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55)] 거듭난 성도는 음식과 안식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롬14:1~12)_2025-07-01(화)
https://youtu.be/RZmyzm6AXto

1. 들어가며
구원은 단순히 회개와 믿음으로 시작되는 단회적 사건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완성해나가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생명책의 이름이 흐려지거나 천국 성 밖에 머무는 안타까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이후의 삶이 구원의 완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구원의 중요한 지침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로마서는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교리적 설명이 가득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1차적으로 칭의와 속죄와 중생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받은 이후에 실생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칭의와 속죄와 중생을 통해 이미 구원을 받았어도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완성해 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으려면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이번 시간에 성도들이 함부로 남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정죄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로마교회 내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유발했던 음식 문제와 안식일 문제를 통해 나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각자의 믿음에 따른 신앙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다양한 신앙의 패턴을 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 교회 안에는 유대인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과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자들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의 신앙패턴을 따라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패턴을 따라오지 않을 경우 서로가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에게 다른 신앙의 패턴을 가진 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 핵심은 음식을 먹는 문제와 날을 지키는 문제였다.
첫째, 바울은 음식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지 말고 용납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로마 교회 안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공존한 고로,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또 다른 이는 연약하여 채소만 먹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신앙의 깊이나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양심과 믿음의 분량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특히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전통에 따라 부정한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익숙하였고,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구속에서 자유로웠다 . 문제는 서로 다른 신앙의 형태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이방신전에 바쳐졌다가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반대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먹는 문제는 예수께서 오셔서 이미 해결해놓으셨는데, 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채소만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실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 무엇을 먹을 수 없는가 하는 문제는 본질적인 신앙문제는 아니었다. 지엽적인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된 율법의 의식법을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먹는다고 해서 부정한 것도 아니고, 무엇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먹는 자가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며,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였다. 중요한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동기와 중심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신앙을 그 모습 그대로 받으셨기 때문이다. 고로 신앙의 패턴의 다른 것을 두고 서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용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맨 처음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모두가 다 유대인이었으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했으며 안식일을 지켰으며, 음식을 가려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처음부터 율법준수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자유로웠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으면 그 고기 속에 악한 영들이 따라 들어와서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아무 고기나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고기는 그냥 먹을 수 있어도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둘째, 날짜(안식일) 문제는 각자의 확신과 주님을 향한 사랑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식 문제와 마찬가지로 날짜를 지키는 문제 역시 교회 내에 있는 큰 갈등의 하나였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날, 즉 안식일을 다른 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모든 날을 동등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때부터 지켜온 안식일을 준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주일을 지켜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바울의 입장은 명확하다.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하였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주님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안식일을 특별하게 지키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면 잘한 것이며,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날짜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의 선택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존중해주라고 하였다. 다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3.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고 채소를 먹는 것을 주장하는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과연 이단인가 아니면 형제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흔히들 실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안식교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는 이단이라고 누명을 씌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안식교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제사를 믿고 그분을 구원자로 믿으면 그도 역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호와증인의 경우는 확실히 이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미가엘 천사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상당 부분 개신교의 신앙과 어긋나는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안식교이지만 그들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식교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일을 지키면 태양신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는 이미 자기의 이마에 666표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개신교인들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두고 그들이 잘못 되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들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그렇게 안식일 준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속으는 개신교인들을 정죄한다. 기독교는 태양신의 우상을 섬기는 종교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천주교의 경우에는 조금이나마 적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신교인들 중에 누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두고 자신은 태양신을 숭배한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개신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실체에 대한 그림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신교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자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만천하에 공개하셨기에, 그분이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다. 더욱이 안식교인들은 콘스탄틴 대제가 A.D.321년에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콘스탄틴 대제는 주일에 다만 쉬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이방인 성도들은 모두가 다 일주일 중에 쉬는 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 유대인들을 제외한 어떤 나라에서도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기독교인이 된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인들의 예배생활을 위해 일요일에는 쉬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는 예배를 자유롭게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A.D.321년 이전까지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예배했는가? 그들은 일요일에도 직장에 나가서 일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새벽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일을 마치고 난 후 예배를 드렸다.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창가에서 떨어졌던 유두고는 그날이 주일인데 그날 자기의 일을 마치고 저녁집회에 참석했다가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행20:7~12). 그러나 안식교는 지금까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콘스탄틴 대제가 안식일을 폐지하고 일요일 준수로 바꾸었다고 말이다.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다만 콘스탄틴 대제 때문에 일요일에 쉬면서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개신교인들은 저 안식교가 잘못 되었다고 손가락질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율법에 명시한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전례를 따라서 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안식일 준수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원리에 따라서 안식일에 쉬고 안식일에 모여 예배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러쿵 저렁쿵 말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이 날을 저 날보다 더 중히 여기는 것은 각각 자기의 마음의 확정한 대로 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음식을 가려먹는 것도 이러쿵 저렁쿵 말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홍수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오직 채소와 나무의 열매만 먹었기 때문이다(창1:29). 육신에 대한 허용은 훗날 노아의 홍수 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현재 안식교는 창세 때의 먹거리를 그대로 따르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인들은 그들이 잘못 되었다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법과 같은 의식법의 준수여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인 것이다(롬13:6). 자기의 마음을 따라 확정하면 되는 것이다(롬13:5).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여기면 먹으면 되는 것이요,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패턴의 차이일 뿐이지, 구원의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안식교인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간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개신교인들은 그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하는 태도는 삼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잘못된 교리들은 배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죄인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멸절된다고 주장한다든지, 개신교인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자 666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우리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믿기 때문에 그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어느정도까지는 그들도 형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4.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성도들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순절 이후 이방인으로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과연 어떤 신앙의 패턴을 따라가야 하는가? 그것은 로마서의 기준을 넘어서 바울이 받은 최고의 계시를 따라가야 한다. 그때는 A.D.61~63년경으로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골로새서의 말씀을 기록했던 때이다. 왜냐하면 그때 바울은 로마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로소 골로새서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무엇을 붙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6-17절의 말씀을 통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씀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렇다. 음식법이나 날을 지키는 문제는 더이상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 가운데 의식법들은 다 모형과 그림자이요, 실체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약의 음식법이나 절기법, 안식일 법 등은 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이자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된다.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림자인 율법의 의식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모형이 아닌 실체, 즉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인들도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의식법은 폐지하셨지만 도덕법으로 십계명은 폐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인들 중에는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구원론에 빠져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믿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신 것은 율법의 의식법들인 것이지 결코 도덕법인 십계명이 아니다. 주님은 한 번도 십계명을 폐지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참고로, 당시 구약의 율법은 크게 도덕법과 의식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보편적인 규범이자 사람들을 심판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것은 폐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할례법이나 안식일법, 절기법, 정결법이나 음식법 그리고 제사법이나 성막법과 같은 의식법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모형이자 그림자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사실 한시적으로만 필요했던 것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의식법을 의식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이것의 준수여부가 우리의 구원의 당락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이 이것을 확대해석하여 도덕법까지 폐기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잘못 적용하게 되면 자신의 삶을 방탕과 방종으로 끌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나오며
결론적으로, 우리는 나 자신과 신앙하는 패턴이 다르다 하여 다른 형제를 비판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은 더이상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직접 아뢰게 될 날이 오기 때문이다. 남을 정죄했던 그 입술을 그대로 벌려서 그날 자신도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나와 신앙의 패턴을 달리하는 형제를 판단할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심판자이신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음식이나 날짜와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 즉 신앙의 곁가지에 해당하는 것들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삼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을 때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일 듯하다. 그렇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핵심은 구원론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본적인 뼈대를 굳건히 붙들고 있다면 그는 형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뼈대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서 그리고 지엽적인 문제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로마서 14장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가르침인 것이다
2025년 07월 01일(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