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회개(38)] 구원의 조건에 믿음과 회개 외에 행위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계22:10~12)_2024-07-04(목)

by 갈렙 posted Jul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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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8)] 구원의 조건에 믿음과 회개 외에 행위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계22:10~12)_2024-07-04(목)

https://youtu.be/KMPvjt6aHBk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을 받는지의 여부는 결국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계21:27).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한 그 어떤 수고나 행위도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 없기에 그 수고와 행위도 역시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약 이미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면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복음전파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받는 조건 곧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 위한 최소요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최소요건을 갖춘 자에 있어서 수고와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혹 구원의 조건에 행위를 추가한다면 어떤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왜 구원의 조건에 행위를 추가할 수는 없는가?

 

2. 생명책의 녹명여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 안에 생명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이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생명으로(요5:26), 아버지의 생명이요 부활생명이지만 이 생명은 아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생명이기에 아들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들을 가지고 있는 자는 자기 안에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아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기 안에 [아들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요일5:12). 

  그렇다면 자기 안에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주시는 생명이 들어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방언을 말하는 것을 통해 어느정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딴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행2:4). 그러나 방언을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 안에 생명이 없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고전12:30). 둘째로, 현재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기고 있지 않는 자 곧 지고 있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5). 

 

3. 이기는 자들이란 대체 어떤 성도들을 가리키는가?

  자신이 믿는 자가 되었어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을 가진 자라도 그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자기 안에 들어온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이기는 자'라는 말은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 속에 들어있는 말로서, 일곱교회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교회의 경우 타락한 상황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교회의 경우 더욱더 생명책의 녹명여부가 더 뚜렷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에서 주신 말씀 중에서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로, 에베소교회의 경우,처음 행위들을 행하는 것이자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다(계2:2). 여기서 처음 행위란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가리키며, 니골라당의 행위라는 것은 버가모교회의 발람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자, 두아디라교회의 이세벨선지자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자는 우상숭배에 참여해도 괜찮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서머나교회의 경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자 죽기까지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을 가리킨다(계2:10). 셋째로, 버가모교회의 경우,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는 것이자 발람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계2:13~14). 넷째로, 두아디라교회의 경우, 자칭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계2:20). 이는 에베소교회의 경우처럼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다섯째로, 사데교회의 경우, 주님으로부터 어떻게 말씀을 받았으며 들었는지를 기억하여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계3:3). 그리고 그것에는 자신의 더럽혀진 겉옷을 날마다 빠는 것을 의미한다(계3:4). 여섯째로,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계3:8~10). 일곱째로, 라오디게아교회의 경우, 차든지 뜨겁든지 하는 것이자,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는 것을 가리킨다(계3:15,18).

  그렇다. 이러한 말씀들에 따르면 이기는 자는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치고 이것들을 다 지키고 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최소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최소한은 회개하고 나머지는 충성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망받았던 다섯개의 교회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말씀은 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4. 구원의 조건에 '믿음의 행위(열매)'를 집어넣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고 구원의 조건에 믿음의 행위를 집어넣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과 회개만으로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같이 못박혔던 한 편 강도(오른편 강도)이다. 그는 믿음의 행위가 없었어도 그날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눅23:39~43). 즉 한 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만을 했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했는데,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의 고백과 소원을 들으시고 그날 그가 낙원에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는 좀 곤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의 최소조건은 '믿음과 회개'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충분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순종과 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복음전파하라는 말씀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게 맡겨주신 일과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다. 

 

5. 구원의 조건에 행위를 집어넣게 된다면 대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조건에 행위를 집어넣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게되는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첫째, 대체 얼마나 믿음의 행위들을 주님께 드려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요원해지고 말 것이다. 잘못 하다가는 천주교식이 되어서 자신의 공로로 자신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둘째,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없는 자가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행위로서 채우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나하면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믿음의 분량을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잘 되지 않으니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으려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헌금 많이 하면 구원받을 것이고, 구제와 선행, 봉사를 많이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행함이 많은 자들은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할 것이고, 행함이 없는 자들에대해서는 그들은 구원도 받지 못할 자라고 정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행함이 많은 자는 자기의 행위를 자기의 의로 추겨세울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정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구원의 최소조건은 아니더라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행위들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필수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행위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최소 3가지 의미가 있다. 믿음의 행위들은 왜 거듭난 성도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첫째, 심판의 기준은 십계명이자 산상수훈의 준수와 같은 행위이므로 우리가 받을 심판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마25:41~46).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심판의 기준은 믿음이 아니다. 거기에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비록 믿음과 회개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는 그날 나의 행위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내가 지금 구원을 향하여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척도가 되어주기 때문이다(약2:14,26). 사도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칭의가 구원의 시작임을 알려주었다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믿음의 행위가 구원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구원을 받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는 바로 우리의 믿음에 따른 행위들이다. 행위들이 열매로서 따라올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받을 자로서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만일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는 천국에서 나의 상급이 되기 때문이다(고전15:58, 계22:12). 만약 우리가 아직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모든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상태라면 그의 모든 믿음의 행위들은 다 천국에서 나에게 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사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께서 그분이 오실 때에 우리 믿는 이들에게 상을 주실 터인데,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계22:12). 

 

7. 나오며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 그 이름이 기록된 채 있더라고,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더 또렷하게 그리고 두껍게 기록된 채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겠지만, 반대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은 회개해야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이름을 끝까지 잘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계3: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어서,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받은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로 우리는 언제나 생명책에서 나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의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었는 것을 확인한 사람이라면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자신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날마다 복음전파에 힘쓰고,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상속받는 것이다. 

 

2024년 07월 04일(목)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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