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48)] 구원사의 노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의 지식의 위대함(롬11:25~36)_2025-06-23(월)

by 갈렙 posted Jun 23,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SX_UseYFcF8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48)] 구원사의 노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의 지식의 위대함(롬11:25~36)_2025-06-23(월)

https://youtu.be/SX_UseYFcF8

 

1. 들어가며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뜻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정하셨다. 그리고 천지창조를 시작하였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세전에 자신이 품으셨던 뜻을 계시해 주셨다. 그것은 고스란히 에베소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품으신 뜻을 파악할 수가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을, 믿음의 방법으로(롬11:20),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엡1:5, 3:6). 그리고 이 대상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포함시키셨다(롬1:1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가 되는 것을 유대인로부터 채우기 시작하여 이방인으로 채우셨다(롬11:25). 그리고 부족한 나머지는 다시 유대인으로 채우기로 결정하셨다(롬11:11~12). 그러므로 이 우주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구원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지식이 과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선택, 과연 어느 것이 우선한가?
  하나님은 온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것은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실 '이스라엘'(창32:28)이라는 말은 사실 구약시대에 살았던 야곱(B.C.2065~1859, 향년 147세)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야곱의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B.C.2106~1931, 향년 175세)부터 시작되었다. 맨 처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우상을 섬기는 땅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내었다(B.C.2031). 왜냐하면 셋의 후손인 그의 아버지 데라가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살의 책에 따르면 니므롯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그의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를 떠나라고 하셨다(창12:1). 그러면 그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크게 할 것이며,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그로 인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창12:2~3).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로 결단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고향을 떠나는 순종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유의지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결단을 매우 귀히 보시며 그걸 매우 기뻐하신다. 고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데 써야 함을 알 수 있다

 

3.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셨는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은 이제 그의 후손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시작된다. 그는 먼저 할례를 받음으로 언약백성이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언약을 아들 이삭에게 물려준다. 이삭은 이제 또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그런데 차자인 야곱은 참으로 자유의지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장자가 되어 언약자손이 되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장자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간절한 열망을 아무도 말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얻기까지 엄청 고생을 많이 해야 했다. 하지만 끝내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자신의 아들 12명 중 한 사람만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12아들들 모두가 다 언약자손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4명의 부인을 통해 얻은 12명의 아들들을 다 언약자손으로 만들었고 그들에게 각각의 복을 나눠주었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때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은 야곱이 물려받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가나안 일곱족속의 죄악이 관영치 아니하여 그들을 그곳에서 쫓아낼 때가 아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애굽의 고센땅으로 옮기신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우선적으로 자손이 번성케 하신다. 그리고 400년이 지난 후 가나안 땅에 죄악이 가득차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허락하신다. 그래서 그 자손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는데, 이때도 자유의지가 빛을 발한다. 즉 하나님을 말씀을 믿고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특별기업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 만큼은 말씀에 순종했기에 그들이 원하는 땅을 기업으로 준 것이다. 그래서 갈렙은 헤브론을, 여호수아는 딤낫세라를 특별기업으로 분배받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지파들은 제비를 뽑아서 뽑힌대로 땅을 분배해주신다. 

  그리하여 12개 부족공동체로 출발했던 이스라엘에게 더이상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본토 백성들 때문에 우상숭배와 음행이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원래 가나안 땅의 이방문화는 남자신(바알)과 여자신(아세라신)의 성행위를 통해 비가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음란의 문화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역시 점차로 우상숭배와 음란의 문화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주변민족이 그들을 침고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자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여러 사사들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다시 350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청원하기를 "우리도 왕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전쟁을 하려면 아무래도 왕이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셔사서, 당시 한 사람을 지명하여 왕이 되게 하였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이다. 사울은 전쟁에 능한 자였고 또한 겸손하였다. 하지만 그가 전쟁마다 승승장구를 하자 마음이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고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마음 아파하던 하나님에 의해 사울은 폐위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이 선정되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의 민족이 왕을 두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는 응답으로 세워진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붙잡지 못한 채 타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정 왕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 샘플을 보내셨으니 그가 바로 이새의 8번째 아들 다윗(B.C.1040~970년, 향년 70세)이다.

  다윗은 이새의 8번째 아들로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때 자신의 나이는 15세 정도였다(B.C.1025년). 그러나 그는 사실 정실부인의 자식이 아니었다. 첩의 자식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러한 일에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면서 자랐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무엘 선지자을 시켜 기름부음을 받게 한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약 15년이 시간이 더 지나가야 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에서 선왕인 사울왕의 낯을 피해 10년동안 도망다녀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어서 드디어 사울왕이 죽게 되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B.C.1010년).

  그런데 다윗은 사울왕과는 조금 달랐다. 높은 영의 나이를 가진 자로 보내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항상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왕이 된 것은 결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주변나라를 다 정복하여 마침내 시온산성을 정복한 다음 곧바로 왕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을 옮긴다.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때까지 기럇여아림에 70년간 머물고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이었다(삼하6장). 그리고 얼마후 그는 생각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를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종 나단선지자를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는 그가 하나님을 위해 그분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지금까지 당신은 광야에서 지어진 성막 안에 거하신 후 계속해서 장막과 성막 안에만 거해왔는데, 자기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한 다윗에게 감동하시게 된다. 그러자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신다. 이것을 '다윗언약'이라고 부른다(삼하7장). 그것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원수들로부터 지켜줄 것이며, 또한 그에게는 대대로 자식이 왕이 되는 왕조를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그의 후손이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사울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것 같지 아니하고, 사람의 매와 인생채찍으로만 다스실 정도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다윗을 왕으로 시작하여 다윗왕조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다윗왕조는 그의 후손이 대대로 왕이 되어 무려 20대까지 왕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들이 모두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후손들 20명의 왕들 가운데 3~4명 정도만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였다. 여호사밧왕, 히스기야왕, 요시야 왕 정도가 그나마 선한 왕이었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왕이나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락하여 우상 숭배와 음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미워하셨지만, 강제로 그들의 행위를 막지 않으시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신다. 고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완악함은 도리어 구원의 촛대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방인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

 

4.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B.C.586년 다윗의 후손으로서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사망함에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서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중단된다. 그리고 B.C.4년경 예수께서 태어나신다. 그리고 A.D.27년경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미 종교지도자들을 타락할대로 타락해버린 상태였다. 당시 종교지도자의 두 그룹으로서 바리새인과 사두새인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를 보면서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서 그만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이는데 혈안이 된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된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자신을 따르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어서 방언을 듣고 찾아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해 선포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변화된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저주하며 나사렛 이단처럼 취급한다. 그리하여 주 예수께서는 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는 바울을 변화시켜 그를 이방인으로 사도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최초의 이방인교회였던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이때 이방인의 교회들이 생겨난다. 구원의 촛대가 이방인에게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죽임당할 위협에 처하자 자신이 가진 로마시민권을 발동하여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것을 청구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에 가서 감옥게 갇히게 되지만 아직 죄인이 아닌고로 자유가 주어져 서바나로 전도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히브리서를 로마교회에 보낸다. 그리고 돌아와서 갇힌 후 네로황제의 명령에 따라 순교한다. 

  그런데 바로 로마서는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고린도에서 써 보낸 편지인데, 이는 장차 서바나 전도 여행의 거점으로 삼을 로마교회에 미리 보낸 편지였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사도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전도받아 생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구원론에 관한 기초적인 교리서를 써 보낸다. 여기에서 사도바울은 먼저는 개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설명한 후,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로마서 9~11장에 걸쳐서 써서 보낸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의 숫자가 채워지면 다시 구원의 촛대가 유대인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하였다(롬11:25~26). 그래서 과거에 유대인들이 구원받은 것과 앞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채워진 후에 유대인들이 구원받음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였다(롬11:26).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아예 버리시지는 아니하셨기 때문이다(롬11:1~2). 

  그럼 과연 그때가 언제인가? 그 시기는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대환난 시대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두 증인을 보내실 것이다(계11장). 그러면 대환난의 시기에 이들이 일어나 남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주 예수께서 공중에 도둑같이 오셔서 알곡성도들을 공중으로 휴거시킬 것이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악의 무리를 소탕하시고 구원받은 자들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기실 것이다. 그러면 이 지구는 영원히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구는 콩을 얻기 위해 마련한 밭과 같은 것이어서 알곡성도를 얻은 이후 밭은 없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5. 구원사에 나타난 놀라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한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렇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단순히 그냥 넘어짐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로 인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구원받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계획하셨던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아들들과 상속자들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롬11:11~12). 그러니 유대인들도 나중에는 자신이 배척했던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메시야를 죽인 죄를 통회자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신 구원받을 자들의 숫자가 다 채워지게 될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은사(은혜로운 선물)과 부르심(소명)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이다(롬11: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실수와 허물을 이용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스라엘을 쓰러 넘어뜨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것이 합력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구원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깨달은 바울은 이제 하나님을 놀라운 섭리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11:33~36의 말씀이다. 

롬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엇으며, 주님의 마음을 알 수도 탐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드려야 할 채워지는 어떤 부족함을 하나님은 갖고 있지 아니하시며, 인간에게 구걸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면서 당신의 뜻을 성취해가신다. 그러므로 구원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고 있고 마지막에 가서는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옮겨지면서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이다. 

 

6.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마지막 시기에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그것은 마지막 추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사실 복음이 팔레스틴에서 출발하여 바울에 의해 유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청교도들에 의해 다시 복음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20세기말 다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불꽃처럼 일어난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남겨둔 마지막 선교국가이자 선교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셈족의 후손들 가운데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벨렉의 후손이라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욕단의 후손이기 때문이다(창10:25). 그러니까 한국은 숨겨놓은 셈족의 후예인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한국으로 건너와서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이때까지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 회개의 비밀과 원죄의 비밀과 귀신과 뱀들의 비밀 그리고 저주의 비밀을 이렇게까지 풀어준 때가 없었다. 그리고 천국의 실상을 이렇게까지 많이 알려준 때가 없었다. 특히 천국에서 성도들이 얻게 될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말씀들이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의 열정을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단 하나의 나라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들어가는 모든 나라에서 한국사람을 교회을 개척하고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예배를 주일에 한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기도회를 열어 날마다 기도하는데,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고 수요일와 금요일에는 저녁에 모여서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인구대비로 보면 단연 세계 으뜸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동성애를 인정하려고 하는 등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받을 수가 채워지는 종말의 시점이 가까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때가 다 된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때가 지나가고 이방인의 때도 거의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약자손의 선구자인 아브라함의 때부터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시기가 2030년 정도로해서 이미 끝이 났다. 그때에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 이후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시기도 다 차서 올 해로 2025년이 되었다. 그러니 때가 다 찬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의 종말의 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 성도들이 저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매우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지금 준비하지 못하면 조금 있다가 하려면 때가 늦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를 통치할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마지막 추수가 시작되면 그때에는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시기도 종료될 것이기 때문이다(롬11:25~26).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여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다(마4:17). 먼저 내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회개와 천국복음은 그들을 위한 마지막 날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때 성도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진리를 붙들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혼돈되거나 섞여있는 말씀을 따라가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짧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진리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 남은 때에 무엇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를 잘 정해야 한다. 그때는 다른 시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시기인 것이다.  

 

 

2025년 06월 23일(월)

정보배 목사

 

 

1_48-112536.png

2_.png

3_.png

4_.png

5_.png

6_.png

7_.png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