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회개(41)] 사람이 구원얻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회개’란 어떤 것인가?(행26:15~20)_2024-07-09(화)

by 갈렙 posted Jul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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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wI_4mXYYKe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1)] 사람이 구원얻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 ‘회개’란 어떤 것인가?(행26:15~20)_2024-07-09(화)

https://youtu.be/wI_4mXYYKeQ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무엇이 필수적인가? 어떤 이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지만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을 살펴보면, 구원은 믿음과 회개로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요(막1:15, 마4:17, 계22:14). 사도들도 그렇게 증언했기 때문이다(행20:21). 특히 구원의 시작에 있어서도 회개가 필요하며(눅5:8),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과 구원의 마지막 완성에 있어서도 회개가 필요하다(요일1:9). 그러므로 이제까지 구원의 필수조건으로서 믿음만을 생각해 왔다면 다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에 있어서 왜 믿음과 더불어 회개가 필요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온전한 구원을 받아야 한다. 

 

2. 구원에 있어서 회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구원에 있어서 회개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구원에 있어서 회개는 구원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며(눅5:8, 마4:17) 그리고 구원하는 과정을 이루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원의 관문의 역할을 한다(요일1:9, 계22:14).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회개가 빠져 있다면 그는 결국에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고로 우리는 다시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믿을 때에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어찌 구원을 바라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나서도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성화가 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죄의 유혹에 직면하게 되고 또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용서받고 깨끗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하는 것이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3. 회개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회개는 한 가지이지만 사실 그 안에 들어가보면 2가지 종류가 있다. 왜냐하면 회개는 첫째로, 처음에는 구원을 얻는 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구원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는 회개를 가리켜 '회심으로서의 회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 헬라어로 표현한다면 '에피스트레포'라고 한다. 헬라어로는 '에피스트레포'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의 '슈브'를 번역한 것으로써. '돌이키다. 돌아가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행26:18, 3:19).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 단어를 슬 때에는 이 단어가 '돌아오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둘째로, 회개는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에 해당하며, 마지막에는 구원의 관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구원의 과정을 이루며 구원의 최종관문의 역할을 하는 회개를 가리켜 '자백함으로서의 회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헬라어로 표현한다면, '호몰로게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자백하다, 시인하다, 고백하다"의 뜻이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해 구원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살면서 지은 죄를 계속 회개해야 하며, 죽기 전에도 역시 회개함으로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4.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함으로서의 회개의 차이는?

  고로 우리는 자신의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백함으로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하지 않는 자는 사실 아직 구원을 못받은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알지 못한 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종교적으로 믿는다. 그분을 진정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으면 좋은 분이라는 정도로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 사람은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믿는다고 말은 하고 있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아직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맨 처음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일평생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서 회개하여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죄를 안 짓고 살 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온갖 종류의 악한 영들이 그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하든지 죄를 짓게 만들어 다시 죄인을 만들고, 신앙을 떠나게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서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도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들을 자백하지 않는 자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죄의 유혹에 직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는 그때부터 자신이 짓고 있는 죄가 있다가 회개해야 한다. 기왕이면 해가 지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행위책에 그 죄가 기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 자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영이 거듭난 자는 사실 1차적으로는 구원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원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계3:5). 참고로 한 번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그 이름이 지워지는 자는 다시 기록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자는 1차적으로는 구원을 받은 자이지만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것인지는 그 이후의 그의 삶을 통해서 확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며,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5. 바울은 진정 회심으서의 회개를 한 자인가?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여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행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오늘날로 보면 혈기와 분노의 영, 미워하는 영이 가득했고, 또한 살인의 영으로도 가득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잘 믿고 전도했던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보증을 서 주었다. 그는 죽여도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결단코 두 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청년을 믿고 따르는 미친 자들을 가만 둘 수 없었다. 그는 종교적인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아무도 예수믿는 자들을 건드리지 않으려 할 때 자기가 나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장차 유대인의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공회의 회원이 되고싶은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에게도 잘 보여야 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유대인의 종파 곧 바리새인파에게도 잘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은 이제는 예루살렘을 넘어서 타지방에 까지 이르러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아 가두려고 시도하였다. 그 첫번째 사례가 바로 다메섹에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 정식허가를 받고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죽어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예수라는 분이 자기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를 찾아온 이유를 말씀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실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헛 것을 보고 믿는 미친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예수님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절대 다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때부터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돌아서기로 결단했다. '에피스트레포(돌이키다, 돌아가다)'를 하게 된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춘 후에 그 길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돌이켰다. 유턴한 것이다. 그리고 참된 신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이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시인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이뤄드리는 자가 살기로 결단하였다. 그것이야말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 자라고 말할 수 있다. 

 

6. 나오며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아면, 그는 구원받는 일이다.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된다면 그는 동물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동물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의 영혼은 죽지 않고 다음 세상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죄의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에 불못에 들어가서 영원히 후회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아시고 그것을 해결해주시고자 이미 2천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인류구원을 위해 하신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분을 거절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상태가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비극적인 상태를 그대로 놔두지 말고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고 붙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구원이 시작되고 구원의 여정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2024년 07월 09일(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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