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보완(03)]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지속적으로 회개를 해야만 하는 3가지 이유는?(요일1:7~9)_2025-07-18(금)

by 갈렙 posted Jul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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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wCFm_oIf3_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 보완(03)]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지속적으로 회개를 해야만 하는 3가지 이유는?(요일1:7~9)_2025-07-18(금)

https://youtu.be/wCFm_oIf3_4

 

1. 들어가며: 구원, 그 이후의 과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로마서는 구원론의 핵심이 기록된 중요한 교과서와 같다. 특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로마서라 할지라도 구원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완전한 백과사전은 아니다. 로마서가 제공하는 구원의 진리가 참으로 귀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왜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로마서만으로는 명쾌하게 해결할 수가 없다. 따라서 로마서 강해를 온전히 들여다보려면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구원론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명확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강조점이 약한 주제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각각 중생(거듭남),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회개, 죄된 본성의 실체, 영적 싸움 그리고 구원 탈락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5가지 주제들이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이후, 이 땅에서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실질적인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깊은 신앙의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성경 본문과의 상호 보완적인 해석이 추가되어야 한다. 가령, 생명의 분배에 관한 문제는 요한복음을 통해, 지속적인 회개의 필요성은 요한일서를 통해, 그리고 구원 탈락의 경고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도 ‘지속적인 회개’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왜 구원받은 성도가 죽는 날까지 왜 회개의 삶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지, 그 성경적 근거와 그 결과와 그 방법들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왜 성도는 지속적인 회개를 해야 하는가? 
  로마서에서도 사실 회개가 나오기는 한다. 로마서 2장 4-5절에 보면,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것을 자신를 향한 지속적인 회개의 촉구로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구절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로 연결하려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인 회개에 대한 말씀은 과연 로마서 말고,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것의 대표는 바로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이다. 

요일1:7~9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한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빛 가운데 행하고 있고 주님과 사귐이 있는 ‘성도’를 대상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편지 수신자들에게 자신은 “죄가 없다 말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단언하였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를 짓고 있으니 회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하는 것이다. 아니 죄의 문제는 평생에 우리 믿는 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것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9절에 나오는 ‘자백하면’이라는 표현이다. 이를 헬라어 원문에서 살펴보면 ‘가정법 현재’ 문장으로서, 이것은 단순히 일회적인 고백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자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들이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문제는 단 한 번의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지속적인 회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더럽혀진 옷을 매일같이 세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 번 깨끗해졌다고 해서 옷이 다시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영 또한 죄의 오염에 노출되기에(고후7:1), 끊임없는 회개의 ‘세탁’을 해야 하는 것이다(계22:14). 

 

3. 구원받은 자가 회개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을 보존하기 위함]
  그렇다면 왜 성도는 힘겨운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늘의 생명책에 이미 기록된 채 있는 자기의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계3:5). 요한계시록 3장 5절은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라고 약속하고 있다. 이 말씀을 뒤집어서 보게 되면, ‘지는 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거나 지워진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신약 시대에 비로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은 범죄하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며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 32:33)”고 말씀하히지 않았는가!. 또한 시편 69편 28절에서도 다윗은 악인들을 향하여 “그들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적어도 2명의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언제 기록되고 언제 지워지는가? 먼저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칭의를 믿고 예수님을 생명주는 영으로 영접할 때,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기록된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1년, 10년, 20년이 지난 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번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이름이 영원히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번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그 사람의 구원을 영원히 ‘보증’해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 언제 지워지는가? 그것은 죄를 짓고도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아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우리 몸을 더럽히는 행위를 지속하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한 채 죽었을 때다(그러나 심각한 죄를 범한 자는 죽기 전에도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던져지게 되며(계22:15), 또 어떤 이는 불못에까지 던져지기도 한다(계21:8). 고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그대로 놔두는 행위는 생명책에 이미 기록된 자신의 이름을 위태롭게 만드는 심각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이 비록 구속과 칭의 그리고 중생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회개는 나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내고 생명책에 기록된 내 이름을 보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영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4. 구원받은 자가 회개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유보적 구원에서 영원한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함]
  사람이 구원받았어도 회개를 지속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받았던 ‘유보적 구원’을 ‘영원한 구원’으로 완성하기 위함이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는 이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해준다(마18:23~35. 어떤 왕에게 '일만 달란트'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있었 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두고 말았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노하여 탕감해주었던 일만 달란트의 빚을 다시 그에게 지우고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렇다. 이 비유에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죄 사함받아서 ‘칭의’를 얻은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칭의는 사실 전적으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내게 주어진 구원이라 할지라도 그 구원은 사실 ‘유보적’ 혹은 ‘조건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죄들을 용서받은 자답게 다른 사람을 마땅히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탕감받았던 구원이라도 결국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을 보라.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유보적 구원으로서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부활하사 천상에 계신 우리 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두루마기를 [지금도 계속해서] 빨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나오는 ‘두루마기를 빤다’는 말은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죄를 자백하는’ 행위와 똑같은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지속적인 회개’를 가리키고 있다. 고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우리의 영적인 겉옷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에게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영원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5. 구 원받은 자가 회개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 마지막 심판의 준비
  성도들들이 회개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지막에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고후5:10).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나오는 말씀 곧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성도는 죽음 이후에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보라. 여기에 보면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란 믿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는 성도들이 죽을 때에 행위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5:24의 구절과 고후5:10의 말씀이 서로 충돌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심판의 시기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정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5장에서 말하는 ‘심판’이란 영원한 사망과 지옥의 형벌로 이어지는 ‘정죄의 심판’을 가리킨다. 이것은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이 심판에서 면제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말하는 ‘심판’이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결산하고 그에 따른 상급과 진노를 결정하는 심판이다. 그런데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이때 받을 벌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벌은 적어도 2가지로 주어지는 것이다. 성밖으로 던져지든지 아니면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기 때문이다(계22:15, 21:8). 이때 성도들은 자신이 선악간에 행한 것들을 심판자이신 예수님께 직고하게 될 것이다(롬14:10). 그때에 주와 복음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죄된 본성을 따라서 살았던 자들은 그 죄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그날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주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장 29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날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은 구원받은 이후의 삶의 열매들을 가리킨다. 그렇다. 그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마치 우리의 삶 전체를 올려놓고 그 무게를 달아보는 ‘천칭 저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지속적인 회개를 통해 죄의 무게를 덜어내고 성령의 열매를 맺었느냐에 따라 그날, 어떤 이는 생명의 부활, 즉 영광스러운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부활을 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심판의 부활, 즉 부끄러운 구원을 받거나 심지어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보존되지는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6. 나오 : 회개, 천국을 향한 마지막 관문
  그렇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지속적인 회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감정적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완성하는 일이며,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회심으로 회개와 더불어 주 예수님을 믿어 구속과 칭의 그리고 중생을 얻었다고 해서 자신의 구원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죽는 날까지 회개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3가지다. 이는 첫째, 생명책에서 나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 위함이다. 둘째, 조건부로 주어진 유보적 구원을 영원한 구원으로 완성하기 위함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선악 간에 행한 대로 받게 될 최후심판을 잘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광야같은 교회생활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끊임없이 덜어내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악한 영들을 날마다 내보내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회개’인 것이다. 매일 "회개기도문"(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발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죄를 자백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갈 확률을 더 확고히 높일 수가 있다. 회개는 우리를 얽매는 과거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능력이며, 천국 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길인 것이다.

 

2025년 07월 18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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