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보완(18)] 창세기에 나타난 이기는 자와 왕노릇하는 자의 예표는 무엇인가?(창35:9~12)_2025-08-04(월)

by 갈렙 posted Aug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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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 보완(18)] 창세기에 나타난 이기는 자와 왕노릇하는 자의 예표는 무엇인가?(창35:9~12)_2025-08-04(월)

https://youtu.be/dkGK1tWj_jY

 

 

1. 들어가며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각 부분을 조망하는 넓은 시야와, 개별 단어와 구절의 깊은 의미를 파고드는 섬세한 작업이 모두 필요하다. 특히 로마서와 같이 구원의 교리를 다루는 서신서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믿음의 행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야고보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 다른 성경들과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믿음의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지위와 상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 그리고 왕 노릇 하는 자를 통틀어 한 가지 독특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이기는 자’라는 표현이다(계2:7,11,17,26, 3:5, 12, 21, 21:7).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매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사탄과 세상의 유혹과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에서 상속자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기는 자라는 표현은 사실 창세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창세기에 나타난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기는 자와 왕 노릇 하는 자의 예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목표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2.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이기는 자는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형상을 닮은 아들들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다(창1:28). 이 땅은 하나님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밭’과 같은 것이며, 창세기의 역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낳고, 그들을 이기는 자로 훈련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 즉 천국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는 어떤 복을 받을 사람인가? 그것은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에 잘 나와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각 교회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기는 자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며,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받고,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받으며,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흐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며,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처럼 이기는 자는 단순히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왕 노릇 하는 자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시작의 책인 창세기에서 이미 '이기는 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이기는 것이며, 이기는 자가 받을 복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다. 바로 이들이 이기는 자의 예표들이기 때문이다.

 

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어떤 이기는 자들이 되었는가?

  이제 창세기의 마지막 인물인 요셉이 죽고 얼마 후 애굽의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 모래처럼 많아진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이끌어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를 시작하려 하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민족의 영도자로서 물에서 건진 모세를 불러서 이 일을 맡기신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타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실 때에 당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과거 인물들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구원 경륜 속에서 각 인물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각각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은 상속자들의 중요한 예표가 되기 때문이다(마8:11, 22:32).

  첫째, 아브라함은 믿음과 회개로 되어지는 이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아들들)의 예표이다. 아브라함은 혈통을 통하여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자녀(아들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비 데라의 첫째 아들이 아니라 셋째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하나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하늘의 뭇별과 같이, 바닷가 모래와 같은 많은 자손을 약속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는 장자의 혈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상속자가 되는 새로운 길을 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라 할 것 없이 모든 인류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일종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혈통을 통한 자손 탄생과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려는 계획을 아담을 통해 실행하려 했으나, 뱀(사탄)의 출현으로 인해 실패하게 되자,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 곧 아브라함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아담에게 주신 말씀과 같은 말씀을 또 한 번 주신다. 그것은 그를 통하여 많은 자손을 산출하게 될 것이고,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창13:15~16).

  둘째, 이삭은 혈통이 아니라 언약을 계승하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순종을 통하여 비로소 그것이 인정된다는 상속자의 예표이다. 사실 이삭은 둘째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맏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약(약속)을 따라 낳지 아니하고 육체를 따라 태어난 이스마엘을 언약 계승자로 인정해주지 않으셨다. 창세기 22장에서 이미 25살 내지는 36살 먹은 이삭을 '독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고 천국을 기업으로 차지할 자는 육체를 따라서 나서는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만 가능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이라는 육신의 아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약속을 따라 태어난 이삭만을 상속자로 인정하셨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혈통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약속과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셋째, 야곱은 성령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 중에 진정한 이기는 자로서 상속자의 예표이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그러나 형 에서와는 몇 분 차이가 나지 않는 동생이었다.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시간적으로 몇 분 늦게 태어났다고 해서 언약의 계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형이 가진 장자권과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사모하고 사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혈통적으로만 본다면 장자는 아니었지만,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나이가 16살이 되었을 때에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사들였다(창25:27~34).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 이삭이 장자의 축복을 하려 했을 때에는 어머니의 계획을 따라 속여서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까지 받는다(창27장). 그때는 그의 나이가 76세 때였다. 사실 그가 장자권을 사고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면 연약함과 속임수가 있기는 하였지만, 형 에서와 비해 장자권과 축복을 사모하는 그의 갈망을 보시고 그를 인정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온전한 언약 계승자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뒷이야기를 조금 이따가 하기로 하자, 어찌 되었든 야곱이 장자권을 얻기 위한 불타는 갈망을 가졌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견디고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천국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기 위한 거룩한 열망과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이런 자가 이기는 자들 중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의 반열에 올라가기 때문이다.

 

4. 야곱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야곱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릴 적부터 가졌던 장자권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결정적인 시간이 왔다. 그것은 얍복강에서 드린 그의 기도이다(창32장). 사실 야곱은 자신의 형이 받을 장자권과 장자 축복을 가로챘다. 그러자 장자 축복을 빼앗긴 형의 강력한 살인 예고가 있었다. 그러자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충고를 따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동족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20년이 지난 후 마침내 4명의 부인들과 12명의 자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형 에서가 마음에 걸렸다. 다시 와서 자신의 처들과 자식들을 죽이고 자신을 죽인다면 지금까지 수고한 모든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면 돌파인가 평생 도망자로 살아갈 것인가? 그때 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기와 처자식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얍복강에 남았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때 한 사람이 그 앞에 나타났다. 기도와 관련된 천사였다. 그러자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천사인 줄 알았고 그래서 그를 붙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축복할 때까지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그러자 천사가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쳤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었다. '발꿈치를 잡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야곱'에서 '하나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로 바꾸어준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이기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 야곱이 이처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실제적인 2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믿음으로 이긴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에도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더욱이 외삼촌 집에서 처가살이를 마쳤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출생지(고향)로 가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창31:13)."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31:13)" 그러므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붙잡아주신다. 그래서 야곱이 얍복강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두 무리의 군대(마하나님)가 그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무리의 군대(마하네)는 얍복강에 남아서 기도하는 야곱의 주위에 진을 치고 그를 보호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기도를 가지고 올라가야 했던 수호천사도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든지 야곱에게 붙들려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친 후에 야곱을 축복하고 하나님께로 갈 수가 있었다.

  둘째, 그는 회개함으로 이긴 것이다. 왜냐하면 얍복강에서 기도하던 야곱이 형 에서에게 자신의 잘못을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완전무장한 한 무리의 군대(마하네)가 에서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와 함께 달려오던 에서가 그 군대(마하네)와 마주치고 말았다. 나중에 에서는 자기가 오다가 경험한 사실을 야곱에게 털어놓았다. "내가 [오다가] 이미 마주쳤던 바 이 모든 군대(마하네)는 너에게 누구냐(창33:8 히브리어원문)" 그렇다. 에서는 이미 한 무리의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이미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밤새 철야 기도를 마치고 다리를 절면서 동생 야곱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엎드려 절하는 야곱, 그는 무려 일곱 번이나 자신에게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에서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이에 에서는 야곱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야곱은 회개함으로써 형 에서마저 이기게 된 것이다(창33:3).

 

5. 창세기에서 왕 노릇 하는 자의 예표는 대체 누구인가?

  창세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로 그 대미를 장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창세기 25장에서부터 시작된 야곱의 이야기는 창세기의 마지막 장인 50장까지 계속해서 요셉의 이야기와 겹치며 등장한다. 왜 하나님은 창세기를 야곱의 이야기로 마치신 것인가? 더욱이 야곱의 이야기는 왜 그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와 겹쳐서 나오는가? 이는 단순히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소개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누가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며, 그들 가운데서도 누가 특별히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지를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요셉 이야기는 야곱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야곱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야곱의 생애 가운데 맨 마지막의 숙제로 남겨진 요셉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하여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가게 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게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로 높이셨고, 기근으로 고통받는 야곱과 그의 식구들과 이방 나라들을 포함한 온 세상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요셉의 삶은 이기는 자의 최종 단계, 즉 고난을 통해 연단받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사명자로 이 땅에 보내어진 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셉은 자신을 해하려 했던 형들을 어떻게 했는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들과 그의 식구들을 어떻게 했는가? 그리고 7년 기근으로 인하여 다 죽게 된 온 세상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었는가?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6. 나오며

  창세기는 단순히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가 나아가야 할 길, 즉 이기는 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어 칭의를 얻고 생명 분배를 통한 중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인 천국에 들어가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그 신분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라고 해서 다 똑같은 신분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아들들)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기도 하고, 또 나아가서는 성 밖으로 나가서 민족들 위에 왕 노릇 하고 더 나아가서는 온 우주의 별들을 통치하는 자의 신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할 때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고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가? 그럴려면 이기는 자의 예표인 야곱의 생애와 요셉의 생애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야곱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하늘의 복을 사모하고 갈망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때 믿음과 회개는 필수적이며,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지금 나의 지위와 신분에 만족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야곱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더 훌륭한 지위와 신분을 사모하고, 요셉과 같이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고 또한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 그는 마침내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는 144,000석의 보좌에 앉아 만국을 다스리는 왕 노릇 하는 자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자, 우리가 힘써 달려가야 할 신앙의 목표인 것이다.

 

2025년 08월 04일(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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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4 [로마서강해 보완(18)] 창세기에 나타난 이기는 자와 왕노릇하는 자의 예표는 무엇인가(창35,9_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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