6:9,12~13). 그러니까 바르고 태우는 것이 바로 번제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막 뜰의 모든 기구는 겉을 다 놋으로 만들라고 했는가? 그것은 놋이 바로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놋쇠의 발을 가지고 계신다. 그 발로 밟으면 모든 존재가 으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서 심판을 견딜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막 뜰의 기구들을 놋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대신 심판을 받게 하셔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받지 않고 그분이 받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자는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실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4. 물두멍의 크기와 재료 그리고 그것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첫째, 물두멍은 어떻게 만들라고 했는가? 물두멍은 일종의 대야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항상 물을 채워 놓아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두멍을 만들 때에 그 크기와 모양을 지정해 주지 않으셨다(출30:17~21). 다시 말해 물두멍의 크기와 모양에 어떤 한계를 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모양은 네모나게 만들 수도 있고 동그랗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크기는 크게 만들 수 있고 작게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거기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기구이기에, 자기들의 키보다는 높지 않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물두멍의 재료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물두멍은 사실 오직 순수한 놋으로만 만들라고 하셨는데(출30:18, 38:8), 이때 사용된 놋은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놋이 아니라, 오직 성막에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을 가지고 만들라고 하셨다(출38:8). 사실 그때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 때였다. 청동(놋쇠)으로 거울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 이 놋대야 곧 물두멍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거울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손과 몸을 비춰 보기 위한 것이 물두멍인 것이다. 이것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더럽혀진 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손과 발을 씻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다 더 핵심이다.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다 보면 제물의 피와 오물이 자신의 손에 묻기 마련이었고, 또한 성막 뜰과 성소에서 일하다 보면 발에 먼지가 묻기 마련이었다. 왜냐하면 성막은 맨땅 위에 지어진 텐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제물을 잡다가 발에 피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것을 씻는 용도로 물두멍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제사장들은 선 채로 손을 씻었고, 발은 작은 대야에 물을 받아서 씻었다. 

 

5. 오늘날 번제단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 번제단이 가르쳐 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번제단은 우리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또한 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모든 제물은 번제단에서 죽임을 당한 후에 제물로써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물은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를 위하여(대신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 제사장이 되셨으므로, 그분의 제물되심은 영원한 것이요, 그분의 제사는 비록 단 번의 제사였지만 영원한 제사라고 말했던 것이다(히9:12~15, 10:12~14). 

히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이때 번제단의 제물은 2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태워드림으로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게 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물의 피를 번제단의 뿔에 발라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쳐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다 흘리시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태우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우리 대신 예수께서 우리 죄를 덮어쓰셔서 죄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물은 반드시 태워져서 죄를 소멸시켜야 했다. 그러므로 제물을 태웠던 불은 소멸의 불이라고 할 수 있다(히12:29). 또한 이때 제물의 피는 번제단의 뿔에 발라야 했었다. 이는 뿔이 항상 '권세와 힘'을 상징하는 것이니, 예수께서 죄의 권세와 힘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날, 죄를 소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셨으며, 또한 피를 흘리시어 죄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자신의 피를 뿌리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영적인 비밀은 예수께서 자신을 드릴 때에 사용된 '제단의 불'과 '제물의 피'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예수님의 몸이 죄가 되어 태워진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육체 안에도 죄가 들어 있는데 이 죄가 곧 귀신이므로, 이 귀신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성령의 불로써 귀신을 태워서 소멸시킬 수가 있다. 귀신들이야 영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소멸시킬 수 없지만 이것을 불로 태울 수는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몸에서 죄가 소멸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귀신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제물의 피가 번제단의 뿔들에 발라짐으로 죄의 권세와 힘을 없애버렸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의 피를 귀신에게 뿌리고 바르고 덮으면 귀신이 가진 권세와 힘이 약해져버린다. 예수님의 피가 발라진 귀신들은 쪼그라들고 다시 달라붙지도 못하며 그 피를 보았을 때 두려워서 곧장 떠나가는 것이다. 

 

6. 오늘날 물두멍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물두멍이란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례하다가 더러워진 자신의 손과 발을 씻는 장소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요13:10)"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이제 날마다 자범죄를 자백하여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한 번의 회심의 회개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날마다 짓는 죄를 계속적으로 자백함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 죄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자범죄를 회개할 때 그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물두멍과 같으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물두멍은 회개를 통해 계속해서 깨끗함을 받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히10:22, 막1:4, 벧전3:21).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성막을 세우신 것이다(요1:14). 또한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막의 문, 곧 구원의 문이 되어 주셨다(요10:7,9). 그리고 그분은 번제단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다(히10:12~14). 그리고 날마다 짓는 자범죄를 회개한다면, 지금도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기 위해 물두멍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를 받게 되며 날마다 짓는 자신의 죄로부터 정결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죽으신 이후에는 오직 물과 피를 이 땅에 남기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후에 이 땅에 물과 피를 남기고 가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5:6~8). 그런데 천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은 곧 물인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불이 강 같이 흘러나왔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물이 강 같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계22:1~2). 그런데 이 물이 곧 생명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께서 바로 이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실 때 그것은 곧 피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하늘에서는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는 도구가 되지만, 이 땅에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자백했을 때 말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이 더러운 영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죄를 자백함으로 귀신들이 우리 몸에서 떠나가면 우리가 비로소 깨끗해지는 것이다(히9:12).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히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요일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계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7. 나오며

  우리 주 예수님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성막의 출입구에서부터 구원의 유일한 문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성막의 뜰에서는 우리의 죄를 불태워 없애 주시는 번제단이시며, 우리가 짓는 자범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는 물두멍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시기 위해 이 땅에 피 흘리려 죽으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 년에 몇 차례에 걸쳐 성찬식을 통해 그분의 피를 기념하고 감사한다. 그것이 성찬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날마다 지은 죄를 깨끗이 씻어 우리를 정결케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이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짓는 죄를 회개하면 그 죄가 씻어져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세례를 받는 것이며, 날마다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막에서 유일하게 물두멍 만큼은 그 크기를 제한하지 않았음을 본다. 왜냐하면 자범죄의 회개에 대한 분량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더 많이 회개한 만큼 우리는 더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회개한 만큼 우리 몸속에 있는 귀신이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신앙생활의 관건은 얼마나 회개하여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귀신을 제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회개하자. 회개는 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 깨끗한 사람이 되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이에 나아가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3월 08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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