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25)] 오늘날에 와서 밝혀진, 내 속 곧 내 육신 안에 거하는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롬7:1~20)_2025-05-28(수)

by 갈렙 posted May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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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_UNsJU7hqr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25)] 오늘날에 와서 밝혀진, 내 속 곧 내 육신 안에 거하는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롬7:1~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UNsJU7hqr0

 

1. 들어 가며

  바울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그는  주 예수님을 이미 믿고 있는 자였기에 죄사함도 받았고 성령도 받은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죄된 욕망이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주 예수님의 구속을 믿어서 칭의를 받았다면, 응당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된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며,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던 중, A.D.56 년경에 자신이 받은 지혜와 계시를 가지고 방안을 제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된 본성을 제거하기 위해 혹은 죄된 본성으로부터 해방받기 위해 수많은 방안을 고민했던 사도 바울의 깊은 고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내렸던 그 결론은 무엇이며, 바울은 당시 죄된 본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였으며, 그것을 이기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2. 바울이 자기 몸 안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방법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을 믿어서 칭의를 얻었지만 그것은 자신을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칭의로 구원을 못받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구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가받아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때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들어오실 때에 바로소 그는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구원받은 그날에 죽는 것은 아니다. 또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또 죄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 이상하다! 분명 나는 내가 지은 과거의 죄들에 대해 이미 용서를 받았고 또한 내 속에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셨는데도고, 왜 나는 또 죄를 짓는 것이지?" 이러한 고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칭의를 받은 것은 외적인 신분의 변화에 속한 것일 뿐 내면의 변화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진짜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려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제시한 성화의 방법이 바로 '여김의 법칙'과 '드림의 법칙'이었던 것이다(롬6:11,13). 그것은 자신의 내면의 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서, 첫째로 죄된 본성으로 가득찬 육체를 따라가는 자신의 혼(souls)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채 있다고 여기는(간주하는, 계산하는) 것이다(롬6:11). 즉 거듭나는 순간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지만, 그때부터 자신은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여김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이제는 주님의 몸이 되어버린 자신의 지체들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이제는 자신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지체를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드림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3.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가?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사실 '율법'이라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과 결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그리스도에게 갈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바울은 이내 간음녀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언제 어떻게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율법이 내게 이혼장을 써 주거나 율법 자체가 죽어버리면(없어지면) 가능하다. 그런데 율법은 결코 이혼장을 써 주거나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살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을  할 것이고(롬3:20)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일을 할 것이기 때문다(갈3:24).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 곧 자신이 죽는 길밖에 없다. 자신이 죽어버리면 이전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라고 하였다(롬6:6). 그래야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될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갈2:20). 그러면 새로운 남편인 그리스도에게로 갈지라도 자신은 간음녀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사람이 죄지은 것을 알져주는 척도로서 그 역할 수행할 뿐만 아니라(롬7:7), 죄를 심히 더 죄가 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롬7:13).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4. 바울이 죄(Sin)와 싸우면서 깊이 깨달은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그런데 바울 자신은 분명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이고 또한 자기 안에는 이미 믿을 때에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을 받은 상태에 있었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된 욕망을 이기는 못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왜 나 자신은 칭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냐하면 내 속에 생명의 성령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아래 팔리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율법은 결코 죄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죄를 짓고 있는 한,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율법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바울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자기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마음(누스=이성 혹은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고자 하나, 육체 속에 한 다른 법이 있어서, 죄된 본성을 따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 속에서 계속해서 죄된 본능을 촉발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자기 속에 거하는 죄(Sin)라고 정의하였다(롬7:15~20). 

롬7:15~20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Sin)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Sin)니라 

 

5. 자기 육체 속에 들어있는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짓고 있는 자신을 만드는 장본인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분명 자기자신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것을 사도 바울은 바로 자기 속에서 거주하고(집으로 삼고 있는) 있는 죄라고 명명하였다. 이것을 영어로 보면 단수로 표기되는 바로 그 '죄'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영어번역본은 '죄된 본성'(Sinful Nature)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초기 신학자였던 어거스틴(A.D.354~430)은 사람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죄를 가리켜, '원죄'(Original Sin)라고 명명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죄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사람 속에서 들어온 죄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말하고 있는 '원죄'라는 개념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원죄가 아담에게서 분리 유전되어 계속해서 후손에게 내려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원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원죄가 사라져버린다면 자기자손은 원죄(죄된 본성)없이 태어나야 하지만 아니다. 모든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사람이 태어나면서 이미 갖고 있는 죄에 대해서 이렇다할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다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자기 속에 남아있는 죄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들어와서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에서 '내 속에 거하는 죄'를 살펴보면, 그것은 엄마의 자궁에서부터 이미 침투해 들어온 아한 영들 곧 뱀들과 귀신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말한 '내 속에 거주하고 있는 죄'이면서 어거스틴이 말했던 '원죄'란 곧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있는 뱀들과 귀신들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뱀들이 사람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다(창3:14). 그래서 뱀들은 즉시 아담과 하와를 공격하여 그들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하와가 임신을 하기 전부터 이미 하와의 자궁 속에는 각종 뱀들이 들어있었다. 시기질투의 영, 혈기분노의 영, 미움의 영, 다툼의 영, 살인의 영 등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엄마의 자궁속에 가인이 임신되었을 때에, 가인은 이미 이러한 영들의 침투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가인이 태어났을 때에는 하와는 이미 그녀 자신의 몸 안에 죄된 본성들인 뱀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출애굽기 20:5에 따르면,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면 귀신들도 사람 몸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몸을 '귀신의 집'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마12:43~45).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죄된 본성들을 자기 속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즉 자기 안에 타락한 천사들인 뱀들과 귀신들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는 어거스틴의 주장처럼 분리 유전된다고 보아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죄없는 사람이신 예수님을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사람으로 흠없는 제물로서 이 땅에 태어나도록 하와의 자궁에 악한 영들이 들어있는 것을 아예 차단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죄된 본성을 갖지 아니한 채 태어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나오며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죄된 욕망을 이기고 진정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육체 속에 들어있는 죄된 본성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항상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 때문에 그것들의 영향을 받지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누가 자기에게 가르쳐준 일이 없어도 죄를 짓게 된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혈기와 분노를 내고, 음란하며, 탐심을 내려놓지 않으며,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믿어서 자기 안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라도 역시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날마다 자신의 혼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고 있는 자라도 죄된 유혹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기에 그만 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내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조금은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지만 24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이 여전히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또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성생활을 통해 남편을 통해 들어온 영들과 아내 속에 들어있는 영들이 자궁에서 합쳐져서 태아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자녀의 몸에는 아빠와 엄마의 육체 속에 들어있던 영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에 태어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된 본성을 이기고, 정말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서, 저 천국집의 재료를 날마다 올려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여김과 드림의 법칙을 실천하는 것 외에도 날마다 자기가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예수님의 피로 지워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예수님의 피가 자기의 몸 속에 들어오게 하여 더러운 영들을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하고도 충분한 회개가 없이는 죄된 본성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할 수 없다. 고로 날마다 회개하자. 그래서 내 몸 속에 예수님의 피가 더 많이 충분하게 들어오게 하자. 그래서 내 몸 속에 들어온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차근차근 몰아내도록 하자. 그러면 어느날 죄의 유혹을 따라가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자신을 진정 발견하고 놀라워할 것이다. 

  

 

2025년 05월 28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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