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율법관(29)] 지성소의 증거궤 위 속죄소의 용도는 대체 무엇인가?(출25:10~22)_2024-03-14(목)

by 갈렙 posted Mar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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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0i4ddoFgZV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29)] 지성소의 증거궤 위 속죄소의 용도는 대체 무엇인가?(출25:10~22)_2024-03-14(목)

https://youtu.be/0i4ddoFgZVo

 

1. 들어 가며

    성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다. 성막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사도 요한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장막을 치신 것이라고 했다(요1:14). 고로 우리는 성막 뜰에 있는 20규빗의 뜰 문이 예수님이시요, 번제단과 물두멍도 예수님이요, 성소의 등잔대와 떡상과 향단도 예수님을 가리키며, 지성소의 법궤도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무엇을 만들어 배치하라고 하셨으며, 법궤 위 속죄소는 무엇 때문에 만들라고 하신 것인가? 

 

2. 하나님께서는 법궤(언약궤, 증거궤)를 어떻게 제작하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 때 가장 먼저 만들라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법궤였다. 이는 그 나무로 된 상자를 만들어 그것 안에 율법의 두 돌판을 보관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자를 가리켜 율법의 두 돌판이 들어있다고 하고 '법궤'라고도 하고 '증거궤'라고도 한다(출25:10). 법궤는 율법의 두 돌판을 담기 위해 지어진 일종의 사각 상자와 같은 것으로서, 조각목으로 궤를 만든 후에 그것에다가 순금을 입힌 것이다. 그러나 그 크기는 번제단에 비하면 큰 것은 아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규빗반(1m14cm) 1규빗반(68.4cm) 1규빗반(68.4c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궤를 만들되 순금으로 안팎을 싸라고 하셨다. 그리고 위쪽 가장자리에는 금테를 두르라고 하셨다. 또한 금고리 네 개를 만들어 궤의 다리쪽에 달 되 양쪽에 고리를 2개씩을 달고 거기에 채를 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빼지 말라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이렇게 명함은 법궤를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어떤 위험을 감지할 때는 즉시 대피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3. 속죄소(시은좌)는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법궤의 뚜껑을 순금만으로 따로 제작하라고 하셨다. 이것을 가리켜 '속죄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시은좌'라고도 부른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속죄소를 순금으로 만들라고 하셨는데, 꼭 한 덩이의 금을 쳐서 만들라고 하셨다(출25:17~20). 그리고 속죄소의 크기는 법궤처럼 가로 세로가 2규빗반과 1규빗반이 되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두 그룹의 천사를 양끝에 각각 쳐서 만들되, 양쪽 끝에 위치하도록 만들라고 하셨다. 그리고 두 그룹은 날개를 높이 펴서 법궤의 뚜껑을 덮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룹들의 얼굴 역시 서로 마주보게 하도록 만들라고 하셨다. 

 

4. 속죄소의 2가지 역할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속죄소는 왜 만들라고 하신 것인가? 단순히 법궤의 뚜껑으로 그것을 쓰시기 위함이었는가? 아니었다. 법궤는 다음과 같이 2가지 아주 중요한 용도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모세더러 속죄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만나시고 또한 만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였다(출25:22). 그러므로 모세는 만남의 장소를 위해 거룩한 속죄소를 법궤 위에 만들어야 했다. 왜냐하면 모세도 역시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민7:89, 출29:42).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민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그렇다면 이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셔서 사람들을 만나셨던 것일까? 사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는 분이시다. 다만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빛으로 드러내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요일1:5). 또한 그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그분을 직접 뵐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실 때에는 구름 가운에서 자신을 나타나셨다. 우리 인간이 빛이신 그분을 직접 보지 않아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신 것이다. 이때 구름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빛을 가리켜 이스라엘 사람들은 '쉐키나'라고 부른다. 고로 실제로 성막을 제작하고 세웠던 그날에도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었다(출40:34~35).

  둘째로, 하나님께서 모세더러 속죄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속죄소에 피를 뿌려 속죄하기 위함이었다(레16:14~15).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죄인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라서 죄인인 사람이 그분을 직접 만나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는가?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율법 중에서 도덕법으로 말씀하신 십계명이다. 십계명 때문에 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끗히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에 있는 참 장막 안으로 들어가셨다(히9:24). 그리고 거기에 있는 속죄소에 자신의 피를 뿌리셨다. 그리하여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을 자신의 피로 덮으셨다. 그러므로 십계명이 우리를 정죄하려고 해도 예수님의 피 때문에 정죄할 수 없게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게 나아가는 자들은 의롭다고 칭함받게 되며, 구원까지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2천년 전에 예수께서 그러한 피의 희생의 제사를 하늘에서 드리심으로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만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믿고 자기가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써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깨끗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고 해도 죽지도 않을 뿐더러 그분의 얼굴을 볼 수도 있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5. 사람에게 필요한 3가지 빛은 무엇인가?

  사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3가지의 빛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3가지 빛이 있어야, 이 세상에서 태어난 후 자라고 또한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꼭 필요한 3가지 빛이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사람에게 비추는 해와 달과 별들의 빛이 있다(창1:14~19). 해와 달과 별들은 창조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서, 오늘날 물질세계를 비추어서 그것에게 빛과 열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를  만들게 도와준다. 즉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다 태양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구에  있는 어떤 생명체라도 반드시 빛을 받아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생명체는 빛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둘째, 사람에게 비추는 영적인 빛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연의 빛을 받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태양 빛은 물질세계에 꼭 필요한 것일 뿐 영의 세계에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영의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사람은 영적인 빛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빛은 예수께서 천국에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실 때가 이 땅으로 가져온 빛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시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은 참된 영적인 빛으로서 구원의 빛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받게 되는 영원한 빛이 있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빛이시기 때문에(요일1:5), 그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그렇다면 '어둠'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빛의 결핍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항상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인 귀신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치러야할 가장 중요한 선택은 어둠을 몰아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들인 귀신들을 붙잡아서 그들을 음부에 쳐넣는 일인 것이다. 

 

6. 나오며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인가? 그것은 어둠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사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어둠을 제거한 분량만큼 저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자는 반드시 어둠을 제거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둠을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우리는 천국에서 더 빛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우리의 몸 속에 있는 영들과 밖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세상의 어둠의 주관자들로서, 어둠을 가져온다. 고로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천국에서 빛나는 부활체의 영광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부활체의 영광도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으로 각각 다르다고 하였다(고전15:40). 그렇다. 천국에서 존귀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더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천국에서 그 사람의 몸과 그 사람의 옷에서 더욱 더 빛이 난다. 고로 이를 위해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살 때에 보다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더 예수님을 피로 적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깨끗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요, 더욱 더 잘한 일은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회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회개를 해야 최종적으로 구원도 받게 되고, 저주도 떠나보낼 수 있으며, 회개를 할 때에 귀신이 떠나감으로 은사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하자. 그래서 천국에서 빛이신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가서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2024년 03월 14일(목)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