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는 눈(24)] 성경은 모형(그림자)와 실체(참형상)의 책이다(히8:5~6)_2024-09-25(수)

by 갈렙 posted Sep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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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n66f6iWGqN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24)] 성경은 모형(그림자)와 실체(참형상)의 책이다(히8:5~6)_2024-09-25(수)

https://youtu.be/n66f6iWGqNI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예수님을 발견하게 하여 영생으로 인도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3가지 주제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요5:39)', '인간구원(요10:10)', '마귀박멸(요일3:8)'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구원 및 마귀박멸에 대한 약속과 성취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은 주로 예표와 그림자로 알려주셨으며, 성취는 실체이자 참 형상으로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구약성경은 예표와 그림자로 보고, 신약은 실체와 참 형상으로 보면 성경이 잘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을 때에 구약에서 예표와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고, 신약에서 실체와 참 형상을 발견할 수 있는가?

 

2. 성경을 볼 때 예표(그림자)와 실체(참 형상)으로 볼 수 있도록 가르쳐준 분은 누구인가?

  성경을 볼 때 그것을 '예표'와 '실체'로 보라고 가르쳐준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구악성경을 인용하시면서 그것이 실체이신 자신에 대한 어떤 예표인지를 말씀으로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당신이 민수기 21장에 등장하는 '놋뱀'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불평하다가 독이 있는 불뱀에 물리면서서 죽어가고 있을 때에, 모세에게 청원하여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방법이 바로 놋뱀을 장대 위에 높이 달라 하고는 그것을 쳐다보게 한 것이다. 그러면 살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믿고 그 놋뱀을 쳐다본 자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민21:9). 그런데 바로 그때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가리켜 자신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다(요3:13~14). 그런데 여기서 '놋뱀'은 뱀의 형상은 같으나 실제로는 독이 없는, 놋으로 제조된 뱀으로서,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나 죄를 넘겨받아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 그분이 장대로 표현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을 사망으로 대신 치르심으로 그것을 믿는 자들은 지금도 죄의 독에서 해방되어 구원받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 바울도 성경을 해석할 때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갔다는 사실이다. 구약성경은 모형과 그림자요 신약성경은 실체와 참형상라고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방법을 가리켜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에 그분은 죄인이었는가 아니면 의인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그분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 위에 인류의 죄를 넘겨받았지만 그분의 본성에는 죄가 없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죄는 없으셨지만 죄를 넘겨받아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롬8:3). 

  그리고 이어서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이러한 성경해석 방법을 따라갔다. 예를 들어 보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제도로서 인식한 채 요한복음을 쓴 것이다. 왜냐하면 요1:14에는 요한은 예수님을 '성막'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헬라어원문참조), 예수님도 자신을 성전이라고 표현하셨기 때문이다(요2:20~21). 

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요2:20~21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3. 예수께서는 구약시대에 어떻게 예표와 그림자로 표현되었는가? 

  구약시대에 예수님은 어떻게 예표와 그림자로 표현되었는가?

  그분의 사역에 관한 예표로서 3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로, 예수께서 '속죄하는 자'(막10:45)로서는 또다시 다음과 같이 3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는 '놋뱀'이요(민21:9), 둘째는 속죄일 제사때 사용되는 '속죄제물'이요(레16장), 셋째는 팔려버린 기업과 사람을 되찾아주는 고엘(기업무를 자)이시다(룻기).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 '생명주는 자'(요10;10)로서도 역시 3가지로 표현되었다. 첫째는 생명나무요(창2:9), 둘째는 도피성제도에 나타난 대제사장이며(민35장, 수20장), 셋째는 에스겔서에 나오는 좌우 물가의 과일나무이시다(겔47:7,12). 그리고 셋째로, 그분이 '마귀를 멸하는 자'로서는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신상을 깨뜨리는 뜨인 돌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신분에 관한 예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것으로 예표되었으나, 첫째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것은 창세기 18장에 여호와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실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둘째, 그분이 그리스도로 오실 것은 3가지로 예표가 되었다. 첫째는 그분이 왕이시라는 것인데, 이 직분에 대한 대표적인 예수님의 예표는 다윗왕이다(사9:7, 삼하7:13). 둘째는 그분이 제사장이라는 것인데, 이는 그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예표되었다(시110:4, 창14:18~20). 셋째는 그분이 선지자라는 것은 그분이 장차 오셔서 모세처럼 하늘의 헌법을 소개하는 자로 예표되었다(신18:15).  

 

4. 인간구원에 관한 구약의 예표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인간구원에 대한 예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시대에 인간구원에 관한 예표는 적어도 3가지다. 첫째로,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우상숭배하여 죄인이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를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할례를 받아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뒤에, 자신을 번제물로 바친 예수님을 예표하는 이삭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소망했던 야곱을 본받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상속자란 이기는 자로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인데, 그것을 야곱과 그리고 유다와 요셉이 예표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여정이 곧 인간구원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들에 의해 압제당하다가 유월절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에 발라 장자죽음의 재앙을 피하고 애굽에서 탈출하는 것이 성도들의 일차적인 구원인 것을 예표하고,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이 세례받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로 가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고,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간구하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 쪼개진 반석에서 생수를 마신 것이 곧 오늘날 성도들이 구원받은 후에 광야로 예표된 교회에 출석하여 구름기둥과 불기둥인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죽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듯이 죽음의 강을 건너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곧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그 땅을 분배받듯이,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 지으라고 했던 성막이 곧 인간구원의 과정을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번제단에서 속죄제물로 돌아가신 우리 주님을 믿어 성도들이 일차적으로 구원받게 되고, 물두멍에서 제사장들이 자신의 더럽혀진 손과 발을 씻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회개를 통해 용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생활의 핵심은 제사장이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서 집례하는 절차와 같으니, 금촛대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분향단에서 기도를 드리고, 떡상에서 매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둘째 휘장을 지나서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5. 마귀 박멸에 관한 구약의 예표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의 세 번째 주제에 해당하는 마귀 박멸에 대한 구약의 예표들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들의 홍해에 수장되는 사건으로 예표되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에는 도망자의 신세였다. 왜냐하면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시온게벨에서 곧바로 미디안 광야로 인도하지 아니하시고 홍해의 비하히롯까지 들어가게 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갇힌 바 되었다는 보고가 바로의 귀에 들어간다. 그러자 바로가 자신의 군대와 병거 600승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치려고 한다. 하지만 밤새동안 동풍으로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통해 홍해를 건너하게 하고 뒤따라오는 바로와 그의 군대들은 홍해의 물에 수장시켜 전멸시킨다(출14:26~31).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자 해방인이 된다. 

  둘째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왕이 꾸었던 큰 신상이 뜨인 돌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는 꿈으로 예표되었다. 그때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제2대왕이었던 느부갓네살 통치 2년에 일어났다.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거대한 신상을 본 것이다.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었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었으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었다. 그리고 그 종아리는 쇠였으며, 그 발가락의 얼마는 쇠였고 또한 얼마는 진흙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날아오더니 이 거대한 신상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발부터 시작하여 종아리, 배와 넓적다리, 가슴과 두팔, 머리가 산산히 부서져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차는 꿈이었다(단2:32~34). 그런데 이 꿈은 장차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하수인들인 인간제국에 대한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꿈이었다. 여기서 머리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을 상징하고, 가슴과 두 팔은 메대와 바사를 가리키고,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제국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아리는 로마제국을 그리고 발과 발가락은 사후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대지 아니한 돌은 재림하시어 세상 제국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망시키는 예수님의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탄을 상징하는 세상제국의 힘이 크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힘에 의해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마귀와 그의 군대들이 패배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6. 나오며

  성경은 한 마디로 모형과 실체, 그림자와 참 형상으로 구성된 책인 것이다. 구약성경은 약속에 관한 책이므로 그것은 모형과 그림자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성취에 관한 책이므로 그것은 실체와 참 형상으로 소개되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신약의 실체를 알려주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제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성막(성전)이 필요했고, 제사장과 동시에 제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이 친히 성막이 되시었고(요1:14), 대속죄일 제사를 치르는 대제사장이 되셨으며(히3:1), 직접 속죄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히9:11~15).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장차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으로 오실 것이고 어떤 사역을 하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장차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장차 마귀와 그를 따르는 귀신들이 어떻게 멸망을 받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구약도 중요하고 신약도 중요하다. 구약은 예표와 그림자로서 중요하고, 신약은 실체와 참 형상으로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둘 중의 어느 것 하나가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더 풍성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구약의 사건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겨, 신약의 사건이 어떤 것에 대한 성취인지를 잘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둘 다가 필요하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 풍성히 누리고, 인간의 구원의 여정과 목표를 설정하며, 마귀박멸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를 상상하게 되고, 그일에 하나님의 사역을 맡아 일하는 일꾼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9월 25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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