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는 눈(38)] 만국백성으로서 성밖 가까이에 사는 자들은 누구인가?(마25:1~13)_2024-10-16(수)

by 갈렙 posted Oct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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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HXEJ-V00Td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경을 보는 눈(38)] 만국백성으로서  성밖 가까이에 사는 자들은 누구인가?(마25:1~13)_2024-10-16(수)

https://youtu.be/HXEJ-V00Tdo

 

1. 들어가며

  과연 천년왕국은 이 지상에 세워지는 것일까?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에 의하면, 천년왕국이란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과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체를 입은 자들과 육체를 입은 자들은 절대 공존할 수가 없다. 한 번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다시 이 세상에 와서 이 세상 사람과 접촉하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라가는 자들은 천년왕국이 지상에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더 성경적인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을 끝내고 영원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 이미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는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이 있고,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있음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천년왕국에서 가지는 신분이 영원세계에서도 계속해서 지속될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에서 다스림을 받을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만국(백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만국백성은 과연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2. 천국에서 차등상급은 어떻게 정해지며, 성밖이나 불못에서의 차등형벌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모든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면 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가? 과거에는 그렇다고 들어왔다. 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실상을 증거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이나 마태복음을 보면, 천국에서 성도들의 지위와 신분은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역시 천국에서 성도들이 크다 일컬음을 받을 자도 있고 작다 일컬을 받을 자도 있다고 말씀하셨다(마5:19).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천국에서의 성도들의 지위와 신분은 어떠한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구별된다. 그것은 앉아서 예배드리는 144,000명 그룹과 서서 예배드리는 허다한 무리들 그룹이 있다. 144,000명 그룹에는 또다시 24장로들이 있고, 왕노릇하는 자들과 주인노릇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허다한 무리들 중에는 면류관을 쓰고 천국집에서 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종과 같은 신분으로서 섬기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천국에 자기 집도 없으며 면류관도 쓰지 않는 이들이다. 간신히 턱걸이로 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꽃밭'에 사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성밖에 살 자들이 있고, 불못에 들어갈 자들도 있다. 먼저 불못에는 불신자를 비롯하여 일곱 종류의 죄를 지은 자들이 들어간다(계21:8). 그리고 성밖에 들어갈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총 6가지 종류의사람들이 들어간다. 먼저는 비유적으로 표현된 '개들'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십계명을 어긴 다섯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간다(계22:15).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적이 있었으나 나중에 지워진 자들이라는 점이다(계3:5, 22:14). 그것은 그들이 더럽혀진 자기의 두루마기를 어린 양의 피로 빨지 않았기 때문이다(계22:14). 이는 그들이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이란 만세전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므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은 것이지, 굳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천국을 위해 열심히 수고하는 것을 두고도 행위구원론자로 그들을 매도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밖에서 세세무궁토록 살게 될 것이다. 

 

3.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없지만 성밖에 있는 것 4가지는 무엇인가?

  우리 성도들은 장차 어디에 들어가야 할까? 성안인가 성밖인가? 우리는 반드시 성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성밖은 천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예수께서 심방을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안과 성밖에는 무엇이 없고 무엇이 있을까? 사도 요한은 천국에 올라가서, 엄위하신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음성이 흘러나왔다.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렇다. 천국은 하나님의 장막이 둘러쳐져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없는 것이 4가지가 있다. 이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성밖에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 성 안에는 무엇이 없는가? 첫째는 사망이 없다. 더 이상 죽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 성밖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밖은 불못의 경우처럼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영원히 반복할 것이다. 둘째는 애통하는 것이 없다. 슬픔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성밖에는 슬픔과 애통함이 계속해서 있다. 그리고 셋째는 성안에는 더이상 곡하는 것이 없다. 즉 울부짖을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밖에서는 울부짖을 일이 있다. 넷째는 성안에는 더이상 아픈 것이 없다. 성안에는 질병이나 다치는 것 그리고 고통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밖에는 아픔이 있다.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고통하고 신음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밖에 사는 사람들이 이처럼 질병을 걸리고 다치기 때문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도 분명히 부활체를 입고 그곳에 들어갔지만, 그곳에 성안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밖의 만국백성을 위해 치료제를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안에 있는 생명나무 잎사귀들인 것이다(계22:2, 겔47:12). 

계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2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겔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요한계시록을 처음으로 읽는 자들은 왜 천국에 치료제인 생명나무의 잎사귀가 필요하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것은 만국백성을 치료하기 위해 있다고 말이다(계22:2). 왜냐하면 성밖에서 사는 자들이 잘못하면 철장권세로 인하여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치거나 아프면 그들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약재료로 쓰이는 것이 바로 생명나무 잎사귀들인 것이다. 
 

4. 성밖으로 던져지는 두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만국백성이 거주하는 성밖에는 모두 똑같은 지위와 신분 그리고 같은 형벌이 주어지는가? 아니다. 성밖에 사는 사람들도 차등지위와 신분이 있는 것이고 차등형벌이 있는 것이다. 첫째, 성밖에는 성밖 가까이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계22:15, 마25:10). 그리고 둘째, 성밖에서 점점 더 바깥쪽에 있는 어두움 가운데 거주하는 자들이 있다(마25:30). 

  먼저, 첫째로, 성밖에는 성밖 가까이에 거주하는 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성밖에 사는 사람들 중에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두 가지가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안의 빛이다. 이 빛이 넘쳐 흘러서 성밖까지 약간은 비치기 때문이다. 사실 성안은 해와 달의 비침이 필요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어 둘러 비치고 있기 때문이요, 어린양은 그것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계21:23). 그러나 성밖에는 빛이 없다. 단지 성안의 빛이 흘러나와 성밖의 성벽 가까이에 사는 자들에게 그 빛으 조금 비칠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밖 가까이는 생명수가 조금이나마 흘러나오는 곳이다. 왜냐하면 성안에서 흐르고 있는 생명수가 조금은 성밖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성밖에는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사는 자들이 있다. 사실 성밖에는 그들을 비춰줄 빛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의 바깥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 어둡다. 그리고 그 끝에는 낭떨어지가 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이 바로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 된다. 불못은 하나님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칠흙같이 어둑컴컴한 곳이다. 다만 타는 불로 인하여 잠시동안만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장소다. 또한 불못에는 아예 물이 없다. 물 한 방울을 얻을 수 없는 곳이 불못이기 때문다. 그곳에는 펄펄 끓는 용암과 펄펄 끓는 기름이 있을 뿐이다. 

 

5. 마태복음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에 따르면 , 과연 누가 성밖에서 살게 되는가? 

  그런데 성밖의 공간이 크게 두 부분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종말의 때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니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유로서 3가지 비유(열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중에 첫 번째 비유와 두 번째 비유가 바로 성밖에 거주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누군지를 알려준다. 그중에 첫 번째 비유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곧 성밖에 사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성밖에 남겨지고 말았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녀들은 처음부터 미련한 이들 곧 어리석은 이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마25:2). 그들이 누군지를 소개해주고 있는 마25:2의 문장은 사실 미완료구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과거에도 그랬는데 현재까지도 그런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이들은 그전에도 어리석은 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어리석은 자로 살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자들이 처녀로만 준비되어 있다면, 또한 등불만 가지고 있다면 신부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왔던 자들이다. 그런데 신랑을 마중나가러 나갔던 그순간까지도 그녀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어떤 지위와 신분을 갖게 되며 상을 받게 되는지 알려달라고 지혜를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즉시 돌이키고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도 성밖에 남겨지게 될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회개는 안 해도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구원과 천국준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고 그 가르침을 따랐던 자들이다. 둘째는 그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여분의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이란 보혜사 성령을 상징한다(계4:5). 그리고 '여분의 기름'은 그녀가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기름이 곧 '성령'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번 본문에서 기름이란 댓가를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나와있기 때문이다(마25:9~10). 고로 성령은 댓가를 지불해서 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그들이 은혜로 받은 성령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자기의 기름병에 가득히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댓가를 지불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여분의 기름이란 그녀가 주님과 만날 때 얼마나 주님을 기다리고 사모했는지를 알려주는 것들의 사랑의 주머니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름은 그들이 흘린 눈물이요 땀이며 인내요 수고가 모아진 것이다. 그리고 회개가 모아진 것이며, 그들의 헌신과 봉사가 모아진 것이다. 이 기름의 모아진 정도가 천국에서 그녀들의 신분을 더 아름답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이 비유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누가 과연 성밖으로 가서 살게 될 것인지를 적나나하게 보여준다.    

 

6. 나오며

  사실 오늘날 열 처녀의 비유는 정말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특히 혼인잔치를 하는 성을 신부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열 처녀가 신부가 아니라 들러리라고 해석한 것도 그렇다. 본문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는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본문에 등장하는 문은 신랑집의 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랑이 나와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을 데리고 들어가서 문을 닫은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외쳤던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신부나 혹은 신부의 아버지가 아니다. 신랑이다. 왜냐하면 그 집은 신부집이 아니라 신랑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은 신부집이 아니라 신랑집인 것이다. 그곳에 우리 신부를 데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결코 공중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신랑집인 천국 안으로 들어가서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열 처녀들은 신부가 보낸 들러리가 결코 아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로서 신랑의 신부될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다(마25:1).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떠한 처녀들로 준비되어 있는가? 나는 과연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 속한 자인가 아니면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속한 자인가?

 

2024년 10월 1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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