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보완(06)] 로마서에서는 과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는가?(롬8:38~39)_2025-07-22(화)

by 갈렙 posted Jul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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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 보완(06)] 로마서에서는 과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는가?(롬8:38~39)_2025-07-22(화)

https://youtu.be/Cl9gSoZEyEU

 

1. 들어가며

  기독교 구원론의  심장부가 기록된 책이 있다면 사람들은 서슴없이 로마서를 고른다. 왜냐하면 로마서에서는 인간의 타락,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칭의, 그리고 성화와 영화에 이르는 구원의 전 과정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신학자와 성도들이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할 때에 가장 먼저 로마서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이 위대한 구원의 서사시 안에도 부족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구원 탈락의 가능성’에 대한 침묵이다. 로마서는 한 번 얻은 구원이 결코 취소될 수 없는 영원한 것인지, 아니면 성도의 배교나 타락으로 인해 상실될 수도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헌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를 만들 때에 오히려 로마서의 말씀이 인용된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과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지에 관한 어떤 진술을 하고 있으며,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러한 교리가 과연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의 신학적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교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핵심 성경 구절들이 과연 합당하며, 또한 이러한 핵심 성경 구절이 얼마나 왜곡되이 번역되어 오늘에 으리게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로마서와 그리고 성경 전체가 말하는 참된 구원관을 다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2.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 란 무엇인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란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백성은 그분의 능력으로 반드시 끝까지 견인되어 구원을 완성하게 된다는 교리를 가리킨다. 이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신 사람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17장 '성도들의 궁극적인 구원에 관하여' 참조). 그러므로 어느 누가 신앙을 저버리고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애초부터 참으로 구원받은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거듭나지 않은 명목상의 가짜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구원하기에 결정하셨다면 그는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를 적용한 구원관으로서, 성도에게 구원의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도 하다. 

 

3.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어떻게 나왔는가?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교리는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칼빈의 5대 교리 가운데 다섯 번째 항목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라는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교리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했다면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을 것이며 비록 잠시 타락해서 다시 그를 회개시켜 결국 최종적으로 그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교리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반드시 지키시고 끝까지 보존하시어 그를 구원받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의 5대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신앙고백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A.D.1648년)인데, 이 고백서의 제17장 1항을 보면, 성도들의 궁극적인 구원에 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실제로 부르시고, 또한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그 상태에 있을 것이며 또한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빌1:6, 벧후1:10, 요10:28-­29, 요일3:9, 벧전1:5,9, 요17:9)."

  그러므로 이러한 교리를 한 번 들은 사람은 이 교리를 맹목적으로 신봉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의 전능성과 신실성에 근거하고 있으니 자신의 구원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맹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의 근거로 채택하고 있는 말씀이 진정 이 교리를 지지해주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리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정리한 것이요, 적어도 나보다 더 실력이 많은 분들이 만들어낸 성경적인 교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3.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성경구절은 없는가?

  그렇다면 성경 말씀에 과연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고 하는 성경구절은 없는가? 다시 말해 이미 얻은 구원이라고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성경말씀은 없는가? 아니다. 엄청 많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요한계시록 3장 5절을 보자.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약속을 역으로 언급하면, ‘지는 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마25:1~13)를 보자. 여기에 나오는 열 처녀는 모두가 다 등과 기름을 준비고 신랑을 준비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 오고 잇었다. 그래서 그만 졸다가 한 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성 안에 준비된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던 다섯 처녀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결코 불신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역시 자기 손에 등불을 들고 있었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불'이란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들도 신랑을 기다리던 자들이었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들도 역시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주님으로부터 거룩한 신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성밖에 버려지고 말았다. 여기서 성밖이란 바로 새 예루살렘 성밖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실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성경말씀이 성경 곳곳에 수두룩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를 일단 유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교리의 근거로서 사용된 성경구절이 과연 이 교리를 지지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 교리가 정말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는 신학자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괄호 안에 제시된 여러 성경 구절들이 있으니, 이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할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그 구절들이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된다는 것에 일치하는 성경구절이 아니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진정 제시하고 있는 바른 구원이 대체 어떤 것이며, 과연 예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이 제시한 성경구절이 과연 합당한 성경구절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바른 구원론의 바탕 위에 자신의 구원관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4.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교리의 근거로서 성경구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의 실제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과연 성경에 근거한 합당한 교리인들인가? 그리고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이들이 제시하는 성경구절은 과연 이 교리에 부합하는 성경구절인가? 그래서 여러 관련된 책자들을 검토하여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된다고 가르치는 성경말씀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 특징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바람이거나 아니면 그 말씀을 증거하는 자의 확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wish)’을 그만 필연적인 ‘성취(will)’로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딤후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둘째,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성경구절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을 이룬다고 하는 구절이 성경을 왜곡해서 번역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성경구절은 이 교리에 부합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 성경구절을 변형시켜서 이 교리에 부합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말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예는 곧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이다. 

  

5.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 것을 지지한다고 하는 핵심 구절은 과연 합당한 것이었는가?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 교리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는 구절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로마서와 요한복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을 헬라어 원문의 문맥과 문법에 따라 면밀히 살펴보면, 전통적인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 로마서 8장 38-39절의 말씀을 보자. 누가 과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는가?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헬라어직역] 왜냐하면 나 자신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능력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 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체 누구의 확신인가? 그리고 누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이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그렇다 .주어가 ‘나(바울)’이며, 동사는 ‘확신한다’이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포라기보다는,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모든 환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신앙고백이자 간절한 바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표현 역시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과대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도 역시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을 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롬8:39). 그리고 이 말씀은 당시 주님을 위해 죽음의 위협에 처한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바울이 쓴 것으로,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위로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들을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지, 죄짓고 주님의 뜻을 멀리 떠나 사는 자까지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느 때까지는 참고 기다리시지만 계속해서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가면 그에게 심판주로서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는가? 그 대상은 바로 '우리'라고 했다. 그럼 '우리'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바로 '우리'이다. 이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서 죄된 본성을 이기고 있는 이들(롬8:1~2)이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들(롬8:14)이며, 주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고 있는 이들이다(롬8:17). 그리고 자신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성화와 영화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롬8:30)이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날마다 죄짓고 부패한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둘째, 요한복음 6장 37절과 39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여기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것은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뜻’인가?

  먼저, 요6:37절의 말씀을 개역개정성경과 헬라어성경(네슬알란트사본)으로 보자.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헬라어직역]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이런 모든 것은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착할) 것이며, 그리고 나를 향하여 오고 있는 이를 나는 결코 바깥쪽으로 내쫓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 ‘주시는 자’는 헬라어 원문을 보면, 남성 단수로서 '이런 사람(~하는 자)'이 아니라, ‘중성 단수(πᾶν ὃ)’로서 '이런 모든 것(everything)'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 주시는 것은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구원을 이루도록 주시는 모든 능력과 권세, 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세 전에 아버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된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요6:39절의 말씀을 개역개정성경과 헬라어성경(네슬알란트사본)으로 보자.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9[헬라어직역] 그런데 이것이 나를 보내신 그분의 그 뜻이니, 곧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모든 이런 그것(뜻)을 내가 그것(뜻)에서부터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뜻)을 그 마지막 날 안에 다시 일으키는 그것입니다.

  여기서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주신 자’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도 중성 단수로서,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뜻(will)’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뜻'은 '쎌렘마'라는 단어로서 중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원하라고 아들에게 보내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인류를 구원하라고 뜻을 주셨는데, 이것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그때로 수행하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래서 구원에 관한 만반의 준비를 다 하시고 우리 인간을 초청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받아들여 예수 앞으로 나아오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셋째, 요한복음 10장 28-29절을 보자.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람으로서 남성 단수인가 아니면 중성단수인가? 

  먼저, 요10:28의 말씀을 보자.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헬라어직역] 그리고 나 자신은 그것들(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그것들(양들)은 영원히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어떤 이도 나의 손에서부터 그것들(양들)을 낚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현재 개역개정성경에는 예수께서 “그[것]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것]들(αὐτοῖς)(중성,복수)’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바로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의 정체는 바로 앞 구절에 나온다. 그[것]들은 중성 복수 단어(프로바타)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것]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양들으로 번역된 '프로바타'(중성,복수)이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가? 그것은 지금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고’ 그분을 ‘따르고 있는’ 순종의 조건을 충족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제는 요10:29의 말씀을 보자.

요10:29 a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a 어떤 사본에,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만물보다 크매)
요10:29[헬라어직역]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채 있는 이런 그것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아무도 나의 아버지의 손에서부터 바깥으로 낚아챌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왜곡 중의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것이 '중성 단수'(이런 그것)인데, 이것을 '남성 단수'(그분)로 바꾸고 놓고 있으며, 개역개정성경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다시 '남성 복수'(그들)로까지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것은 무엇인가? '이런 그것'이다. 더욱이 29절의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에서 ‘그들’로 번역된 헬라어 역시 사람이 아닌 ‘중성 단수(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것(능력과 권세, 지혜, 말씀 등등)’은 만물보다 훨씬 더 큰 것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예수님에게서 밖으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 왜 성경번역자들은 이러한 왜곡을 한 것일까? 그것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의 틀 안에서 성경을 보다가, 그 교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성경원문까지도 손을 댄 것이다. 이렇게 번역된 성경말씀이 성경에 많지는 않지만 유독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성경구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6. 나오며: 구원,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는 여정
  성경 구절들을 원문의 빛 아래에서 정직하게 살펴보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가 얼마나 특정 신학적 틀에 맞춰 성경을 재단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구원의 길을 쉽고 편하게 가려는 인간적인 욕망과 안일함이 만들어낸 신학적 변형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구원은, 한 번의 결단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야 하는 순례의 여정인 것이다(빌 2:12). 이 여정은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며, 어떠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결단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일단 믿음과 회개를 통해 주어진 것이지만, 이것을 완성하기까지는 우리의 헌신과 희생, 눈물과 순종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할 수 없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완성하려면 최소한 자기가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의 더럽혀진 겉옷을 예수님의 피로 빨아야 한다(계22:14, 요일1:7).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외치는 자들의 주장을 신봉하여, 안일한 구원의 확신 안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날마다 회개를 통해 우리 안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참된 양’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흠 없는 자로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지키고 완성하는 것은 우리의 전적인 응답과 책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2025년 07월 22일(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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