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구원(60)] 과연 누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지는가?(마25:14~30)_2024-08-01(목)

by 갈렙 posted Aug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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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wxArFH9DRoE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구원(60)] 과연 누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지는가?(마25:14~30)_2024-08-01(목)

https://youtu.be/wxArFH9DRoE

 

1. 들어가며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며 누가 과연 성밖에 남겨지는 것인가? 그런데 성 안에도 성도들이 사는 장소가 각각 다르다. 성의 맨 바깥 변두리인 꽃밭에서 사는 자들이 있고, 평범한 집에서 사는 자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큰 성같은 대저택에서 사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성도라 할지라도 각기 받을 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옥도 차등형벌이 존재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차등상급이 있듯이 지옥에서 차등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지옥일지라도 어떤 차등형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성 밖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는 과연 누가 들어가게 되는가? 그리고 왜 그리로 던져지게 되는가? 

 

2.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는?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는 어디인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장소는 두 곳이다. 하나는 성밖이요(계22:15), 또 하나는 유황불못이다(계21:8). 그런데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장소는 세 곳이다. 첫째는 성밖이다. 열 처녀의 비유에 나온다(마25:1~13).  째는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다. 이는 달란트의 비유에 나온다(마25:14~30). 셋째는 영영한 불이다. 이는 양과 염소의 심판의 비유에 나온다(마25:31~46). 

 

3.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관해 주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마24:42). 그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 깨어있는 것인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해주셨다. 이는 등만을 가지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충성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해주셨다. 이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악한 종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해주셨다. 자신이 양인지 염소인지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 중에서 누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지게 되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 중에서 누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으로)'로 던져지게 되는가? 그것에 대해 마태복음에서는 4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언급한다. 

  첫째는, 악하고 게으른 종 이 그곳으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이다(마25:24~30). 각자가 자기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 크기에 합당한 달란트를 받았으나 주인의 기대와 바람을 저버리고 오히려 주인을 악한 자려 여기고 게을러서 일하지 아니하는 종이 그리 들어가게 될 것이다. 

  둘째, 포악하고 방탕한 종이 그곳으로 던져지게 되는데(마24:48~51), 이들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채찍질을 당하고 또한 외식하는 자들(위선자들)이 받는 형벌까지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은 한 달란트 받았던 악하고 게으른 종과는 사뭇 다르다. 한 달란트 바닸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을 잘못 이해하고 일하지 아니한 단순한 종이라면, 포악하고 방탕한 종은 동료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종을 가리킨다. 

  셋째, 예복을 입지 않고 몰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간 자가 그곳으로 던져지게 된다(마22:11~13). 왜냐하면 그는 성밖에서 살아야 할 사람인데, 예복도 입지 않은 채 몰래 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들킨 자이다. 그가 몰래 들어온 만큼 그의 손들과 발들을 결박하여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다. 고로 불법을 행한 자가 성밖으로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월권행위을 이용하여 성 안에 들어가는 자가 이러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 안에 못 들어가는 자는 자신이 지금 어디만큼 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넷째, 마지막으로 나라의 본 자손들이 그곳으로 던져지게 된다(마8:11~12). 이들은 할례받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은 응당 성 안으로 들어갈 줄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성에서부터 쫓겨나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이는 자신은  죽을 때에 반드시 성 안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런 자들 중에 모태신앙자들이 의외로 많다. 

 

5. 한달란트 받았던 종은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으며 결국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마태복음 25장에 '충성하라'는 비유로 주어진 말씀이 바로 '달란트의 비유'이다(마25:14~30). 그런데 그중에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은 작은 일인데도 충성함에 따라 주인의 즐거움 곧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자기가 가진 한 달란트마저 빼았길 것이며,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 안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더 바깥쪽의 어두움 안으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악한 종이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그가 게으른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마디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악한 종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을 둔 말이다.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은 그것으로 일하여 자신의 것을 만들라는 배려에서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보다 더 작은 달란트를 주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주인을 나쁘게 여기는 종이 있었다. 그가 바로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다. 그는 주인을 굳은(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변명하였다. 그래서 자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주인을 위해서 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변명한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자신의 종들의 노동력이나 착취하는 악한 주인이 아니었다.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겨서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한 만큼 상을 주시려고 그렇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남들에 비해 자신에게는 조금 준 주인을 미워했다. 그래서 주인이 준 돈을 땅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오자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그를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인은 그가 가진 것조차도 빼앗아서 그것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주인이 그에게 자신을 위해 살라고 주신 돈마저 일하기 싫어서 일을 안하고 놀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땅에서 우리가 천국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주신 기회 즉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두면 그는 악하고 게으른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무익한 종 곧 쓸모없는 종이기 때문이다. 

 

6. 달란트 비유는 오늘날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는 성령받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다. 다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이 있는 등을 준비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란트의 비유는 누구에게 주신 말씀인가? 그것은 그분이 이 땅에 보낸 종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분의 일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보내어진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늘에서부터 사명을 갖고 이 땅에 내려온 자들이다. 사명자들인 것이다. 이는 일반 평신도로서 특별한 사명을 받지 아니한 자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사명을 부여받은 자에 속한다. 그것은 자기만 믿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우라는 사명을 다 주셨기 때문이다(행1:8).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전파의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일반적인 사명을 일컫는 비유가 아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명을 받아서 이 땅에 파송된 주의 종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날에 사역자나 선교사들 그리고 목회자들을 가리켜서 들려주신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명을 따라 살지 않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런 자는 결국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7. 나오며

  누가 더 바깥쪽의 어두운 데로 던져지게 되며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기대와 바램을 저버린 채 살았던 주의 종들이다. 사명자인데도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던 자가 바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악한 종의 비유를 보면 그 종은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채찍질을 당하고, 외식하는 자가 받을 형벌도 같이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그냥 어두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형벌받는 곳도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죄의 경중에 따라 단지 성밖에만 사는 자들이 있고, 성의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서 사는 자들도 있으며, 그곳에서 형벌까지 받고 사는 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어떤 사람은 불과 유황이 타는 옷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으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둘째 사망이란 죽은 다음에 물려받은 부활체가 또 죽는 것을 가리킨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지금도 불못에 가보면 사람이 죽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에는 사람의 뼈가 놓고 살이 녹아 없어진 후에 파란 불만 남아있다가 거기에 또 뼈가 생기고 살이 달라붙는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을 갖춘다. 그러면 그가 고문을 받고 뼈가 놓아내리고 살 또한 녹아없어진다. 그러므로 영혼이 다시 죽는 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밖에 던져지거나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져지거나 불못에 던져진 모든 자가 결국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 바로 바깥쪽부터 둘째 사망에 놓여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준비하고 있어서 꼭 성 안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바라며, 충성하고 있어서 천국에서도 상얻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 08월 01일(목)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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