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61)] 바울의 사명감, 그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불타고 있었는가?(롬15:22~33)_2025-07-09(수)

by 갈렙 posted Jul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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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ztr3Eusvf3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1)] 바울의 사명감, 그의 가슴 속에는 과연 무엇이 불타고 있었는가?(롬15:22~33)_2025-07-09(수)

https://youtu.be/ztr3Eusvf34

 

1. 들어가며

  사도 바울,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열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극적인 회심을 이룬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것이다. 로마서 15장 후반부는 이러한 바울의 사역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의 내면을 지배하던 뜨거운 열정과 구체적인 사역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망의 창과 같다. 그는 스스로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고백했다. 이 '빚진 자의 마음'이야말로 그의 모든 사역을 이끌어간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이 어떻게 자신이 받은 은혜의 빚을 갚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의 시선은 항상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그의 노정 가운데 무엇을 바라고 소망했는지를 심도 있게 조명하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어떻게 복음의 빚을 갚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2. 바울이 자신의 사명을 뜨겁게 붙들고 가게 되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바울의 불타는 사명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자신이 누구였었는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그 위를 덮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가 다메섹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는 자신이 본래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폭행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되었다(고전15:9~10, 갈1:13~17). 그는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우두머리)'라 칭하기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딤전1:13~15).

 

고전15:9~10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갈1:13~17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딤전1:13~16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이러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징계하거나 죽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전율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오래 참으심을 보이신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을 넘어 장차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딤전1:16). 즉, 자신의 구원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의 한 모델 케이스가 되었던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의 남은 생을 온전히 드려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맹목적인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나온 필연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과연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지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신 그분의 십자가의 사랑이 날마다 삶 속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처럼 은혜의 깊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도 역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열정을 품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3. 이방인에 대한 복음전파를 명받았던 바울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자신은 받은 은혜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바울을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방인의 사도를 삼으셨기에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땅끝'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행9:15, 갈2:8, 롬11:13).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유언적인 말씀 곧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지상 대위임령을 자신의 사명으로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울은 어린양의 12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과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파했다면, 자신은 이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땅끝'이란 대체 어디였는가? 그리고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그것은 그가 2차 전도여행 때에 이제는 전도지역을 아시아의 북쪽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로 가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떄문이다(행16:6~10). 그리고 그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지역에서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에 거기에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행23:11). 그러므로 바울의 관심사는 언제는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의 육지가 끝나는 곳, 곧 '서바나'(오늘날의 스페인)를 땅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찌하든지 땅끝인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의 필생의 과제로 삼고 달려갔다. 그랬다. 그는 복음이 예루살렘에 시작되었지만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가서 온 세상에 편만하게 증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4. 로마서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간절히 요청했던 것 2가지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거대한 선교비전을 이루기 위해 바울은 달려갔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가 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잠시 머무르면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먼저 보낸다. 그 이유는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복음전파에는 많은 재정이 지출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복음전파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서바나 선교를 위한 '파송'과 '후원'을 요청하였고,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는 선교가 한 명의 위대한 사역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면서 동역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먼저, 바울은 로마 교회에게 부탁을 한다(롬15:22~24). 그것은 자신이 땅끝인 서바나로 전도하러 갈 때에 그들과 교제하여 기쁨을 얻은 후, 그들이 자신을 서바나로 파송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선교라는 것은 선교비의 후원이 없으면 매우 어렵고 난관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도 처음에는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았으나, 2차 전도여행 때부터 중간에 선교비가 떨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로마 교회 성도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재정적인 후원자로 붙혀주셔서 2차와 3차 선교여행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들 부부가 다시 로마로 돌아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을 둘째로 로마 교회에게 세 가지 구체적인 중보기도를 부탁한다. 첫째는, 유대에 있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 즉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달라고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둘째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준비한 구제 헌금이 그곳 성도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기도해줄 것을 부택했다. 셋째는, 이 모든 사역을 마친 후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쁨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성도들과 교제하며 평안히 쉬었다가 다시 서바나로 가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도 요청은 그의 사역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는 사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의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복음 전파는 사실 영적인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기도의 화력 지원 없이는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준다고 하겠다. 선교는 단순히 재정을 보내는 것을 넘어, 선교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복음 전파의 모든 과정에 마음으로 함께 참여하는 전인격적인 동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5. 나오며
  바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땅끝을 향한 복음 전파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회개를 통해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입성하는 것을 돕는 일과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을 잘 준비케 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일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이 그러했듯, 우리도 역시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 길은 지금 이시대에 주어진 사명 곧 회개와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이다. 먼저는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며, 우리의 가족과 이웃, 동료가 복음을 들어야 할 가장 가까운 유대인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에 바울이 로마 교회의 동역을 요청했듯이, 오늘날의 교회 역시 성도들의 헌신적인 재정과 기도의 동역을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고,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려 복음 전파에 동참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때 지녔던 바울의 열정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곧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에 주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러한 칭찬은 오직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인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린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바울의 심장을 가득 채웠던 그 꺼지지 않는 불꽃이 오늘 우리 모두의 심장 속에서 다시 타오르기를 소망해 본다.

 

 

2025년 07월 09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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