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로마서강해 보완(19)] 창세기에 나타난 왕노릇하는 자의 예표는 누구인가?(창49:22~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DzIX8fpgsS0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 그 참된 의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칭의 그리고 중생을 통한 생명분배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에 배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하늘 나라에서 상속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속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주와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은 구원을 얻기 위한 율법적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이란 이미 자신이 주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우리는 '믿음의 행위'라고 부른다. 믿음의 행위가 있는 자들은 이제 상속자의 길에 들어선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율법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려 시도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선행을 쌓는다면, 그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죽을 때에 아무 것도 계산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행위의 동기가 순수한 감사와 사랑이 아니라면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자기만족이나 과시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며, 더 나아가서는 천국에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결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통해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우리는 씨앗의 책으로 주어진 창세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이기는 자가 되며 상속자가 되고 더 나아가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씨앗의 책인 창세기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왕 노릇 하는 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경은 장차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자들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왕 노릇 하는 자'들이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바로 하나님의 종들로서, 이마에 인침을 받은 14만 4천 명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왕 노릇을 하는 자들이란 인맞은 144,000명 가운데서도 앞쪽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최소 이기는 자들의 특별 부분인 144,000명에 속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의 특징들이 있다(계14:4~5).
첫째, 그들은 여자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처녀들이다(계14:4a). 여기서 '여자'란 세속적인 가치관과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를 지칭되는 인물이다. 고로 144,000명의 사람들이란 세상의 유혹과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순결함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거룩함과 순수성을 유지하는 자들이 중에 일부가 왕 노릇 할 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끝까지 따르는 자들이다(계14:4b). 이는 144,000명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고난의 길이든 아니면 영광의 길이든, 묵묵히 따라가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바로 144,000명에 속한 자들인 것이다.
셋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14:5). 고로 이들의 말 속에는 거짓이나 속임수가 없으며,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흠 잡을 데 없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임을 드러내준다. 고로 이들의 말은 언제나 행동과 일치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한다. 그러면 이런 자들이 장차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3. 창세기에서는 천국에서 이기는 자들 중에 왕 노릇 하는 자의 예표로 누구를 말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의 씨앗이라 일컬어지는 창세기에는 과연 장차 나타날 왕노릇하는 자로서 누구를 말씀하고 있는가? 그는 바로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이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라헬의 소생이다. 그렇지만 라헬이 가장 먼저 죽는 바람에 어릴 때부터 고아처럼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흠이 되고 말았다. 그것들은 형들의 시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결국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는 그는 이기는 자였던 야곱의 자식들 중에 가장 이기는 자로 살다 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긴 자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의 삶 속에 나타난 왕 노릇 하는 자의 특징은 대체 어떤 것인가?
첫째, 왕 노릇할 자는 고난을 이겨내는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한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의 시기로 인해 가장 먼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가정총무가 되었으나 주인의 처가 간음유혹을 뿌리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노예와 죄수생활을 무려 13년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상상하기 힘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스스로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행해 원망하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신 꿈, 즉 장차 모든 형제들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명을 굳게 붙들고 모든 역경을 믿음으로 이겨내었다. 이는 그가 17세 때에 꾸었던 2가지 의미있는 꿈들을 붙들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형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고(창37:7),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창37:9). 그러니까 요셉을 견고하게 해 준 것은 하나님의 주신 꿈을 붙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시대의 사람들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둘째, 왕노릇할 자는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을 가진 자라야 한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었지만 어찌어찌하여 그는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된다. 그러다가 바로왕이 꾼 꿈에 따라 7년 흉년이 시작되자, 2년만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과 재회를 하게 된다.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에 요셉은 충분히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여 그들을 품어주는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이가 형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먼저 나를 당신들보다 보내셨나이다"(창45:5)라는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는 언제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데 앞과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될 때 사람은 성숙한 인격을 표출하게 된다. 그렇다.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고 인내할 줄 알며 따라가는 자가 결국 성숙한 인격으로 살다가 죽어서 왕 노릇 할 자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왕노릇할 자는 자신이 가진 권한과 능력으로 남들까지 살리는 자라야 한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막강한 권한을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흉년으로 고통받는 자신의 원 가족과 애굽 백성, 나아가서는 주변의 모든 이방 민족까지 기근에서 구원하는 일에 힘썼다. 특히 그는 자기 민족에게는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여 그들의 영혼을 살리고, 이방 민족에게는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는 왕 노릇 하는 자가 가져야 할 권한 사용의 올바른 모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성령시대의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 무엇인가?
이기는 자들 중에 성령시대의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실 아브라함은 성부 하나님 시대의 이기는 자의 대표이며, 이삭은 성자 하나님 시대의 이기는 자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그것을 반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 시대의 사람의 예표는 누구인가? 그는 바로 '야곱'이자 '요셉이다. 왜냐하면 야곱에게서 피어난 꽃은 그의 아들 요셉에게서 열매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바로 성령 하나님 시대의 이기는 자의 대표라면, 그 이후의 이기는 자들 중에 왕 노릇하는 자들의 대표가 바로 '요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 시대의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들의 삶에서 꿈과 환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욜2:28~32, 행2:17~19
욜2:28-32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2:17-1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여기서 우리는 꿈과 환상을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야곱이 꾸었던 꿈부터 살펴보자(창28:12~16). 그가 꾼 꿈은 영적인 실체를 그대로 보는 꿈을 꾼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본 것은 해석이 따 필요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 꾸었던 꿈(창37:7,9)은 달랐다. 왜냐하면 요셉이 꾼 꿈은 해석을 필요로하는 상징적인 꿈으로서 일종의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대에 이기는 자들의 삶에는 '꿈'과 '환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꿈을 통해 야곱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야곱의 12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간적히 기도하는 야곱의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셉도 꿈을 꾸는 자였기에, 자신이 17세에 같은 주제의 꿈을 겹쳐 꾸게 되었는데, 그는 이것을 자신을 향한 사명이자 하나님의 계시로 깊이 간직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붙들고 인내하여 그 꿈이 자신의 것이 되게 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꿈을 꾸는 자들이 되어야 마땅하다(창37:17). 하나님이 주신 꿈과 환상을 가지고, 시대 가운데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고로 더욱 더 오늘날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이 있다면 꿈과 환상을 통해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해 가지고 계신 위대한 계획과 비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개인의 성공을 뛰어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거룩한 목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꿈과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것을 성취하는 자가 바로 천국에 들어갈 때에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5. 나오며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일에 감사하는 자라는 것이다. 둘째, 자신을 해하려 한 원수까지라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을 지닌 자라는 것이다.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권한과 능력을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살리고 돕는 데 사용하는 자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삶의 모습은 창세기의 요셉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되기에 이른다. 고로 우리 모두 역시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꿈과 환상을 통해 알려주신 그분의 비전을 붙들고, 성숙한 인격으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권세를 자신의 성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살리고 돕는 데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그는 장차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왕 노릇 하는 영광스러운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2025년 08월 05일(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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