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보완(09)] 보혜사 성령께서 한 번 내주하시면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는가?(요14:16~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by 갈렙 posted Jul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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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sMGeOW1fQnw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 보완(09)] 보혜사 성령께서 한 번 내주하시면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는가?(요14:16~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sMGeOW1fQnw

 

1. 들어가며 : 성령, 그 신비로운 동행에 대한 근원적 질문
  성령(聖靈, Holy Spirit)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신비와 능력을 담고 있는 분이시다. 창조의 순간부터 수면 위를 운행하셨고(창1:2), 구약의 선지자와 왕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으며, 마침내 오순절 다락방에 불과 같이 임하여 교회를 탄생시킨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성령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분은 더 이상 우리 ‘위에’ 머무시는 일시적인 손님이 아니라(삿6:34),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거하시는 보혜사(保惠師, Paraclete)이시기 때문이다(요14:16, 26, 15:26, 16:7).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첨예하고 실제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한 번 우리 안에 내주(內住)하신 성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성도들을 떠나지 아니하시는가?” 이 질문은 곧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가?’라는 구원론의 핵심 쟁점과 직결된다. 만약 성령께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며, 만약 성령께서 떠나실 수 있다면, 우리의 구원 역시 상실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나오는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는 말씀이 확실하다면, 성령의 영원한 내주는 곧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와는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경고들이 있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이 오래된 신학적 난제를 성경적으로 특히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풀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의 성령 사역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고, 논쟁의 핵심 구절인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영원토록’이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를 깊이 파악함으로써, 보혜사 성령과의 동행에 대한 균형 잡힌 진리를 탐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고 구원의 날까지 그 인치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구약과 신약, 성령 사역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성령의 영원한 내주(안에 거주하심)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성령 사역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 성령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특정 인물, 특정 시기에 임재하셨다. 여기서 '임재하셨다' 혹은 '임하셨다'는 말은 사람 속에 들어가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머무시는 것을 의미한다(삿3:10, 6:34, 11:29, 14:6). 성막을 건축할 지혜가 필요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출36:1), 블레셋과 싸워야 했던 삼손에게(삿14:6, 19, 15:14),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했던 사울 왕에게 성령은 ‘임하셨다(came upon)’(삼상10:6). 구약시대 성령 곧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의 근원이셨다. 그렇지만 이 임재(내려오셔서 머리 위에 머무심)는 영구적이지 않았다. 가장 극적인 예는 사울 왕의 경우이다.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신이 그를 번뇌하게 했기 때문이다(삼상 16:14). 다윗도 역시 밧세바와 우리아를 향한 끔찍한 죄를 지은 후, 시편 51편에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절규했다. 이는 구약의 성도들이 성령께서 떠나실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약의 성령은 사람 ‘위에’ 머무시되, 일시적으로 머무렸고 선택적으로 역사하셨다.

  반면, 신약 시대의 성령 사역은 어떠한가? 신약 시대의 성령은 구약시대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겔36:26~27)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11:19~20, 31:31~34)에 따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요14:16, 26, 15:26, 16:7)과 더불어서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이 되기에 이른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떠나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요16:7), 그 성령은 제자들 ‘속에’ 들어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4:16). 그리하여 A.D.30년 오순절 이후, 성령은 믿는 모든 자의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그들을 거듭나게 하시고(重生)(요3:5), 그들의 영과 하나가 되신다(고전6:17).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선포한다. 이는 성령과 거듭난 사람의 영이 분리될 수 없는 연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성령은 구약과는 질적으로 다른 친밀하고도 많은 동행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 신약 시대의 ‘성령의 내주’야말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3. 거듭난 성도들에게 성령께서는 정말로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것인가?
  신약 시대의 성령이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신다는 주장의 핵심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14장 16절이다. 여기에 보면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εἰς τὸν αἰῶνα, 에이스 톤 아이오나)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본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도는 이 구절의 ‘영원토록’이라는 번역을 근거로, 한 번 내주하신 성령은 결코 떠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의 구원 역시 영원히 안전하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이 믿음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0장 29절에서는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께서 어떠한 경우에도 떠나지 않고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신다면, 그 사람이 지옥의 형벌을 받을 때 성령 역시 그와 함께 지옥에 가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거룩하신 성령은 결코 지옥에 가실 수 없으므로,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성령은 그가 죽기 전 어느 시점엔가 반드시 그를 떠나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지만(엡1:13~14), 성령께서 거듭난 성도를 인치시고 보증하는 기간은 '구속의 날까지'라고 하였다(엡4:30). 그러므로 성령의 영원한 내주는 이 말씀과도 충돌된다.

 

4. 거듭듭난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영원토록’ 내주하신다는 말의 본뜻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성령의 내주에 관한 신학적 난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할 열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토록’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스 톤 아이오나’의 정확한 번역이다. 이 문구(전치사구)는 대부분의 영어번역본이나 한글성경에서는 거의가 다 ‘영원토록(영원히)’(forever)을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구(전치사구)를 헬라어에서 올바로 직역한다면, 이 문구는 ‘한 시대 동안’ 또는 ‘그 시대까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헬라어 ‘아이온(aion)’은 본래 ‘시대(age)’나 ‘세대(generation)’를 의미하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아이온'을 시대나 세대로 번역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께서 이 단어를 사용할 때에 '시대'나 '세대' 그리고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 마태복음 12장 32절을 보라. 예수께서는 이때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게 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여기에서 ‘세상’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이 ‘아이온’이다. 고로 '아이온'이라는 단어는 '영원'이라는 의미가 본뜻이 아니라 '시대, 세대, 세상'으로 번역해야할 단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는 '그 시대까지(to the age)' 혹은 '한 시대동안(for the age)'로 번역함이 옳은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 그 뜻이 '영원히(영원토록)'이나 혹은 '세세[무궁]토록'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구(전치사구)로 만들려면, '아이온'을 단수로 사용해서는 아니되고, 복수형태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진짜로 영원토록이나 세세토록을 의미하는 용례에는 전부다 '아이온'이 복수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영원무궁한 시간’을 표현할 때는 ‘아이온’을 복수 형태로 사용하거나 중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세대들까지’를 의미하는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eis tous aionas)’(마6:13, 눅1:33, 롬1:25, 고후11:31)을 번역할 때에는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고 번역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때는 '아이온'이 복수로 사용되어서 이 단어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포함하는 단어로 쓰익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대들의 세대들까지’는 문구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문구는 ‘세세토록'(갈1:5) 혹은 '세세무궁토록’(딤후4:18, 히13:21)을 의미하는데, 이 문구를 헬라어로 보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eis tous aionas ton aionon)’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특히 이 표현들은 요한계시록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묘사할 때 '세세토록'이라는 의미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계1:6, 18, 4:9, 10, 5:13, 7:12, 10:6, 11:15, 14:11, 15:7, 19:3, 22:5).

  고로 이러한 원어적 분석에 근거할 때, 요한복음 14장 16절의 약속은 성령께서 우리가 죽어 이 시대를 마감할 때까지, 즉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이는 에베소서 4장 30절의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속량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의 여정을 마치는 ‘속량의 날’까지 유효한 보증이기 때문이다.

 

5.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죄, 떠나게 하는 죄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실 수 있다는 진리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함께 거룩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우에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시는가? 성경은 우리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할 때’ 그 위험이 현실이 된다고 경고한다. 이는 곧, 성령의 음성을 고의로 무시하고, 죄에 대한 그분의 책망을 거부하며, 지속적으로 죄 가운데 거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성령은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기뻐하기도 하시고 근심하기도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성령은 우리 안에서 탄식하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촉구하신다. 이때 우리가 그 음성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회개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음성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단계를 넘어, 히브리서가 경고하는 것처럼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이르면, 성령께서는 더 이상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성령이 떠나시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이는 구원의 여정에서 최종적으로 탈락하는 영적 사망을 가져오는 것이다. 

  

6. 나오며: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삶
  결론적으로, 신약의 성도에게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은 구약 시대와 같이 변덕스럽게 떠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의 경주를 마치는 그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실 것이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준다.

그러나 이 약속은 결코 우리가 죄 가운데 방종하며 살아도 좋다는 ‘백지수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유효한, 조건적인 약속이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우리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고의적인 배교를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분이 죄를 지적하실 때 즉시 회개하고, 그분이 의의 길로 인도하실 때 즉각 순종해야 한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을 넘어, 그분을 욕되게 하여 마침내 우리를 떠나시게 만드는 비극에 이르지 않도록, 날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 한다. 성령과의 친밀한 동행, 그리고 그 음성에 대한 민감한 순종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속량의 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2025년 07월 25일(금)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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