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회개(47)] 누가복음에서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왜 그리 중요한 비유인가?(눅15:11~24)_2024-07-16(화)

by 갈렙 posted Jul 16,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7srDpjryP9c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7)] 누가복음에서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왜 그리 중요한 비유인가?(눅15:11~24) _2024-07-16(화)

https://youtu.be/7srDpjryP9c

 

1. 들어가며

  누가복음에는 총 23가지의 비유가 나온다. 그것들 중에서 회개와 관련된 비유는 총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의 회개'다(눅15:11~32). 그리고 둘째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회개'다(눅16:19~31).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나오는 '세리의 회개'다(눅18:9~14). 이것들 중에서 '부자의 회개'는 아무 소용없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즉 사람이 죽은 후에 행하는 회개는 아무런 소요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전시간에 다뤘다. 그리고 '세리의 회개'는 칭의가 단지 믿는 것 뿐만 아니라 회개를 포함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칭의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에 다뤘다. 그렇다면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대체 어떤 회개에 대해 말씀하려고 주어진 것인가? 이 회개는 우리에게 회개에 관하여 어떤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는가?

 

2.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누가복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사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비유들 중에 비유라고 말할 수 있으며, 회개에 관한 비유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비유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회개란 어떤 것인지, 회개는 어떻게 하는 것이며,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회개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었다가 되찾은 것과 그 기쁨을 다루는 3가지 비유가 계속해서 나온다. 첫째는 '잃은 양'의 비유이고(눅15:1~7), 둘째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이며(눅15:8~10), 마지막 셋째는 '잃은 아들'의 비유이다(눅15:11~32). 셋 다 잃었다가 되찾았다는 비유이며, 동시에 잃었다가 되찾은 것에 대한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것들 중에서 '잃은 양'의 비유는 타 복음서에도 나오지만,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와 '잃은 아들'의 비유는 누가복음에서 나온다. 그러면 이 세 가지의 비유의 핵심이자 결론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로, '잃은 양'의 비유는 성자께서 잃은 어린양을 되찾은 것에 대한 비유로서, 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리고 둘째로,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는 성령께서 잃은 드라크마를 되찾은 것에 대한 비유로서, 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다.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천사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마지막 셋째로, '잃은 아들'의 비유는 성부께서 잃은 아들을 되찾은 것에 대한 비유로서, 이 비유의 결론은 두 번 나오는데 내용은 같다. 

눅15:24 이 내 아들(둘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15:32 이 네 동생(둘째)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그렇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비유의 결론을 통하여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잃었던 것을 되찾았을 때에 심히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특히 세번째 '잃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것이 바로 죄인이 회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것을 이처럼 매우 기뻐하신다.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주시고, 회개하면 저주의 실체인 귀신까지 제거해주시는 것이다(가난의 영과 쾌락유흥의 영 등). 그러면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가 그시로 떠나간다. 그래서 회개하면 은사가 따라오고, 회개하면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3. 누가복음에 나오는 회개에 관한 말씀 중에서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어떤 회개를 가리키는가?

  누가복음에는 회개에 관한 말씀이 타 복음서에 비하여 많이 나온다. 첫 시작부터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있으며(눅3:3), 맨 나중에는 '회개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눅24:47~48). 그리고 실제로 회개하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베드로의 회개, 삭개오의 회개, 한 편 강도의 회개), 또한 회개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아들'의 비유 곧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왜냐하면 이비유는 온전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비유는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죄인이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회개라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께서 일부러 들려주신 말씀인데,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큰 잔치의 비유'(눅14:15~24)를 통하여, 천국에 초대했으나 스스로 거절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결국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기분 나빠했다. 그러므로 천국은 세리와 죄인들처럼 자신이 죄를 회개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고, 첫째 아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킨다. 

 

4. '돌아온 탕자'의 회개가 회개에 있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사실 회개에 있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회개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 비유에는 회개의 의미가 무엇이며, 회개에는 2가지 방면이 있는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려준다. 회개는 사실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서의 회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심으로서의 회개'는 죄에게서 돌이키는 부분(겔18:30)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욜2;13). 이것을 두고 히브리어로는 '슈브'(돌이키다, 돌아가다)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에피스트레포'(돌이키다, 돌아가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단어로서 헬라어인 '메타노에오'(회개하다)가 있다. 이어서 회개에는 두번째 방면으로서 '자백으로서의 회개'가 있다. 즉 처음 믿을 때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뒤부터는 자백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한다면 2가지 결과가 주어진다(요일1:9). 하나는 죄들의 용서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라면 그때부터는 지은 죄들을 반드시 입술로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불의한 것으로부터 깨끗해지게 되는 측면이 있다. 즉 지은 죄들을 자백할 때에 자기 안에 들어온 더러운 영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즉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신들이 주는 저주의 결과들인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과거에 예수믿기 전에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하고, 또한 믿지 않고 죽었던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까지 다 자백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과거에 지었던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이미 우리 몸 속에 귀신들이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고 또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돌아온 탕자의 회개에 전부 나온다. 즉 돌아온 탕자는 회심함으로 죄로부터 돌이켰고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가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했다. 그러니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서의 회개 둘 다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둘째, 이 비유에는 회개의 3가지 측면인 지정의의 회개가 다 들어있다. 즉 진정한 회개에는 지적으로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있어야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통회자복함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의지적으로 죄를 끊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돌아온 탕자에게서 다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즉 돌아온 탕자는 첫째로, 자신이 하늘로 상징하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아버지를 향하여도 죄를 지었다고 깨달았고 그것을 시인했다(눅15:18). 지적인 회개를 분명히 한 것이다. 둘째로, 자신이 잘못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통회하고 자복했다(눅15:17). 그래서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못 먹는 상황에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감정적인 회개를 한 것이다. 셋째로,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단한 뒤에 그것을 행동을 옮겼다(눅15:20). 의지적인 회개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온전한 회개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이 비유에는 회개의 결과와 축복이 어떤 것인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둘째 아들은 회심과 자백의 회개를 통해서 2가지 축복을 받는다. 하나는 아들의 자격과 권리 및 신분이 회복된다. 또 하나는 현실의 배고품의 문제가 해결된다. 먼저, 둘째 아들은 회개를 통해서 아들로서의 자격곽 권리 그리고 신분까지 회복이 되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종들에게 시킨 일을 통해 확인할 수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종들에게 먼저는 아들에게 제일좋은(첫째가는) 옷을 입히라고 하였다. 이는 아들로서 권위와 지위를 회복시켜주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서 손에 가락지를 끼우라고 하였다. 이는 둘째 아들을 자신의 상속자로서 완전히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신발을 신기라고 하였다. 이는 둘째를 이제 종이 아니라 주인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종은 결코 신발을 신는 자가 아니고, 오직 종의 주인만이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류를 향한 경륜으로 비교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은 목적과도 부합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고(엡1:5),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여(엡3:6), 천국에서 종의 신분이 아니라 주인의 신분을 가져서 왕노릇하게 하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탕자의 회개는 이러한 축복만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육신의 배고픔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주셨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돌아온 탕자가 받은 축복이 아들의 영적인 지위와 신분만이 아니라 육적인 문제까지 해결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는 배가 고파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문제도 역시 영의 축복과 아울러 해결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영육간에 복을 주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5. 진정 회개한 자에 대한 무한한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회개의 2가지 의미와 2가지 방면의 회개에 대해 살펴볼 수 있고, 또한 지정의의 온전한 회개가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자가 받게 될 2가지 복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탕자의 회개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나온다. 그리고 그분이 회개하는 자에게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를 적나나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3가지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서 결코 과거의 죄를 캐묻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생각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에게 그 어떤 책임추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회개하기만 하면 과거에 잘못에 대한 어떤 형벌도 받지 않게 하신다는 것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구약시대 때까지만 해도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 그들이 지은 형벌에 대해서는 면제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출34:6~7).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죄를 용서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의 형벌을 다 담당하신 후부터는 그 죄를 자백함으로 회개했다면, 더이상 형벌도 받지 않게 하고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돌아온 탕자는 아들의 신분과 지위와 특권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의 저주로부터도 벗어나 배고픔의 문제 또한 단번에 해결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는 이처럼 영육간에 복을 다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탕자에게 다시 아들의 신분과 지위와 특권을 다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다. 

 

6. 나오며

  돌아온 탕자의 회개는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둘째 아들은 이러한 회개를 통하여 아들로서의 지위와 신분, 특권을 모두 되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배가 고파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이게, 아버지는 그의 배고픔의 문제까지도 다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서 절대 과거를 묻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즉시 영육간에 복을 주신다. 회개하면 이처럼 하늘의 복도 받고 땅의 복도 받게 하는 것이다. 영의 복도 받고 육의 복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기만 하면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준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큰 기쁨이 된다. 그러므로 회개는 해도 되도 안 해도 되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회개하기만 하면 면 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인이 믿지 않는 자였다면 그는 회개를 통해서 구원도 받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믿었던 자라면 앞으로 그는 그때부터 천국집을 잘 장만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고, 이어서 충성하게 되면 상속으로 물려받을 아름다운 천국집을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까지 회개할 이 좋은 회개를 붙잡지 않고 내팽개치먼서, 회개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정죄하면서 외면하는 자들이 종종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24년 07월 16일(화)

정보배 목사

 


Articles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