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강해(24)] 참된 사역자들이 싸우는 무기란 어떤 것이며 그것의 특징은 무엇인가?(고후10:1~11)_2025-04-15(화)

by 갈렙 posted Ap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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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O8D3D703kT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고린도후서강해(24)] 참된 사역자들이 싸우는 무기란 어떤 것이며 그것의 특징은 무엇인가?(고후10:1~11)_2025-04-15(화)
https://youtu.be/O8D3D703kTI

 

1. 들어가며

 고린도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머리말)(고후1:1~11)과 본론(고후1:12~13:10)과 결론(꼬리말)(고후13:11~13)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본론은 전반부(1:12~7장)과 중반부(8~9장)과 후반부(10~13:10)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바울의 어조가 바뀐다. 유순한 어조에서 강경한 어조로 바뀌는 것이다. 특히 본론의 후반부는 사도직에 대한 적극적인 변화와 더불어 대적자들에 대한 단호한 권징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바울은 유순한 어조에서 본론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어조를 바꾼 것인가? 그리고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왜 담대할 수 있었는가? 그것이 바로 이번 시간에 나눌 말씀이다. 

 

2.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사도권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하겠다고 말하였는가?

  바울은 본론의 중반부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구제 연보를 권면을 한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로부터 일년 전에 자원하여 구제 연보를 하기로 하였으나(고후8:10), 과정이 아주 지지부지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바울의 대적자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비난하면서, 뿐만 아니라 그를 인격적인 측면에서도 공격하엿끼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은 변덕스럽고 고린도교회의 헌금까지도 사취하는 자라고 비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라도 거역의 연보를 선뜻 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어떻게 연보를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면서, 고린도 교회가 이미 시작한 구제 헌금을 이제는 완결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디도를 대표로 하는 연보 위원을 파견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그리고 구제 연보의 바른 자세와 그 유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이제 강경한 어조로 바뀐다. 즉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을 징계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다시 가면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여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후13:2). 심지어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확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버리운 자들이라고까지 말했다(고후13:5).

  그렇다면 왜 바울은 유순했던 어조는 어디로 가고 오히려 강경한 어조로 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거룩함과 깨끗함을 위해서였다. 만약 바울이 비방자들의 악행을 눈감아준다면, 그들은 더욱 더 많은 감언이설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속일 것이고 그래서 믿음에서 떠나가게 할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거짓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망가지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썩은 감자는 도려내야 다른 감자가 상하지 않듯이, 거짓 사도들을 징계하지 않고는 고린도 교회는 더욱더 더럽혀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서 바울은 비방자들만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진짜는 고린도 교회를 부패하게 하는 이들 속에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3. 바울의 대적자들은 어떻게 인격적으로 바울을 비방했는가?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바울이 육신을 따라서 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후10:2). 다시 말해 바울이 자기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울의 외모를 언급하면서 그가 쓴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그의 외모가 믿음직 스럽게 못하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기가 힘들며 또한 그의 말도 시원한 것이 없다고 비난한 것이다(고후10:10). 전하는 자료들에 따르면 바울은 메부리 코에다가 대머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그가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사람을 비방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여기에도 있다. 그렇다. 비방자들은 바울이 인격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외모도 형편없다고 했으며, 더욱이 그는 말로 시원치 않다고 하면서 그를 어떻게 신뢰할 수 없다고 비꼰 것이다. 

 

4. 바울이 꺼내든 진짜 사도로서의 합당한 영적 무기는 어떤 것이라고 말했는가?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싸움을 할 때 사용하는 무기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결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바울은 영에게 속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대체 영적인 무기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인간의 육신에 속한 무기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육신에 속한 무기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아마도 일종의 말과 이론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즉 인간의 지혜와 이론 그리고 상대방을 비방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리려는 전술전략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무기들로서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영에 속한 무기들만이 대적을 진정 무찌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바울이 생각하고 있던 대적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바울을 비방하고 있는 거짓 사도들이 아니었다. 실은 그들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에 보면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들의 싸워야 할 대상은 혈과 육 곧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고 했다(엡6:12). 그것은 사람들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했다(엡6:12). 그러니까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비방할 때에 악한 영들이 가르쳐준 이론들을 들고와서 바울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바울을 이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영적 싸움에서 무엇을 사용해서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영적인 싸움에서 사용하는 무기들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이고 그것들을 착용하는 것이다(엡6:11). 이때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먼저 복장에 있고 그리고 이어서 방어용 무기와 공격용 무기가 있다. 바울은 우선적으로 자신을 진리와 의와 평안과 구원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진리의 허리띠여, 의의 흉배이며,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자, 구원의 투구라고 했다. 그리고 바울의 두 손에는 두 가지 전쟁용 무기가 들려져 있었으니. 하나는 방어용 무기로서 방패가 들려져 있었다. 그런데 같은 방패라고 그것이 크고 견고해야 어떤 적의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가 있다. 또한 그래야 악한 영들이 불화살로 공격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격용 무기로서 성령이 사용하시는 칼이다. 이때 바울은 양날 검을 들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레마)라고 정의했다. 그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악한 영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5. 성도가 영적인 전쟁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방패와 양날검은 어떻게 장착할 수 있는가?

  영안이 열린 깨끗한 사람이 사람을 보면, 영의 사람(속사람, 영)이 보인다. 그러면 영의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보이고, 손에 들고있는 무기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에베소서 6:10~17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말씀과 똑같다. 영의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고, 가슴에는 흉배(가슴박이)를 붙이고 있으며, 허리에는 띠를 띠고 있고, 발에는 군화를 신고 있다. 그리고 양손 가운데 한 손에는 칼(양날검)을 들고 있고,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등에 불화살까지 차고 있다. 그리고 지휘관은 손에 철장(쇠지팡이)를 들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언급한 영적 전쟁은 실제하는 것이었다. 다만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전신갑주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잘 모른다. 들어본 적도 없고 그것이 실제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라는 표현은 사람의 영적 무장 상태를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전신갑주는 실제하는 것이었다. 6가지 장비들 중에서도 특히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믿음으로 장착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믿음이 있다고 큰 소리 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방패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영안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신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자랑한다 할지라도, 영안으로 자신의 자신의 양날검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만 한다. 그렇다. 먼저 자신의 방패가 과연 얼마나 큰지 아니면 작은지, 얼마나 뚜거운지 아니면 얇은지, 얼마나 구멍이 뚫려있는지 견고한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양날검이 과연 얼마나 큰지 아니면 작은지, 얼마나 강한지 아니면 약한 지, 얼마나 녹이 슬어 있는지 아니면 날이 상해있거나 무뎌있는지 그리고 날카로운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늘 자신의 전신갑주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도 바울은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한 자신의 전투장비의 상태가 어떤지를 점검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는가?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있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 손에 들려있는 영적 무기로 싸우는 것이지 그들처럼 말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울이 가진 영적인 무기들의 대표는 뭐니뭐니해도 하나님의 말씀이다(엡6:17).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영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영적인 무기들에는 양날검 말고도 철장(쇠지팡이), 불화살도 포함될 수 있다. 왜나하면 바울이 언급한 무기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날검도 그냥 칼이 아니라 화염검일 수도 있다. 화염검도 빨간 불이 나오는 화염검도 있고, 파란 불이 나오는 화염검도 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가? 그것은 3가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였다(고후10:4~5a). 

  첫째, 어떤 견고한 진(요새,철옹성)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견고한 진'이란 어떤 것도 무너뜨릴 수 없이 강한 요새를 가리킨다. 그러나 바울이 가지고 있던 영적 무기들은 이런 것들이라고 파쇄한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둘째, 모든 이론들(생각들, 주장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모든 이론들'이란 바울의 대적들이 바울을 비방할 때 쓰던 여러가지 논리들과 생각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논리라고 할지라도 바울이 가진 무기들은 그것들을 다 잘라버리고 불태워버리고 파쇄시켜 버린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것(하나님의 지식)에 맞서 높아진 것(보루)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의 지식에 대항하여 높아진 것은 적의 보루다. 이것은 적의 교만함일 수도 있고, 자기자신을 높이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성령의 검과 철장과 불화살에 의해서 파쇄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기들은 결국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바울이 가진 영적 무기들이 모든 생각(사상, 계획, 전략)을 포로로 사로잡은 후에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다고 말했다(고후10:5b). 이는 바울이 가진 영적 무기들이 결국 사람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귀신들과 뱀들을 사로잡고 그들을 고문하고 그들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7. 나오며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의 대적자들이 하나님의 선한 사역자들을 비방한다. 그리고 온갖 감언이설로 속여서 자기편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들의 비난과 비방은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마귀가 주는 생각과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도들이 가진 것은 복음에 대한 어떤 생각이나 이론들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영적인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을 때, 결국 모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자신이 입고 있는 전신갑주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예를 들어,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가 천으로 된 초등학교 운동모자를 쓰고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모자도 없어 신문지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른다. 자기의 손에 양날검을 쥐고 있는 아니라 그냥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 발에 신고 있는 군화가 슬리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래서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도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크고 견고한 방패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강하고 큰 무기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손에 아예 무기가 들려져 있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있어봤자 몇 십 센티밖에 안 되는 작은 칼을 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하나님의 레마말씀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의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으려면 주 예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주 예수께서 자신을 지키시면 악한 자가 자신을 만질 수도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정작 어떠하며,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레마말씀은 과연 전장에서 쓸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는가? 바울은 적의 어떠한 공격도 파쇄할 수 있는 영적 무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의 눈으로 자신의 전신갑주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자신은 과연 영적 무기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점검하여, 더욱 더 믿음을 신장시키고,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2025년 04월 15일(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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