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62)]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대체 어떤 존재였는가?(롬16:1~5)_2025-07-10(목)
https://youtu.be/OiW5AAYVwHA

1. 들어가며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는 그가 계시받은 심오한 신학적 진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생생한 현장과 그 속에서 함께했던 동역자들의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다. 특히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내는 개인적인 문안 인사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단순한 안부 인사를 넘어 바울의 사역이 결코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동역자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
특히 바울은 문안인사의 서두에서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인 뵈뵈를 천거하고 로마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서 맨 처음으로 인삿말을 전한다. 왜 바울은 문안인사에서 왜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맨 처음으로 언급했는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바울의 사역에 깊은 영향을 끼친 동역자들의 역할과 그들의 헌신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바울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역을 했으며, 오늘날 교회가 지향해야 할 동역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더 새겨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거대한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했던 이들의 발자취가 얼마나 중요하며, 이들의 섬김이 어떻게 바울의 사역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던 사도 바울의 선교비전과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가졌던 명확한 자기 정체성과 선교 비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스스로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규정했다(롬 11:13, 15:16). 그러므로 그의 사명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방 세계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명 의식은 그의 선교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선교 원칙으로 삼았다(롬15:20). 그리하여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는 곳을 피하여 미개척지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을 자신의 핵심적인 사역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선교적 열망의 정점은 당시 '땅끝'으로 여겨지던 서바나(Hispania, 현재의 스페인)를 향한 선교 비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롬15:24, 28). 그는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적 소명을 완수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써보낸 목적이 바로 이 서바나 선교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고, 그들의 기도와 물질적 후원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와같이 거대한 선교 비전을 품었던 바울에게는 자신의 사역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함께 짐을 짊어질 신실한 동역자들과 함께 동역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선교는 아무리 역량을 갖춘 사역자라 할지라도 혼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보면, 이들이 바로 이러한 바울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 준 핵심적인 동역자들이었음을 말해준다.
3. 바울은 과연 로마 교회를 위해 자신이 썼던 편지를 누구에게 맡겼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로마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겐그레아 교회의 여성 일꾼인 뵈뵈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여러 면에 있어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으며, 여성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추천하지 않고, 고린도 옆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겐그레아 교회의 사람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로마서는 바울의 구원론이 담긴 중요한 서신이었기에, 이를 전달하는 임무는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이때 뵈뵈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얼마나 바울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뵈뵈를 "우리의 자매"이자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διάκονος, diakonos)"으로 소개하고 있다(롬 16:1).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는 성경에서 '사역자'(롬13:4, 고전3:5), '일꾼'(롬16:1, 엡3:7), '추종자'(롬15:8), '집사'(빌1:1, 딤전3:8) 등, 4가지 용어로 번역된 단어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아마도 '교역자'에 해당하는 직분에 해당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로 그녀가 겐그레아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고로 바울이 사람을 추천할 때에는 성별이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실함과 역량을 기준으로 동역자를 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뵈뵈를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προστάτις, prostatis)가 되었다"고 증언한다(롬 16:2). 여기서 '보호자'로 번역된 '프로스타티스'는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재정적 후원자, 법적 보호자, 또는 영향력 있는 후견인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뵈뵈가 상당한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사용하여 바울을 비롯한 여러 순회 사역자들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서원이 실행할 때에, 금식하며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있을 때, 뵈뵈는 그의 곁에서 그를 돌보며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뵈뵈는 바울에게 단순한 편지 전달자가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가능하게 한 필수적인 후원자이자 영적인 동지였던 것이다.
4. 왜 바울은 26명의 로마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맨 처음으로 인삿말을 전했을까?
로마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 가운데 바울이 가장 먼저 문안 인사를 전하는 인물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이다(롬 16:3). 이는 그들이 바울의 사역과 삶에 얼마나 특별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바울은 그들을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르며(롬16:3), 그들이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던 자들"이라고 고백하였다(롬16:4).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에 그들이 보여준 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을 증언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A.D.52년경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하여,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정착했던 이들 부부는 그곳에서 바울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행18:1~3). 그리고 이들은 바울과 같이 장막을 만드는 생업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동역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 부부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그 시대 가운데서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므로 이들 부부는 바울에게 기거할 거처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은 고린도 교회의 시작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에베소와 로마에서도 그들의 가정은 지역 교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가정 교회(house church)'의 표본이 된다(고전16:19).
여기서 가장 주목할 인삿말은 그들이 바울을 위해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다"는 것이다(롬16:4).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은 단순히 그들일 바울을 희생적으로 도왔다는 표현인 것인가? 성경에서는 정확히 어떤 사건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에베소 사역 당시 바울이 겪었던 극심한 생명의 위협 속에서(고후1:8~10),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을 보호하고 구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우정이나 동료애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로서의 희생적인 사랑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랬다. 그들 부부는 바울의 사역이 곧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하였고, 그 사역의 중심인물인 바울을 지키고 돕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돕는 일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에게 단순한 동역자를 넘어, 생명을 함께 나눈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자 영적 싸움의 현장
에서 함께한 전우였던 것이다.
5. 나오며
이처럼 뵈뵈 집사 그리고 브리
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삶은 사도 바울의 위대한 선교사역이 결코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거대한 선교 비전 뒤에는 뵈뵈 집사와 같이 묵묵히 후원하며 신뢰를 보낸 보호자가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함께 짐을 짊어진 동역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기 다른 은사와 모습으로, 그러나 동일한 목표, 즉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렸기 때문이다.이들의 헌신은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우리에게 사실 깊은 울림을 준다. 하나님 나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한두 명의 지도자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수많은 뵈뵈와 브리스길라, 아굴라들의 연합과 헌신을 통해 세워져 가기 때문이다. 재정으로, 기도로, 시간으로, 그리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희생으로 함께할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서 과연 어떠한 존재로 천국에서 기억될 것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있는가? 우리도 역시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이라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동역자'들인가? 뵈뵈 집사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누군가의 사역에 디딤돌이 되고 있ㄴ느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할 때에 우리의 삶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6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동역의 의미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제자도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2025년 07월 10일(목)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